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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노동부 출신들이 민간인 사찰을 주도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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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노동부 출신들이 민간인 사찰을 주도했을까?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 범죄의 재구성 : 노사관계라는 시각에서

정치의 계절이 왔으니 <인사이드 경제>도 잠시 정치 문제로 한눈을 팔아보겠다. 장진수 전 주무관의 폭로로 정치권이 뜨겁다. 2010년 민간인 사찰 사건이 폭로되었을 때에는 '이영호 게이트' '영포 게이트'니 말이 무성하다가, 이제는 '윗선'이 누구인가 대통령이 몰랐을까 하는 쟁점으로 올라섰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선거철 최대 쟁점이 아닐 수 없다.

노동부 관료 출신들이 대거 연루

독자들 입장에서는 김이 샐 얘기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관심있는 부분은 '윗선'이 누구인가 하는 점이 아니라 이 지점이다. "아니, 도대체 이 사건에 왜 이렇게 노동부 관료 출신들이 많이 연루되어 있는 거야?" 우선 현재까지 밝혀진 최고 윗선은 이영호 씨인데, 사건 당시 직책이 청와대 '고용노사' 비서관이었다.

장진수 전 주무관에게 "현대자동차 기획조정실장, 지금 부사장인데 그 사람이 자네를 취업시켜 주기로 했어. 최악의 경우에"라고 말한 당사자인 최종석 씨는 노동부에서 서기관을 하다 서울지노위 사무국장을 거쳐,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 행정관으로 입성했다.

아울러 민간인 사찰의 핵심 중추 역할을 했던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도 노동부 출신으로 가득 차 있다. 우선 이 기관의 수장인 이인규 공직윤리지원관은 노동부 감사관을 지내다 이영호 비서관의 추천으로 그 자리에 앉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직윤리지원관실 기획조정과장도 노동부 서기관 출신이다.

장진수 전 주무관에게 4000만 원을 전달한 것으로 밝혀진 이동걸 씨 역시 노동부장관 정책보좌관(현직)이다. 이영호 씨가 과거 평화은행 노조위원장 출신으로 금융노련 조직본부장을 역임했던 경력과 마찬가지로, 이동걸 씨는 2000~2001년에 한국통신(현재 KT)노조 위원장 출신이다. 500여일 이상 장기투쟁을 벌였던 한국통신 계약직 노동자들이 노조 가입을 희망했을 때 이를 거부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동걸 보좌관은 십시일반으로 4000만 원을 모았다고 했는데, 이 모금에 동참한 것으로 알려진 노무사 한 명도 전직 노동부 관료였다. 어디 그뿐인가? <동아일보>에 따르면 이영호 전 비서관이 '선한 의도(?)'로 2000만 원을 마련해 장진수 전 주무관에게 전달할 때, 이 돈을 배달한 사람 역시 2008년부터 2010년까지 고용노동부 산하 근로복지공단 기획이사로 일했던 이우헌 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씨는 현재 코레일유통 사업본부장이다.

2010년 민간인 사찰 사건이 폭로된 후, 이 사건에 책임을 지고 구속된 이인규·진경락 씨에게 금일봉을 건넨 사실이 밝혀진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 역시, 돈을 건넨 시점 직전까지 노동부장관으로 재직했다. 그 스스로도 전직 노동부 출신 인사들이 구속되어 힘들어하는 것 같아 금일봉을 전달했다고 밝힌 바 있다.

▲ 지난 2010년 8월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받고 나오는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 ⓒ뉴시스

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

많은 언론들이 잘 분석하고 있는 것처럼, 이 사건의 핵심 기관은 총리실 산하 공직윤리비서관실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도대체 이 사건의 '윗선'으로 국무총리는 한 번도 거론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첫 총리는 한승수 총리였고, 이 사건이 폭로될 당시에는 정운찬 총리 시절이었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공직윤리비서관실'의 탄생 배경을 이해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이와 유사한 기관이 있었는데, 총리실 산하 '조사심의관실'이라는 기관이었다.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암행감찰반' '관가(官街)의 저승사자'로 알려져 있는 이 기관은 공직사회의 각종 비리를 조사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 시절에도 국무총리가 이 기관을 지휘했다기보다는 청와대가 직접 관장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당연히 노무현 정부 시절 조사심의관실의 폐해를 목 놓아 외쳤던 한나라당은,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인수위 논의를 거쳐 조사심의관실을 폐지하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사건이 발생했다. 광우병 논란으로 대규모 촛불시위가 터져나온 것이다. 결국 이명박 정부도 이러한 기관의 역할을 실감하고, 2008년 7월에 '공직윤리지원관실'을 청와대 별관에 설치하기에 이른다.

'왕(王) 차관'이라는 별칭이 붙은 박영준 전 국무차장은 <신동아> 2010년 7월호 인터뷰에서 "2008년 촛불시위가 발생하고 중앙청 공직자들도 시위에 나간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공직윤리지원관실을 부활시켰다"고 얘기했다. 이영호 전 비서관 역시 최근 기자회견을 통해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시절에 존재했던 국무총리실내 조사심의관실의 명칭을 바꾼 조직일 뿐"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이 기관의 설치에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아니라 이영호 고용노사비서관이 나서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노동부 출신 인사들이 다수 결합하게 된 것이다.

이 사건과 관련해 이른바 '영·포 라인'(대통령 출신 지역인 영일·포항 출신 인사들)이 자주 언급되곤 한다. 우선 이영호 씨가 포항 출신이며 이인규 씨는 경북 영덕 출신으로 고등학교를 포항에서 졸업했다. 2009년 국정감사 당시 민주당 최규식 의원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경찰 중에서 총리실에 파견된 인원이 총 11명이었는데, 이중 영남 출신이 무려 7명(64%)에 달했다. 그런데 그 중 공직윤리지원관실에만 5명이나 배치되었다. 총리실에 파견된 경찰들 중 이 대통령 모교인 포항 동지상고 출신이 2명, 포항고 출신이 1명이니, '영·포 라인'이라는 말이 나도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박영준 국무차장은 공직윤리지원관실을 부활시키면서 "지난 정부 10년 간의 기존 인력을 쓸 수는 없어 다른 데서 지원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 역할을 했던 인사들은 쓸 수 없었다는 말인데,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따르면 철저히 현 정부에 충성할 수 있는 인물들로만 구성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구성해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상 청와대 특수팀!

공직윤리지원관실의 구성과 실체는 2010년 6월, 민주당 신건 의원이 민간인 사찰 사건을 폭로하기 전까지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그러면서 거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기야 공직자들의 복무기강과 각종 비리 조사를 맡는 '암행감찰팀' 역할을 하다 보니 공직 사회 전체가 이들의 위세에 벌벌 떨 만도 하다.

2009년 상반기,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정무직 장·차관을 포함해 대대적인 고위직 공무원 평가작업에 들어갔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청와대조차 '활동 자제'를 요청할 정도였다. 출범한 지 1년 뒤인 2009년 9월 국정감사 당시 국회 정무위가 공직윤리지원관실에 각종 감사 자료 제출을 요구하자, "우리들은 공무원 이전에 국민이기 때문에 묵비권 행사를 하겠다"며 버텼던 일화는 유명하다. 나는 새도 떨어뜨릴 위세 아닌가?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공직자 복무기강뿐 아니라 '4대강 살리기 사업 실태점검' 등 정책현안에도 깊게 개입하고 있었다. 총리실을 거치지 않고 청와대로 직접 보고하는 장면이 자주 목격되었다는 증언들, 가끔은 'BH(청와대) 하명 사건 처리'도 도맡아 했다는 진술들처럼, 이 기관을 실제로 진두지휘하는 것은 총리실이 아니라 청와대였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정권이건 은밀하게 자신의 권력 안보를 위해 공작을 벌이는 '사설 특수팀'을 갖고 싶어한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이른바 '경찰청 사직동팀'이란 것이 운영되었다. 형식상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로 편재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은밀한 암행감찰과 청와대 하명 사건을 처리하던 대통령의 사설 정보기관 노릇을 했다. 그러다보니 사직동팀의 수장은 거의 예외없이 대통령과 동향 출신의 인사가 맡아왔다. 이번 사건과 유사하지 않은가?

그러나 2000년 김대중 대통령 지시로 경찰청 사직동팀이 해체된 후에는 총리실 산하 조사심의관실이 유사한 역할을 떠맡게 된다. 그러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 직후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며 조사심의관실을 폐지했다가, 촛불시위를 계기로 공직윤리지원관실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했다. 사실상 청와대 하명사건 처리를 하는 '특수팀'이지만, 외형상 청와대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어보이도록 하기 위해 경찰청이나 총리실에 편재한 것이다.

국무총리는 이들에게 '바지사장'이었을 뿐 실제 모시는 주인은 따로 있었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검찰의 재수사 선상에 한승수·정운찬 전 총리는 참고인으로조차 등장하질 않는다! 따라서 실제 지휘부가 청와대인가 아닌가 하는 논란은 의미가 없다. 애초부터 청와대 하명 사건을 처리하는 '특수팀'으로 설계된 것이나,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청와대와의 관계를 부정하기 위해 총리실에 속해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증거인멸이 아니라 자료 삭제?

첩보영화에서 많이 들어본 대사가 떠오른다. "만일 자네가 불법행위로 체포되면, 정부는 자네와의 모든 관계를 부정할 거네. 이해하지?" 이런 배경 속에서 지난 3월 20일, 이영호 전 비서관이 "자료 삭제 사건 몸통은 자신"이라는 기자회견이 열린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한사코 이 문제는 "증거 인멸이 아니라 자료 삭제"라고 주장한다. 언론에는 '말도 안 되는 변명'처럼 보도되었지만, 그에게는 믿는 구석이 하나 있는 것 같다.

"현 정부로 정권이 바뀌면서 노무현 정부 역시 조사심의관실에 있던 모든 자료를 소위 디가우징을 비롯한 모든 방법으로 철저히 삭제하였습니다. 이는 노무현 정부에서 총리를 지내시며 조사심의관실을 직접 지휘하신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께서 당연히 잘 알고 있는 사실이라 믿습니다."(이영호 기자회견문 중)

기관의 성격상 은밀한 공작을 진행해야 하고, 정권 안보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고급정보들이 총망라되어 있기에, 이런 자료들이 공개되는 것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막아야 했다는 얘기이다. 그가 던지는 실제 메시지는 이런 것이라 할 수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냐? 이전 정권도 똑같은 일을 벌였는데 왜 나만 갖고 그래? 이 정보들 다 공개되면 당신들이라고 안전할 것 같아?"

그래서 이영호 전 비서관은 한 술 더 떠서 한명숙 대표와 공개 TV 토론을 제안하기에 이른다. 노무현 정권 시절 조사심의관실 문제까지 포함해 톡 까놓고 얘기를 해보자는 취지 아니겠는가? 이런 TV 토론이 벌어진다면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정권안보 특수팀을 가동했던 전력이 폭로되어 시쳇말로 '자뻑'이 되지만, 이영호의 말은 민주통합당 역시 만만치 않은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민주통합당은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TV 토론 제안을 일축했지만, 나 같은 관전자 입장에서는 아쉬운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권 안보를 위해 가동한 청와대 특수팀이 벌인 10여 년 간의 사례를 앉아서 제공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말이다. 게다가 노동자의 삶과 경제를 주제로 글을 쓰는 내 입장에서는 더욱 아쉬운 지점이 하나 있다.

노사관계·노동정책 주무르던 이들의 정권 안보 작업

그것은 처음에 언급한 것처럼, 이러한 작업을 벌인 핵심 인사들이 노동부 출신이라는 점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정보라인이나 사정라인이 아니라 노동부 출신 아마추어들이 벌인 미숙한 작업"이라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이들이 현 정부의 노사관계·노동정책을 주무르던 인사들이라는 점에서, 이들이 벌인 다양한 작업 중에는 노사관계와 관련한 사안이 다수 포함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Reset KBS 뉴스9 화면 캡쳐
지난 22일, 파업 중인 KBS새노조가 만드는 <Reset KBS 뉴스9>의 보도 내용 중에는, 공직윤리지원관실 점검1팀이 작성한 컴퓨터 파일 목록이 있었다. 이 중 "KBS 최근 동향 보고"와 "쌍용차 작전 보고"라는 제목의 파일이 눈에 띈다. 자료 내용은 삭제되어서 알 수 없지만, KBS는 공기업이라서 감찰 대상이라 치더라도, 공직윤리지원관실은 민간기업 쌍용차에서 도대체 무슨 '작전'을 벌인 것일까?

다른 파일들은 대체로 '동향 보고'인데 반해, 쌍용차에서는 동향 수준이 아니라 '작전'을 벌였다고 적은 것이다. 노사관계를 주무르던 이들답게 직접 쌍용차 77일 점거파업 전반을 점검하며 이 사태 해결을 위해 모종의 작전을 벌였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노동 문제에 밝은 이들이 정권 안보 작업을 벌이다보니, 자연스럽게 다양한 노동 사안에 직접 개입해 '작전'을 벌이지 않았겠는가?

실제로 쌍용차 점거파업 기간 중에 기무사가 쌍용차 집회 현장에서 각종 촬영을 벌이고 민주노동당 인사를 사찰한 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다. 이 사건은 사찰당한 이들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벌여서 최근에 국가배상판결을 받아낸 바 있다. 기무사가 자신의 업무와 무관한 민간인 사찰을 벌인 것은 위법한 행위라고 법원이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왜 기무사가 쌍용차 파업 현장에서 사찰을 벌였던 것일까?

최근 민주통합당 박영선 의원은 YTN FM <출발 새아침>과의 인터뷰에서, 민간인 사찰팀에는 기무사에서 파견된 팀도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니까 이 민간인 사찰팀이 이영호 고용노사비서관으로 이어지는 라인이 있고요. 경찰에서 파견된 팀이 있고요. 초창기에는 국정원에서 파견된 팀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무사에서 파견된 팀도 있고 팀이 여러 가닥이 있기 때문에요."

다양한 노동 사안에 직접 개입?

사실 이들이 노동 사안에 직접 개입한 흔적들은 조금씩 남아 있다. 2010년에 처음 민간인 사찰 사건이 폭로되었을 때, 한국노총 공공연맹 배정근 위원장이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자신을 미행·사찰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당시 공직윤리지원관실은 미행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대신 배정근 위원장이 공공기관 직원이기에 감찰 대상이라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미행이 벌어진 시점은 배정근 위원장이 한국노총 지도부에 반기를 들고 '한나라당과의 정책연대 파기'를 주정하던 때였다.

최근 장진수 전 주무관이 다양한 녹취록을 공개하고 있는데, 그 내용에도 놀랄 만한 얘기들이 들어 있다. 대표적으로 최종석 전 행정관이 "현대자동차 기획조정실장, 지금 부사장인데 그 사람이 자네를 취업시켜 주기로 했어. 최악의 경우에"라는 말을 한 대목이다. 최종석 씨는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의 행정관으로서, 한국의 노사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기업인 현대차와 빈번한 접촉을 할 만한 인물이다.

게다가 문제의 녹취록 언급이 있었던 시점은 2010년 10월 18일이다. 현대차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라는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이 있은 지 석 달 뒤이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모든 사내하청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며 울산공장 점거파업에 돌입하기 딱 한 달 전의 일이다. 청와대에서 노사관계를 주무르는 인사가 기껏 현대차를 만나 민간인 사찰 죄를 뒤집어쓴 장진수 씨 취업청탁만 하고 있었을까? 그것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솟구치고 있던 민감한 시점에?

아울러 장진수 씨 부인을 취업시켜 주려는 대목에서는 류충렬 공직복무관리관이 노동부 서울 서부지청에서 고용서비스 인턴을 뽑으니 지원서를 넣으라며 "한 명을 뽑는데 지청장한테 얘기해놨긴 했는데"라는 언급도 눈에 보인다. 대화의 맥락상 류충렬 씨가 말하는 지청장은 '고용노동부 서울 서부지청장'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이 대목에서 다시 약방의 감초처럼 '노동부'가 등장하지 않는가?

류충렬 씨는 노동부 출신은 아니지만 장진수 씨에게 5000만 원을 전달한 인물로 등장한다. 그의 경력사항을 잘 들여다볼 필요가 있는데, 그는 과거에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전신인 '총리실 산하 조사심의관실'에서 근무한 바 있다. 그러다가 이명박 정권 들어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부활하자 이곳에 부임하게 된다. 2010년 민간인 사찰 사건으로 공직윤리지원관실 이름이 공직복무관리관실로 바뀐 뒤에도 공직복무관리관으로 남게 된다. 이 계통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라는 것이다.

물론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주요 업무는 정권 안보를 위한 업무이지 노사관계 조정이나 노동정책 생산이 아니다. 그러나 이 작업에 차출된 인사들 상당수가 노사관계·노동정책을 주무르던 인사들이기에, 다양한 노동 사안에 직접 개입했을 개연성은 충분하다. '쌍용차 작전'은 그런 차원에서 기획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노동자들의 투쟁을 효과적으로 분쇄하는 것이야말로 정권 안보에 필수적인 업무 아닌가?

사라진 컴퓨터의 행방은?

<인사이드 경제>가 이 사건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이들이 행했을 다양한 노동 사안 개입 건이다. 물론 지금까지 밝혀진 것은, 몇 가지 안 되는 흔적들뿐이다. 하지만 정권 안보를 위해 엄청난 일을 수행했을 이 기관의 다른 행적인들 흔적이나 남아 있겠는가? 이영호 전 비서관이 폭로한 것처럼, 노무현 정부도 조사심의관실 자료를 모조리 복구 불가능할 정도로 폐기했다고 하지 않는가!

이 사건의 시발점은 KB한마음 대표 김종익 씨가 영화 <식코>를 패러디한 '쥐코 동영상'을 개인 블로그에 올린 것을 두고 공직윤리지원관실이 각종 사찰과 조사·압력을 가한 사건이었다. 김씨의 블로그는 하루 방문자가 20명도 되지 않는 상태였는데, 그런 사소한 블로그 내용까지 추적해서 압력을 행사하여 결국 김 씨는 대표이사직을 내놓아야 했다.

이영호 전 비서관은 기자회견문에서 이 사건을 '직원들의 업무미숙'으로 돌렸다. 어떤 지점이 업무미숙일까?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 기관은 설립 취지와 목적부터 민간인 사찰과 다양한 정권 안보 업무를 하도록 설계되었다. 그렇다면 사실상 본연의 업무라 할 민간인 사찰을 벌인 것이 업무미숙일까?

그렇지 않다. 이런 일을 벌인 후 사건이 바깥으로 폭로되거나 불거져 나오지 않도록 관리하고 흔적을 지워야 하는데, 그것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이들의 업무미숙이라 할 수 있다. 외관상 공직윤리지원관실과 별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영호 고용노사비서관이 자료 삭제를 지시한 것, 오히려 이런 행위가 이들 입장에선 '제대로 된 업무'일 것이다. 장진수 씨가 최근 폭로하고 있는 내용들 역시, 그들이 행했던 일들의 흔적을 지우기 위한 다양한 작업들 중 하나 아닌가.

이명박 정권 출범 후 정부가 지향하는 노사관계 정책은 기본적으로 '불개입' 원칙으로 알려져 있다. 노사관계에 정부가 직접 개입하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노사 분쟁이 발생하면 다양한 루트를 통해 교섭과 대화 라인이 구축되던 김대중·노무현 정권과 차별선을 긋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쌍용차 정리해고 투쟁이나 중요한 노동 문제가 발생했을 때 시민단체들로부터 "정부가 손 놓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품었다. "어떤 정권이건 노사관계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정권 안보를 꾀한다는 것이 가능한가?" 그런데 이제야 그 의문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는 것 같다. 이 정권의 안보를 위해 뛰었던 핵심 인사들이 바로 노사관계·노동정책을 주무르던 이들이었다. 기관의 성격상 이들이 진행한 '사찰'이나 '작전'은 거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이명박 정권은 노사관계에 불개입하는 것처럼 보였을 뿐, 실제로는 '쌍용차 작전' 등 핵심 인사들이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움직였던 것 아닐까? 이들이 노동부 출신이자 '영·포 라인'이라는 점도 한 번 연결시켜보자. 2010년, 직장폐쇄와 마구잡이 탄압이 집중되었던 사업장이 발레오만도·KEC·상신브레이크 등 대구경북 지역이었다는 점은 전혀 연관이 없는 일일까?

장진수 전 주무관은 <Reset KBS 뉴스 9>에서 "검찰 압수수색 나흘 전인 2010년 7월 5일에 점검1팀이 소유한 컴퓨터 9대의 하드디스크를 삭제했는데 나머지 컴퓨터 1대는 사라지고 없었다"고 밝혔다. 사라진 컴퓨터의 행방을 찾는다면 우리가 궁금해하는 수많은 '흔적들'을 잡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 이들이 노동 사안에 개입한 흔적들이 밝혀진다면, 그동안 뒤로만 돌아갔던 노동 3권 시계의 태엽을 되감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 순진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 흔적들이 모두 밝혀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 세력은 단순히 현 정권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 정권들도 자신의 행적이 들춰질까 봐 노심초사 하고 있을 것이다. 이영호-한명숙 TV 토론회가 열릴 가능성도 없어보인다. 하지만 장진수 전 주무관 같은 이들이 용감하게 하나 둘씩 진실고백에 나서기를 기대하는 것조차 순진한 것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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