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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민은 제대로 된 복지국가를 기대해도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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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민은 제대로 된 복지국가를 기대해도 좋은가?

[복지국가SOCIETY] '위험한 프레임'으로 진행되는 세금 논쟁

총선과 대선이 있는 올해 각 당은 너도 나도 복지를 주요 정책으로 내놓고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복지 정책을 폄하하고 복지론자들에 대해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해 왔던 한나라당마저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꾼 후 '한국형 복지국가 모델'을 선언했다. 이러한 '사상 전향'에 대해 보수 논객들은 속 보이는 '배신'이라며 신랄한 비판을 쏟아 붓고 있으나 정작 복지의 '원조'격인 진보정당들로서는 핵심 정책을 도둑맞은 상황이라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누가 원조이든 모든 정당이 복지를 주장하고 있으므로 이제 우리 국민들은 제대로 된 복지국가를 기대해도 좋은가? 그러나 상황이 꼭 그렇게 전개될 것 같지는 않다.

'용두사미' 우려를 불러일으키는 양대 정당의 복지 모델

어떤 복지를 이야기하는가, 이것이 문제이다. 새누리당이나 민주통합당 모두 여전히 '생산적 복지'라는 좁은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생산적 복지'란 영국 노동당의 사회투자국가론을 원형으로 하는 것으로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 2009년 뉴 민주당 플랜 당시의 민주당 등이 내건 노선이기도 하다. 사회투자국가론의 핵심은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이다. 예컨대, 교육·보육·직업훈련 등에 대규모 재정을 투입해 훌륭한 '인적 자본'을 육성함으로써 '실업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겠다는 것이 기본 아이디어이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복지공약이 비슷해 보이는 것은 민주통합당이 지향해 온 영국 신자유주의자들의 '생산적 복지' 개념에 새누리당이 수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새누리당이 '생산적 복지'를 받아들였다는 것 자체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복지 모델로는 현재 한국 사회가 당면한 저성장·양극화, 저출산·고령화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 복지 모델은 복지 프로그램들을 '생산적 복지'와 '소비적 복지'로 나누고 생산적인 복지는 경제성장에 기여하므로 장려해야 할 것이지만 소비적 혹은 비생산적 복지는 경제성장에 기여하지 않으므로 줄여야 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모델에서 보았을 때 가장 비생산적인 혹은 소비적인 복지 중의 하나는 노령연금이다. 노인인구는 생산 활동에 거의 기여하지 못하는 인구집단, 사회가 부양해야 할 인구집단이므로 이들에게 이전되는 연금이란 가능한 한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게 된다. 영국은 이러한 원칙에 근거해 '소비적 복지'로 여겨지는 복지 프로그램들은 줄여왔다. 이 모델이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표현으로 유명한 영국에서 추진되었다는 점에서 '소비적 복지'의 축소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이미 어느 정도 복지가 확대된 상태에서 효율화를 시도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전반적으로 복지가 열악하다. 이러한 상태에서 '생산적 복지' 개념을 원칙으로 강조하는 것은 만들어져야 할 기본적 복지 제도들이 아예 생겨나지 못하게 할 것임에 틀림없다. 교육·보육·직업훈련만 강화하면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저성장·양극화,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고령화 문제의 경우, 향후 교육·보육 복지가 강화되면 저출산 문제가 다소 해결되어 고령화 속도가 소폭 느려질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생산적 복지' 모델은 여기까지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생산적 복지 모델은 기본적으로 노인 인구의 증가는 사회의 부담을 급격히 증가시킬 것이므로 현 상태의 노인 계층을 위한 연금 혜택은 늘려서는 안 되며, 연금 수급 조건을 더욱 까다롭게 해야 한다고 전제한다.

이러한 복지 모델로는 OECD 국가들 중에서 노인 자살률이 제일 높은 우리의 현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다.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노인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노인 인구의 비중이 낮아지는 것이 아닐까라는 냉소적인 전망도 가능하다. 결국 아직까지 사각지대도 많고 복지 수준이 매우 열악한 상황에서 비생산적인 복지는 줄여야 한다는 '생산적 복지' 모델은 이와 같은 현대판 '고려장' 문제를 그대로 방치할 수밖에 없다. 어디 노인들뿐인가? 장애인을 둔 가족이 사는 게 너무 힘들어 동반 자살하는 일이 실제로 벌어지는 복지 후진국에 우리는 살고 있다.

<복지 및 조세 정책의 불평등 완화도 및 빈곤 감소도>
주: KOR은 한국, USA는 미국, JPN은 일본, GBR은 영국, SWE는 스웨덴, OECD-25는 OECD 25개국 평균 의미.
출처: OECD(2011), A framework for growth and social cohesion in Korea, June.

위의 그림은 OECD 25개 국가들의 복지 및 조세 정책이 소득 불평등 정도를 어느 정도 완화하는지, 빈곤의 문제를 어느 정도 줄이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막대그래프의 길이가 길수록 정부의 복지 및 조세 정책이 이 문제들의 해결에 있어서 높은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르면 영국(GBR)은 불평등 완화도에 있어서는 OECD 평균보다 못하지만 빈곤 완화도에 있어서는 평균 정도의 성과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두 항목 모두에서 OECD 25개국 중에서 가장 형편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즉 우리가 영국 수준의 복지를 달성하는 데에도 매우 지난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문제는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현재 내놓은 것처럼 보육과 교육에 대한 지원을 다소 강화하는 정책만으로는 절대 영국 수준에도 이를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고작 우리나라 바로 뒤에 있는 미국 혹은 우리와 멀지 않은 일본 수준으로 소폭 개선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래서는 현재 한국 사회가 당면한 심각한 양극화와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된다. 더 나아가 위의 그림은 영국보다 더 나은 스웨덴이라는 복지모델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스웨덴 복지 모델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경제성장률이 양호하면서 동시에 불평등 완화나 빈곤 감소에 있어서 탁월한 성과를 거둔 모델이라는 점이다. 영국 모델과 비교한다면, 스웨덴 모델은 생산적 복지와 소비적 복지가 모두 강조되고 있다는 점, 이러한 복지가 선별적 방식이 아닌 보편적 방식으로 주어진다는 점이다. 복지반대론자들이 보기에는 한없이 퍼주는 모델일 수 있지만 성장과 분배 모두에서 높은 성과를 보이고 있는 모델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스웨덴 모델이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부자증세', '대기업 증세'라는 위험한 프레임으로 추진되는 세제 개편 논쟁

복지의 확대를 위해서는 복지 재원의 증대가 뒤따라야 하지만 복지를 위해 증세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순간 표가 떨어진다는 생각 때문에 그동안 정치권에서 증세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그런데 최근 들어 분위기가 다소 바뀐 듯하다. 증세를 논의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우선 MB정부의 감세정책이 '부자감세'였으므로 이를 되돌려야 한다는 데 많은 국민들이 동의하게 되었고, 재벌의 '일감 몰아주기'와 같은 편법증여에 국민들이 분노함에 따라 이러한 재벌의 일탈행위를 막을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공감대도 형성되었으며, 더구나 미국에서 '버핏세' 도입이 추진됨에 따라 '부자증세', '대기업증세'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이는 MB정부 '부자감세'의 자연스런 대립물이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지난 해 12월 31일 소득 3억 원이 넘는 계층에 대해 38%의 소득세를 부과하기로 하는 세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그러나 과세표준 3억 원 초과소득자가 소수에 불과해 부자증세에 대한 실질적 성과는 별로 없을 것이라는 여론에 힘입어 집권을 노리는 민주통합당은 올해 2월 26일 국회에서 조세정의 실현과 복지재원 확보를 위한 조세 개혁 방안을 19대 총선 공약으로 발표했다. 그 주요 내용은 상위 1% 고소득자와 0.1% 대기업에 대한 세금부담을 높이고, 금융소득과 파생상품 거래 세금도 강화해 2017년까지 연간 20조 원 규모의 재정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즉, 현재 3억 원인 소득세 과세표준 최고구간을 1억5000만 원으로 낮추고 8000만 원 이상 고소득자에 대한 근로소득도 공제 대상에서 제외해 '1% 부자증세'를 실현하겠다는 방침이다. 또한 현재 비과세인 장내 파생금융 거래에 대해 0.01% 거래세를 추진하고 금융소득종합과세 기준도 현재 4000만 원 이상에서 3000만 원 이상으로 내리겠다는 방안도 제시했다. '재벌세'로 논란이 됐던 법인세는 500억 원 초과 최고세율 과표구간을 신설하고 25%의 세율을 적용키로 했다. 반면 영세자영업자 세액부담 경감 방안의 경우 부가가치세 기준을 현행 연간 매출액 4800만 원에서 연간 매출액 8400만 원으로 상향 조정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누가 보아도 '부자 및 대기업 증세'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위와 같은 세제 개편방안에 대해 우리는 어떤 평가를 내릴 수 있는가? 이러한 정책은 복지국가를 실현하는 바람직한 세제 개편인가? 복지국가에 관한 논의가 재원 마련 방안으로 구체화되고 있는 것 자체는 매우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부터가 더욱 중요하다. 세제 개편이 단기적으로 표를 얻기 위한 꼼수에 그친다면 보편적 복지국가의 비전은 정말로 용두사미가 될 수 있다.

이러한 불안감을 안고 현재의 '부자 및 대기업 증세' 방안에 대해 간단히 평가하자면 단기적으로는 실행가능하고 타당하며 서민과 중산층을 결집시킬 수 있는 전략이 될 수 있지만, 보편적 복지국가를 위해 장기적으로도 유효한 방안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즉, 현재 우리나라 고소득층이나 대기업이 실제로 지고 있는 세 부담이 국제적으로 높은 수준이 아니므로 당장 필요한 복지 재원은 부자 및 대기업에게 더 많은 부담을 지워 해결하는 것이 나쁘지는 않지만 복지국가가 점점 확대되어 간다면 이러한 방식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표) OECD 국가들의 조세별 세수 규모 비교 (2008년, 단위: GDP %)

스웨덴은 막대한 복지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고 있는가? 우리가 스웨덴의 세제 구조를 그대로 따라해야 할 필요는 없으나 스웨덴의 사례는 분명 우리에게 유용한 시사점을 제공해 줄 것이다. 스웨덴의 국민부담률은 GDP 대비 46% 수준으로 한국의 26%에 비해 거의 두 배 가까운 수준이다. 그런데 법인세수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3.5%로 한국 수준과 비슷하다. 가장 많은 세수를 부담하고 있는 세목은 소득세로서 GDP대비 13.8%이고 소비세는 12.8%로서 크게 차이가 발생하지 않는다. 이러한 세수 구조는 일반적인 통념과는 차이가 나는 것이다. 진보적인 복지국가라면 법인세를 많이 걷고 누진적인 소득세를 소비세보다 훨씬 더 많이 걷을 것으로 대부분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소득세와 소비세만을 비교하면 미국이 더욱 진보적인 조세 구조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 소득세가 소비세의 거의 두 배가 되기 때문이다.

또 다른 북유럽 복지국가인 덴마크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덴마크의 경우 복지프로그램을 거의 조세 수입으로 시행하기 때문에 사회보장의 역할이 적다. 따라서 법인세 외에 또 다른 기업의 부담인 고용주분의 사회보장분담금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세제 구조를 들어 복지확대 반대론자들은 "스웨덴이 부국인 것은 복지 때문이 아니라 경제적 자유수준이 높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즉 스웨덴이 부국인 것은 복지국가이기 때문이 아니라, 경제적 자유 수준이 높기 때문이며, 경제적 자유 수준은 여러 가지 정책들에 의해 좌우되지만 가장 대표적인 정책으로 위와 같은 세금정책을 들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스웨덴이 부국인 것은 불공평한 세금제도로 인해 성장을 촉진할 수 있었고, 그 성장의 열매를 통해 복지국가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전체 맥락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서 헛웃음을 유발한다.

스웨덴이 이러한 세제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은 세제 정책의 궁극적 목표가 '부자증세, 대기업증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복지국가'를 실현하는 '공평과세'를 추구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법인세를 높게 거두고 소비세보다 소득세를 많이 거두어야만 진보적인 정책을 실현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보수적 학자들도, 진보적 학자들도 이제는 넘어서야 할 낡은 고정관념에 불과하다. 법인세란 기업의 이윤에 부과하는 세금인데 법인세가 부과된 이윤이 개인에게 배당될 때 다시 배당소득세가 부과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자본의 이윤에 대한 과세는 법인세 단계와 소득세 단계에서 두 번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법인세 단계에서 높게 과세하지 않아도 소득세 단계에서 제대로 과세하면 된다.

최종적으로 국민들에게 중요한 것은 가처분 소득 단계에서 구매력의 불평등함, 혹은 빈곤함을 국가가 얼마나 해결해 주는가의 문제이므로 소득세와 복지제도가 제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이 법인세를 많이 걷는 것보다 더욱 중요하다. 소득세와 소비세의 비중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처럼 저소득층에게만 선별적으로 복지를 제공하는 모델에서는 복지 재원이 스웨덴만큼 대규모로 필요한 것이 아니므로 소득세 위주로 거두어서 재정을 운영하는 데 문제가 없다. 그러나 보편적 복지국가는 대규모의 재원이 필요하다. 소득세 확대만으로 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소득세 비중이 GDP의 13%, 25%가 된다면 그 다음 복지 재원의 부담은 소비세가 담당할 수 있다.

간이과세 확대는 공평증세, 복지증세의 원칙을 위협

소득세와 소비세 위주의 북유럽 국가들의 세제 구조는 고정관념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덜 진보적인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대규모로 '공평하게' 재원을 마련하여 대규모로 복지를 시행하기에 적합한 것이다. 공평증세를 지향하는 조세 제도 하에서는 면세자들이 거의 없으며, 저소득층도 국가 재정에 기여하기 때문에 고소득층도 큰 저항 없이 높은 소득세를 내게 되고, 보편적 복지 정책을 실시하기에 충분한 세수를 거두어들일 수 있게 된다.

만약 복지 재원 부담이 부자와 대기업에게만 지나치게 쏠린다면 심각한 조세저항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국민들에게 복지국가란 고소득층이 저소득층을 부양하는 체제라는 생각이 들게 할 수 있다. 또, 부자증세를 통해 거둘 수 있는 재원이 그리 많이 않다는 점에서 부자증세만을 강조하는 증세방안은 결국 미국과 같은 선별적 복지체제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당장 복지국가의 재원마련은 부자증세와 대기업증세로부터 시작할 수 있지만, 이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중장기적으로는 부자증세 프레임이 아니라 '복지증세', 이를 위한 '공평증세' 또는 '보편증세'의 프레임으로 가야 한다. 보편적 복지국가로 가는 데서 '부자증세, 서민감세'의 프레임은 '부자감세' 만큼이나 장기적으로 위험한 전략임을 강조하고 싶다.

▲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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