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은 미국의 지도자들과 만나는 동안 미국과 중국의 협력관계를 강조하면서도 경제와 영토, 인권 등 자국의 이익과 직결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이 중국의 이익과 관심사를 존중해야 한다'며 태도를 분명히 했다. 앞으로 세계 질서를 주도해 나갈 양국이 협력과 갈등을 반복할 가능성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미국의 안보분야 싱크탱크 '포린 폴리시 인 포커스'(FPIP)의 존 페퍼 소장은 21일(현지시간)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미국이 흔히 중국의 새로운 지도자에게 품는 근거 없는 기대는 접으라고 충고했다.
페퍼 소장은 중국이 급격하게 성장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군사력을 확장하면서 미국의 패권에 위협이 된다는 주장이 있지만 중국은 아직까지 세계 질서에 관여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지 않다고 분석했다. 반대로 중국이 미국의 진정한 파트너 국가가 돼 협력관계를 강화할 것이라는 낙관론에 대해서도 중국은 언제까지나 자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움직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중심의 시각으로만 중국을 재단하거나 기대를 품고는 건 순진하고,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해서 중국을 마냥 비판하는 것 건 부당하다는 지적이다.
시진핑 역시 친기업적 성향을 드러내고 미국 프로농구의 팬이라는 점 등 미국에 친숙한 면이 알려졌다고 해서 그가 '베이징의 미국인'이 될 것이라는 환상을 품는 것은 오판이다. 그 역시 자신만의 국정철학을 갖춘 동시에 중국을 이끌어가는 공산당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이 칼럼의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 (☞원문 보기)
▲ 14일(현지시간) 미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첫 만남을 가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부주석 ⓒAP=연합뉴스 |
'베이징의 미국인'을 기대하지 말라
2002년 후진타오(胡錦濤)가 중국의 국가주석이 됐을 때 미국 기업들은 그의 등장이 "미국 경제에 좋은 신호"라고 환영했다. 정치 분석가들은 후진타오가 중국 공산당의 4세대 지도자로 '감춰진 자유주의 성향'을 매우 잘 드러낼 것 같다고 설명했다. 언론은 안전한 길을 택해 그를 '실용주의 성향의 수수께끼 인물'로 묘사했다. 9.11 테러 이후 반테러 정책에서 높은 수준의 협력관계를 보여주면서 후진타오는 믿음직한 미국의 파트너임을 입증했다. 2003년 콜린 파웰 당시 미 국무장관은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1972년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중국 방문 이후 가장 좋은 상태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언론과 전문가들이 후진타오에 대해 시큰둥해지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2005년 <이코노미스트>는 그가 공산당 규율을 엄격히 하고 지식인들을 탄압했다며 '보수적인 권위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였다. 후진타오는 또 무역, 환율, 지적재산권, 인권과 관련한 미국과의 분쟁에서 고집을 꺾지 않아 미국 내에서 비난을 샀다. 반테러 정책과 관련해 미국과 중국의 이해관계는 수렴됐지만 대부분의 사안에서 후진타오는 '감춰진 자유주의적 성향'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게다가 테러와의 전쟁과 관련해 부시 행정부는 자유주의자를 원하지 않았다.
이제 중국은 또 다른 권력 이양을 준비하고 있고, 후진타오의 뒤를 이을 시진핑이 최근 미국을 방문했다. 서양의 외교 소식통들은 후진타오와 마찬가지로 시진핑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친기업' 성향 이외에는 많은 것에 대해 무지함을 인정했다. 그는 중국의 유명 가수와 결혼했다, 부패를 좋아하지 않는다, 농구 팬이다, 아버지 시중쉰(習仲勳)은 천안문 광장의 시위대들에게 동정심을 느끼기 전까지 공산당의 충신이었다. 이런 토막지식 이외에는 알려진 바가 없었기에 기자들은 시진핑이 미국에서 보여준 모습을 샅샅이 추적했다. 오바마 정부 인사들과의 만남, 27년 전 방문했던 아이오와주를 다시 찾은 일, 미 프로농구 LA 레이커스의 경기를 관람한 일까지 중국의 새 지도자가 실제로 품은 정치적 본성에 대한 단서를 얻기 위해서였다.
시진핑은 이러한 언론을 실망시켰다. 그는 워싱턴DC에서 가진 연설에서 자신을 초청한 서방 지도자와 자국 내 동료들을 동시에 만족시키기 위해 말을 조심스레 골랐다. 예를 들어 그는 미국과 중국의 관계를 "계속 앞서가는 멈출 수 없는 강물"이라고 했고, 반테러 정책부터 북한에 대한 이슈까지 폭넓은 의제에 관해 미 정부와 협력하려는 중국의 의지에 대해 설명했다. 동시에 그는 미국에 "중국의 이익과 관심사를 존중할 것"을 경고하는 것에도 조심스러웠다.
'중국은 중국의 국가 이익이 있다'라는 발언은 중국의 지도자들이 얼마나 자주 사용하는지에 관계없이 서방의 관찰자들을 피하는 상투적인 방식이다. 물론 중국 지도자들은 미 프로농구를 좋아가거나 미국의 기업에 감탄할지 모른다. 그러나 핵심은, 시진핑은 조직 자체와 중국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헌신할 정치·경제·군사기구를 이끌 인물이라는 점이다. 미국을 포함한 대부분 나라의 지도자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확실히 중국 정부의 어느 누구도 올해 미 대선에서 당선될 인물이 중국식 국가 자본주의와 중국의 경제성장에 따라 편중되어 가는 국제 무역질서를 수용할 거라든지, 태평양에서 부상하는 '슈퍼파워' 중국에 미국의 군사적 위상을 넘겨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기이한 이유로 미국의 관찰자들은 최근 등장한 중국 지도자들이 갑자기 옷을 벗어던지고 그 안에 입고 있던 (미국의 영웅 캐릭터) '캡틴 아메리카' 유니폼을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중국이 말하는 국가의 이익이 가장 분명히 드러나는 분야는 아마도 안보 이슈일 것이다. 후진타오 집권 초기 서방에서 벌어진 논쟁은 중국의 '평화로운 부상'[화평굴기]에 집중됐다. 더 최근에 들어서는 중국이 과거 우크라이나로부터 사들인 항공모함 개조에 성공한 점, 남중국해에 대해 품고 있는 중국의 야망, 센카쿠(尖閣, 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열도와 관련해 일본과 벌이고 있는 갈등, 그리고 점점 늘어나고 있는 중국의 국방비를 지적하는 비관론자들이 나오면서 논의는 더 암울해졌다. 싱가포르의 안보전문기관 'IHS 제인'에 따르면 중국의 국방비는 2015년까지 2380억 달러로 늘어날 예정인데 이는 아시아 나머지 국가들의 전체 국방비보다 더 많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평화로운 부상' 방식을 중단하는 어떤 징후도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다. 중국이 개조한 항공모함은 특히 미국이 보유한 10척의 현대식 항모와 비교하면 엄청나게 인상 깊은 것도 아니다. 일본은 한국과도 유사한 영유권 분쟁을 겪고 있는데, 이는 '평화로운 부상'을 중단할 국가는 중국이 아니라 일본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 같다.
남중국해에 있는 남사군도·서사군도에 대한 영유권이 있다는 중국의 주장은 오래 전부터 나왔으며 시기를 따지면 과거 공산주의 국가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중국이 해외에서 주요한 군사 개입에 들어갔던 건 벌써 30년 전[베트남과의 전쟁]이며 위험을 회피하려는 중국의 전체적인 경향이 바뀌는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어쨌든 동아시아 지역을 갈등으로 몰아넣는 것은 중국의 영토에 대한 야욕이 아닌 기후 변화다. FPIF의 필자 중 한명인 데렉 볼튼은 '남중국해에 부는 바람이 변하고 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남중국해의 수온은 계속 오르고 있으며 많은 양의 물고기가 북쪽으로 이주해 영유권 분쟁이 격렬한 바다로 오고 있다"며 "어부들은 물고기를 따라갈 수밖에 없고, 미래에는 보다 심각한 갈등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동시에 미국은 중국보다 적어도 5배 많은 국방비를 쓰고 있으며 중동에서 아시아로 안보정책을 재전환하는 중이다. 미국은 호주, 필리핀, 심지어 베트남과의 군사협력을 강화하면서 중국의 신경을 자극하고 있다. 중국이 국방비를 늘리는 것은 좋은 조짐이 아니지만 중국 지도자들은 자국의 라이벌인 미국과 동등한 위치에 올라서기 전까지 갈 길이 멀다고 믿고 있다.
중국 지도자들이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선 사항은 국가주의자로 남아있는 것이다. 광활하고 말썽 많은 국가를 하나로 모으고, 대만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며, 높은 수준의 경제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 이웃 국가들을 통해 지속적인 에너지 공급을 보장받는 것이다. 후진타오와 시진핑은 미국의 교섭 상대을 향해 미 정부가 이러한 국가적 과제를 인식하는 동안에는 밀접한 미중관계가 가능하고 또 바람직하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중국으로부터 오는 근본적인 위협은 군사 방면이 아닌 경제에 있다. 이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경제를 가진 중국은 미국의 차기 대통령 임기 동안 미국을 뛰어넘을 수 있다. 미 정부는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 환율조작, 지적재산권 침해 문화에 대해 불평한다. 일본과 한국의 경제 성장 이후 모든 근대화 사례와 같이 중국은 저개발 국가에서 개발도상국으로 뛰어오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규칙을 어겨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비판자들은 세계 경제의 동력이 되고 있는 중국이 더 이상 도전자(underdog)가 아니라고 지적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국의 많은 부분은 개발되지 않은 상태다. 그리고 중국의 경제적 힘은 국제기구에서의 의결권에 반영되지 않는 상태다. 월드뱅크(WB)와 국제통화기금(IMF)에서 미국은 거의 15%의 의결권을 가지고 있는 반면, 4% 가량을 가지고 있는 중국은 순위에서 아래에 쳐져 있다. 달리 말하면 중국은 테이블에 초대는 받았지만 게임의 규칙을 정하는 이들에는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놀랄 것도 없이, 중국은 여전히 이 규칙을 거스르고 있다.
중국의 내부 화합, 주변국과의 관계, 미국과의 줄다리기 싸움이라는 세 종류의 균형(Three Balances) 맞추기를 어떻게 유지하는 가에 있어 시진핑은 의심의 여지없이 그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는 서방이 언젠가는 중국이 배출하기 바라는 신화적 인물은 아니다. 시진핑은 어느 편에서는 남의 간섭을 받지 않는 사람이며, 한편으로는 중국 공산당의 일원이다. 그러나 베이징에 심어 놓은 미국인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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