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과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등이 지속적으로 충돌 가능성을 제기해 온 분야가 별다른 논의 없이 그대로 통과된 셈이라, 결과적으로 다가오는 3월 15일 0시가 지나야 어떤 결과를 불러올 지 알 수 있을 전망이다.
▲최석영 FTA교섭대표가 22일 오후 서울 도렴동 정부중앙청사 별관 외교통상부 제1브리핑룸에서 한·미 FTA 이행점검협의 결과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
날치기 덕분에 "미국에서 준비 잘 됐다 하더라"
22일 최석영 외교통상부 FTA 교섭대표는 서울 외교통상부 브리핑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해 12월 5일부터 지난 20일까지 이뤄진 양측의 이행점검 대면협의 결과를 밝히고, 다음달 15일 0시를 기해 한미 FTA가 공식 발효된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한미 FTA의 발효시간은 한국과 미국 각각의 현지시간 0시를 기해 발효되므로, 엄밀히 말해 정확히 같은 시간에 동시 발효되는 건 아니다.
최 대표는 "이행점검협의는 기존 협정 규정을 수정하거나 재해석하는 새로운 협상이 아니"라며 "협정이행을 위한 법적·행정적·제도적 조치사항들을 '상호확인'하기 위한 협의"였다고 말했다.
결국 국내에서 재협상 요구가 거세게 일었던 내용을 논의하는 자리는 아니었다는 뜻이다. 미국은 한미 FTA 협정문에 맞춰 한국의 법률개정이 제대로 이뤄졌는지를 확인했고, 한국은 미국의 한미 FTA 이행법 등 협정 의무이행과 관련한 세부사항이 발효 전 준비될 수 있는지를 주로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대표는 "이행협의는 양측 간 질의-응답 방식으로 진행됐다"며 "우리 측의 규정 수정 또는 제도변경에 대한 일체의 합의나 약속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행협의 결과 한국은 한미 FTA 발효를 위해 국내법령 22개 분야를 정비했다는 점을 미국에 확인받았고, 미국은 8개 법률을 개정했으며 7개 하위규정을 발효 이전에 도입할 예정이라는 점을 한국에 확인받았다.
이행협의가 약 70여일 만에 끝난데 대해 최 대표는 "미국이 다른 나라와 체결한 FTA와 비교하면 굉장히 짧은 시간 안에 끝났다"며 "대개 이행협의 기간만 5~6개월이 걸리고, 길게는 1년이 넘게 걸렸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미국의 <인사이드 유에스 트레이드> 등 언론은 한국 정부가 한미 FTA와 4월 총선의 연계를 막기 위해 발효를 서두르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국내에서도 이와 같은 의혹이 여러 차례 제기됐었다. 실제 이번 정부 측 말을 따르더라도, 한미 FTA 이행협의가 이례적으로 일찍 끝난 덕분에 한미 FTA의 총선 전 발효가 확정된 셈이다.
그러나 최 대표는 "한국이 빠른 시간 안에 한미 FTA 협정문의 내용을 (국내 법률에) 정확히 반영할 수 있었기 때문"에 협의가 수월하게 이뤄진 것이라며 "미국 측에서 굉장히 놀랐었다. 그만큼 국내 이행법령 체제가 잘 준비됐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의회는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날치기하던 당시 협정문에 맞게 상충하는 국내 법률을 고치는 개정안도 동시 통과시켰다. 그로 인해 그만큼 이행협의에 대한 준비가 잘 됐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유통법·상생법에 질문 안 해
이번 협의를 끝으로 한미 FTA는 발효 초읽기에 들어갔지만, 그간 제기된 의문들은 풀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사례가 유통법·상생법 등 서민경제 보호 법률과 FTA의 충돌이다. 지난해 7월 한·EU FTA 발효를 앞두고 국회가 처리한 두 법안은 재래시장의 상권 내에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입점을 제한하고(유통법), 프랜차이즈 업체를 사업조정 대상에 포함하는(상생법)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법안은 당시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도 FTA 조항에 위배된다고 강조한 내용이기도 하다.
이에 더해 총선을 앞두고 '좌클릭'에 나선 새누리당은 지난 13일 아예 대형마트와 SSM의 지방 중소도시 신규 진출을 5년간 금지하는 대책을 발표한 바 있다. 전문가들이 '한미 FTA와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 부분이다.
그러나 이번 이행협의에서는 이처럼 충돌 가능성이 우려되는 조항을 어떻게 적용할지에 대한 논의가 오가지 않았다.
최 대표는 "미국 측이 유통법과 ISD 조항의 비합치 여부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이 밖에도 논란이 되는 국내 법 조약 대부분이 이번 이행합의에서 별다른 논의없이 지나갔다. 그만큼 한미 FTA 발효 후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불확실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쇠고기 재협상 문제도 뜨거운 감자로 남아 있다. 이와 관련, 미국의 의회전문지 <더 힐>은 지난해 10월 한미 FTA 발효 후 6개월 이내에 한국과 미국이 쇠고기 재협상에 돌입할 것이라는 전망을 보도한 바 있다. 당시 이 신문은 론 커크 USTR 대표가 관련 협상을 주도할 것이라는 맥스 보커스 미국 민주당 하원의원의 말까지 전했었다.
최 대표는 그러나 "쇠고기 재협상 문제는 한미 FTA 협정문 이행협의의 대상이 아니었다"며 "협의 과정에서 쇠고기와 관련된 논의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개성공단 생산제품의 원산지 규정 문제도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 최 대표는 "원산지 검증 문제는 한미 FTA 발효 후 양측 세관당국 간 실무적인 논의가 있어야만 할 것"이라며 "실질적으로 (이번 이행협의에서) 원산지 규정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없었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다만 "개성공단 관련 규정이 분명히 설명했기 때문에 (규정에 따라) 협정 발효 1년이 되는 해 양국 간 역외가공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회에서 북한의 비핵화와 남북 간 관계진전을 검토하는 것과 함께 개성공단 지역의 환경요건과 노동여건을 검토한 후 제품의 원산지를 한국산으로 할지에 대해 검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성공단에 진출한 국내 중소기업의 핵심이익의 여부는 결국 한미 FTA 발효가 확정됐음에도 여전히 풀리지 않은 셈이다.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한미FTA 발효 철회 및 폐기 선언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회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
ISD 적용범위 여전히 '미궁'
무엇보다 한미 FTA 비준동의를 둘러싸고 가장 큰 논란이 됐던 ISD 적용범위도 모호한 채 발효를 맞게 됐다.
최 대표는 "ISD에 대해 제기된 우려가 정말 있는지를 (이행협의에서) 다시 검토해보고, 다양한 의견수렴과정을 거쳤다"면서도 "(양국 간) 규정 해석의 차이는 존재한다. 그 차이에 대해 양측이 입장을 개진한 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견의) 비율이 얼마인지를 말씀드리자면 아주 작은 부분"이었다며 "아주 극히 일부분에 있어서는 (ISD 적용 범위를 놓고) 의견의 차이가 있다는 점을 서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최 대표는 다만 "(ISD 조항에 대해) 비판하는 단체가 말씀하시는 '사법주권 침해'라는 지적에는 동의할 수 없다"며 "ISD는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 필수적인 규정"이라고 기존 정부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결국 한미 FTA가 발효되더라도 한국과 미국의 입장차이, 협정문 해석에 따라 ISD의 적용여부도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ISD는 기업의 중재요청이 있을 경우 곧바로 중재기구로 사안이 넘어가므로, 그만큼 각국 정부는 비용과 시간에서 부담을 받게 된다. 한미 FTA가 발효된 후 일정 기간은 혼선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ISD 조항의 재협상 가능성에 대해 최 대표는 "협상에서 한쪽이 요구하면 상대방도 그에 상응하는 요구를 하는 게 상식"이라며 "우리가 ISD 재협상을 요구하면 당연히 미국도 반대급부를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그 반대급부가 쇠고기 재협상이 될 수 있느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우리 정부가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한다. 쇠고기와 관련해서는 정부가 가지는 마지노선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한편 한미 FTA 저지 범국본은 이날 오후 1시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미 FTA 폐기를 요구하고, 오는 25일 오후 5시 청계광장에서 범국민대회를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날 집회를 통해 한미 FTA 반대입장을 다시 밝히기로 해, 총선을 앞둔 마당에 야권의 저항이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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