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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유망주 빼가기, WBC 보이콧이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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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MLB 유망주 빼가기, WBC 보이콧이 해법?

[야구라의 그린라이트] 한국야구는 과연 '뛰고 싶은' 리그인가

상원고 김성민(17)의 미 프로야구 볼티모어 오리올스 입단 후폭풍이 거세다. 한국 야구계가 단단히 뿔이 났다. 프로와 아마추어 모두 극도로 강경한 태세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먼저 칼을 빼들었다. KBO는 지난 1일 메이저리그(MLB) 사무국에 항의 서한을 발송했다. "선수신분조회 없이 고교 2학년생과 계약을 맺어 한·미 선수계약협정을 위반한 볼티모어 구단에 대한 제재"를 요구하고 "한국 아마추어 야구의 현실을 고려해 미국 구단들이 스카우트를 자제해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이다.

대한야구협회(KBA)도 뒤따라 움직였다. KBA는 지난 8일 상벌위원회를 열어 지도자 및 선수등록규정을 위반한 김성민에 대해 무기한 자격정지 처분을 내렸다. '협회에 등록된 학생선수 중 졸업학년도 선수만이 국내외 프로 구단과 입단과 관련한 접촉을 할 수 있다'는 제10조 4항에 근거한 것이다. 또한 KBA는 협회가 주관하는 모든 대회 경기장에 볼티모어 구단 스카우트의 출입을 금지하겠다는 방침도 발표했다.

▲김성민은 미 메이저리그 진출로 한국 야구계에 파문을 일으켰다. ⓒKBS 뉴스화면 캡처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두 기구의 유례없는 강경 대응에 메이저리그 측도 대응에 나섰다. MLB 사무국은 KBO가 보낸 항의서한의 검토에 들어갔다. 파문을 일으킨 볼티모어 구단도 처음에는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나오다가 자세를 낮추기 시작했다. ESPN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10일(한국시각) 부사장 댄 듀켓은 "신분조회를 하지 않고 계약한 것에 대해 KBO와 KBA에 사과를 표한다"고 밝혔다.

물론 볼티모어 구단의 사과에 재발방지 대책이나 이번 사태에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한국 구장의 스카우트 출입금지와 MLB 사무국의 징계를 피하기 위한 유화적 제스처로 보인다. 또 한미 선수협정 위반에 대해 "고의성은 없었다"고 주장하는 대목은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 이번 김성민 계약을 위해 볼티모어는 50년 이상 스카우트로 활약한 레이 포이트빈트를 한국에 파견해 지방 고교를 헤집고 다녔다. 포이트빈트 같은 베테랑 스카우트가 한미 선수협정에 명시된 신분조회 절차에 대해 몰랐다는 건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사과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다. 불평등한 한미 선수계약협정이 그대로 남아있는 이상, 앞으로 얼마든지 비슷한 사태가 또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졸업학년도 선수만이 프로 구단과 접촉할 수 있다'는 규정은 한국과 미국 모두 공통으로 자국 내에서 적용하고 있다. 한국은 고교와 대학 졸업반인 선수만, 미국은 고교 졸업반 또는 만 21세 이상 선수만 프로 입단이 가능하다. 구단들의 선수 사전접촉을 방지하고, 학생 선수들의 교육권을 보장하며, 무분별한 조기 프로 진출로 아마추어 야구가 고사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문제는 메이저리그가 이런 기준을 미국과 캐나다, 푸에르토리코 등 자국 리그의 드래프트 대상 선수들에게만 적용한다는 점이다. 기타 국가의 선수들에 대해서는 만 16세 이하라도 계약이 가능하다. 전력 보강에 혈안이 된 미국 구단들은 도미니카공화국이나 베네수엘라 등 중남미에 야구 아카데미를 세워놓고 유망주들을 잔뜩 모아들인다. 16세, 17세밖에 안된 야구 소년들이 가족의 생계를 위해 헐값에 영입되어 수시로 마이너리그에 충원된다. 우수 선수들이 죄다 빠져나간 중남미 지역의 야구가 활력을 잃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여기서 한미 선수계약협정의 맹점이 드러난다. 만일 미국야구의 잣대를 그대로 적용할 경우, 미국 스카우트가 한국에 와서 고교 1, 2학년 선수를 싹쓸이해 데려가도 저지할 방법이 없다. 자칫 한국야구가 중남미처럼 MLB의 선수 인력시장으로 전락할 수도 있는 셈이다. 이를 막으려면 메이저리그가 '한국에서는 한국 법을' 따르도록, 다시 말해 한국야구의 선수등록 규정을 준수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현재의 한미 선수계약협정에는 이런 부분이 빠져 있다. 미국 구단이 한국의 규정을 어기거나 선수신분조회를 거치지 않는 반칙을 해도, 강제성을 띈 제재를 가할 방법이 전혀 없다. 이번처럼 MLB 사무국에 항의해서 해당 구단을 제재해줄 것을 요청하는 게 고작이다.

미국 구단들은 지금까지 이런 제도적 허점을 교묘하게 이용해서 국내 유망주들을 '하이재킹' 해왔다. 김성민 파동 이전에도 미국에 진출한 선수들 대부분이 고교 2학년 때 일찌감치 가계약을 맺었다. 명백한 선수등록 규정 위반이 관행으로 묵인되어 온 셈이다. 프로 구단들이 규정에 묶여있는 사이에, 미국 스카우트들은 선수의 학교와 집을 안방처럼 드나들며 마음껏 '사전접촉'의 특권을 누렸다. 국내 구단들은 미처 협상을 해볼 기회도 없이 유망 선수의 미국행을 바라봐야 했다. 막강한 자금력을 갖춘 MLB와 국내 야구단이 대등한 조건에서 경쟁을 벌이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국가간 교역에서의 보호무역처럼, 국내 리그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막이 필요하다.

한국 야구계도 이를 모르지 않았다. 그간 여러 차례 한미 선수계약협정의 개정을 미국 측에 요구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는 그때마다 번번이 "한국만 별도의 룰을 적용할 수는 없다"며 딴청을 피웠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정이 좀 다르다. 메이저리그가 더 이상 한국이 요구를 묵살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내년에 열릴 예정인 제 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때문이다. WBC는 메이저리그가 주도해서 만들어진 국제대회다. 겉으로는 '야구의 세계화'라는 고상한 목표를 내세우지만, 실상은 '메이저리그의 세계화'가 목표다. 야구가 아직 뿌리내리지 않은 세계 각지에 미국 야구를 전파하고, 메이저리그의 상업적 진출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게 WBC의 가려진 속살이다. 이제 3회째를 맞이하게 될 WBC가 성공을 거두려면 아시아의 야구 강국인 한국과 일본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한국과 일본이 빠지게 되면 '야구의 세계화'라는 WBC의 거창한 대의가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WBC를 앞두고 한국의 심기를 거슬러서 좋을 게 하나 없다.

이와 관련해 한 야구계 원로는 "만일 MLB 측이 이번 사태와 관련해 성의 있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면, 비슷한 문제를 가진 일본과 함께 WBC를 보이콧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파동에서 드러나듯 메이저리그가 한국야구를 전혀 존중하지 않는데,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에 협력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WBC가 추구하는 야구의 세계화가 이뤄지려면 각 나라의 야구가 자생력을 갖추고 공존공영해야 하는데, 지극히 자국 중심적인 메이저리그의 태도는 이에 정면으로 어긋난다. 한국으로서는 WBC 참가를 거부할 만한 충분한 명분이 있다.

일단 KBO와 KBA는 김성민 파동에 대한 항의 표시와 함께 기존 한미 선수협정에 대한 재검토를 요구한 상황이다. MLB 측에서 만족스러운 답변을 보내오지 않는다면, 재협정 관철을 위해 WBC 카드를 본격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칼자루를 쥔 쪽은 한국야구다. 흔치 않은 기회다. 이번 기회에 반드시 불평등 협정을 평등하게 개정해서, 미국 야구의 도를 넘은 스카우트 공세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또한 마구잡이로 아마추어 야구를 헤집고 다니며 물을 흐리는 미국 스카우트와 브로커들의 활동에도 통제가 필요하다.
▲고교야구 선수들의 메이저리그 진출 붐은, 한국 프로야구가 안고 있는 문제를 비춰준다. 사진은 지난 2010년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 1순위 지명자들의 모습. ⓒ뉴시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미국 야구에 대한 단속은 문제 해결의 시작에 불과하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야구 자체에 있다. 30년 역사의 프로야구 리그를 보유한 나라에서, 숱한 유망주들이 자국 리그 대신 미국행을 택하는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는 한국야구가 외양만 화려할 뿐 그 토대는 아주 취약하고 허술하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해, 한국야구는 선수 입장에서 기꺼이 남고 싶다는 마음이 들 만큼 안정적이고 매력적인 무대가 아닌 것이다.

흔히 미국행을 선택한 선수의 결정을 '무모하다'거나 '생각이 짧다'고 비난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그런 관습적인 비난을 하고 싶은 유혹을 단호하게 거부해야 한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미국행을 택한 선수의 선택은 국내 잔류보다 훨씬 -경제적으로나, 성공 가능성으로나-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지난해 기준으로 프로야구 1라운드 지명자의 계약금은 많아야 3억 원에 불과했다. 미국팀과 사인한 야탑고 김성민은 51만 달러(약 5억6000만 원)을 손에 넣었다. 한 야구 관계자는 "김성민은 프로에서라면 2라운드 이후에 지명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2라운드 이후 계약금은 1억 원 안팎으로 뚝 떨어진다. 미국행으로 계약금이 단숨에 다섯 배 이상 껑충 뛰어오른 셈이다.

게다가 고졸 신인이 프로 1군에서 자리잡기까지 걸리는 시간인 3~4년,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취득하기까지 필요한 9년, 군 문제를 해결하는 2년 등을 죄다 더하면 미국야구에 도전하는 '도박'과 성공률 면에서 큰 차이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프로야구에서 실패해서 방출이라도 되는 날에는 더 이상 갈 곳이 없게 된다. 반면 해외 진출 선수는 갈때는 욕도 먹고 제재도 받지만, 일단 가서 성공하면 영웅이 되어 금의환향한다. 실패해도 수시로 생기는 각종 특별법의 구제를 기대해볼 수 있다. 정 안 되면 2년의 자격정지 기간 동안 군 문제를 해결한 뒤 프로에 입단하면 그만이다. 최소한 영어라도 배워서 돌아온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위험한 도박이 아니다. 오히려 '남는 장사'에 가까울지 모른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거론하지 않은 채 선수에 대한 징계나 규제 강화, 1차 지명 부활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사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원래 해외로 나가는 선수들은 징계 같은 것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차피 몇 년 지나면 풀릴 징계를 뭐하러 겁내겠는가. 그리고 미국 진출 선수 숫자는 전면 드래프트보다 1차 지명을 하던 시절이 더 많았다. 프로와 아마 양쪽의 1차 지명 부활 요구는 '좋은게 좋은거다'는 식의 사고방식이 낳은 무책임한 주장이다.

우리는 이렇게 손쉬워 보이는 가짜 해결책 대신에, 한국야구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들로부터 해법을 찾아가는 어려운 길을 택해야만 한다. 고졸 선수 위주로 이루어지는 드래프트 제도의 개선, FA 기간 단축, 담합에 가까운 신인 선수의 낮은 계약금, 아마추어 선수들의 학교 교육, 대학야구 활성화 등 온갖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애꿎은 선수 상대로 화풀이를 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야구계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해야 할 때다. 한국야구를 선수들과 학부모가 '뛰고 싶어 하는' 곳으로, 매력적이고 안정적인 무대로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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