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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에게 꿈은 개뿔…현실은 예산 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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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에게 꿈은 개뿔…현실은 예산 0.04%"

[99%를 위한 기본소득]<5> 청'소'년이 진정한 꿈을 꾸는 사회로

청년/청소년에게 꿈을 가지라는 말투성이다. 꿈? 개뿔, 꿈도 욕망이 있어야 꾸어지는 것이고, 욕망이란 건 일말의 현실감 위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안정된 직장, 내 집 마련, 원하는 일을 원하는 만큼 하면서 소박하게 사는 삶? 이런 말들이 청년/청소년을 대상으로 방향 없이 뿌려지든지 말든지 우린 꿈을 꿀 수 없다. 꿈은커녕 잠도 제대로 못 잔다.

흘러간 '청년(대)학생'의 시대

꿈 타령을 하기 전에 우선, 청년/청소년의 개념부터 제대로 잡아야 한다. '20대'가 시사용어가 된 지 3년이 조금 지났다. 그전까지 젊은이를 일컫는 단어는 '(대)학생'이었다. 이들은 80년대 민주화운동의 향수를 담아 '청년학생'으로 불렸는데, 주요 이슈는 대학생들의 사회참여나 졸업을 앞둔 이들의 구직문제가 대부분이었다. '청년학생'이라는 말이 성행하던 2000년대 초중반까지는 그래도 이 '청년학생'들이 살기에 괜찮은 시기였다. IMF 한파가 추웠지만, 집중적인 경기부양책 덕분에 서울의 상위권 대학 출신자들이 일자리를 걱정할 수준은 아니었고, 경쟁이 극단화될 조짐은 보였지만 폭발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시민단체 인턴십은 이 시기에 성행했고, 기업들도 더 다양한 경험을 가진 '청년학생'들을 기용하는 것으로 불황을 극복하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물론 이 시기에 이미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화를 통해 신자유주의가 자리 잡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자신의 일이라고 느끼지 않았다.

▲ 아르바이트 구인광고. ⓒ연합뉴스

'20대' 워딩과 청년 문제의 본질

2007년에 나온 <88만 원 세대>는 '청년학생'의 신화가 깨질 것을 내다보았다. 이 책의 저자들은 적시에 '20대'라는 워딩과 함께 패러다임의 전환을 제안했다. 간단한 메시지였다. 이제 이 세대는 대학 졸업장이 있건 없건 안정된 직장에서 멀리 떨어진 인생을 살게 되리라는 것. "직장 얻고, 결혼하고, 집 사고, 아들딸 구별 말고 하나만 낳아 잘 사는" 새해 덕담 같은 삶을 꿈꿔보기도 전에 돈의 쓴맛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는 주효했다. 꿈을 가슴에 간직하고 대학만 졸업하면, 입에 풀칠은 할 것이라는 기대는 수십 군데 면접을 보러 다니는 선배, 동료를 보면서 조금씩 무너졌다. 엄습하는 절망감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외국어와 기업별 적성검사를 위해 학원에 다니고 스터디에 참가해야 했으며, 이 와중에도 용돈 벌이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뛰어야 한다. 부모도 더는 '20대'를 후방지원해주지 못한다. 은퇴와 갱년기를 대비했어야 할 노후자금이 부동산 시장과 함께 얼어붙었고, 자식들에게도 기댈 수 없다는 사실에 그들도 답답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20대'란 워딩에는 더는 꿈을 꿀 수 없는 세대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싫은 게 당연하지만 외면하고 회피할 수 없을 만큼 일분일초를 압박하는 현실이다. 애써 얻은 비정규직 임금은 식비와 교통비만으로도 벅차다. 서울의 물가는 뉴욕을 제치는 수준이지만, 최저임금은 1년에 고작 100원씩 오르고, 이 생활을 벗어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꿈을 가지라고? 더 고생하고 아파하다 보면 희망이 보인다고? 지금 누가 누구에게 꿈을 갖고 버티라고 하는 것인가?

청소년의 경제적 현실

그나마 값싸게라도 노동력을 팔 수 있는 '20'대들은 이렇게 닥치고 들으라고 쏘아붙일 힘이라도 있는 셈이다. 12세 소녀가 초경을 하면, 생리대 살 돈을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부모"란 말을 반사적으로 꺼내기 전에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라. 아마 대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답이 없기 때문이다. 법으로 꽉 막혀있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 제64조는 15세 미만을 근로자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부득이 이 조항을 우회하려면 대통령령으로 정한 고용노동부 장관의 취직인허증을 발급받아야 한다. 18세 미만이라면 임금노동에 종사할 수는 있다. 다만, 그러려면 친권자를 밝혀야 하고, 친권자 또는 후견인의 동의서를 사업장에 제출해야 한다. 개인정보만도 아니고 가족정보까지 고스란히 바쳐 받는 임금은 시간당 최저임금 4,580원, 이조차도 나이가 적다며 지켜지지 않는 게 태반이다.

이처럼 필요한 만큼 벌지는 못해도 필요한 곳에 써야 할 돈은 넘쳐나는 게 청소년의 경제적 현실이다. 대표자를 뽑을 권리(19세 미만, 선거법)나 가족과 떨어져 살 수 있는 권리(19세 미만, 청소년보호법)가 없다는 사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렇게 청소년은 정치적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재산처분의 자유와 같은 시민의 자유가 완전히 박탈된 채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논의수준은 이 문제 가까이도 가지 못한다. 벌지 못하지만, 생필품을 사야 하는 게 현실이라면, 국가공동체가 복지혜택이라도 충분히 보장해야 하는 것 아닐까? 무상급식을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아직도 소란을 떨고 있는 이들에게 꼭 다음 질문에 대한 답을 듣고 싶다. 청소년예산이 GDP 대비 얼마나 되는지 알고 있는가? 북구형 복지국가가 1인당 GDP 2만 불일 때, 국가재정의 30%가 공공사회복지지출로 나갔고, OECD 국가 대부분이 국가재정의 15~30%를 공공사회복지에 지출하고 있다. 그럼 한국은? 아니나 다를까, 1인당 GDP가 1만 7,690달러였던 2006년, 한국의 GDP 대비 공공사회복지지출이 고작 7.83%다.

청소년 정책과 0.04%

그렇다면, 정부 전체 예산 중 청소년 정책 예산 비율은 어느 정도일까? 0.04%. 아주 땅을 파고 지구의 핵을 뚫고 들어갈 만한 수치다. 사업별 금액을 따져봐도 청소년 활동에 500억, 시설에 300억, 복리증진에 200억을 쓰는 수준이다. 이해하기 쉽게 0~18세의 청소년 인구가 1천만 명으로 이 금액을 나눠보면, 시설비 등 유지비를 죄다 포함해서 1년에 1만 원도 안 된다. 복지부 예산 내 비율로 봐도 겨우 1%를 넘었다 내려갔다 하는 수준이다. 이마저도 2006년을 정점으로 줄어들고 있다. 이게 청소년 정책의 본모습이다. 청소년을 "보호"한답시고 '게임 셧다운제'다 뭐다 하지만 예산표가 말해주는 "청소년 보호"의 진실은 고작 0.04%짜리 관심뿐이다. 이 수치 앞에서 청소년들에게 뭐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청'소'년이 꿈을 갖길 바란다면

청년/청소년이 나서서 기본소득을 주장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는 바로 이러한 현실 위에서 등장한 것이다. 사실, 청년과 청소년은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존재가 아니다. 정확히는 97년 위기 이후 경제인이 되는 모든 세대는 같은 문제를 공유한다. 생존의 문제에 매 순간 허덕이지만, 국가나 사회의 도움은 거의 받지 못하는 세대, 이 까닭에 기본소득 청'소'년 네트워크는 청년과 청소년을 연결한 청'소'년이라는 표기를 쓴다.

이들 청'소'년에게 쏟아지는 사디스트적 훈계(아파야 청춘이다?)나 시덥지 않는 낭판 놀음(꿈은 이루어진다?), 단순한 비명(아프면 아프다고 소리 질러?)은 평생 단 한 번도 안정된 삶을 경험할 수 없을 거라는 불안의 핵심을 건드리지 못한다. '닥치고 정권교체'나 모호하기 짝이 없는 '진보' 같은 수사로 '0.04'라는 수치가 말하는 거의 완벽한 무시를 극복할 리도 만무하다. 물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청'소'년에게 진정한 의미의 꿈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다만, 그 꿈은 우선 꿈을 가질 수 있는 사회를 꿈꾸는 것부터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

기본소득을 받는 삶은 한 인간이 10년 후, 20년 후에도 입에 생존에의 위협을 느끼지 않고 살 수 있는 삶을 말한다. 이러한 사회에서 사람들은 청'소'년 시절부터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자신의 삶을 설계하며 살아갈 수 있다. 다음 주, 아니 내일의 끼니를 걱정하는 삶이 아닌, 자신의 가능성과 적성을 충분히 실험하고, 뚜렷한 목표를 위해 오랫동안 준비하는 삶이 보편화될 수 있다. 이런 삶이 지켜지는 사회가 바로 청'소'년이 꿈을 갖고 추구할 수 있는 건강한 사회 아닌가? 아직도 꿈을 갖지 못해서 문제라고 청'소'년들에게 훈수를 둘 것인가? 어서들 기본소득 운동에 동참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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