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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백혈병 환자는 왜 진료비 1900만원을 더 내야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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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백혈병 환자는 왜 진료비 1900만원을 더 내야 했나?

건강보험공단 대신 환자에게 진료비 청구

백혈병 환자였던 박진석 씨는 지난 2004년 11월부터 2005년 7월까지 가톨릭대학교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항암 치료를 받았다. 치료가 끝나고 총 진료비로 3200만 원을 청구받은 박 씨는 깜짝 놀랐다. 다른 병원에 비해 유독 성모병원에서만 백혈병 치료비가 지나치게 비싸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박 씨는 지난 2006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진료비 확인 신청을 했다. 그 결과 "환자에게 부당하게 청구된 1900여만 원을 성모병원으로부터 환급받으라"는 심평원의 통보를 받았다. 박 씨는 뒤늦게 분노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2일 서울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임의 비급여 문제, 환자를 위한 최선의 해결방법을 없는가'라는 주제로 환자권리포럼을 열고, 박 씨의 사례를 발표했다.

건강보험공단 대신 환자에게 진료비 청구

발제를 맡은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공동대표는 "성모병원은 건강보험 심사 과정에서 진료비가 삭감될 것을 우려하거나 번거로운 심사 절차를 피하기 위해, 건강보험공단에 청구해야 할 돈을 불법적으로 환자에게 비급여로 청구했다"고 지적했다.

비급여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치료비 전액을 환자가 부담하는 것을 일컫는다. 원칙적으로 모든 치료행위는 급여 또는 비급여로 나뉘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병원이 '임의로' 환자에게 진료비를 비급여로 청구하기도 한다. '임의비급여'의 대부분은 현행법상 불법이다.

박 씨가 환급받은 1900여만 원 중에서 1392만 원은 성모병원 측이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치료를 '비급여'로 속이고 처리해 박 씨에게 불법으로 떠넘긴 비용이었다. 성모병원의 진료비 환급액 중에서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사항을 비급여로 징수한 비율은 전체의 72%를 차지했다.

성모병원은 심평원의 결정으로 박 씨에게 불법 청구했던 비용 1392만 원을 돌려주고, 이후 같은 금액에 대해 건강보험공단에 진료비를 청구해 1270만 원을 지급받았다. 병원 측이 진료비를 공단에 청구했을 경우 122만 원이 삭감될 것을 우려해, 환자가 내지 않아도 될 돈 1392만 원을 환자에게 내게 한 셈이다.

백혈병 검사에 바늘 값 5만5000원 따로 받아

병원이 박 씨를 비롯한 백혈병 환자들에게 급여로 청구할 수 있는 진료비를 비급여로 청구했던 방식은 또 있다. 안기종 대표는 "고가의 새로운 치료재료를 사용하려면 병원은 별도의 청구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그런데 일부 의료기관은 이러한 번거로운 절차를 거치는 대신 환자에게 치료재료비를 부담시킨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백혈병을 진단받거나 치료 경과를 확인할 때, 병원은 환자의 엉덩이뼈에 바늘을 넣어서 골수를 채취한다. 골수검사 비용은 3만3000원으로 법적으로 정해져 있다. 그런데 골수검사에 필요한 바늘의 가격은 하나에 5만5000원이다. 바늘이 10번 사용될 것을 감안해서 바늘 비용 5500원을 검사비용 3만3000원 안에 포함해 책정하는 식이다. 병원이 검사비용 외에 치료재료인 바늘 비용을 별도의 승인절차 없이 환자에게 추가로 청구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런데 성모병원은 골수검사 비용 3만3000원뿐만 아니라 바늘 값 5만5000원을 '임의비급여'로 환자에게 청구했다. 성모병원은 불법 청구에 대해 "감염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 바늘을 1회만 사용했기 때문에 바늘 값 5만5000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항변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안 대표는 "모든 병원이 골수검사에 쓰이는 바늘을 재사용하는데, 성모병원만 유독 1회용 바늘을 쓴다는 주장은 납득할 수 없다"며 "그렇다면 성모병원을 제외한 전국의 모든 병원에서 백혈병 환자의 감염 문제가 심각해야 하는데, 그런 보고는 들은 바 없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안 대표는 "골수검사에 쓰이는 바늘 값을 환자에게 청구하면서 별도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은 이중청구로 불법"이라고 반박했다. 골수검사를 할 때 건강보험공단이 병원에 지급하는 수가에 이미 바늘 값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그는 "성모병원의 논리대로라면 모든 치료행위에 대해서 의사는 더 좋은 재료를 사용할 때마다 별도로 재료비를 환자에게 청구해야 하고, 그러면 건강보험 보상체계가 흔들린다"고 지적했다.

식약청 허가 없이 비급여 약 사용

뿐만 아니라 성모병원은 한 정당 16만9730원짜리 항암보조제인 '카디옥산주'를 백혈병 환자들에게 광범위하게 사용했다. 문제는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이 약이 식약청의 허가상 유방암 환자에게만 쓸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카디옥산주는 성모병원 백혈병 임의비급여 진료비 환급액 비중이 가장 높은 대표적인 약제가 됐다.

성모병원은 "카디옥산주가 백혈병 환자들에게도 효과를 보인다"며 이를 근거로 "의학적 판단에 따른 임의비급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러나 식약청은 지난해 "카디옥산주를 복용하면 백혈병이 발병하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며 이 약의 사용을 제한할 것을 권고했다. 백혈병 환자들에게 처방한 카디옥산주가 환자들에게 재발 원인이 될 수도 있었던 셈이다.

안 대표는 "의약품은 원칙적으로 식약청에서 유효성과 안전성에 대한 검토를 거친 후 허가를 받아 사용해야 한다"며 "카디옥산주와 같이 부작용이 있을지도 모르는 의약품을 '의학적 임의비급여'라는 이유로 허가해야 한다면, 같은 논리로 임상적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 등에 의한 치료행위도 인정해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백혈병 환자, 과다 청구액 80억 원 못 받을 위기

보건복지부는 지난 2006년 진료비 부당청구 실사를 거쳐 성모병원에 환수금 28억3000만 원과 과징금 141억 원을 처분하고, 이후 민원을 제기한 환자 1000여명에게 총 80억 원 이상의 환불 조치를 지시했다.

그러나 성모병원은 과징금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1·2심에서 모두 승소했다. 법원은 "보건복지부 등이 위법한 임의비급여와 적법한 임의비급여를 분류하지 않았으므로, 환자들에게 돌려줘야할 구체적인 금액을 산출할 수 없어서 처분을 취소한다"는 요지를 밝혔다. 대법원 공개변론은 오는 16일에 열릴 예정이다.

안 대표는 "성모병원은 5년이 지나면 환자들이 임의비급여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수 없다는 점을 악용해 시간 끌기를 하고 있다"며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환자들의 또 다른 피해가 우려되는 만큼 법원의 공정한 판단과 관계기관의 해결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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