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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ㆍ조선 '게임 마녀사냥', 의도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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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ㆍ조선 '게임 마녀사냥', 의도가 뭘까?

[기고] 학교 폭력이 정말 게임 때문일까?

최근 정부와 보수 언론이 주도하는 게임 죽이기는 마치 중세 시대 마녀사냥을 연상케 한다. 중세 마녀사냥은 성주나 위세 높은 귀족이 한 여자를 마녀로 지목해 자신의 잘못을 그 여자에게 덮어버리거나 전가시키는 권력 게임이다. 지나친 비유일지 모르겠으나 지금 게임은 에밀리 브론테의 <제인 에어>에서 마녀로 몰려 옥탑 방에 갇힌 로체스터의 부인 버사, 혹은 나다니엘 호손의 <주홍글씨>의 주인공 헤스터 프린 같아 보인다. 중세의 마녀 공포는 후기 자본주의 시대에 와서 게임 좀비 공포로 바뀌었다.

알다시피 요즘 게임 죽이기, 게임 마녀사냥을 시작한 곳은 교육과학기술부와 <조선일보>다. 교과부 이주호 장관은 1월 26일 학교 폭력의 주원인 중의 하나가 게임중독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게임을 2시간 이용하면 10분간 휴식을 하는 소위 '쿨링오프제'(cooling off)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거기에 학교 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게임업계로부터 기금조성을 요구하겠다고 한다. 작년에 여성가족부가 문제의 게임셧다운제를 밀어붙이면서 게임업계로부터 1%의 게임 중독 예방기금을 요구한 것과 그 과정이 흡사하다. '청소년의 건강과 대인관계를 해치는 악덕업자'로 낙인 찍힌 게임업계가 이들 기관으로부터 그 대가로 돈까지 토해내야 하는 봉이 된 것이다.

여성가족부가 청소년 게임셧다운제 도입을 추진할 당시 주장한 논리는 아이들의 수면권 확보였다. 아이들이 게임 때문에 잠을 안 잔다는 것이다. 이번에 교과부가 주장한 것은 학교 폭력이다. 게임 때문에 학교 폭력이 심각하게 증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과부는 객관적인 근거 자료를 제시하지 못했다. 그냥 몇 사람의 말을 참고로 학교 폭력의 주범으로 게임을 지목한 것이다. 청소년보호법 제정의 계기가 되었던 1996년 일진회 사건이 그랬다. 당시 청소년 폭력조직의 배후로는 만화가 지목됐었다. 당시에도 객관적 근거는 없었다. 가해 청소년의 심문에서 나온 이야기를 엮어서 만화가 폭력의 주범으로 낙인 찍혔다. 달라진 게 아무 것도 없다. 만화가 게임으로만 바뀌었을 뿐이다.

학교 폭력의 심각함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근원을 게임 중독으로 전가시키려는 교과부의 치졸한 문제 해결 방식에 분노할 뿐이다. 학교 폭력의 주된 원인이 과연 게임 중독일까? 아이들이 폭력적인 게임을 즐기면 학교에서도 폭력적으로 변한다는 것은 단지 막연한 가설에 불과하다. 문제는 그러한 가설이 기정사실화되고, 이 과정에서 발견되는 극히 일부의 연관성을 우리 사회가 결정적인 요인으로 봉인한다는 점이다. 물론 1인칭 슈팅게임을 많이 하는 소수의 아이들의 성향이 폭력적인 잠재성을 가질 수는 있다.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왕따, 금품 갈취, 상습 폭행의 주원인은 게임이 아니라 학교 그 자체이며, 교육 그 자체고, 한국의 가부장제 그 자체이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돌봄의 문화를 가르치는 것보다 경쟁과 입시를 가르치는 학교에서 아이들이 배우는 것은 차별과 이기주의, 탐욕이다. 학교 스스로가 이 경쟁의 윤리를 버리지 않는 한, 학교 폭력은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게임중독이 학교 폭력의 원인이 아니라 오히려 학교 폭력이 게임 중독의 원인이 아닐까? 학교와 교사의 폭력적인 언어와 무관심, 교과부의 폭력적인 경쟁주의, 부모들의 폭력적인 언행이 아이들이 외롭게 게임하도록 만들어 버린 장본인들이 아닐까?

▲지난 1월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학생 인터넷, 게임중독' 관련 관계전문가 간담회에서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과 전문가 및 학생들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 ⓒ뉴시스

게임포비아 유포자 <조선일보>

소관 사안도 아닌 게임 중독 문제에 교과부가 올인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게임중독에 대한 사회적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학교폭력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교과부의 자기 책임을 완화시키는 데 있어 더 없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교육체계, 교육철학, 교육 서비스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 없이는 해결이 불가능한 학교폭력의 문제를 게임중독으로 전가시키면서 일종의 블라인드 효과, 즉 막가림 효과를 노린 것이다. 더욱이 학교 폭력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게임중독을 심각한 이슈로 끌어 올려 사회적 공포심을 조장한 후, 게임업계로부터 기금을 얻어내려는 속셈이 너무나 뻔히 드러나 보인다. 게임이 봉인가? 마치 학교 일진이 아이들 협박해서 삥 뜯는 것도 아니고….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사회적 공포심을 확산시키기 위해 교과부가 <조선일보>를 이용했다는 점이다. 1월 31일부터 연이어 계속된 <조선일보>의 '게임중독 특종' 보도를 읽다보면 정말 게임이 마약 같고, 인생 막장의 증거물 같아 보인다. <조선일보>가 연이어 1면을 털어 게임 중독의 문제를 부각시키는 게 교과부와의 사전 교감 없이 가능했을까? 실제로 이주호 장관은 이 문제를 조중동에서 전면적으로 다루어 줄 것을 요청했다는 후문이다.

게임포비아를 확산시키기 위해 <조선일보>가 선택한 도구는 과학과 임상이다. 뇌 전문의 인터뷰와 뇌 사진을 동원해 게임 중독이 뇌에 미치는 심각한 영향을 언급하면서 <조선일보>는 '마약중독자와 같은 증상', '인간을 움직이는 관제탑에 게임이란 테러리스트가 점령한 꼴'이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한다. 또한 발가벗은 채 게임 테블릿 마우스를 움직이는 유아의 사진을 싣고, 게임 때문에 인생이 망가진 한 청년의 수기를 실으면서 자극적인 임상 사례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공포효과를 뽑아냈다. <조선일보> 특집 기사가 노린 것은 게임 중독의 심각성을 일반화시키는 것이다. 문제는 그러한 극단적인 일부의 사례들이 게임을 하는 수많은 유형의 다양한 게이머들 모두가 그런 것처럼 '일반화'라는 착시 현상을 조장한다는 점이다. 게임을 죽이기 위해 극단적인 사례를 들고, 그것이 마치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일반 현상인 것처럼 믿게 만든다는 점이다.

게임중독론에 숨겨진 실체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게임의 중독성을 부정하거나 중독의 극단적인 사례가 전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최근 정부와 보수 언론이 앞장서서 살벌한 게임 공포심을 만드는 행태는 순수해 보이지 않는다. 게임포비아 유포가 지닌 목적의 실체는 다른 곳에 있다. 어찌 보면 해묵은 게임 중독 이슈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최근 서울교육청에서 제정한 '학생인권조례안'에 대한 교과부의 견제 전략과 해이해진 대중들의 기강을 바로 잡으려는 훈육주의, MB 정부의 태생적인 기독교 보수주의관이 들어있다. 게임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부나 교육계 보수언론계, 시민단체들의 방식이 오히려 핵심을 놓치고,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기 위해 게임을 희생양으로 삼는 노골적인 저의가 의심스럽다는 생각이다.

학교 폭력은 근본적인 해결이 어려운 난제이고, 그 사안만큼 이슈화하기가 쉽지 않다. 너무 익숙하기 때문이다. 교과부가 학교 폭력 근절 캠페인의 홍보를 위해 게임 중독을 선택했고, 그 여론화를 위해 <조선일보>를 선택한 것은 어찌 보면 이미 예정된 전략이다. 그런데 실제 이 문제가 이슈화되면서 교과부는 서울시 교육청이 주도했던 학생인권조례의 사회적 설득 분위기를 일시에 무력화시켰다. 게임중독론의 극단적 임상 사례들이 일반인들에게 공포심을 안겨주었고, 학부모들은 학교 폭력이 게임 중독 때문인 것으로 믿으며, 안 그래도 건방지고 제멋대로의 학생들에게 '인권은 무슨 인권'이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만든다. 또한 게임포비아의 사회적 확산은 사회적 노동인력들의 기강을 바로 잡는 데 좋은 효과를 발휘한다. 게임 중독에 빠져 실패한 인간의 이미지는 국가를 위해 열심히 봉사하고, 기업이윤을 위해 충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의 이미지와 대비된다. <조선일보> 캠페인은 게임하면 패가망신한다는 사회적 경각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한 가지 주목할 사실은 MB 정부 국정 철학의 이면에 자리 잡은 기독교 보수주의관이 게임에 대한 일방적인 혐오감과 극단적인 증오심을 가중시켰다는 점이다. 현재 기독교계에서 가장 우려하는 것은 청소년 기독교신자들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현상이다. 그리고 교회에서 청소년 선교사업의 가장 큰 걸림돌로 생각하는 것이 바로 아이들의 게임이다. 실제로 게임 때문에 교회에 나가지 않은 청소년들이 적지 않다. 게임은 교회의 적이고 청소년 사역의 최대 악이다. 현재 게임에 대해 가장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여가부와 교과부의 게임 중독론 확산을 위해 협력하고 있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부'(이하 기윤실)의 핵심 인사들은 게임을 포함한 대중문화 매체가 건전한 기독교 청소년 문화를 방해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기윤실의 대표였던 손봉호, 강영안 교수는 신칼빈주의 계열의 네덜란드 개혁신학파로서, 이들은 대중문화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직접 싸워서 속세에 빠진 대중들을 적극적으로 구원하자는 사명의식을 갖고 있다. '여가부-교과부-기독교 시민단체'의 삼각동맹은 게임 중독의 문제를 너무 보수적이고 극단적이고 일방적으로 몰아가 실제 문제 해결의 실마리에서 멀어지고 말았다.

교육제도 실패를 왜 게임에 전가하나

나는 게임 중독에 대해 극단적인 공포심을 유발시키는 방식으로는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본다. 그래서 여가부가 주도한 청소년 '게임이용셧다운제'와 교과부의 게임이용시간 쿨링오프제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고 본다. 실제로 작년에 도입된 게임 셧다운제로 인해 청소년 게임 이용이 줄어든 것은 여가부의 예상치보다 훨씬 밑도는 4% 미만이었다. 그것은 어떤 점에서 사회적 책임을 법과 제도로 떠넘기려는 태도이자, 게임중독을 이용해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하려는 수단밖에는 되지 않는다.

이미 알다시피, 미국 캘리포니아의 대법원에서 게임중독의 해결을 위한 국가기관의 강제적 조치가 위헌으로 판결났고, 스웨덴 정부 산하기구 '미디어카운슬'에서도 게임 이용과 아동의 폭력 간 연관성을 입증할 수 있는 근거가 충분치 않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뇌사진이나 충격적인 임사 사례를 통해 게임포비아를 유포하는 게 아니라 게임에 대한 인식, 자녀들과 학생들에 대한 삶의 전체적인 배려, 정부와 학부모의 교육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 속에서 게임의 과몰입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다. 게임 과몰입에 빠져있는 아이들에게 게임을 일방적으로 중단시키는 방식보다는 게임 대신에 다른 놀이를 다양하게 권하고, 다른 매력적인 일들을 사회가 적극적으로 권하는 교육적 배려 속에서 해결될 수 있다.

결국에는 자기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부 아니면 게임이라는 극단적인 이분법을 해소하고 삶의 다양한 선택의 지점들을 열어주고 이를 위해 시간을 갖고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이 더 실질적인 방법이다. 우리보다 먼저 게임중독의 사태를 경험한 미국의 교육계에서 최근에 선택한 대안도 바로 게임에 대한 직접적, 강제적 규제방식이 아니라 게임 외부의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다. 게임이 부분적으로는 아이들의 창의력이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자원들도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는 말은 굳이 부연설명하지는 않겠다. 게임 중독에 대한 정부의 역할의 필요성을 이해하지만, 이런 식으로 게임 공포심을 대중들에게 유포해서 돈과 법으로 감각과 감성의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려는 방식은 이제 그만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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