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부위원장의 생일로 알려진 1월 8일에는 후계자 시절 군부대 방문 등의 장면을 담은 기록영화도 방영해 '준비된 지도자'란 선전에 나섰다. 어린 나이로 권력승계 준비가 전혀 안돼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나 권력기반이 약해 집단주의체제로 갈 것이란 외부세계의 예측과 달리 원만한 승계과정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2010년 9월 28일 당 대표자회를 통해 향후 김정은 부위원장 중심의 당과 국가 운영이라는 큰 틀이 확립돼 있었고, 1994년 김일성 주석 급서 때와는 달리 유고(有故)대응계획이 서 있었기 때문에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후 신속한 대응과 승계가 가능했다.
▲ 북한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인민군 공군 제354군부대를 시찰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20일 이 사진을 보도하며 촬영날짜는 밝히지 않았다. ⓒ연합뉴스 |
조만간 김정은 부위원장은 노동당 총비서,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 국방위원장 등의 직책도 승계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0년 당 대표자회를 통해 '친김정은 인사'로 지도부의 인적교체가 이뤄졌기 때문에 대대적인 인사이동은 없을 것이다.
김 부위원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모든 직책을 승계할 경우 단일지도체제냐 집단지도체제냐 하는 논쟁도 수그러들 것이다. 김 부위원장은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 당중앙군사위원회, 국방위원회 등의 집단협의를 통해 정책보좌를 받으며 자신의 '유일적 영도체제'를 확고히 할 것으로 예상된다.
평양주재 러시아대사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알렉산더 보론초프 러시아과학원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최고지도자의 유일적 지위와 최고수준 정책결정과정에서의 집단주의가 결합되는 형태"다. 단기적으로 김정은체제에 불안정성이 나타날 가능성은 크지 않은 셈이다.
일부에서는 식량난, 전력난 등으로 상징되는 북한의 경제적 어려움이 김정은체제의 안정성을 위협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최근 몇년간 평양을 다녀온 방문객이 전하는 북한주민의 '체험경제지수'와는 거리가 있는 것 같다.
우선 식량 생산량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식량계획(WFP)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북한의 식량 생산량은 2010년보다 8.5% 증가한 550만 톤(도정 후 정곡 기준 466만 톤)이다. 국제기구가 추산한 북한의 1년 수요량이 540만 톤(정곡)인 점을 감안하면 74만 톤이 부족한 수치지만 수입한 식량 32만 톤을 비롯해 올해 중국과 미국으로부터 지원받을 분량까지 포함하면 남쪽의 추가지원 없이도 식량수급에 심각한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북한은 지난해 말부터 식량배급량을 조금씩 늘리고 있다.
경제활성화의 조짐들
전력사정도 나아지고 있다. 석탄 생산량이 늘면서 화력발전소의 가동률이 높아졌고, 대형 수력발전소의 건설로 원산, 강계 등 주요 도시의 전력난이 완화됐다. 올해 10월쯤 발전능력 15만kw의 희천2호발전소가 완공되면 평양 인근의 전략사정이 호전될 전망이다.
전력 문제가 조금씩 풀리면서 공장가동률도 높아지고 있다. 단적으로 2·8비날론연합기업소가 다시 가동돼 비날론이 생산되자 방직공장이 돌아갈 수 있게 됐고, 평양의 백화점 등 상점에 자체 생산 옷감이 유통되기 시작했다. 올해 정상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흥남비료공장, 남흥화학연합기업소가 본격 가동에 들어갈 경우 비료의 자급률도 높아질 것이다.
20년간 북한 경제파탄의 상징처럼 인식됐던 류경호텔의 외장공사가 끝났고, 올해에는 일부층에 대한 임대가 시작된다. 야심차게 추진했던 평양 인근 10만호 건설사업은 목표에 미달했지만 평양 중심부 만수대거리의 초고층아파트 건설사업이 4월에 끝나면 김정은시대의 치적으로 선전될 것이다. 북한의 휴대전화 사용자수도 100만대를 넘었다. 외부의 눈높이로 보면 북한 경제가 여전히 어렵지만 김정은체제가 들어선 후 형편이 나아지고 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을 할 수 있는 여러 조건이 마련돼 있는 셈이다. 또한 중국이 버티고 있는 한 북한체제는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객관적 대북인식이 더욱 필요한 때
물론 장기적으로 경제활성화를 안정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대외개방이 필수적이다. 북한은 김정은시대 공식 출범 이후 김정일 위원장의 선군노선과 강성대국건설구상의 계승을 선언했다. 이를 두고 김정은시대에 북한의 개혁개방은 당분간 어렵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김정은체제에서도 북한은 쉽게 정치개혁에 나서지 않을 것이다.
다만 대외개방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북한은 선군노선을 표방한 김정일시대 막바지에 사실상 중국의 개방모델을 일정부분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북한의 최고간부들은 "중국의 경험을 진지하게 배워 강성대국 건설에 전력투구할 것"이란 말을 공공연히 하고 있다. 김정은시대 북한은 '경제 재건'과 '국제화'를 강조하고 있다. 체제의 안정성을 위해서라도 세계사적인 흐름과 '민심'을 일정하게 수용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북한붕괴론' '김정은체제 불안정성'이란 막연한 추측에서 벗어나 객관적 대북인식에 기초해 합리적인 대북정책을 모색해야 한다. 북한이 경제난으로 인해 결국 남쪽에 손을 벌리고 나올 수밖에 없다는 '허상'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다.
특히 올해 우리는 핵안보정상회의, 총선과 대선 등 굵직한 정치·외교적 행사를 치러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남북관계에서 평화와 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가 압박과 봉쇄로 북한을 굴복시킬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에서 벗어나 대화와 협력을 통해 북한의 대외개방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정책전환을 서두르고, 이에 북한도 호응해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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