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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정의가 먼저입니다"

[이태경의 고공비행] 제도와 법률을 통하지 않은 빈곤퇴치는 난망

높은 뜻 연합선교회 대표인 김동호 목사는 많은 기독인들의 존경과 흠모를 받고 있는 목회자다. 김 목사의 말과 행동은 일부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일탈과 몰상식과 부도덕과 극명하게 대비되면서 개신교 내에 김 목사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낳았다. 특히 그가 돋보이는 대목은 가난한 자들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이들을 도울 수 있는 단체와 기금을 줄기차게 조직해 냈다는 점이다.

그런 김동호 목사가 페이스북(face book)에 기부와 나눔을 통해 빈곤을 추방할 수 있다는 취지의 글을 작심하고 올리고 있다. 지금까지 7번째 글이 실렸고 앞으로도 계속 나올 성 싶다. 김 목사의 페이스북 친구들의 반응은 열화와 같이 뜨겁다. 지금까지 나온 글을 통해 보면 김 목사는 '부작용이 많은 제도와 구조의 개혁 보다는 기득권층을 설득해 기부와 나눔을 아끌어 내는 것이 빈곤 퇴치에 보다 효과적이고, 하나님의 마음과 눈으로 빈곤퇴치에 나서야 하며, 아이들을 의롭고 바르며 이웃을 사랑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기는 사람으로 키우자'고 주장하는 듯 하다.

경험에 기반한 김 목사의 주장에는 음미할 대목이 있다. '부자를 포함한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변화시켜 기부와 나눔에 힘쓰게 하고 그 힘으로 빈곤을 추방하며, 자녀들을 공부기계가 아닌 성숙한 인격의 사람으로 양육하자'는 김 목사의 주장을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세상의 변화가 사람으로부터 시작되고 의지와 결단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조직화된 선의(善意)와 집합화된 운동이 중대한 변화의 단초가 된다는 사실은 역사가 증명한다.

하지만 결국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를 실질적으로 신장시키고, 가난을 축출시킬 수 있는 주요 기제는 제도와 법률일 수 밖에 없다. 제도화 되지 못하는, 입법화 되지 못하는 운동과 선의는 시나브로 힘을 잃고 잔존이나 연명의 수준으로 떨어지기 십상이다. 오해 없기 바란다. '기부와 나눔'을 조직화하고 활성화해, 긴급한 빈곤을 줄이고 사회통합을 꾀하는 것은 좋은 일이고 언제나 필요한 일이다. 입시 전쟁에서 공부기계로 키워지는 자녀들에게 입시 공부 대신 인간이 마땅히 지녀야 되는 덕목들을 가르치는 것도 부모가 힘써 해야 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조와 제도와 법률에 더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구조와 제도와 법률이 가진 규정력 앞에 인간의 선의나 결단이 너무나 허약한 탓이다. 예컨대 지금과 같이 명문대를 나와야 사람 대접을 받고 자원 배분에 있어서 우월한 지위를 점할 수 있는 학벌제일구조가 온존한 상황에서 부모들에게 자녀들을 입시기계가 아닌 인격자로 훈육하라고 주문하는 것은 아름다운 말이나 공허하다. 적지 않은 부모들이 김동호 목사의 가르침을 실천하기로 결단하고 애쓰겠지만, 그 결심을 끝까지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다.

기부와 나눔을 통해 가난을 종식하자는 주장도 한계가 명확하다. 강제되지 않는 기부와 나눔이 얼마나 지속되고 확산될지도 의문일 뿐더러 그런 방식으로는 측량하기 어려울 만큼 큰 가난을 효과적으로 물리칠 수도 없다. 일례로 높은 전.월세 가격으로 신음하는 사람들이나 주거 극빈층의 주거복지를 위해 모금을 하고 이를 임대료 보조나 응급 주거지원에 사용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수혜를 입는 사람들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가운데 극소수일 것이며, 이런 도움도 지속되기 어렵다. 그 보다는 국가가 주거권을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 가운데 하나로 명확히 인식하고 이를 보장하기 위해 법률을 마련하고 이를 집행하도록 만드는 것이 주거 빈곤에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빈곤 퇴치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난이 발생하고 확대재생산되는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는 일이다. 한국사회에 가난이 심각한 까닭은 시장에서의 1차적 분배가 정의롭게 이뤄지지 못해 생산에 기여한 사람들이 제 몫을 받지 못하고 있는데다 조세 및 사회복지제도의 불합리와 미비로 인해 흔히 재분배로 불리는 2차적 분배도 원활하지 못한 데서 근본적으로 연유한다. 김동호 목사가 주장하는 가난의 정의가 무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전통적 의미의 빈곤이라면 적어도 2차적 분배의 그물망에는 포착돼 제도적으로 해소되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시장에서 이뤄지는 1차적 분배가 지금 보다 훨씬 정의롭게 재편된다면 가난의 크기도 줄어들 것이고 기부와 나눔의 필요도 더불어 줄어들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입증하듯 김동호 목사의 가난한 자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 그리고 가난을 종식시키려는 노력은 값지고 귀하다. 기부와 나눔을 통해 빈곤을 해결하자는 김 목사의 주장도 진정성 측면에서는 나무할 데가 없다. 다만 가난의 근본적이고 효율적인 퇴치를 위해서는 제도와 법률을 개혁하는 것이 선차적이며 결정적이라는 사실을 김 목사가 유념했으면 좋겠다. 가난의 완전한 추방은 불가능할 것이고 제도와 법률로 포착되지 않거나 해결되지 않는 가난도 늘 있을 것이어서 기부와 나눔은 항상 중요하고 필요할 것이다.

당장 기아로 인해 사경을 헤매는 사람이나 엄동에 거리에서 자야 하는 노숙인들에게 제도와 법률을 통한 빈곤 퇴치라는 말은 허탄하기 이를 데 없다. 그만큼 기부와 나눔은 긴절한 일이다. 문제는 기부와 나눔을 제도와 법률의 개혁 위에 두는 사고, 제도와 법률의 선차성 및 결정력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 기부와 나눔만으로 가난 종결이 가능하다는 사유체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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