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비교하자면 올 해는 나쁜 뉴스보다는 좋은 뉴스가 많았던 한 해였다. 하지만 나쁜 뉴스 중에서 '한미 FTA' 국회 비준처럼 메가톤 급 뉴스가 있어서 질적인 측면에서는 좋은 뉴스와 나쁜 뉴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다지 큰 차이가 나지 않는 해이기도 하다.
먼저 좋은 뉴스를 보자면 무엇보다도 지난 8월 24일의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꼽을 수 있겠다. 이 선거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보편적 방식의 복지를 거부하고 선별적 복지를 하고자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고 서울시민들에게 선택을 강요했던 선거였다.
이 선거에서 서울시민들은 투표장에 나가지 않는 선택을 함으로써 '보편적 복지'의 손을 들어주었다. 부자 아이, 가난한 아이를 구분해 가난한 아이에게만 무상급식을 하자는 오세훈 시장의 주장을 거부한 것이다. 이 주민투표의 여파는 박원순 시장의 탄생으로 이어졌고, 이제 서울시는 복지 확대의 정책노선을 걷고 있다.
좋은 뉴스 또 한 가지를 꼽자면, 정치권의 '복지 경쟁'을 꼽을 수 있겠다. 지난해부터 불기 시작한 정치권의 '복지 바람'은 올 한 해도 세찬 바람이 되어 이제 곧 태풍으로 돌변할 낌새를 보여주고 있다. 세계적 차원에서 신자유주의가 막을 내리고, 이제는 더 이상 사회양극화를 그대로 놓아두고서는 안 되겠다는 사회적 각성이 정치권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박근혜 의원, 야권의 전 대통령 후보 정동영 의원 등이 이 바람을 주도해 왔고, 이제 주요 정치인들 모두가 복지국가를 주장하고 있다. 여야의 복지 경쟁은 이제 '증세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논의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부자들의 정당인 한나라당에서조차 증세논의가 일고 있는 것은 정말 대단한 변화라 하겠다.
대학생들은 반값 등록금 실현을 위해 거리로 나섰고, 한진중공업의 김진숙 지도위원은 대기업의 무분별한 정리해고 관행을 목숨을 걸고 막아냈다. 이 또한 매우 좋은 뉴스라고 할 수 있다.
시선을 나라 밖으로 돌려보면, 미국의 '점령하라' 운동이 주목을 끈다. 1%를 위한 나라가 아닌 99%을 위한 나라를 만들자는 미국 시위대의 호소는 도덕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너무도 정당한 목소리여서 굉장히 큰 반향을 이끌어냈다. 이젠 신자유주의의 나라 미국에서조차 1%의 부자를 위한 체제를 뜯어고쳐 99%의 중산층과 서민, 노동자를 위한 나라로 국가운영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좋은 뉴스들만 들려온 한 해는 아니었다. 수는 적지만 복지국가 건설의 전망을 어둡게 하는 몇 가지 안 좋은 뉴스가 있다. 앞서 말했던 '한미 FTA' 국회 비준이 대표적이다. 한미 FTA가 어디까지 우리나라 경제에, 국민 일반의 삶에 영향을 미칠 것인지 아직은 정확히 가늠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자유무역협정'이 명백히 복지국가 건설에 심대한 장애물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한미 FTA가 발효되게 되면 그나마 좋은 기능을 하고 있는 국민건강보험 등 기존의 복지시스템부터 흔들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복지 서비스를 확대하려는 각종 정부 차원의 노력이 번번이 미국 기업과 정부의 방해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한미 FTA와는 차원을 달리하면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이야기 거리가 있다. 바로 복지국가를 만들어갈 주체 형성의 문제다. 이와 관련 특히 정치권의 움직임은 나쁜 뉴스로 분류할 수 있겠다. 유럽의 선진복지국가들의 예를 봤을 때 통상 제대로 된 복지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하고, 그 긴 시간 일관되게 복지국가 건설 노력을 책임질 정당이 필수적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 사회에서도 복지국가 건설을 담당할 정당의 출현이 필요한데, 올 한 해를 돌아보면 잘 되지 않았다.
새롭게 출발한 민주통합당도 통합진보당도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겠다고 약속하고 있지만 그것이 진심인지 그리고 그럴만한 의지와 능력은 있는지 의심스럽다. 복지를 확대하자고 주장하면서도 그에 따르는 재원 마련방안을 토론하자는 것은 기피하고, 복지국가를 만들자고 하면서도 한미 FTA 처리는 적극적으로 막지 않는다.
그리고 복지국가를 만들 구상을 정리하고, 정책을 가다듬어 하나 둘 실현해 나가겠다는 비전을 보여주지 않는다. 오로지 한국의 야당이 국민들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다 합쳐서 MB와 한나라당을 혼내주자'는 정권교체 구호뿐이다. 정권을 바꿔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국민들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진정성을 의심 받는 이유이다.
엄청나게 큰 뉴스이지만 좋은 뉴스에 넣어야 할지, 나쁜 뉴스에 넣어야 할지 알 수 없는 뉴스가 하나 있다. 바로 '안철수' 또는 '안철수 현상'이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이상화 시인의 시구를 빗대 안철수 원장을 '백마 타고 오는 신사'라고 불렀다. 안철수 원장은 현재 야권을 지지하는 많은 국민들에게 구세주 같은 존재다. 박근혜 의원을 누르고 한나라당의 재집권을 막을 유일한 대안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분명 좋은 뉴스다.
하지만 또 다른 측면을 보면 그렇게만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진중권 전 중앙대 교수는 안철수 원장을 디지털 버전의 MB로 본다. 그는 상식적 보수인데, 보수가 그를 진보 진영으로 보내버렸다고 말한다. 어떤 이들은 안철수 원장을 진보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작 안철수 원장 자신은 보수와 진보로 나누는 이분법은 안 된다고 하면서 상식과 비상식을 기준으로 봐야 한다고 여러 자리에서 말한 바 있다.
사람들은 안철수 원장이 어떠한 국가 비전을 갖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가 한미 FTA를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알지 못하며, 그가 복지국가 건설에 동의하는지조차도 모른다. 사람들은 적어도 '정치인 안철수'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가 MB의 다른 버전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난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다. 그런 그가 구세주로 인식되고 있는 점, 이 점은 분명 나쁜 뉴스다.
때는 무르익어 가고 있다. 이대로는 못살겠다는 국민의 원성은 이미 하늘을 찌르고 있다. 취업 안 되는 20대나 결혼 못하는 30대, 자식 키울 걱정에 한 숨만 쉬는 40대, 치솟는 전월세 값에 이민을 생각하는 모든 세대가 다 이제는 좀 바꿔보고 싶다는 절실한 소망을 간직하고 있다. 아마도 지금이 독재정권 시절처럼 국민들이 곧잘 정치적 의사를 폭력으로 표현하던 시대였다면 폭동이 일어났어도 몇 번은 일어났을 것이다.
자연에서는 봄이 오면 꽃이 피지만 인간사회에서는 그렇지 않다. 꽃을 피울 주체가 준비되지 않으면 꽃을 피울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한국사회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과연 대한민국은 2012년 정치적 격동기를 거쳐 복지국가의 길로 갈 수 있을지, 유럽 선진복지국가의 길을 따라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무르익은 복지국가 혁명의 기운을 정확히 파악해 혁명을 이끌 주체가 없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런 점에서 복지국가 혁명의 미래를 낙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비관적으로 보는 것만도 아니지만 여러 모로 불확실성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어쨌든 내년에는 '복지국가 건설'을 으뜸 구호로 내놓고 그에 따른 정책과 노선을 벼리고 벼린 새로운 정치집단이 정권교체의 주역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만은 버릴 수 없다. 아무쪼록 내년 이맘때쯤이면 새로운 나라의 희망을 안고 '단 하나의 좋은 뉴스'만을 회고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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