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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안전을 담보로 한 원자력 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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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안전을 담보로 한 원자력 도박

[창비주간논평] '탈핵'과 거꾸로 가는 한국 정부

후쿠시마(福島) 원전사고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탈핵의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독일은 핵발전소의 수명을 연장하려던 기독교민주당의 시도가 후쿠시마 사고 이후 국민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면서, 2022년까지 핵발전소를 모두 폐쇄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스위스도 2034년까지 원전을 단계적으로 폐쇄하겠다고 밝혔으며, 이탈리아도 6월 국민투표를 통해 원전 재가동 계획을 전면 부결시켰다.

후쿠시마 사고는 원전대국인 프랑스에서도 변화의 조짐을 가져왔다. 프랑스 사회당과 녹색당이 지난 11월, 프랑스의 원전 의존도를 현재의 75%에서 오는 2025년까지 50%로 낮춘다는 내용의 합의를 이뤄낸 것이다. 독일과 다르게 체르노빌 사고를 겪은 이후에도 핵발전 확대정책을 펼쳐왔던 프랑스의 이같은 행보는 지구촌이 탈핵사회로 나아가는데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했다.

또 하나 희망적인 소식이 독일에서 날아왔다. 일찌감치 원전 비중을 줄여온 독일에서, 올해 재생에너지발전비중이 19.9%(2010년 16.4%)로 원전발전비중 17.7%(2010년 22.4%)를 추월할 전망이라는 보도가 나온 것이다. 재생가능에너지가 핵발전을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결과다. 이제 막 탈핵을 향한 첫발을 내딛은 프랑스와, 핵발전소가 없는 사회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독일의 사례는 원전 문제의 기로에 서 있는 우리의 선택에 많은 교훈을 준다.

ⓒ연합뉴스
일본정부의 사고수습 선언, 믿을 수 있나

지난 12월 16일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수습되었음을 일본 총리가 공식 선언했다. 사고가 일어난 지 만 9개월이 지난 시점이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수습이 아니다. 화재로 치면 불길만 잡은 것이다. 잔불이 언제 큰불로 바뀔지 모르는 상황이다. 냉온정지(원자로의 온도가 섭씨 100도 미만인 상태)에 이르렀다고 사고 수습 운운하는 것은 현재 국면을 전환하기 위한 핵산업계의 꼼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녹아내린 핵연료를 수습하고 사고 원전을 해체하기까지 40년이 걸린다는 것이 일본정부와 도쿄전력 그들 자신의 이야기다. 그 기간까지 방사성물질이 대기 혹은 지하수를 통해 끊임없이 세상으로 쏟아져나올 것이며 그 양이 얼마나 될지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세상 어느 재앙이, 재앙 자체가 멈추기까지 9개월 이상이 걸릴까? 후쿠시마 원전 1호기의 경우 이미 핵연료가 거의 노심용융(爐心熔融, 멜트다운)이 되어 원자로 자체를 뚫고 나왔다는 것이 알려진 사실이다. 그 핵연료가 격납고 자체 콘크리트를 뚫고 어느 순간 땅속까지 스며들어 지하수를 통한 광범위한 오염이 진행될지는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끔찍한 재앙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음에도 '수습'이라는 말을 사용한다는 것은 일본국민을, 전세계인을 바보로 만드는 짓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일본정부가 연간 피폭량 20밀리시버트(mSv) 미만 지역에서는 거주가 가능하다고 판정하여, 내년 봄 귀가가 가능하다고 발표한 것이다. 유아, 임산부 등 방사선에 민감한 계층을 고려하여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가 정한 일반인 연간 피폭한도치 1mSv의 20배에 달하는 피폭량이다.

터무니없는 상황임을 알면서도 일본정부가 이같은 조치를 취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다. 봉인이 풀린 방사성물질을 인간이 제어하지 못하고 그 상황에 맞춰 살아갈 수밖에 없음에서 오는 고육지책인 것이다. 원전사고가 발생할 경우 감내해야 할 고통과 공포를 피부로 체득하지 않는 이상, 인체에 무해한 저선량이라는 핵산업계의 말도 안되는 논리는 당장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고통이 아니기에 극복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꿈쩍 않는 한국의 원전 확대정책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에도 한국의 원전정책은 변하지 않았다. 아니,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우리 정부는 현재 31%를 차지하는 핵발전 비중을 2030년까지 59%로 늘린다는 계획이며, 이를 위해 13기의 핵발전소를 건설·계획중에 있다. 여기에 더해서 삼척, 울진, 영덕 지역을 신규 핵발전소 후보지로 연내 지정하려 한다. 현시기에 신규 원전부지를 확보하겠다는 것은 국민의 바람과 정반대의 움직임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우선적으로 핵발전소의 안전성 확보가 국민의 최대 관심사이며, 가능하면 핵발전소를 줄여나가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 대다수의 견해다. 그럼에도 정부는 원전 안전성 확보에는 제대로 된 신호를 보내지 않으며, 핵발전 강화라는 잘못된 신호를 우리 사회에 던지고 있다. 최근 문제가 된 울진 4호기에 대한 대처가 단적인 사례다. 울진 원전 4호기 예방정비과정 중 증기발생기 2개의 전열관에서 약 25%가 두께가 얇아지거나 파열 조짐이 나타나는 등 심각한 손상을 확인했다.

그러나 한국수력원자력은 증기발생기를 전면 교체하는 대신, 손상된 전열관을 폐쇄하는 '관막음'을 하거나, 관 내부를 보강하는 '관재생작업'을 거쳐 가동을 재개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증기발생기가 파단되는 사고가 일어나면, 일반적인 냉각수 누설과 달리 원자로 1차 냉각재가 일시에 상실됨으로써 후쿠시마 원전사고에서 일어난 노심용융 같은 대형사고의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울진 4호기에 대한 이같은 땜질식 처방은 우리 정부가 핵발전의 안전성 확보에 얼마나 무감각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탈핵으로 가는 길이 최선의 해답

최근 크고작은 원전 문제가 이슈화되고 있다. 큰 사고가 있기 전에는 작은 사고가 잇따른다는 하인리히 법칙(Heinrich's Law)을 떠올리며 국민은 불안에 떨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중고부품을 사용한 납품비리, 인코넬600(원전의 전열관 등에 쓰이는 소재로, 고온·고압에서 쉽게 부식되는 단점을 지님) 재질의 문제점을 알고도 사용한 사례 등 단순한 사고로 치부할 수 없는 심각한 것들이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된다. 이웃 일본의 고통을 남의 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탈핵에 대한 진지한 검토, 그 가능성을 확장하는 것이 지금 우리 세대의 책무다. 다양한 시도를 통해서도 에너지원을 해결할 수 없다면, 그것은 그 시점에서 다음 세대들이 결정할 사항이다. 당장 핵발전소 가동을 멈출 수는 없지만,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최대한의 노력을 가해야 한다. 만전을 기해도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는 것이 핵발전소인데, 여러가지 위험 징후가 나타남에도 끄떡없다는 식의 안일한 태도를 버려야 한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원자력 르네상스'에 종지부를 찍고, 탈핵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시나리오를 마련하고 집행해나가라는 마지막 경고일 수 있다. 탈핵 사회를 향한 시나리오에 대한 준비와 시행을 더 늦기 전에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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