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은 19일 북한 및 남북관계 전문가인 김근식 경남대 교수와 김창수 전 청와대 행정관의 긴급 좌담회를 열고 김정일 사망 이후의 정세 전망과 향후 한반도 정세에 미칠 영향을 짚어봐다.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가 진행한 이번 대담에서 패널들은 김 위원장의 사망이 북한에서 급격한 변동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은 적으며, 한국 정부는 오히려 경색된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다음은 이날 좌담회 전문.
▲ 김정일 사망을 특별방송으로 보도한 북한 <조선중앙TV> 방송화면. |
"52시간 조용했던 북한, 위기관리 체제 정상 작동 증명"
프레시안 :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에는 하루 뒤 발표했는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틀이 지나 알려졌다. 52시간의 공백 동안 북한의 움직임은 어땠을까.
김창수 : 현재까지의 언론 보도를 보면 그 동안 북한은 내부 체제 단속을 위한 점검 시스템을 만들고 김정일의 사인을 밝히는 후속 조치를 한 것으로 보인다. 52시간의 공백은 오히려 북한의 위기관리 체제가 잘 작동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정일 사망 이후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해 불안해하지 않고, 관련된 정보가 잘 통제되는 시스템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근식 : 그 사이에 당이나 국방위원회, 군의 엘리트들이 대책을 논의했을 텐데, 가장 큰 이슈는 김정은 후계체제로의 순탄한 이행, 그를 중심으로한 권력 이양, 주민 동의나 대외 특이동향 점검 등이었을 것이다. 52시간 동안 의견 조율이 합의되고 끝난 상황에서 사망 소식이 발표됐기 때문에, 큰 사건이었지만 초동 대응은 잘 했다고 사후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또 그동안 중국, 러시아와 조율에 들어가 김정은 후계 체제에 대한 정치적 지지를 암묵적으로 이끌어내는 작업을 했을 것이라고 본다. 대외적 지지를 얻고 대내으로 권력이양을 순탄한 진행했다는 자신감을 확보한 측면이 있다. 반대로 52시간 동안 남쪽은 몰랐다는 것은 굉장한 문제점으로 보여진다.
프레시안 :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았지만 중국 측에 사전 통보가 갔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인가?
김창수 : 단정하긴 힘들지만 현재 북중관계를 고려할 때 52시간 동안 북한의 위기관리 체계가 작동됐다면 중국과 논의했을 가능성이 있다. 사망 직후가 아니더라도 발표 전에 긴급조치를 발표하겠다 정도는 통지됐을 것으로 보인다.
프레시안 : 94년 김일성 사망 시에는 남측에 사전 통보가 왔었나?
김근식 : 당시도 남북이 좋은 사이는 아니었다. 핵문제로 긴박한 상황이었고 2000년 정상회담을 한 이후에나 화해협력이 돼 조문단이 오고갔다. 따라서 94년 당시 상황상 사전 통보는 무리였고, 다만 남측 정보당국은 알고 있었을 수 있다. 두 차례 정상회담 이후 많은 사람이 오고가고 북측에 개성공단까지 있는 현재 상황에서 눈치 못 챈 건 국정원 등 정보라인이 북한에 대해 장님이 됐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김창수 : 다른 시각으로 보면, 기본적으로 북한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최고지도자의 유고 동향은 우리 안보에 중요한 문제다. 그래서 온갖 촉수를 세우고 있는 건 분명한데 정보를 세세히 얻을 수 있느냐는 달리 봐야 한다. 예전 관례를 보면 김정일이 80일 동안 안 나타난 적도 있었고 그 동안 무엇을 했는지 모를 경우도 많았다. 며칠씩 안 나타나는 경우도 허다했다. 우리 측이 항상 즉각 파악한 건 아니었다.
이번에 특별방송을 하겠다고 발표할때까지도 몰랐는데 그럴 수 있다고 본다. 북한이 예를 들어 핵문제 관련 발언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긴급방송을 사전 예고할 때도 있어서, 이번에도 그런 식이라고 예측했을 수 있다. 또 한미 정보당국이 그 동안 김정일의 건강 상태에 대해 대체적으로 4~5년 생존이 가능하다고 봤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상황을 파악 못한데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하지만 사망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일본에 가 있었고, 결과적으로는 북한에 대한 정보능력 부족이 대통령의 행보에까지 영향을 미친데 대해서는 비판의 소지가 있다고 본다.
프레시안 : 일부 보도에는 타살설, 테러설, 정변설까지 나오는데.
김창수 : 북한의 발표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져볼 수는 있다. 개인적으로 북한의 발표는 사실이라 본다. 김정일이 건강 이상으로 사망했을 것이라 보는데, 그간 건강 이상설에 대해 많이 확인된 부분이 있었고, 김정일 사망 원인이 만약 건강 이상이 아닌 다른 요인이라면 52시간 동안 소식이 잘 관리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또 우리나 미국 정보당국이 그것을 모를 수 없었을 것이다.
"외국 조문 안 받기로 한 것, 94년 조문 논란 영향 미친 듯"
프레시안 : 북한은 외국의 조문단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김일성 사망 당시에도 같은 입장이었나?
김창수 : 당시에는 그런 언급이 없었고 통상적인 과정을 거쳤다. 이번에 안 받겠다는 것은 김일성 이후 발생했던 조문 파동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한다. 그때처럼 김정일 사망에 대한 불필요한 논란이 사망 자체에 대한 의혹을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본다. 이명박 정부 입장에서도 한 시름 덜어주는 측면도 있다.
한편으로 중국에 사전에 알려줬다는 가정 하에 생각해보면, 중국 측의 조문단을 비공식적으로 받을 가능성이 있다. 김정은 체제 안착 과정에서 북중이 서로 도움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중국도 김정은 체제의 안착이 필요하고 북한도 중국의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향후 북중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알리기 위한 징표 측면에서라도 받을 확률이 있다. 당장은 공개하지 않겠지만 정치적 필요에 따라 추후 공개하는 식으로 진행되지 않을까 본다.
김근식 : 조문단 안 받겠다는 게 특이한 사안인 것은 맞다. 정상적이라면 조문단 왕래는 다양한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외교의 장이다. 가장 우선적인 이유는 호상(好喪)이 아니기 때문인듯 하다. 김일성 사망도 급작스러웠지만 83세로 장수한 편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70세도 채우지 못했다. 두 번째로, 국가영도자의 죽음을 맞은 북한의 분위기가 94년과 비교했을 때 사뭇 차분한 분위기다. 당시처럼 애도의 물결이 넘치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런 분위기를 반영한 게 아닌가 싶다.
프레시안 : 북한의 붕괴를 바라는 이들은 체제의 취약성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조문단의 방문을 거절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김창수 : 조문단을 받으면 평양에 가서 북한의 통제를 벗어나 사회 곳곳를 뒤지는 게 아니다. 취약성이 노출되지 않는다. 조문단은 한 국가를 대표하는 제한된 사절단이라 그런 분석과는 큰 관련이 없다. 가령 북한이 아리랑 공연을 할 때 관광객들을 많이 받았고 관광객들은 조문단보다 훨씬 많은 곳을 볼 수 있었다. 그런 점을 생각해보면 체제 취약성론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
프레시안 : 김정일 위원장이 2008년 9월 뇌졸중으로 한번 쓰러졌는데 그때야 말로 김정일이 곧 사망할 것이란 얘기가 많았고 현재는 회복됐다는 분석이 우세한 상황이었는데.
김근식 : 잘못된 진단을 내린건 아니고 2009년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 당시 대통령 주치의가 김정일을 장시간 관찰한 결과 직무수행에 이상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후 중국의 다이빙궈(戴秉国) 국무위원,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방북했다. 현정은 회장도 4시간 동안 김정일을 만났다. 위키리크스가 김정일이 지난해 줄담배를 피웠다는 외교전문도 공개했다.
김정일의 최근 몇 년간 대외 활동과 올해 중국·러시아까지 수천 킬로미터를 가 회담을 한 것을 보면 업무 수행에는 지장이 없었을 것이다. 갑자기 사망한 것은 기차에서 심근경색이 발생했고 응급처지가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김정은 체제, 어디로 갈 것인가?
프레시안 : 김일성은 1945년부터 1994년까지 49년간, 김정일은 1994년부터 2011년까지 17년을 통치했다. 후계자로 지명된 이후로 치면 거의 40년이다. 84년 생인 김정은은 2010년 후계자로 지명됐는데 김정일이 없는 북한은 이제 어디로 갈까?
▲ 김근식 경남대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
문제는 김정은의 위치와 리더십, 카리스마, 정치적 정당성의 정도는 1994년의 김정일보다 약하다는 사실이다. 김정일은 20년 넘게 후계자 준비를 해 왔다. 전반적 영역에서 경험을 쌓아 당의 리더십을 장악했고 1991년 군 최고사령관에 취임하면서 군 통제권도 확보한 상황이었다.
김정은은 짧게 보면 작년 9월부터 채 2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 후계자 수업을 받았다. 그것도 김정일의 후광을 업고 현지지도를 다녔다. 내년에 강성국가를 만들어 가야하는데 김정일이 사라진 공백기에 김정은이 경제 차원에서 주민들을 독려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북핵 문제도 북미협상은 재개되겠지만 최고지도자가 결정을 내릴 시점이 있다. 농축 우라늄 프로그램(UEP)을 어떻게 할 것이냐 평화협상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백날 강석주, 김계관이 해봤자 결국엔 김정일이 결정해주는 건데 이제 구심점이 없어지면면서 결정은 미뤄지고 시간이 소요되는 과정이 있을 수 있다.
프레시안 : 협상파과 강경파가 대결할 때 중재 역할로서 리더십 문제가 있다는 것인가.
김근식 : 김정은의 후견 그룹이 당내 엘리트를 얼마나 장악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장기적으로 내년 강성대국 건설을 위해 대중들에게 설명하고 이끌고 선두에 서서 선전할 수 있으냐를 보면 취약하다. 둘째, 정치 엘리트 내부의 갈등이다. 작년 9.28 당대회 이후 뜨는 별이 있고 지는 별이 있었다. 뜨는 별로는 리용호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최룡해 당비서가 급부상했고, 지는 별로는 김영춘 정치국위원, 오극렬 정치국 후보위원 등이 있다. 장의위원회도 '지는 엘리트'의 순번은 뒤다. 이 엘리트 사이의 알력을 김정은이 잘 조절하지 못하면 중장기적으로 갔을 때 내부적 불안정성은 취약하지 않을까 싶다.
김창수 : 첨언하자면 김정일 체제는 후계 체제에 대한 개념과 논리를 만들고 실제 시스템을 만드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1970년대부터 시작해 성립도 되지 않았던 후계체제 논리를 만들어 나갔고 이를 바탕으로 1980년대 이후 후계자로 등극했다.
김정은 후계체제가 나오기 전에 북한 연구자 사이에 벌어진 논란은 과연 3대 세습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였다. 세습, 집단지도체제, 과도 체제에서 3대 세습으로 가는 이론이 각각 제기됐다. 이제 3대 세습으로 간 상황이라면 후계체제로 갈 수 밖에 없다고 했던 당시 분석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후계체제를 정당화하는 개념과 논리에 의해 유지되어 왔다. 이를 바꾸고 집단지도체제로 가려면 또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야 해서 결국은 3대 세습으로 갈 수 밖에 없다는 게 당시 주장이었는데 현재를 보면 맞아떨어진 셈이다. 또한 김정일이 후계체제에 대한 개념부터 시스템까지 만들었자면 김정은은 이미 만들어진 상태에서 올라타는 방식으로 가기 때문에 선대와 달리 압축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이미 최근 몇 년간 김정은 체제의 틀을 만들어 왔기 때문에 틀 자체는 유지가 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중국의 이념 갈등처럼 정치 중심 노선과 경제개발·실용주의 사이의 갈등이 북한 내에도 있어왔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제시된 국가영도자의 역할을 김정은이 어느 정도로 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프레시안 : 1994년 당시 김정일이 김일성의 3년상을 치르면서 대외관계를 동결시켰는데 앞으로도 북한이 수세적으로 갈 것인지 궁금하다.
김근식 :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김정은이 확고한 역량과 리더십, 정책적 경륜을 100% 습득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상당 기간 테크노크라트에게 결정을 위임할 수 있다. 북핵 문제는 강석주, 대남정책은 김양건, 경제는 최영림 등 각 영역에서 김정은보다 전문 역량이 있는 이들에게 위임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들 역시 김정일이 결심한 바에 따라 움직이던 이들이라 자신들이 결정한 적이 없어서 과거와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두 번째 가능성은 이러한 배경 하에 테크노크라트와 김정은 모두 과감하게 결정을 못해 미뤄질 가능성이다. 실기(失機)하는 것이다. 앞으로 북미협상을 지켜봐야 알겠지만 그렇게 흘러가면 북한도 대외적으로 불리한 상황이 될 수 있다.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대내적으로 통치의 정당성 강화에 집중하면서 대외정책은 김정일이 공언한 정도를 지켜내는 수준에서 상황을 보자는 정도로 갈 수 있다.
▲ 김창수 통일맞이 집행위원. ⓒ프레시안(최형락) |
앞으로도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는 유지될 것이다. 주목할 점은 올해 1월 후진타오(胡錦濤 ) 중국 국가주석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결과다. 당시 두 정상은 남북대화 유지 및 미국과 북한의 관계개선을 하기로 했는데 결실을 맺지 못했다. 최근 몇 차례 북미접촉 통해 UEP 동결 합의와 영양 지원까지 합의된 것은 그 정상회담의 연장선상에 있다.
문제는 내년이 국제사회에서 모든 한반도 문제에 영향력 행사하는 국가들의 리더십 교체기라는 점인데, 그 시기에 북한이 상황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는 비전을 만들 것인가에 있다. 현재로서 그 가능성은 유동적이다. 북한이 현재의 수준은 유지해도 새로운 환경에 대해서 어떤 것을 만들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프레시안 : 국내 언론들은 김정은의 리더십이 약하면 군부가 들고 일어날 수도 있고 탈북자가 증가할 수도 있다는 시나리오를 내놓고 있다.
김근식 : 군부가 최고지도자에 저항하는 것은 북한의 수령제 구조에서는 불가능하다. 군부가 따로 독립해 국방위원장이나 최고사령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국방위원회의 정치국 상무위원 등은 사실 당 사람이면서 군에 가있기 때문에 군이 자기의 당과 분리된, 후보자와 분리된 이해관계 때문에 후계 체제에 저항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다만 김정일이 후계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형식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2009년 헌법을 개정해 국방위의 권한을 강화하고 국방위원장을 영도자로 규정했다. 하지만 지난 4월 최고인민위원회에서 김정은, 리용호, 최룡해 등은 국방위 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이번 장의위원회 명단을 봐도 당, 정치국 인사들이 전면에 섰고 국방위 위원들은 뒤로 밀렸다. 국방위를 중심으로 통치하기엔 김정은이 아직 맡고 있는 직함이 없어서 배제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창수 : 북한의 기본 권력구조상 군부가 최후까지 체제를 유지하는 수호자 역할을 하기 때문에 현재 체제에서 이탈하리라는 발상은 북한 연구자 입장에선 타당성이 없다. 김일성 사망 이후 김정일이 선군정치를 내세우면서 군이 모든 결정과정에서 우위에 있던게 오히려 비정상적인 과정으로 봐야 한다. 최근에 이러한 경향이 정상화됐고 이는 김정일을 호칭할 때 당 명칭을 앞세우고 군 직함을 뒤로 빼는 것에서도 확인된다.
미국과 중국의 향후 움직임은?
프레시안 : 중국·미국의 향후 움직임은 어떻게 될까? <뉴욕타임스>는 오늘 한반도에서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경고했는데.
김근식 : 중국은 공식적으로 애도를 표명했고 94년 당시 클린턴 행정부가 김일성 사망에 애도를 표명한 것처럼 미국도 유사하게 갈 것이다. 중요한 점은 지난 1월 미중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통제할 수 없는 군사적 긴장은 피하자고 합의했다는 점이다. 오히려 북한과의 협상을 진전시켜서 미국이 다시 한반도 문제에 개입해야 북한의 불안정성을 완충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기에 정치적 급변이나 소요사태는 중국과 미국 둘 다 원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김창수 :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에 대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그럼에도 북한의 미사일 사정거리에 미국이 노출되어 있다는 점에서 일정한 관계를 유지하고 적절한 관리를 해야 할 필요성도 갖고 있다. 한편으로는 내년에 미국도 대통령 선거가 있어서 북한과 적극적 관계에서 생길 수 있는 불확실한 상황이 위험으로 번질 수 있다.
때문에 적극적이지도, 악화되지도 않은 현상 유지 국면이 올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 정부의 반응도 호들갑보다는 냉철하게 관찰하는 편에 가깝다. 미국은 지금까지 유지해온 대화를 좀 더 시간을 두고 추진하지 않을까 한다. 중국 역시 변방에서의 불확실성을 원하지 않는다.
프레시안 : 미국의 대북 접근에 대해 좀 더 적극적이라는 의견과 현상 유지로 갈 것이라는 분석이 각각 나왔는데, 극소수 사람들은 미국이 북한을 무너트리길 기대하기도 한다.
김근식 : 중국이 있어서 쉽지 않다. 중국이 북한을 포기하면 그럴 수 있겠지만 북중관계가 전략적 협력관계로 격상된 상황에서는 어렵다. 미국이 그렇게 나오려면 북한 내부의 불안정성이 최고조에 달해 방아쇠를 당기면 터진다는 자신감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아니다. 군사적 임계점이 와야 현실화될 것이다.
김창수 : 미국이 동북아에서 목표로 하는 것은 대중정책이다. 한국의 일부 세력은 미국이 압박하고 군사조치를 강화하는 게 희망상황일 수 있지만 대중정책 추구하는 미국 입장에서 북한 압박이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 그런 압박이 효과를 보지 못하면서 북중관계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가서 미국의 대중국 전략에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북한만을 독립적 변수로 놓고 압박할 가능성은 없을 것 같다.
한국 정부, 조문 문제 어떻게 풀 것인가
▲ 이날 좌담회를 진행한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 ⓒ프레시안(최형락) |
김근식 : 가장 중요한 건 이명박 대통령의 입장이다. 김정일이 사망한 오늘은 일단 통상적인 국가안전보장회의, 군 공무원에 대한 경계령을 내렸다. 남북관계가 4년 동안 중단되고 교착되는 것을 반복해왔는데 김정일 사망으로 이를 돌파해 전기를 마련할 수 있는 모멘텀으로 삼을 창조적인 지혜가 이 대통령에게 있을 것인지가 중요하다.
예컨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당시 남북관계의 엄중한 분위기 속에서도 김양건이 조문단으로 왔다. 그래서 이 대통령을 만나고 나중에 정상회담 합의까지 갔었다.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지도자가 사망했을 때 그 시점에서 돌파구가 마련되는 게 역사적 현실이었다. 이 대통령이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관리할 독자적인 행동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면 오히려 이번이 기회다.
프레시안 : 적어도 차분하게라도 조의를 공식적으로 표명해야 한다는 것인가.
김근식 : 조문단을 받지 않으니 조의나 유감 표명도 할 수 있고 조전을 보낼 수 도 있다. 통일부나 현대아산 명의 등 수위를 조절할 수도 있다. 남북관계를 위해 북한을 강압적으로 대하지 않겠다는 신뢰의 시그널을 보내면 된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내년 핵안보 정상회의에 김정일을 초청했었고, 기자회견 때마다 이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을 만날 용의가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한민국의 전직 두 대통령이 각각 만나 합의를 도출했던 상대다. 94년 상황과는 다르다. 그 동안의 남북관계 개선 상황을 감안하면 전향적인 표명으로 신뢰 개선이 가능하다.
김창수 : 정부는 우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최우선 원칙으로 세워야 한다. 지금은 비정상적인 상황이기 때문에 평상시에 수습될 수 있는 남북 간의 사건도 수습되지 않는 상황으로 발전, 확산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철저히 위기관리를 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북한 상황을 냉철하게 주시하고 북한의 상황이 남한으로 확산되는 걸 막아야 하는 차원에서 대응해야 한다.
둘째로 국민들이 군사적 충돌이 발생해 남북관계의 위험으로 번지는 것을 염려하는데, 오늘도 주가가 요동을 쳤다. 과거 남북관계에 우발적 충돌이 발생하면 주가가 하락했다 반등하면서 '큰손'들만 이익을 챙기곤 했다. 이런 상황이 되면 국민들만 피해를 보는데 현재 글로벌 경제 위기의 장기화가 점쳐지는 상황에서 한반도의 상황을 잘 관리해 위험을 최소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조문도 이 원칙과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남북간의 상황도 악화되지 않고 내부적으로 국론이 요동쳐서도 안된다면 이를 충족시키는 것은 정부가 의젓한 태도로 조의를 표명하는 게 바람직하다.
프레시안 : 조의 표명이 남북관계를 개선할 호기하고 했는데 국내 정치만 보면 상당히 답답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김근식 : 진보 진영과 보수 진영 사이에 대결 구도가 생기기 전에 정부가 주도권을 잡고 정리해줘야 한다. 이를 미루면 진보 진영에서 조문 얘기가 자연스레 나올 것이고 보수 진영에서 반발하면서 김정일의 악행을 보수 언론들이 싣기 시작할 것이다. 이러한 남남갈등이 격화되면 여야 싸움이 되고 정쟁화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국내 정치권이 김정일 사망을 남북관계 개선의 호기로 보는 게 아니라 김정일 사망이 국내 정치 파동의 근원이 될 것이다.
개인적인 바람은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김정일과 만난 인연도 있고 하니 조의 표명을 하는 수준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이 대통령이 하기 어렵다면, 박근혜로서는 이 대통령과 선을 그을 필요도 있고 비대위원장으로서 쇄신과 혁신을 해야하는 상황이라면 말 한마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정부 차원에서 힘들다면 박근혜로도 괜찮다는 것인가.
김근식 : 이명박 정부는 지난 4년간 북한에 해온 일이 있어서 그런 기조를 떠나기 힘들 수 있다. 그런 기조를 버리길 바라지만 박근혜가 정당 자격에서 평범하게 조의나 유감을 표명하고, 한반도가 이 일을 계기로 평화롭게 갔으면 한다는 원칙적인 말을 할 수 있다.
김창수 : 우리 사회가 다원주의 사회기 때문에 북한 문제를 놓고 의견이 다양하게 표출되는 건 다양하다. 하지만 양극단에서 충돌하는 상황으로 가서 그 극단이 중간의 여러 세력을 대표하는 방식으로 여론이 잘못 형성되면 문제다.
그렇기에 이 문제에 있어서 정부가 기준점을 잡을 필요가 있다. 북한이 외국 조문단을 받지 않겠다는 것은 우리 정부에겐 부담을 덜어준 셈이다. 조문단 문제가 논란의 화약고가 될 수 있었는데 안 받겠다고 하니 극단적 논쟁으로 빠질 수 있는 상황은 예방됐다고 본다. 이명박 정부가 역대 정부의 대북정책 수준에서 표명했으면 한다.
프레시안 : 김정일 사망이 일종의 '북풍'이고, 결국 박근혜 위원장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겠냐는 얘기가 은연 중에 나오고 있다.
김근식 : 민주당도 비대위를 구성했는데 과거 김대중 대통령 서거시 조문단이 왔으니 우리도 가야하는 게 아니냐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조의 표명 문제는 정부에 맡기고 당은 북한의 안정성에 포커스를 맞추는 게 중요하지 않나 싶다. 남한에서 화약고 될 수 있는 문제를 치고나갈 필요는 없다.
김창수 : 내년 선거 국면에서 한반도 통일 이슈가 최대 이슈로 부각할 가능성이 있다. 이전까지 복지 문제나 양극화 문제, 사회정의 문제가 중요한 이슈였고, 이명박 정부에서 대북정책이 망가진 상황에서 새로운 대통령이 평화통일이라는 헌법상 의무를 할 수 있겠느냐 정도였다.
이제는 김정일 사망 이후 종합적인 큰 틀에서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불확실한 상황을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의 대통령이 필요하다는 이슈가 등장할 것이다. 또 최근 약화되어가던 흑색선전이 선거 국면에서 검증을 빌미로한 네거티브 선거로 부활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각자가 김정일 사망을 보고 느끼는 소회는.
김근식 : 오늘 뉴스를 보고 여러 생각이 났다. 김일성이 1994년 사망하고 김정일이 최고지도자가 됐는데 아버지로부터 부채만 떠안아 어려운 시기를 겪다 해결을 못하고 사망했다. 17년 동안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해보려고 했던 일도 부시 행정부나 남북관계 경색 등 국제환경이 맞지 않았다.
북한을 정상화하고 개혁·개방하려고 시도했지만 실패와 좌절을 겪었고 2012년 김일성 100주년을 계기로 강성국가를 만들어보겠다고 했지만 새해를 한 달로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문턱도 못 넘은 셈이 됐다. 17년 동안 하루도 편한 잠을 못자던 시기였을 것이다. 죽고 나서도 후계자에게 더 큰 숙제와 부채를 넘겨주고 갔다. 한반도의 안타까운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창수 : 이번 사건을 계기로 백낙청 선생이 말한 분단체제론을 다시 확인하게 됐다. 남한과 북한은 독립된 구조에 놓여있지 않다는 것이다. 정치든 경제든 북한과 남한은 체제 차원에서 영향을 미친다.
이번 사건이 우리에게 충격으로 작용하면서 경제, 안보 불안으로 작용하듯 앞으로도 북한의 안정이 우리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남한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 북한의 체제가 현재 상황을 안정적으로 극복해 나야야 한다. 기본적으로는 현재 북한 상황에 대한 섣부른 예단을 하지 않는 것이다. 북한을 부추겨 원하는 상황으로 진단하고픈 마음을 접고 냉철하게 북한 상황을 분석해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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