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 전 장관은 김 위원장의 매제인 장성택이 당분간 상황을 종합 관리하며 김정은 후계구도를 안정화시킬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한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후의 상황에 비춰 볼 때 북한이 기본적으로는 대외적으로 수세적인 입장을 취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정 전 장관은 다른 한 편으로 김일성 주석 사망 후 3개월 만에 북미 제네바 핵 합의가 체결된 것을 볼 때, 미국이 이번 '기회'를 잘 활용한다면 북핵 해결에 있어서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정세현 전 장관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 고(故)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매제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맨 오른쪽) ⓒ연합뉴스 |
프레시안 : 김일성 사망 후 북한은 안정될 것인가?
정세현 : 북한이 2012년을 강성대국의 해라고 불렀는데, 김정일 위원장 사망 소식을 전하는 <조선중앙통신> 발표를 보니 '강성국가'라고 용어를 살짝 바꿨다. 작은 부분이지만 김 위원장의 급작스런 사망으로 북한이 자신이 없어졌다는 의미라고 본다. 강성대국을 위한 세부 계획에서 차질이 있다는 걸 각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프레시안 : 김정은 후계구도는 어떻게 될 걸로 보는가?
정세현 : 김정일 위원장은 3남 김정은을 후계자로 정해 놓고 그간 그 체제를 굳혀 나가는 과정을 밟아 왔다. 김 위원장이 사망했다고 해도 그 계획을 바꿀 이유는 없다.
북한은 사망 발표에서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을 장의위원 첫머리에 올려놓았다. 김정은을 상징적으로라도 수위(首位)에 앉힌 것은 김정은을 중심으로 상황을 관리하겠다는 뜻이다. 북한은 그러한 토대 위에서 강성국가 건설 일정을 추진해 나가려고 할 것이다. 권력투쟁 같은 큰 동요가 바로 일어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프레시안 : 그래도 전혀 동요가 없을 수는 없지 않을까?
정세현 : 현재는 군과 김정일의 매제(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이 실질적으로 김정은의 후견인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장성택은 민간인임에도 불구하고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하고 있다. 당과 군을 종합 관리하는 장성택이 당분간 실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최고 지도자가 되려면 혁명 가계의 후손이어야 하고, 소위 '백두의 혈통'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김정은이 비록 나이가 어리긴 하지만 누구도 그걸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2400만 북한 주민들의 머릿속에 박힌 걸 지울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외부에서 가해지는 여러 가지 압력이나 충격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리더십의 위기가 올 수는 있다. 하지만 그 경우에도 김정은을 '지우는' 식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에서 어려운 문제에 부딪혔을 때 일종의 노선 투쟁이 일어나 김정은 옹립 세력의 변화가 올 수는 있다.
프레시안 : 앞으로 북한의 대외정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정세현 : 1994년 김일성 주석 사후의 상황이 참고가 될 것이다. 김일성 사후 북한은 만 3년 동안 매우 방어적인 대외 태도를 보였다. 일체 움직이지 않았다. 3년상(喪)이라면 남쪽에서는 만 2년간 상을 치르는 건데, 북한은 김일성 사후 만 3년간 상을 치렀다.
따라서 김정일 사후의 북한도 3년 정도 상당히 수세적이고 방어적으로 대외관계를 관리할 것이다. 북한이 주도적으로 먼저 뭘 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남북관계의 전망도 그리 좋지 않다.
김일성 사후 만 3년이 지나고, 남쪽에서 98년에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 햇볕정책을 추진하니까 북한은 그때서야 남쪽의 새로운 대북정책에 호응하면서 남북관계를 풀어 나갔다. 이번에도 그런 전철을 밟을 것이다. 남쪽에서 정권이 바뀌어서 적극적으로 대북 대화에 나서지 않으면 쉽사리 먼저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또 한 가지 중요하게 참고할 만한 점이 있다. 북한이 움츠려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미국이 이럴 때를 오히려 잘 활용해서 북핵 문제의 해법을 찾을 수 있다.
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고 3개월여 만에 북미 제네바합의가 탄생한 역사가 있다. 물론 김일성 사망 직후에는 93년부터 시작된 북미 제네바 핵 협상이 잠시 스톱되긴 했다. 그러나 얼마 후 재개된 다음에는 굉장히 빠른 속도를 냈고 그해 10월 제네바합의가 타결됐다.
그때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의 손을 잡아주는 식으로 문제를 풀었다. 미국의 동기는 아마도 '북한의 사정이 어려우니까 우리가 조금만 넉넉하게 상대하면 우리의 말을 들을 것'이라는 계산이 있었을 것이다.
이번에도 금주나 다음주 쯤에 북한과 미국의 3차 고위급 회담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김정일 사망으로 늦춰질 수밖에는 없겠지만, 장례가 끝난 후에 미국이 손을 잡아주는 식으로 간다면 북으로서는 오히려 미국과의 관계를 빨리 안정화시키고 6자회담으로 가는 길을 빨리 함으로써 오히려 대내외적으로 정치적 안정을 확고하게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북한 내부적으로도 '김정은 대장 동지가 탁월한 영도력으로 미국과 협상을 잘 이끌었다'는 걸 선전할 수 있다. 미국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북핵 문제가 빨리 호전될 수 있는 호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밖에서 북한의 상황을 잘못 판단해서 어떻게 해보려고 든다면 북한으로서도 그에 대한 대응을 두고 노선 투쟁이 일어날 수 있고 정세가 나빠질 수도 있다.
프레시안 : 이번에는 해외 조문단을 일체 안 받겠다고 선언했다.
정세현 : 김일성 사망 때 빌 클린턴 당시 미 대통령은 북한에 사람을 보내지는 않았지만 조전은 보냈다. 평양 주재 해외 대사들도 조문을 했을 것이다.
북한이 이번에는 해외 조문단을 안 받겠다고 했다. 안 받겠다고 했으니 남측에서도 보낼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통해 안면이라도 있었다면 그런 부분을 고민하거나 조전이라도 보내야겠지만 현재 남북관계가 그럴 수 있는 관계가 아니다. 민간단체가 나선다고 해도 허용할 상황은 아니다.
그래도 한국 정부가 조의를 표명하는 정도는 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야 이 대통령 임기 중에 남북관계에서 작은 부분이라도 풀어나가 수 있을 테니 그 정도는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한반도의 상황과 정세에서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사망했기 때문에, 그 정도도 없이, 아무 말도 안 하고 지나갈 수는 없을 것이다.
각국에서도 '드라이한' 조의 표명 정도는 나올 것이다. 남측도 조문단을 보낸다거나 '심심한 애도'를 표명할 수는 없겠지만, 중립적인 표현 방식으로 조의 정도는 표하는 게 나을 것 같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보기에도 그런 모양새가 좋을 것이다. 원수지간에도 죽으면 문상을 가는 법이다.
프레시안 : 남측의 군 대비 태세는 어떻게 평가하나?
정세현 : 94년 김일성 사망 후 남쪽에서 경계태세에 들어간 걸 가지고 북에서 욕을 많이 했었는데, 그건 피차 마찬가지다. 박정희 대통령 서거 때 북한도 경계태세에 들어갔었다. 상대방이 위기 상황에서 국면 전환용으로 어떤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가정을 안 하면 국가 경영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직무 유기다. 너무 요란하게 할 필요는 없지만 내부적으로 안보 문제를 탄탄하게 체크하는 것은 필요한 것이다.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할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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