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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이 있다면, 수요집회 그만할 수 있게 되는 것"

[현장] 수요집회 1천회 "MB, 길바닥 늙은이들 아우성 모르지 않을 것"

14일 정오를 조금 앞둔 서울 종로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은 인파로 북적였다. 통제에 나선 경찰은 차 한대가 지나갈 만큼의 공간을 확보하고 있었지만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그마저도 곧 자리를 내줬다. 교복을 입은 학생과 외국인, 점심시간에 나온 직장인까지 3000여 명(경찰추산 1000명)이 모여든 대사관 앞은 이날로 1000회를 맞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수요집회 장소였다.

기네스북에 등재될 정도로 장기간 이어온 수요집회지만 '1000회'라는 숫자를 바라보는 이들의 감정은 복잡했다. 집회의 사회를 본 배우 권해효 씨도 "오늘이 기쁜 날인지, 슬픈 날인지, 답답한 날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권 씨는 이어 "확실한 건 부끄러운 역사를 후손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20년 동안 함께 모였던 이 자리가 뜨겁다는 것"이라며 "소원이 있다면 다음주 (수요일) 이곳에서 더 집회를 열지 않는 것"이라고 밝혔다.

▲ 14일 서울 종로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위안부 피해자 1000차 수요집회에는 3000여 명(경찰 추산 1000명)의 시민들이 모였다. ⓒ프레시안(최형락)
위안부 피해자들과 함께 20년 동안 집회를 이끌어온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의 윤미향 상임대표는 "(1000회라는 숫자는) 완성도 아니고 끝도 아니다"라며 "다음 주에 다시 1001회 집회를 시작해야 하고 앞으로도 할일이 많다"라고 말했다.

1992년 1월 8일 첫 테이프를 끊은 수요집회는 1995년 8월 고베 대지진 당시 한 번 중단됐을 때를 제외하고는 매주 이어졌다. 지난 3월 동일본 대지진 때는 희생자 추모집회로 대체됐었다. 수요집회 초기 정부가 파악한 위안부 생존자는 234명이었지만 집회가 1000회에 이른 지금 63명만이 생존한 상태다.

▲ 14일 수요집회 1000회를 맞아 설치된 평화비. ⓒ프레시안(최형락)
이날 집회의 하이라이트는 오전 설치된 평화비의 제막식이었다. 120㎝ 높이로 한복을 입고 손을 무릎 위에 모은 위안부 소녀의 모습을 담은 평화비가 모습을 드러내자 장사진을 이루고 있던 취재진들이 일제히 플래시를 터트렸다.

1000회 집회 맞아 전국 각지에서 연대 시위…평화비의 미래는?

전국 각지에서는 연대집회가 있었다. 정대협에 따르면 경남 통영에서 통영·거제 시민들이 모여 '정의의 인간띠 잇기' 행사를 진행하는 등 이날 오전 9개 지역 30개 도시에서 사진전과 거리행진, 1인 시위 등이 진행됐다.

한편 온라인에서는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의 공식 영문 트위터(@JPN_PMO)에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메시지가 이어졌다.

트위터 이용자들은 영어과 한글, 일본어를 이용해 "위안부 문제는 외교 이슈가 아닌 인간의 삶에 대한 문제", "피해자의 명예와 인권 회복을 위한 행정적인 입법 조치를 하루빨리 취하라" 등의 메시지를 수요집회가 열린 정오를 전후해 집중적으로 전달했다.

그러나 평화비 설치에 여러 차례 불쾌감을 드러냈던 일본 정부는 이날도 후지무라 오사무(藤村修) 관방장관을 내세워 외교 채널을 통해 한국 정부에 평화비 철거를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평화비 설치에 대해 처음에는 법적 문제가 없다고 밝힌 종로구청도 외교 당국을 통해 일본 정부의 입장을 전달받은 후 '아무 것도 결정된 바 없다'는 모호한 입장으로 돌아선 것으로 알려졌다.

정대협 측은 평화비 설치가 지자체의 인가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항의가 지속된다면 위안부 청구권 관련 양자협의 제안에 이어 평화비 문제가 또 다른 갈등으로 부상할 가능성도 있다. 권해효 씨는 이날 집회에서 평화비 제막식이 끝난 후 "이 평화비를 지켜내는 것은 이곳에 있는 우리 모두의 몫"이라고 말했다. 외교통상부는 일본 측으로부터 평화비 철거를 요청받았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이날 오후 밝혔다.

"MB, 길바닥에서 아우성치는 백발의 늙은이 모르고 있다고는 안할 것"

이날 집회에는 위안부 피해자 중 길원옥, 김복동, 박옥선, 김순옥, 강일출 할머니가 참석했다. 대표 발언에 나선 김복동 할머니가 무대에 오르자 시위 참가자들은 "할머니 사랑합니다"라고 연호했다.

김복동 할머니는 "우리나라가 권력투쟁, 당파싸움에 몰두하다가 왜적들에게 밀리고 총탄에 쓰러지면서 젊은이들이 징용당하고 피어보지도 못한 소녀들이 전쟁터로 끌려가 노예가 돼 허무하게 짓밟혔다"며 "백발의 늙은이들이 길바닥에서 아우성치는 것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이 모르고 있다고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제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 정부에 사과하고 배상하라고 엄중하게 말했으면 한다"며 일본 대사관을 향해 "이제 우리가 평화의 길을 열었으니 늙은이들이 죽기 전에 하루빨리 사죄하라고 (본국에) 전하라"라고 외쳤다.

이날 발언에 나선 이들은 정치인에서부터 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안산운천고교 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청소년은 "FTA(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 등의 이슈에 묻혀 위안부 문제는 뒷전에 밀려있는 느낌"이라며 "위안부 문제가 교육을 통해서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초등학생의 86%, 중학생의 63%가 위안부를 모른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오늘 모인 여러분들이 잠깐의 관심이 아니라 위안부의 슬픔과 분노에 공감해 주셨으면 한다"라고 당차게 밝혀 많은 박수를 받았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 이어 연단에 오른 한나라당 정몽준 의원은 일부 시위대들의 "내려가"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말을 이어갔다. 정 의원이 내려간 후 권해효 씨는 "정 의원은 예전부터 위안부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집회에도 여러 번 참석했었다"며 시위대를 진정시켰다.

통합진보당 이정희 공동대표와 이부영 전 의원도 발언에 나서 과거 1965년 박정희 군사정권이 일본 정부와 "헐값에 맺은"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인해 위안부 문제라는 역사적 진실이 가려지는 결과를 낳았다고 성토했다.

여성의 성 이슈를 다룬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공연하고 있는 배우 김여진 씨 등이 이날 집회에서 연극 대본 중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대목을 읽어내리자 과거의 고통을 떠올리던 위안부 생존자들은 끝내 눈물을 쏟았다.

성명서 낭독을 마지막으로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모두 일어나 일본 대사관을 향해 '전쟁범죄 인정과 공식 사죄', '피해자 법적 배상', '책임자 처벌', '역사 교과서에 관련 사실 기술', '추모비와 사료관 건립' 등의 요구를 외쳤다. 시위 장소가 내려다보이는 일본대사관의 창문 십수 개에는 집회 시작 전부터 블라인드가 내려져 있었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최형락)

▲ 트위터 이용자들이 보낸 성금을 모아 만든 승합차의 전달식 장면. 트위터에서 승합차 기부 모금운동을 제안한 블로그기자 '미디어몽구'(오른쪽 두 번째)와 배우 김여진 씨(오른쪽 첫 번째)가 자동차 열쇠 모령을 들어보이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창에 블라인드가 내려간 주한 일본대사관. ⓒ프레시안(최형락)

☞<이미지프레시안>에서 사진 더 보기: www.image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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