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국은 23일 오전 외교통상부에서 김형진 외교부 북미국장, 제프리 레밍턴 주안미군 부사령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제189차 SOFA 합동위원회를 열었다. 이 회의에서 양국은 기소 전 신병인도에 관한 SOFA 규정의 운영 개선이나 관할 사안을 합동위원회 산하 형사분과위원회에서 검토해 합동위원회에 보고하기로 결정했다.
정부 당국자는 회의 후 기자들을 만나 "합동위원회에서 한국 정부는 미국 측에 검찰의 기소 이전에 요청이 있다면 피의자 신병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다"며 "또 피의자를 심문할 때 입회하기로 되어 있는 미국 정부 대표의 범위를 넓게 해석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검토하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현행 소파 규정 22조 5항에 따르면 살인·강간·마약거래 등 강력범죄를 저지른 미군은 현행범이 아닌 경우 한국 검찰의 기소가 있기 전까지는 미군이 신병을 확보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다만 이 조항의 부속 조항인 합의의사록에 따르면 한국 사법당국이 기소 전에 피의자의 신병 인도 요청을 할 경우 미군이 "호의적 고려"를 해야 한다.
하지만 이 조항에 따라 한국 사법 당국이 미군에 신병 인도를 요청한 경우는 한번도 없다. 이 때문에 초동수사 단계에서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하는 등 부실 수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비판이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제기되어 왔다.
▲ 제189차 한미 SOFA 합동위원회가 열린 23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통상부 청사 앞에서 시민단체들이 '한미 SOFA 개정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
신병 인도 요청이 없었던 이유는 또 다른 합의의사록에서 미군이 검찰의 요청에 따라 피의자의 신병을 인도하면 24시간 안에 기소가 이뤄져야 한다고 규정했기 때문이라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지난 9월 발생한 동두천 미군 성폭행 사건의 경우에도 기소까지 12일이 걸린 점을 감안하면 무리가 있는 조항이라는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그 동안 사법 당국이 24시간 안에 기소하지 못하면 피의자를 풀어줄 수도 없고 기소할 수도 없다는 사실에 부담을 느껴왔다"며 "(24시간 기준을 고쳐야 한다는) 우리 측의 입장에 대해 미군 역시 반대하지는 않았고 이는 분과위에서 협의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라고 말했다. 관련 조항을 고치거나 새로운 형태의 부속 합의서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민단체 쪽에서는 이러한 정부의 접근 방향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박정경수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사무국장은 "'24시간 조항'이 그 동안 주목받지 않았던 조항인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 조항이 부담스러워서 사법 당국이 신병 인도 요청을 꺼려왔다는 정부의 설명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박 사무국장은 "동두천 성폭행 사건처럼 피의자의 자백과 증거가 명확할 경우 곧바로 기소가 가능하지만 비슷한 시기 벌어진 마포 성폭행 사건의 경우에는 1달이 넘도록 기소를 못하고 있다"며 "신병 인도 조건을 강화한다고 해서 사법 당국의 수사 의지가 강화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기소 전 신병 인도 기간을 얼마간 늘린다고 해서 초동수사 부실 논란을 완전히 털 수도 없을 뿐 아니라 기소 요건도 갖추기 힘든 현실이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