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 1년 ① "대법원도 '정규직'이라 인정했는데 현실은…" |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정규직 조합원인 엄길정 대의원은 지난해 11월 15일부터 시작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25일 파업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회사로부터 고소 고발과 손해배상을 당해 월급 통장을 압류당했다. 회사는 파업 당시 그를 근무지 무단이탈로 처리해 100만 원도 안 되는 월급을 받아야 했다.
회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연대했던 1공장 정규직 4인방과 2, 3공장 비정규직 담당 대의원 등 6명을 고소했고, 이들은 경찰과 검찰 조사를 받아야 했다. 회사는 평소와는 달리 임금과 단체협상을 마무리할 때도 이들의 고소고발을 취하하지 않았다. 본때를 보여 함부로 비정규직과 연대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것이었다.
비정규직과 연대한 정규직 표적 탄압
지난 9월 21일 현대차 전주공장에서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해고된 비정규직 노조 간부들의 공장 출입 보장을 요구하며 20일이 넘도록 연대 투쟁을 벌인 끝에 마침내 자유로운 출입을 보장받았다.
'아름다운 연대'의 모범을 보였던 현대차지부 전주위원회 전 이동기 의장은 "비정규직의 노조 활동이 약해지면 그 다음은 정규직이 공격 대상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연대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지난 3월 해고된 이후 한 번도 공장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고, 공장 진입 투쟁을 할 때마다 용역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당했던 현대차 울산공장 비정규직 해고자들에게 전주공장의 연대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현대차 전주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정규직 조합원들의 연대로 공장 안으로 들어갔잖아요. 울산공장 해고자들도 정규직 간부들 지원받아서 공장으로 들어가는 방법이 없을까요?"
"공장 진입 투쟁을 할 때 적극적으로 나서서 우리를 돕겠다는 정규직 대의원들은 1공장 4명뿐이에요. 정규직 형님들이 연대의 손을 내민다면 좋을 텐데, 정말 힘드네요."
울산공장 비정규직노조의 한 대의원은 고개를 저었다.
매주 수요일마다 울산공장 정문 앞에서 진행되는 비정규직 집회에 참석하는 정규직 조합원은 서너 명에 지나지 않는다. 매일 아침 공장 앞에서 진행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출근 선전전에 참여하는 정규직 활동가는 거의 없다. 조합원들은 물론 간부들도 마치 모르는 사람들처럼 공장 정문을 지나친다. 그렇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거리는 멀어져가고 있었다.
▲ 지난해 11월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 현장 ⓒ프레시안(김봉규) |
비정규직 연대하는 정규직은 4명?
물론 현대자동차의 비정규직 문제를 만든 것은 정규직이 아니다. 당연히 정규직으로 채용했어야 할 자리를 불법으로 비정규직을 사용하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의 고용 방패막이로 이용해 둘 사이를 이간질한 것은 현대차 자본이다.
하지만 자본의 불법 행위를 바로잡고, 비정규직과 연대해 함께 싸워야 할 정규직노조가 이를 외면하거나 심지어 노사합의를 통해 비정규직을 길거리로 내몰았던 어두운 과거는 지금까지 계속됐다.
"그동안 비정규직 노동자 불법파견 사용에 대해 근본적으로 저지하지 못하고, 때로는 방치하고, 때로는 부분적인 합의를 해 준 사실을 국민 앞에 고백하고 깊이 반성합니다. 불법 파견에 대한 더 이상의 묵인 방조는 공동 범죄행위라는 책임을 통감하는 자세로 불법을 합법적인 정규직화를 통해 올바로 시정해 나갈 것입니다." (2005.1.17 현대자동차노조 전직 위원장)
2004년 현대자동차 울산, 아산, 전주공장 1만여 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에 대해 불법파견이라는 노동부의 판정이 나오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에 돌입하자, 전직 노조위원장들이 발표한 성명서였다.
그러나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비정규직의 투쟁의 불꽃은 정규직노조의 무관심 속에서 서서히 사그라져 갔다. 정규직노조의 문을 열어 비정규직을 받아들이는 '1사1조직' 규칙 개정도 세 차례나 대의원대회 안건으로 올라왔지만, 2/3를 넘지 못해 모두 부결됐다.
정규직의 침묵 속에 1천명이 쫓겨나다
현대자동차는 2008년 11월 세계 경제위기를 이유로 에쿠스에서 일하던 사내하청 노동자 115명을 자른 것을 시작으로 1년 동안 1000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공장 밖으로 쫓아냈다. 정규직은 침묵하고 외면했고, 비정규직은 10년을 일한 공장을 말 한마디 못하고 떠나야 했다.
6년의 세월이 흘렀고, 지난해 7월 22일 대법원에서 '2년 이상 근무한 사내하청은 현대차 정규직'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고, 다시 일어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11월 15일 마침내 울산공장 점거파업을 벌였다.
"불법을 바로잡는 일에 정규직 지부가 먼저 대응하지 못한 것이 부끄럽지만 이제라도 정규직 지부가 공동투쟁의 주체로 서서 단호히 대처하고, 저 오만방자한 사측에 조합원의 힘을 보여주자." (2010.11.17 현대자동차지부 7개 현장조직)
6년 만에 다시 정규직노조와 간부들이 과거를 반성하며 연대를 약속했지만, 현대차지부는 11월 22일 금속노조 대의원대회에서 결정한 연대파업을 끝내 외면했고, 파업을 주도했던 50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다시 공장 밖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새 현대차노조에 거는 기대
공장에서 쫓겨나고, 경비들의 폭력에 쓰러지고, 내부의 분열로 갈라지고, 지도부마저 세우지 못하면서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작은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선거에서 기대했던 후보가 당선됐기 때문이었다.
현대차지부 신임 문용문 지부장은 현대차 노사관계에 가장 필요한 두 가지로 대등한 노사관계와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꼽았다. 또 그는 3대 과제로 △공정분배 실현 △주간연속 2교대제 △불법파견 정규직화와 정규직-비정규직 노조통합을 약속했다.
현대차지부의 한 정규직 대의원은 "이번 선거는 조합원들이 비정규직을 고용의 방패막이로 여기고 정규직의 이익만을 추구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며 "비정규직 문제를 포함해서 새 집행부에 거는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비정규직은 정규직 고용의 방패가 아닙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순망치한의 관계입니다. 입술을 잃으면 이가 시립니다. 비정규직을 외면하고, 비정규직이 쫓겨나면 그다음은 정규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정규직의 고용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비정규직과 연대해야 합니다." (현대차 전주 비정규직지회 김형우 조합원)
ⓒ프레시안(김봉규) |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순망치한의 관계
변화의 바람은 한국지엠에서도 불어오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1000일 넘게 천막농성을 벌이고, 지난해 12월 1일부터 64일간 아치 위에서 고공농성을 할 때 함께 연대했던 정규직 활동가들이 올해 선거에서 10년 만에 당선됐기 때문이었다.
한국지엠 부평공장에서는 지난 2009년 봄 회사와 정규직노조의 합의로 1000명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전환배치로 공장 밖으로 쫓겨났다. 금속노조 비정규직 투쟁본부가 함께 싸웠지만 이를 막아낼 수는 없었다.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신임 집행부는 당선 직후부터 비정규직지회 간부들을 만났고, 사무직노조,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조와 통합해 함께 싸우겠다고 약속했다.
"대기업 노조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다해서 국민에게 박수받는 노조를 만들 생각이다. 불법 파견문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설 것이다. 둘로 나뉘어 있는 정규직-비정규직 노조를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 사업장 내에서의 차별을 없애는 게 급선무이다. 이 밖에도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회 연대 전략을 수립할 계획이다." (현대차지부 문용문 지부장)
정규직노조의 외면과 무관심으로 절망과 좌절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일으켜 세워 함께 어깨 걸고 싸워나갈 수 있을까?
지금 전국의 노동자들은 연대를 약속했던 현대차, 한국지엠 정규직노조를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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