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연합뉴스>의 보도가 이 대통령의 의회 제안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변수로 떠올랐다. 16일 오전 <연합뉴스>는 익명의 미국 통상관계자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정부는 한미 FTA가 발효되면 한미 FTA에 관해 한국 측이 제기하는 어떤 이슈에 대해서도 한국과 협의(consult)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특히 ISD에 대해서도 "최근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과 론 커크 무역대표부(USTR) 대표 간에 서한 교환을 통해 새로운 한미FTA 서비스·투자위원회를 설립키로 했다"며 "이 위원회에서 ISD를 포함해 서비스 투자 분야의 어떤 구체적 현안에 대해서도 논의(discuss)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과 미국 측 간에 ISD에 관한 사전교감이 있었으리라는 추정이 가능한 대목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15일 국회를 방문해 ISD 재협상 방안을 알리며 국회의 신속한 협정문 비준안 동의를 요청했다. ⓒ뉴시스 |
"<연합뉴스> 보도 무의미"
그러나 이는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미 한미 FTA 협정문에 적시된 양 국가 간 협의체 구성에 대한 원론적 의미를 설명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협정문 22.2조는 "대한민국의 통상교섭본부장과 미합중국 무역대표 또는 그들이 각각 지명하는 자가 공동의장이 되는 공동위원회를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 위원회는 3항에 따라 양 당사국 간 무역에 관한 '임시 및 상설 위원회, 작업반 또는 그 밖의 기구'를 설치할 수 있다.
결국 <연합뉴스> 보도 내용은 이미 협정문에 규정된 위원회 구성에 관한 대목을 마치 미국 행정부 측의 전향적 자세인 양 구술한 데 불과하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간단히 말해 미국 정부가 '한미 FTA가 발효되면 협정문에 적힌 대로 실행하겠다'는 말을 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며 "<연합뉴스>가 마치 미국 행정부가 대단한 성의를 보인 것처럼 언론플레이에 나서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 정부, 협상권한 없어
설사 ISD 폐기 혹은 재협상을 논의하는 위원회가 구성되더라도 근본적으로 미국의 협상 권한이 미국 행정부가 아니라 미국 의회라는 점 또한 지적된다.
미국은 대외 무역의 신속한 협상이 가능토록 하기 위해 의회가 행정부에 무역촉진권한(TPA)을 주도록 했다. 본래 의회가 가진 대외무역 협상권을 최장 90일 동안 행정부에 위임토록 하는 절차로, 일반적으로 '신속승인절차(Fast Track)'로 불린다. 이 기간 동안 의회는 행정부 협상 결과를 최장 90일 안에 수정을 거치지 않고 비준 여부만 결정할 수 있다.
그런데 지난 9월 20일(현지시간) 미국 상원은 2007년으로 만료된 대통령의 무역협상 촉진 권한(TPA)을 2013년까지 연장하는 법안을 찬성 45, 반대 55로 부결시켰다. 이에 따라 한미 FTA를 사실상 마지막으로 대외무역 협상권은 미국 의회로 넘어갔다.
설사 한미 FTA 협정문에 따라 양 국가 간 ISD 협의를 위한 기구를 설치하더라도, 개정 및 재협상에 관해 한국 행정부가 상대할 곳은 미국 행정부가 아니라 민주당과 공화당이 함께 자리한 미국 의회라는 뜻이다.
우 정책실장은 "이 대통령이 협의하겠다고 말한 주체(미국 행정부)에 협상권한이 없다"며 "이해관계가 각기 다른 미국 의회와 협상에 들어간다손 치더라도, 한도 끝도 없는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ISD 얻으려다 더 내줄 수도
한국이 ISD에 관한 재협상에 나설 경우,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내줘야 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한국이 일방적으로 ISD의 폐기 혹은 수정을 바라는 상황에서 미국이 한국의 요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리 없기 때문이다.
이미 미국 의회는 쇠고기, 쌀 등에 대한 추가 개방에 나서겠다는 의도를 공공연히 비춰온 바 있다.
우 정책실장은 "지금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재협상에 돌입한다면 오히려 한미 FTA 협정문이 더 나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설사 ISD 규정이 대폭 완화되거나 아예 한·유럽연합(EU) FTA처럼 ISD 규정이 없어진다손 치더라도 한국 정부 정책의 운신폭이 크지 않은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한·EU FTA 발효 이전 골목상권 보호를 위해 국회가 이른바 SSM법 통과에 나서려 하자,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한·EU FTA 비준동의안이 발효될 경우 SSM 규제법안인 유통법, 상생법과 불합치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우 정책실장은 "ISD보다 그 강도는 약하지만 FTA 협정 위반으로 미국 정부의 WTO 제소가 가능하다"며 "한국의 공공정책에 제약이 가해지리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송기호 변호사는 "우리가 비준을 늦추고 갖고 있으면 예전 미국이 협상을 위한 4대 선결조건을 내걸었듯 미국이 내놓을 수 있는 카드를 제시할 것"이라며 "지금은 비준을 서두를 때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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