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가 투자자-국가중재제소권(ISD)이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입장을 요약한 66쪽 분량의 해명자료를 발간한데 대해, 야당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통상교섭본부 주장에 대해 재반박했다.
박주선 민주당 의원과 민변은 9일 오후 2시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설명회를 열어 ISD로 인한 실질적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이날 민변이 지적한 내용은 설명회에 참여한 정석윤 변호사, 박주민 변호사, 김행선 변호사 등 민변 회원이 공동으로 발표했다.
ISD는 글로벌 스탠다드 거리 멀어
먼저 이들은 'ISD가 우리나라가 체결한 FTA 대부분과 양자간 투자보장협정(BIT) 85개 중 81개에 규정될 정도로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통상교섭본부 주장에 대해 "현재 한국과 미국과의 투자촉진협정에는 ISD가 존재하지 않으며, 세계무역기구(WTO)의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에서도 ISD를 채택하지 않기로 했다"며 ISD 채택은 글로벌 스탠다드와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송기호 변호사는 "지난 2003년 칸쿤회의 이후 한국 정부가 유럽연합(EU), 일본과 함께 WTO에 ISD 도입을 반대하는 입장의 문서를 전달했었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이 ISD 중재 판정에 불복할 경우 상대국의 무역보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통상교섭본부 지적에 대해서도 "한미 FTA에 포함된 ISD는 투자자 국가가 패소한 상대국의 불이행에 대해 관세보복을 할 수 있고, 그것이 (단순히 투자부문에만 해당하지 않고) 무역과 연계돼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고 반박했다.
민변은 통상교섭본부 주장대로 중재 판정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협정상 분쟁해결기구 회부→패널 구성→협정 위반이라는 패널 판정 절차가 마련돼 있어, 곧바로 무역보복이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나 "한미 FTA에 ISD가 포함된 이상 절차적인 수준에 불과하고, 결국 상대국 판단에 따라 이와 연계된 양 국의 무역관세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미 FTA가 발효된 이상, 무역보복에 이르는 경우는 드물 것이라는 정부 관측은 일방적인 바람뿐이라는 얘기다.
"건강보험 위험한 것 맞다"
특히 논란이 되는 공공정책의 유보에 대해서도 민변은 "건강보험체계와 관련한 정부정책은 ISD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정부 주장을 전면 반박했다. 정부는 공적 건강보험과 관련된 조치는 서비스 개방 유보 목록에 포함돼 있어, 제한 없이 자율적으로 정부 정책을 운용할 수 있다고 강조해 왔다.
민변은 그러나 정부가 유보했다고 밝힌 소득 보장·보험, 사회보장·보험, 사회 복지, 공공훈련, 보건, 보육 등의 사회서비스와 보건의료서비스 분야 의무 조항은 '내국민 대우, 최혜국 대우(MFN), 현지주재, 이행요건, 고위경영진과 이사회'에 불과해 "결국 한미 FTA 상 모든 의무에서 제외된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정부가 한미 FTA 협정상 유보 목록으로 포함시킨 서비스 분야도 구체적으로 뜯어 보면 그 일부만 이행의무에서 유보됐을 뿐, 해당 서비스 자체가 유보된 건 아니라는 지적이다.
민변은 "따라서 사안에 따라 미국 투자자가 우리나라의 사회서비스, 보건의료서비스에 대한 조치에 대해 최소기준대우, 수용보상의무 등의 위반을 이유로 우리나라 정부를 국제중재에 회부할 위험성이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민변은 건보 당연지정제나 중소기업 적합업종 관련 제도가 ISD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미 유통법과 상생법의 경우 통상교섭본부가 한·유럽연합(EU) FTA 비준 과정에서 직접 협정문 위반이라는 이유로 반대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음용수를 비롯한 환경서비스도 포괄유보됐다는 통상교섭본부 주장에 대해서는 "환경서비스에서 유보된 의무도 '내국민 대우, 이행요건, 현지주재'에 불과해, 결국 모든 의무에서 제외된 것은 아니"라고 반박했다.
한국 정부가 최소기준대우, 수용보상 등 유보 조항을 제외한 의무를 위반했다고 미국 투자자가 판단할 경우, 국제중재에 회부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지적이다.
론스타 사태도 만일 한미 FTA가 발효된 상태였다면 한국 정부가 ISD 제도에 따라 거액을 배상할 위험성이 있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행선 미국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는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HSBC에 매각하려다 금융위원회가 인가하지 않자,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ICSID)에 한국 정부를 상대로 중재 신청을 검토한 바 있었다"며 "한미 FTA가 통과되면 바로 ISD를 활용할 수 있게 된다"고 강조했다.
민변은 "정부는 모든 공공정책에 대해 한미 FTA 위반과 ISD 제기 위험성을 판단해야 하고, 이는 공공정책에 대해 위축효과를 일으킬 것"이라며 "미래 정부의 정책주권과 미래 국회의 입법권을 심각하게 제한한다"고 비판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