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카타르 왕조는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왕실을 비판한 '<BBC> 아랍' 방송국의 문을 닫아버리자 이곳의 방송인들을 모아 그해 11월 <알자지라>를 개국했다. 사우디 왕조와 달리 카타르 왕조는 <알자지라>의 편집에 간섭하지 않았고, 방송은 이후 왕정과 독재 정권이 대부분인 중동 지역에서 권력의 이해에 좌우되지 않은 비판적 보도로 주목을 받았다.
"<알자지라> 없었다면 무바라크 건재했다"
<알자지라>가 세계의 이목을 끈 것은 9.11 테러 이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차례로 침공하면서부터다. 미국이 2001년 10월 7일 아프간 침공을 시작한지 2시간 만에 방송은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의 성명을 단독 보도했다. 세계 언론들이 안전을 우려해 대부분 미군이 정한 '그린존'(안전지대)에 머물 때 <알자지라>는 전투 지역 깊숙이 들어가 미군의 오폭으로 인한 민간인의 모습 등 전쟁의 참상을 치우치지 않은 시각으로 보여줬다.
이 때문에 2001년 11월 아프간 카불, 2003년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알자지라> 지국이 미군의 미사일 폭격을 받아 소속 기자가 숨졌을 때 단지 '오폭'이었다는 미국의 해명에 의혹이 쏠리기도 했다. 2001년 12월에는 카메라 기자 사미 알하즈가 체포돼 미국의 관타나모 수용소에 갇혔다가 2008년 풀려났다는 사실이 최근 위키리크스의 폭로로 드러났다.
2006년 영어 방송을 시작하면서 아랍 세계를 벗어나 세계적로 뻗어나간 <알지자라>는 올해 초부터 다시 시청자들을 끌어 모았다.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시작된 민주화 시위를 24시간 생중계로 전하면서 시위에 힘을 실어줬다. 이집트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의 시위 모습을 <알자지라>를 통해 지켜본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알자지라>야 말로 진짜 언론"이라고 추켜세웠다. 한때 반미 언론의 선두로 여겨졌던 방송이 이제 서방의 찬사까지 듣게 된 것이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의 중동 전문기자인 로버트 피스크는 2일 칼럼에서 "<알자지라>가 없었다면 호스니 무바라크(이집트 전 대통령)는 여전이 왕좌에 앉아 자신의 공약대로 머리나 염색하고 있었을 것이고 정권은 국민을 위해 가짜 뉴스와 가짜 부처, 가짜 선거를 만들어냈을 것"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 2001년 11월 3일 오사마 빈 라덴의 연설을 단독 중계할 당시 <알자지라> 방송 화면. |
명성 가져다 준 '아랍의 봄'으로 한계도 노출해
<알자지라>는 이러한 명성을 발판으로 올해 8월 미국 본토에서 첫 방송을 타는 등 영역을 확장해나갔지만 동시에 올 한해를 거치면서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원인은 <알자지라>의 독립적인 보도를 보장했던 사주 카타르 왕조였다.
방송은 '아랍의 봄' 초기와는 달리 시위 물결이 바레인 등 카타르 왕조와 유대 관계를 맺고 있는 군주제 국가로 옮겨 붙자 갑자기 단순 보도로 전환하면서 전혀 다른 태도를 보였다. 리비아의 민주화 시위가 내전으로 확대되자 반군의 편에 선 보도를 보여줬지만 이 역시 카타르 왕조가 반군을 지지한 점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서방의 공습에 따른 또 다른 파괴와 재앙에는 상대적으로 시선을 덜 주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5월 이러한 방송의 태도를 두고 독립성의 한계가 노출되고 있다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또 지난 9월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미국의 외교전문에서 8년간 방송을 이끌었던 와다 칸파트 당시 <알자지라> 총사장이 미국 외교관들과 접촉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방송의 위상은 치명상을 입었다. 2005년 작성된 이 전문에서 칸파르 총사장은 이라크 전쟁 피해자의 모습이 담긴 장면을 보도에서 삭제하겠다고 밝히는 등 사실상 보도지침을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곧 사퇴했다. 사퇴 당시 <알자지라>는 위키리크스의 폭로와 관계 없는 인사라고 해명했지만 그동안 미국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언론으로 여겨지던 이미지는 크게 손상됐다.
로버트 피스크는 칼럼에서 "실제 외교전문에서 칸파르가 비공식적인 검열관 역할을 했다고 밝히진 않았지만 그런 대화는 적어도 저널리스트의 관점에서는 결코 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며 "내 오랜 친구가 안쓰럽게 됐다"라고 말했다. 피스크는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국이 지부까지 폭격하는 상황에서 칸파르 전 총사장이 미국과의 주된 대화 대상으로 꼽혔을 수밖에 없었을 거라며 "당시 <알자지라>의 모든 보도를 보면 <알자지라>는 가장 높은 수준의 보도 기준을 따랐고, 칸파트 역시 그가 지닌 용기를 모두 발휘해 최대한의 진실성을 유지했다"라고 평가했다.
▲ <알자지라> 스튜디오 전경. ⓒ알자지라 제공 |
한편으로 <알자지라>는 자신이 사실상 후원자 역할을 했던 중동의 정치 변동으로 그간 언론을 탄압했던 독재 정권들이 몰락하면서 이제 새로운 경쟁자를 맞아야 할 상황에 처했다.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은 지난달 31일 영국의 <스카이> TV가 아랍에미리트(UAE) 왕족의 투자를 받아 아랍권 뉴스 채널 <스카이 아라비아>을 만들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왈리드 반 탈랄 왕자는 미국의 <블룸버그> 통신과 손을 잡고 뉴스 채널 <알아랍>을 개국할 예정이다.
하지만 아랍권을 대표하는 방송으로 15년을 군림했던 <알자지라>가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로버트 피스크는 방송이 그 동안 아랍의 이해관계에 치우친 보도를 했다는 비판에 대해 "만약 이 방송이 중동에서 점점 역사적 위상을 찾아가는 이슬람의 힘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면 <CNN>과 <BBC>, <PBS> 등 서방 언론과 마찬가지가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알자지라>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알지자라>는 미국 정치인과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등에게 칭송을 받았지만, 그 순간 언론 자유와 민주주의의 상징이 되는 것보다는 자신들이 성가신 존재라는 것을 보여줬다. 아프간과 이라크의 선량한 국민들을 보호하려는 용감한 미군 병사들의 죽음을 독려하는 '테러리스트의 방송'이 되었다. 바로 그 때 <알자지라>는 성숙했다. 카타르의 진실에 대한 게 아닌 한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신뢰할 수 있는 언론이 됐다.
미국과 캐나다의 로비스트들은 여전히 <알자지라>가 미국 가정에 방송되지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그 로비스트들은 결국 실패할 것이다. 무바라크가 최후를 맞이했을 때 (시위대들의) 첨단 기술을 차단하지 못한 것처럼."
▲ <알자지라> 로고 |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