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전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이하 범국본)가 서울 정동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송기호 변호사는 이와 같이 주장하며 "정부가 과거 입장을 뒤집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1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린 한미FTA 여야정 합의문 비판분석과 끝장토론 이후 제기된 한미FTA 쟁점 국민보고회에 끝장토론에 참석했던 이해영 한신대 교수,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 송기호 변호사, 이창한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왼쪽부터)이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
"한국 정부도 과거 ISD 우려"
송 변호사는 "정부가 ISD를 마치 국제적 규범인양 강조하고 있지만 이는 거짓말"이라며 "무역에 관한 국제적 규범을 마련하는 세계무역기구(WTO)에는 ISD에 관한 조항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양자간투자보호협정(BIT)에도 ISD는 필수 사항이 아니"라며 "ISD는 어디까지나 양자 협상 당사국 간 조율로 채택할 수 있는 제도"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자유무역 강화를 위해 열린 WTO 각료회의는 지난 1990년대 이후 '우루과이 라운드', '칸쿤 회의' 등을 거치며 한국에도 커다란 논란을 일으켰다. WTO 모든 회원국 간 자유로운 무역을 추진하려던 다자간 투자협정(MAI)이 미국의 주도로 추진됐으나 개도국의 반대로 실패했고, 특히 칸쿤 회의를 통해 선진국과 개도국 간 의견이 조율되지 않자 각국은 FTA로 대표되는 양자간 협정 체제로 돌입했다.
이 과정서 한국도 자유무역에 대한 거부반응을 보였는데, 특히 ISD에 대해 당시 한국 정부가 거부 반응을 보였다고 송 변호사는 지적했다.
그는 "지난 2003년 칸쿤회의 이후 한국 정부가 유럽연합(EU), 일본과 함께 WTO에 ISD 도입을 반대하는 입장의 문서를 전달했었다"고 강조했다. 이 문서는 WTO의 문서열람번호 JOB(03)/172로 분류돼 있다. 2003년 8월 한국 정부는 유럽공동체(EC), 일본, 스위스 등과 공동으로 제출한 이 문서의 4장에서 "투자자-국가 제소 매커니즘(ISD)은 도입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와 관련, 외교통상부가 당시 발간한 2004년 외통부 주요 외교성과 자료를 보면, 외통부는 한국이 참여했던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에서 무역과 투자 등을 다룬 싱가포르 이슈가 "칸쿤 각료회의에서 이에 대한 합의를 이루지 못한 후 결국 2004년 8월 1일 기본 골격 합의를 통해 '무역원활화'만 DDA 협상에 포함시키고 나머지 3개 이슈는 계속 검토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싱가포르 이슈에서 선진국과 개도국이 협상에 이르지 못한 나머지 3개 분야는 정부조달투명성, 투자, 경쟁분야며, 이 중 투자분야의 핵심 이슈가 바로 ISD다.
당시 민간경제연구소에서도 ISD의 위험성을 지적한 바 있다. OECD의 MAI 협상이 열리던 지난 1997년 6월, 삼성경제연구소는 '다자간 투자협정(MAI)의 영향과 대응방안'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ISD에 대해 "MAI의 분쟁해결절차에 독특하게도 투자기업이 차별적 조차 대우에 대해 투자유치국 정부를 상대로 직접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어, 이를 악용한 대정부 제소가 빈발할 우려도 있"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한국 정부도 한·미 FTA 협상 초기 당시 ISD가 미칠 폐해를 우려했음이 밝혀졌다. 지난달 31일 김재윤 민주당 의원은 2006년 작성된 법무부의 내부문건 2건을 소개하며 "과거 법무부가 정부 공식입장과 달리 이 제도(ISD)가 '우리의 사법주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고 지적했다.
"미국 무역보복도 가능"
한편 송 변호사는 단순 투자협정이 아닌 FTA에 ISD 조항이 포함돼 정부의 주장보다 더 강력한 주권침해가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ISD가 다수 투자협정에 포함된 건 (정부 주장대로) 맞지만, FTA에 들어온 것은 문제"라며 "양자간 협정(BIT)에서 ISD가 발동되더라도 무역적으로 연계되지 않지만, FTA에 들어온 ISD는 미국의 무역보복까지 부를 수 있는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송 변호사는 "만일 한·미 FTA가 체결되지 않은 지금, 한국과 미국이 ISD를 체결했다고 가정하자.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제중재기관에 제소해서 승소한 후 한국 정부가 이를 이행하지 않는다손 치더라도 미국은 무역보복을 할 수 없다. 단순히 투자에 관한 협정에 포함됐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FTA를 체결한 후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미국이 무역보복에 나설 수 있다. 이게 진정 위험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즉, ISD가 FTA나 WTO 규범과 같은 '무역 규범'에 편입될 경우, 이에 관한 무역보복까지 허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송 변호사는 "과거 한국 정부가 칸쿤 각료회의 때 ISD 도입에 반대한 이유도 이 때문"이라며 "한국처럼 대외 무역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투자자 보호문제가 바로 무역문제, 즉 국익과 연계되기 때문에 함부로 수용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