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경제자유구역에 영리병원을 세울 수 있도록 관련 법 시행령을 제·개정하기로 하자,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시행령으로 영리병원을 도입하려는 것은 꼼수"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보건의료노조는 24일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집회를 열고 "영리병원 관련 법안을 처음 제기한 한나라당 이명규 의원이 스스로 해당 법안을 철회할 정도로 영리병원은 문제가 있다"며 "정부가 (국회를 거치지 않고) 시행령 개정을 통해 영리병원을 도입하려는 것은 꼼수"라고 주장했다.
앞서 지식경제부는 올해 안에 경제자유구역에 영리병원을 세울 수 있도록 관련 법 시행령을 제·개정하겠다고 지난 12일 밝힌 바 있다. 개정 시행령에는 영리병원 운영에 외국 병원이 참여하도록 하고, 외국 면허를 딴 의료인을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한 비율 이상 고용하며, 영리병원 개설 허가 절차를 복지부령에 위임하는 내용을 담기로 했다.
이에 대해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정부는 시행령으로 외국 의사는 물론이고 외국 간호사와 의료기사까지 한국 면허를 취득하는 절차 없이 그대로 영리병원에 유치하기로 했다"면서 "영리병원을 통해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주장은 허구임이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나 위원장은 "태국 의료인의 인건비는 한국의 1/10에 불과하다"며 "개발도상국의 값싼 의료인으로 돈을 벌려는 속셈"이라고 덧붙였다.
보건의료 노동·시민단체에서는 영리병원을 도입하면 다른 병원도 영리병원의 영향을 받아 의료비가 오를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나영명 보건의료노조 정책실장은 "지금까지는 정부가 국민건강보험 제도 아래 의료비를 결정했었지만, 영리병원이 도입되면 국민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지 않는 진료 항목이 늘어난다"며 "영리병원이 한 번 건강보험 제도를 뚫어 놓으면 나머지 병원들도 비급여 항목을 늘려 건강보험체계가 흔들린다"고 지적했다.
일단 영리병원이 도입되기 시작하면 전국에 확산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우려도 있다. 나 위원장은 "지식경제부는 경제자유구역에만 영리병원을 시행하므로 문제없다는 입장이지만, 전국에 경제자유구역은 6곳"이라면서 "강원도를 제외하고 전국 20여 개 도시가 영리병원 도입대상"이라고 지적했다.
나 위원장은 "한나라당 정의화 의원조차 영리병원을 도입하면 서민에 대한 병원 문턱이 높아지고 국민건강보험의 근간을 흔드는 심각한 위기에 처한다고 비판했다"면서 "투자자가 병원에서 투자금을 환수하도록 한 영리병원은 돈벌이 수단밖에 안 된다"고 강조했다.
보건의료노조는 "미국 5000여 개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한 평가에서 상위 20% 안에 든 병원 중에 영리병원은 하나도 없다"며 "일자리를 늘리고 의료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려면 선진국의 1/3 수준밖에 안 되는 의료 인력을 확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건의료노조는 또한 "이명박 정부가 해야 할 우선 과제는 영리병원 도입이 아니라, 60%에 불과한 건강보험 보장성을 확대하고 10%밖에 안 되는 공공의료기관을 늘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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