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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병원'이 두려운가? 그렇다면…"

[2011년의 눈으로 본 한·미FTA·<4>] "'미국 민영 의료보험의 천국'을 만드는 한·미FTA"

농촌 출신들이 소년기에 자주 들었던 말 가운데, 농사꾼은 의료보험이 없으니 아프면 큰일 난다는 것이었다. 공무원이나 회사원들은 보험 혜택이 있었으나 농민에게는 없었다. 그래서 농민들은 아파도 병원에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어른들이 그랬으니 농가의 아이들은 오죽했으랴! 낫질을 하다 손을 베어도, 바위에 부딪쳐 머리가 깨져도 '된장'을 붙이고 다녔다. 그러면서도 대부분의 아이들은 탈 없이 컸다.

하지만 모든 아이들이 그랬던 것은 아니다. 고향집과 골목을 마주하던 집의 아이는 시름시름 앓다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죽었다. 윗마을 친척집 형도 장티푸스로 죽었다. 나와 같은 학년이었던, 들판 건너 마을의 친한 친구도 죽었다.

아이들의 죽음이 말하는 것

나는 지금도 그렇게 믿는다. 만일 조금 더 일찍 농민들에게도 의료보험이 있었다면, 나의 친구와 이웃들은 아마 죽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들의 죽음이 말하는 것은 한 사회에서 의료 서비스가 영리성을 중심으로 돌아가면 안 된다는 것이다. 단지 가난한다는 이유만으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빈부에 관계없이 누구나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의료서비스의 공공성이다.

의료 공공성의 조건

의료서비스의 공공성이 살아 있으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대한민국의 모든 병원은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삼성 의료원이든 서울대 병원이든 국민건강보험증을 가지고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건강보험 당연지정제)

둘째 의사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돈벌이 목적을 위해 병원을 설립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된다. (영리병원 금지) 영리병원은 의사가 아닌 주주들의 돈벌이를 위해 존재한다. 한국은 공립 의료기관 비율이 매우 낮은 나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영리병원이 허용되면 의료서비스의 공공성은 유지되지 못한다.

·미 FTA 영리병원 조항

그러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는 다음과 같은 영리병원 조항이 있다.

"대한민국이 보건 의료 서비스에서 가지는 정책 권한은, 경제자유구역 법률과 제주특별자치도 법률에서 정한 병원과 약국의 설립 특례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는다.(부속서 II)"
여기서의 병원과 약국의 설립 특례(preferential measures relating to establishment of medical facilities and pharmacies)가 바로 영리병원 영리약국 허용 조항이다.

경제자유구역법 제23조는 외국인이 병원 자본금의 50% 이상을 투자하면 경제자유구역에서 영리병원을 설립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제주도 특별자치도법도 외국인 투자 영리병원 설립을 허용한다.(제 192조의 3)

한·미 FTA는 바로 이 영리병원 제도에 대하여 한국 정부의 정책 자율권을 부정한다. 그러므로 한·미 FTA가 되면, 영리병원 제도를 폐지할 수 없게 된다.

·미 FTA는 어떻게 건강보험을 공격하나?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는 그의 책 <대한민국 개조론>에서, "보건 분야 한·미 FTA의 최종 책임은 제가 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다. 유 대표가 한·미 FTA 협상 과정에서 약제비 개혁(선별등재)을 포기하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이다. 그리고 지금 국민 참여당이 한·미 FTA 반대에 나선 것도 잘한 일이다.

그러나 유 대표의 약제비 개혁은 지금 어떻게 되어 있는가? 지난 4년간 국민건강 보험 급여 등재를 신청한 신약의 71.5%가 등재 결정되었다.(<메디파나 뉴스>) 선별등재의 실효성을 보장하기 어려운 수치이다.

반면 유 대표가 "그리 큰 피해는 없을 것"이라고 합의해 주었다는 독소조항은 국민건강보험의 틀을 위협하고 있다.

첫째, '특허-시판 연계'라는 것이 있다.(18.9조 5항) 지금까지 한국의 식약청은 약이 안전한지, 그리고 효과가 있는지를 심사해서 시판을 허가했다. 그러나 이제는 미국 제약회사의 특허를 침해하는 일이 없도록 시판 허가 제도를 운영해야 한다.

이에 대해 유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미국 제약사들은) 특허 침해 소송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우리 식약청이 복제약 품목 허가를 내주는 데 불만을 품고 있습니다. 정당한 불만입니다."(<대한민국 개조론>, 174쪽)

그러나 유 대표의 판단에 동의하기 어렵다. 왜 식약청이 특허 침해까지 염려해야 하는가? 그런 논리라면 한국방송통신위원회는 미국 애플 사의 특허 침해가 없도록 하기 위하여, 삼성 갤럭시 시판 허가를 내주면 안된다. 국토해양부는 미국 GM 사의 특허가 침해되는 일이 없도록, 현대 차 시판 허가를 내주면 안된다.

보통 하나의 미국 신약에 약 2천개의 특허가 걸려있다. 특허-시판 연계 제도 밑에서, 미국 제약사가 특허 침해를 주장할 수많은 경우의 수를 모두 뚫고 한국 제약사가 식약청 시판 허가를 받을 수 있을까? 식약청은 약품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심사하여 시판을 허가하면 된다. 그 제품이 정말 미국 제약사의 특허를 침해했는지는 특허 소송에서 판단할 일이다.

유 대표가 수용한 이 제도는 국민건강보험에 필요한 약품이 제 때에 싼 값에 나오는 것을 막을 것이다.

둘째, 보험 약값 책정에 대한 민영 재심사 제도이다.(5장 첨부 2007. 6. 30.자 서한) 미국 제약회사들이 생산한 약품에 국민건강보험을 적용해서 약값을 결정할 때, 불만이 있는 미국 제약회사들이 민영 재심사 기관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 약을 구매하는 당사자인 국민건강보험공단을 배제한 민영 기구가 약값 산정에 개입하는 것이다. 현재의 이의신청제도가 있음에도 미국 제약사에게 이러한 특례 제도를 보장하는 것은 부당하다. 약값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 민영 의료보험의 천국

▲ 미국의 의료 현실을 고발한 다큐멘터리 <식코>. 한·미 FTA 이후, 한국의 의료 현실도 <식코>를 닮게 될 가능성이 크다. ⓒ프레시안
미국의 의료체계를 지배하는 민영 의료 보험회사들은 보험업을 미국 연방 법률의 규제로부터 대부분 면제받았다. (McCarran-Ferguson Act) 놀랍게도 이 법은 한·미 FTA에서도 그대로 인정되고 있다.(부속서 13-B) 그래서 미국의 민영 의료 보험회사들은 한·미 FTA로부터 자유롭다.

오히려 한·미 FTA는 미국의 민영 의료 보험회사들이 한국 정부를 규제하는 장치이다. 한국은 금융서비스 미래유보(부속서 III, 2절)에서 보험 서비스에 대한 포괄적 규제권조차 확보하지 못했다. 그 결과 민영 의료 보험의 지급률(보험료 수입에서 보험금으로 지출해야 할 비율)이나 상품 표준 규제를 하기 어렵다.

또한 미국의 민영 의료 보험 회사들은 한국의 우체국 보험과 농수축협 보험을 강력히 억압했다. 이들 보험에 대한 규제 감독권을 지경부와 농림부로부터 금융감독위원회로 옮겼다. (부속서 13-라 2항) 심지어 우체국 보험에 대해서는 더 이상 새로운 보험 상품의 출시를 금지시켰다. (2007. 6. 30자 서한 주 1) 현재 4천만 원인 우체국 보험상품 판매가 한도를 물가인상률 범위 안에서만 인상할 수 있다는 조항까지 만들었다. (같은 5항)

영리병원 막으려면 한·미 FTA를 저지하자

대한민국이 미국보다 더 잘하고 있는 국민건강보험을 지켜야 한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국민건강보험증만 있으면 최소한의 의료 서비스를 공급받을 수 있다. 부자는 보험료를 더 내고, 가난한 사람은 적게 내어, 하나의 공동체 사회를 지탱하고 있다.

이 공동체를 지켜야 한다. 의료 서비스를 산업화 영리화하여 새로운 돈벌이로 만들려는 세력들로부터 지켜야 한다. 그 첫걸음이 한·미 FTA를 저지하는 것이다.

- 2011년의 눈으로 본 한·미FTA

<1> "손학규 대표의 운명, 한·미 FTA의 운명"
<2> "'쌀은 지켰다'라던 노무현 대통령의 믿음은 꿈이었나?"
<3> MB가 기다리는 미국 FTA 이행법에 한국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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