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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분노하게 하는 여섯 가지 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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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분노하게 하는 여섯 가지 불의"

[이정전 칼럼] "영화 <도가니> 열풍, '정의'를 묻는다"

근래 안철수 바람이나 야권 단일화 후보로 박원순 씨가 선출된 사건은 우리 국민이 제도권에 얼마나 실망하고 있는가를 잘 반영한다. 실망했다고 보기보다는 분노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그렇다. 우리 국민은 제도권에 화가 나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의사회 구현을 선창하고 있지만, 국민은 코웃음만 칠뿐이다.

사실, 보통사람들에게 정의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부분 명쾌하게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기 일쑤다. 그렇다고 정의가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정의가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똑 부러지게 말하지 못하면서도 정의롭지 못하거나 공정하지 못한 일을 당하면 몹시 화를 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버스를 타기 위해서나 혹은 영화관에 들어가기 위해서 긴 줄에 서 있는데 어떤 사람이 새치기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화를 낸다. 공정치 못한 짓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화를 낸다는 것은 무엇이 정의롭지 못하고 공정치 못한지를 사람들이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공정거래문제를 오래 동안 연구해온 어느 경제학자는 사람들이 공정치 못하다고 생각하면서 화를 경우를 크게 여섯 가지로 정리하였다. 이 여섯 가지를 소개하기에 앞서 이 공정거래 전문가는 경제학자들에게 따끔한 훈계를 했다. 사람들이 거래하려는 성향이 거의 본능적이라고 아담 스미스가 주장하였다지만, 불의를 보고 일반인들이 느끼는 분노 역시 거의 본능적임에도 불구하고 경제학자들은 그 분노가 비합리적이고 경제적 이치에도 맞지 않는다면서 자꾸 비난하고 훈계하려 든다는 것이다. 그래봐야 헛물만 켜기 일쑤다. 그래서 그는 불의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가 거의 DNA에 각인된 것으로 간주하고 현실에 맞는 경제이론을 펼 것을 경제학자들에게 주문하였다.

그렇다면, 어떨 때에 사람들이 가장 화를 많이 낼까? 특별한 이유 없이 차별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할 때이다. 똑같은 조건에서 똑같은 사람들이 똑같이 일했는데, 다른 사람보다 나쁜 대접을 받은 사람은 틀림없이 화를 내며 대들기 마련이다. 반대로, 당연히 특별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특별대우를 해주지 않을 때도 몹시 화를 낸다. 다른 야구선수에 비해서 안타를 세 배나 많이 쳤는데도 연봉을 올려주지 않고 다른 선수들과 똑같이 대우한다면, 그 선수는 틀림없이 길길이 뛸 것이다. 그래서 일찍이 그리스의 철인, 아리스토텔레스는 "같은 것은 같게 대우하고 다른 것은 다르게 대우하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 말이 아마도 정의에 관하여 가장 많이 인용되는 원칙일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원칙은 경제문제에도 널리 적용된다. 예를 들면, 세금을 징수할 때는 부자일수록 세금을 많이 내게 해야 한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한다. 부자일수록 세금을 낼 능력이 크기 때문이기도 하고, 세금을 납부함으로 인한 고통(희생)이 부자일수록 가볍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원칙에 의하면 이와 같이 담세능력이 다르거나 희생의 크기가 다를 경우에는 세금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부과해야 한다. 하지만, 소득이 같은 사람들에게는 똑같은 금액을 징수함으로써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

세금에 관해서 서민들이 느끼는 가장 큰 불만은 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재벌이나 대기업의 고위 경영자들, 의사와 변호사 등 이른바 '사'자가 붙은 사람들은 억수로 돈을 많이 벌면서 세금은 쥐꼬리만큼 내는데, '유리 지갑'을 가진 봉급자들은 쥐꼬리만한 봉급에서 많은 세금을 또박또박 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판국에 이명박정부가 정권초기에 부자감세를 감행해서 서민들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물론,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웠지만, 부유층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한 변명으로 들릴 뿐 서민들의 분노를 달랠 수는 없었다.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기본인권을 보장받으며 인간답게 살 권리를 가진다. 이것은 1948년 세계인권선언에도 명문화되어 있고 우리나라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다.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기본인권이 유린되거나 기본생계를 보장받지 못하면 당사자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도 몹시 화를 낸다. 어느 장애인학교의 상습적 성폭행을 고발한 <도가니>라는 영화가 2011년에 화제가 되었다. 힘없는 장애아의 기본인권을 짓밟은 것도 화가 나는 일인데 성범죄자들에 대한 사법당국의 미온적 태도가 국민들을 더욱 더 화나게 만들었다.
▲ 영화 <도가니> 속 한 장면. ⓒ프레시안

언젠가 전기요금을 내지 못하는 빈곤층 가정에 전기공급을 끊었다가 쏟아지는 비난에 한전이 곤욕을 치른 적이 있었다. 한 때 배추 값이 열배 이상 오르자 서민들이 얼마나 화를 냈었던가. 아무리 가난해도 김치는 먹어야 하는 것이 한국 사람들이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래 수많은 중산층이 기본생계 수준 이하의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수년 동안 이것을 목격해온 서민들의 울분이 누적되었다. 이것을 눈치 챈 이명박 정부가 2012년의 대선을 앞두고 친서민 중도노선을 선언하였지만 국민들의 반응은 시큰둥한 것 같다.

기득권을 침해당하거나 빼앗길 때에도 사람들은 무척 화를 낸다. 위에서 예로 든 새치기의 경우, 사람들이 화를 내는 이유는 순서상의 기득권을 침해당하기 때문이다. 새치기라는 것이 버스정류장이나 영화관 앞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객관적 검증 없이 재벌 2세들이 단지 재벌의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현상에 많은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린다. 이들의 눈에는 그것이 새치기로 보인다. 장관의 딸을 특채하는 것 역시 새치기로 보인다. 업계나 관계에서 새치기 현상이 한두 번도 아니고 밥 먹듯이 나타나면 국민은 자연히 짜증을 내고 불신할 수밖에 없다. 이런 마당에 기업가를 존경하는 풍토가 아쉽다고 업계 사람들과 보수성향 경제학자들이 불평해봐야 배부른 투정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

기득권을 침해당한 사람들은 때로는 격렬하게 저항하기도 한다. 재개발지역 주민들의 철거반대 운동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2009년 서울 용산 재개발지역에서 철거반대 주민과 경찰의 충돌이 결국 수십 명의 사상자를 내는 참사로 이어졌다. 노점상 철거 때에도 격렬한 저항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소외계층만 기득권 침해에 저항하는 것은 아니다. 고소득계층의 저항은 더 강력하다. 초고소득계층의 부동산소득에 약간 높은 실 세율을 적용하는 종합소득세제도를 노무현정부가 도입하였을 때 우리나라 보수계층과 보수언론이 얼마나 강력하게 반발하였던가를 생각해보라. 이들의 지지를 받은 이명박정부가 들어서자 제일 먼저 한 일이 종합소득세의 무력화였다.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정된 생활을 희구한다. 그래서 각 개인은 예기치 못한 사태에 대비하여 보험을 들어두는 등 여러 가지 대책을 세운다. 하지만 각 개인에게 불가항력적인 돌발사태도 있다. 이런 것들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야말로 정부가 적극적으로 해야 할 일이라고 국민들은 생각한다.

예기치 못한 돌발사태 중에는 자연재해도 있지만, 시장에서 발생하는 돌발사태도 많이 있다. 예를 들면, 1990년대 IMF경제위기 때에 수많은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고 길거리로 나앉게 되었고, 2008년 미국 발 세계경제위기 때에도 우리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다. 경기가 수시로 오르락내리락하다보니 일반국민에게는 시장이 종잡을 수 없는 심술쟁이요 변덕쟁이로 느껴진다. 불경기가 와도 부자들은 흥청망청하지만 서민들은 큰 타격을 받는다. 서민들은 가만히 앉아서 꼼짝없이 시장의 심술과 변덕을 당할 수밖에 없다고 느낀다. 그리고 무력감에 빠진다. 그래서 서민들은 정부가 시장의 심술과 변덕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해주기를 더 간절히 바라게 되는데, 이런 기대에 어긋나면 크게 화를 낸다.

불경기 때에 문을 닫거나 파리를 날리는 중소상인들은 도대체 정치가들이 무얼 하는 사람들이냐며 분통을 터뜨린다. 실업자들 역시 정부의 무능을 탓하며 분을 참지 못한다. 배추가격과 양파가격이 폭락하면, 농사꾼들은 배추밭과 양파 밭을 갈아엎으면서 한결같이 정부를 향해서 화를 벌컥 낸다. 주가폭락으로 막대한 손해를 본 사람들도 정부를 향해서 냅다 욕을 해댄다. 이것이 인지상정이다. 이런 사람들을 보고 경제학자들은 당신들이 잘못 투자했기 때문이요 따라서 전적으로 당신들이 책임질 사항이라고 꾸짖는다. 그래봐야 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이들은 잘 모른다. 그만큼 경제학자들은 현실과 유리되어 있다. 어떻든, 자연재해를 비롯해서 시장의 심술과 변덕으로부터 국민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사회는 정의롭지 못한 사회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약자에게 동정적이고 온정적이다. 그래서 약자를 괴롭히는 강자를 보면 누구나 분노한다. 독과점기업의 횡포에 국민들이 분노하는 데에는 이런 심리도 작용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재벌기업이나 대기업들은 대부분 독과점 기업들인데, 이런 기업들의 중소기업 모가지 비틀기가 오래 전부터 많은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왔다. 보수성향의 이명박정부조차도 이를 외면하지 못하고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고유 업종을 지정하고 대기업으로 하여금 이런 업종 진출을 자제하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대기업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대기업이 값싸게 공급하는 통닭, 피자, 빵, 콩나물, 두부 등이 시장에서 날개돋인 듯이 팔리고 있다는 사실이 대기업 진출을 국민이 지지한다는 증거라고 보수성향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면서 대기업의 편을 들어준다. 그러나 이런 주장이 얼마나 단순하고 비과학적인지는 이미 전에 자세히 설명하였다.(☞관련 기사: "이기적인 마음과 공적인 마음")

우리나라의 공기업 역시 대부분 독과점 기업이다. 독과점기업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국민의 선택을 극히 제한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서 한전이 전기 공급을 중단하면 대다수의 국민은 선택의 여지없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2011년 9월 한전이 전국에 걸쳐 제한송전을 국민들이 얼마나 화를 냈던가. 부동산가격이 급등할 때마다 토지주택공사가 땅장사와 집장사를 하고 있다는 욕을 수없이 들어야 했다. 국민은 독과점의 횡포를 정부가 강력하게 규제하여줄 것을 요구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독과점의 횡포를 통제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국민의 눈에는 너무 나약해보인다.

국민을 수없이 화나게 만드는 불공정 사례가 하나 더 있다. 특정 이익단체가 누리는 각종 특혜나 특권이 그것이다. 법조계나 관계에 만연한 이른바 '전관예우' 관행은 늘 비난의 표적이 되었다. 정의의 수호자가 되어야 할 법조계와 관계에 전관예우가 성행하고 있다는 점이 국민을 더욱 더 화나게 만든다. 간단한 약을 편의점에서도 구매할 수 있게 허용하는 정부의 조치에 약사들의 모임이 강력하게 반발하였을 때에도 많은 국민들이 약사모임의 밥그릇 챙기기를 비난하였다. 검찰의 인권유린, 표적수사, 월권행위 등이 지탄의 대상이 되면서 입법부가 여러 차례 검찰개혁을 시도하였지만, 번번이 검찰의 강력한 반발로 무산되었다. 이런 검찰의 태도를 보는 국민은 검찰 역시 자기 밥그릇만 챙기는 이익단체의 하나에 불과하다고 느끼면서 착잡한 심정을 감추지 못한다. 이익집단의 밥그릇 챙기기가 어디 이런 것들뿐이랴.

정부와 여권의 실세들이 앞으로 우리 사회를 정의롭게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국민을 화나게 하는 일부터 삼가야 한다. 그런데 슬픈 사실은 우리 정부와 여권 그리고 심지어 야당에도 우리 사회를 진정 정의롭게 만들 만한 인물이 잘 안 보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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