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수 "물가보다 금융 안정"
28일 김 총재는 직원들에게 '한은법 개정 의의, 과제 및 비전'에 대한 편지를 돌려 "평상시에는 금융 안정과 물가 안정이 서로 견제와 균형의 역할을 수행하더라도 경제 위기 시에는 재정을 지원해주는 통화 정책의 원론적인 기능이 의미를 갖게 된다는 점에 유의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김중수 총재는 취임 이후 줄곧 "정부의 경제정책에 지나치게 행보를 맞춘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뉴시스 |
결국 조직개편에 앞서 그 필요성을 조직원들에게 알리자는 목적이 편지에 포함된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 이는 "새 업무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기존 업무의 상당 부분을 폐지하거나 축소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내용에서도 확인된다. 개편에 따라 일부 직원이 감수해야 할 피해에 따른 잡음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다.
그러나 대외적으로는 한은이 "물가를 희생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우선 한은법에 추가된 '금융 안정'은 매우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문구이지만, 근본적으로는 '금융 (시스템) 안정'이 목표다.
예를 들어,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높이게 되면 그에 따라 해외 자본의 유입이 증가하고, 이는 원화가치 절상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런 급격한 변화에 대해 앞으로 한은도 책임을 져야 한다.
현재 지속되는 저축은행 위기에도 한은은 일정 수준의 힘을 발휘하게 된다. 금융 안정을 위해 한은이 시중은행은 물론, 저축은행에도 자료 제출을 요구할 권한을 가졌기 때문이다. '뱅크 런' 등의 사태가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한은이 환매조건부채권(RP) 매매를 통해 시중은행 유동성이 부족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결국 '금융 안정'이라는 추상적 단어는 물가 안정과 일정 부분 대립되는 성격을 지니게 된다. 물가가 지금처럼 크게 오른 상황에서 '금융 안정'이란 결국 유동성 흡수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겠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당장 김 총재는 편지에서 "금융 위기 해결을 위해 유동성 공급 상황과 물가 안정이 서로 상충될 수 있고 국가 채무가 평균적으로 국내총생산(GDP)의 100%에 달하는 상황 등을 적절히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의미를 설명하기도 했다.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 올해 초부터 매달 한은의 물가안정 목표치인 4.0%를 넘고 있다. 9월 자료는 금융기관 추정치 평균. ⓒ프레시안 |
일관된 입장… 물가는 포기했나
물가보다 정부 정책에 초점을 맞추는 김 총재의 행보는 취임 이후 일관됐다. 그가 이른바 '비둘기파'로 분류된 이유이기도 하다.
김 총재는 취임 이후 내내 "정부 눈치를 본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당장 9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도 한은은 석달째 기준금리를 연 3.25%로 동결했다. 올해 들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를 자주 넘을 정도로 물가가 불안했으나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은 항상 한발 뒤쳐졌다는 게 시장의 중평이었다. '실기' 논란이 김 총재 취임 이후 내내 반복된 이유다.
이와 관련, 박우순 민주당 의원(민주당)이 지난 27일 한은 국정감사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김 총재 부임 기간 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임 이성태 총재 시기에 비해 0.5%포인트 높았고, 평균 생산자물가 상승률은 무려 5.2%포인트나 높았다. 사실상 한은이 제1 목표인 물가 관리에 실패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국감에서 김 총재에 대한 비판이 집중된 이유다. 대표적인 원론적 시장주의자인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해 기준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선진국의 2배에 달했고, 지난달 상승률은 5.3%로 한은의 예상치 4%를 훨씬 뛰어넘었다"며 김 총재에 대해 "급격한 물가상승에 대한 일차적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질타했다.
김 총재는 그러나 이 자리에서도 "지난 5차례의 기준금리 인상이 적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지금은 대외적인 여건이 워낙 불확실한 상황이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럽게 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장은 사실상 기준금리 인상이 물건너갔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이달 초 현대증권은 "연내 금리인상 기대가 약화된 상황"이라며 "경기침체 우려가 증폭할 경우 시장금리는 기준금리 동결 기대를 넘어 인하를 반영하는 수준을 테스트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은이 철저하게 정부 기조에 발맞추고, 이로 인해 당분간 서민경제는 더 큰 어려움을 겪으리라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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