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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역에 돈 퍼부을지언정, 노동자성은 인정 못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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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용역에 돈 퍼부을지언정, 노동자성은 인정 못 한다?"

[특수고용직은 노동자가 아니다?·①] 국감장에 나타난 학습지 교사 "저희는 노동자입니다"

학습지 노동자는 엄연히 사용자에게 종속된 이른바 '종속적 자율 노동자'임에도 전통적 근로자의 개념이 적용돼 현재까지도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1400여 일 가까이 노상에서 싸워온 그들의 목소리를 재조명해보고,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자성 인정이 정치적으로 왜 중요한 쟁점인지를 앞으로 3회에 걸쳐 짚어본다. 진실을 위한 학습지 교사들의 투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기고자>

"저희는 노동자입니다."

허름한 티셔츠를 입은 한 여성의 외마디가 국정감사장을 갈랐다. 국정감사가 막 끝나고, 잘 차려입은 국회의원들이 악수를 나누느라 부산한 가운데서였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장내를 침묵케 했다.

작은 진실은 세상을 정지시킨다. 그리고 견고한 그것에 미세한 균열을 낸다. 세계의 변화는 그 작은 틈 속에서 시작되고 또 완성된다. 우리가 그 균열들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그 작은 차이가 변화를 만들고, 세상을 한 걸음 진일보시키기 때문이다.

지난 9월 20일,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장에 증인으로 채택된 재능교육 박성훈 회장은 나오지 않았다. 재능교육 측에서는 양병무 대표이사를 증인 대리출석시키려 했지만 학습지 노동자들도, 국회의원들도 거부했다. 정동영 의원의 말처럼 "월급 사장 나와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뻔하기 때문"이었다. 학습지 노동자들은 허탈함을 안고 국감장을 빠져나와야만 했다.

▲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장에 증인으로 채택된 재능교육 박성훈 회장은 나오지 않았다. ⓒ정택용

이 사람이 노동자가 아니라고?

"전날 영업 결과를 매일 통보해야 하고, 날마다 통보된 개인의 업무를 확인한다. 실적에 따라 파트장 면담, 지점장 면담, 문책성 교육 등 처분을 받고, 업무처리에 따라서 구두 경고, 문서 경고, 내용증명 등 징계를 받는다. 오전, 오후에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고, 매일 직무 일지를 작성해야 한다. 월요일은 지점 조례, 파트 미팅이 있다. 일주일 근무형태에 관해서 정해진 기준을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 점심시간과 마감시간은 물론 매월 말일 저녁식사 후 업무까지 정해져 있고, 복장에 관해 통제받는다."

이 사람이 노동자일까, 사업자일까? 정동영 의원이 국감장에서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한 질문이다. 답은 같을 것이다. 이들은 사용주에 종속되어있는 노동자이며, 이는 지금 학습지 교사들이 겪고 있는 실제 상황이다.

그러나 이 나라의 사법부는 2005년 이들에게 '노동자가 아니다'라는 낙인을 찍어놓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나라의 법에는 '특수형태근로자'에 대한 개념과 담당 기준조차 명시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특수성'을 인정했으면 그들에게 맞는 법을 입법하고, 적용해야 옳은 일이다. 21세기 미디어 시대에 1980년대의 '공중전기통신사업법'을 들고 와 적용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세상은 변하고 새로운 형태의 직종은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데, 그에 발맞추지 못한 사법부를 탓할 일이지 이정선 한나라당 의원의 말처럼 '법치주의'를 운운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법치주의'란

국감장에서 한나라당 이정선 의원이 똑부러지게 발언했듯이 대한민국은 '법치'의 나라이다. 그러나 입법안은 권력을 가진 자들에 의해 발의되고 해석되고 시행된다. 법이란 것은 언제나 해석의 여지를 남기고, 그 해석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권력이다.

실제 있었던 광주 인화학교의 성폭행 사건을 다룬 '도가니'라는 영화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지배계급의 권리를 옹호하고 지켜주는지를 잘 보여준다. 처참한 현실에 대한 분노는 영화가 끝나고 엔딩 스크롤이 다 올라가도록 자리를 뜨지 못하게 한다. 이 영화는 가족이 없거나 가족이 있어도 가난에 시달리는 청각장애아동들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파렴치한 가해자들이 종교, 경찰, 검찰을 등에 업고 피해자들을 어떻게 짓밟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피해자들은 공권력의 이름, 법의 이름으로 다시 한 번 강간당하는 것이다. 영화를 보며 관객들은 이 나라의 법과 공권력, 더 나아가 정부는 결코 약하고 탄압받는 서민들의 편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장면들은 비단 이 사건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2009년, 용산에서 사람을 죽인 것은 경찰이었고, 그보다 1년 전인 2008년, 촛불을 들고 나온 여대생의 머리를 군홧발로 짓이긴 것은 전경이었다. 시간을 더 거슬러 2005년 김태환 열사가 회사 측의 레미콘을 막아섰다가 그대로 머리가 짓이겨 사망한 이후, 가해차량이 세차를 하며 증거를 인멸하는 것을 가능케 한 것은 곁에서 그를 방치한 경찰이었다. 용산의 목소리가, 촛불 여대생의 목소리가, 김태환 열사의 목소리가 '정의'라면 그것을 무시하고 짓밟고, 죽이는 것은 바로 경찰, 더 나아가 이 국가였다. 일련의 사건들은 이 나라가 합법적으로 노동자들을, 혹은 시민들을 탄압하는 가운데 일어난 것들이었다.

그렇다면 이정선 한나라당 의원에게 다시 묻고 싶다. '법치'가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고 보장하기 위한 것인지, 국민을 탄압하고 권리를 빼앗기 위한 변명으로 사용되기 위한 것인지를. 국민을 탄압하고 권리를 빼앗기 위한 것이 '법치'라면, 이정선 의원이 말하는 '법치국가'가 그런 나라라면 이 나라에 과연 '정의'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겠는지를 말이다.

동료에게 죽음을 권하다

유득규 학습지노조 사무처장. 그녀는 학습지 노동자로 17년을 살았다. 99년 학습지교사노조가 처음 만들어질 때 교사들은 손수 적은 이름이 깨알같이 박힌 A4 용지와 노동조합 가입비 5000원을 한 장, 한 장 모아 배낭에 넣어 왔다. 노동조합 가입하면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생각 하나로 순수하게 보낸 이름들이어서 가입원서 형식도 따로 없었다. 후에 원서에 기입된 선생님들의 소속을 몰라 그것을 따로 정리하는 데만도 시간이 꽤 걸렸단다. 그렇게 만들어진 노조요, 그렇게 지켜온 사람들이었다. 재능교육은 학습지 교사들을 착취하기 위해 '재능가족'이라는 말을 썼지만, 정말 그들은 서로가 가족 같은 사람들이었다.

"저는 제 심장과 같은 동지 유명자에게 죽음을 각오하라고 권했습니다."

올 초 유명자 학습지노조 재능지부장의 단식을 두고 한 이야기였다. 그의 말이 유독 뼈아프게 다가왔던 것은, 단식 농성 이후 얻은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 전 학습지노조 위원장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 사람을 또 보내야 할지 모를 상황을 제 손으로 만들면서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유득규 사무처장은 그 이야기를 하면서 목이 메었었다.

그렇게 삭발을 하고, 단식을 하고, 천막을 철거당하고, 온갖 폭언을 퍼붓는 용역들에게 맞고 뜯기면서도 지켜온 1370일이 9월 20일, '법치주의'라는 고용노동부와 한나라당의 논리에 막혀 다시 좌절되면서 그녀는 어떤 생각들을 했을까. 동료에게 죽음을 권하면서까지 지켜온 신념들이 용역들에 의해 무참히 철거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신념을 응원해 준 엄마가 유언처럼 남긴 집을 회사가 압류 경매 게시(재능교육 회사 측은 2010년 12월 29일자로 유득규 학습지노조 사무처장의 집을 압류경매 게시했고, 압류하는 날은 2011년 5월이라고 공지했다)하는 과정들을 보면서 그녀가 느낀 절망감의 깊이는 어느 정도였을까.

ⓒ정택용

이제 참을 만큼 참았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공간들>이라는 책의 저자이자 세계적인 비판적 지성인 데이비드 하비는 신자유주의 헤게모니 하의 자본주의는 심각한 위기에도 절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신자유주의는 지배계급 강화 그 자체이고, 지배계급은 쉽게 자신의 자본축적을 보장했던 신자유주의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기업들이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하다. 재능교육 박성훈 회장도 용역들에게 1주일 일하는 대가로 100만원을 안겨줄지언정, 학습지 교사들의 노동자성은 인정할 수 없다고 버티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학습지 교사들을 노동자로 인정하는 순간, 폐지한 휴가비를 원상복귀 시켜야 하고, 부당영업 강요에 대한 책임이 발생하며 이외에도 노동자라면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여러 권리들을 보장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학습지 교사들을 노동자로 인정하는 순간, 교사들을 착취해서 얻은 국내 100대 재벌이라는 타이틀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하비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 참을 만큼 참았다'고 외쳐야 합니다."

그는 이 목소리를 통해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멀리 갈 것 없이 국정감사장을 침묵케 한 한 학습지 노동자의 목소리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저희는 노동자입니다."

역사는 그렇게 만들어져 왔다. 지금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은 이런 작은 균열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자유, 민주주의, 권리 등은 거저 생겨난 것이 아니다. 희생을 무릅쓴 수많은 작은 목소리들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다. 부당한 세계의 질서를 균열 내는 목소리, 변화를 시작하는 목소리, 그리고 결국 변화를 완성시킬 목소리. 세상은 그렇게 진일보(進一步) 한다. 진보란 족보를 따지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변화 자체가 진보(進步)다.

영화 속에서 그리고 영화를 벗어난 현실 속의 지금, 그 작은 목소리들에 우리는 귀 기울여야 한다. 그 분노에 공감해야 한다. 그 속에 세계의 진실이 있다. 전국 11만 명의 학습지 교사들도 노동자라는 진실 말이다. 영화 '도가니'의 마지막 장면을 채운 문장처럼 '진실을 위한 투쟁은 아직 진행 중'이다.

<재능교육측 반론>

재능교육은 위 기사에 대해 지난 4월 상급단체인 서비스연맹과 민주노총서울본부 등과 대화하는 등 노조 문제 해결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왔다고 밝혀왔습니다.

또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기사 관련해 대법원, 행정법원, 고용노동부 모두 학습지교사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학습지교사가 노동자인지 아닌지의 판단은 개별 기업에서 할 일이 아니라고 알려왔습니다.

특히 천막 철거, 유득규 사무처장의 집 압류 등은 불법행위에 대한 정당한 법 집행이며, 유득규 사무처장의 집 압류의 경우 2011년 4월 12일 해당 부동산의 임차인이 배당신청을 함으로써 법원의 압류가 취소돼 이미 종결된 사안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와함께 재능교육은 학습지교사를 착취한다는 내용과 관련해 학습지교사를 기반으로 사업을 영위하고 있고 학습지교사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경영악화에 따른 비용절감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서도 가능하면 재능선생님에게 해당하는 사항은 유지하고 복지수준 향상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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