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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선수 꿈꾸던 레바논 소년의 다리를 누가 앗아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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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선수 꿈꾸던 레바논 소년의 다리를 누가 앗아갔나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현지시간으로 12일부터 16일까지 집속탄금지협약(CCM) 2차당사국회의가 열렸다. 집속탄이란 큰 폭탄 안에 수십 개에서 수백 개에 이르는 소형 폭탄이 들어있어 넓은 지역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하는 무기로 정밀타격이 어렵고 불발탄 피해가 심각해 대표적인 비인도적 무기로 꼽힌다.

이에 전세계적으로 집속탄 금지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 집속탄금지협약이 만들어졌고, 2010년 8월 1일 정식으로 발효됐다. 지난해 라오스 비안티엔에서 1차 당사국회의가 열렸고 올해는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2차 회의가 개최됐다. 현재까지 영국, 프랑스, 일본 등 100여 개국이 이 협약에 가입했지만 미국과 한국, 중국, 북한 등은 참여하지 않고 있다.

한국의 반전·평화 활동가 네트워크 '무기제로'의 여옥 씨가 이번 회의에 한국 측 시민단체 회원 자격으로 참석해 참관기를 보내왔다. 그는 앞으로 <프레시안>을 통해 2차 당사국회의의 진행 상황과 의의, 외국의 활동 소식 등을 전할 계획이다. <편집자>


집속탄금지협약CCM 2차당사국회의가 열리고 있는 베이루트 페니시아 인터콘티넨탈 호텔은 전세계 120개가 넘는 국가에서 모인 정부관계자들과 활동가들로 가득하다. 회의에서 쓰이는 공식언어가 여섯 종류에 이를 만큼 '글로벌'한 자리다.

하지만 호텔에서 한발자국만 나가면 총을 든 군인들이 경호와 안내를 하고 있는 이곳. '중동의 파리'라고 불리우는 베이루트지만 폭격의 흔적이 남겨진 채 버려져있는 건물 바로 옆에 번쩍이는 새 건물이 공존하는 풍경은 낯설음을 안겨준다. 자살폭탄테러를 우려했는지 '조금 괜찮다' 싶은 건물 앞은 차가 빠른 속도로 지나갈 수 없도록 바리케이트가 지그재그로 놓여있다.

회의가 열리는 페니시아 인터콘티넨탈 호텔은 2005년에 자살폭탄테러를 당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어디든 총을 들고 서있는 군인들의 모습이 보이는 건 우리에겐 낯설어도 이곳에는 일상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집속탄이라는 무기사용을 금지하는 군축회의에 군인들이 안내를 하고 경호를 하는 것은 무언가 이상하기만 하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정부 주최의 행사에 군인이 경호를 한다면 어땠을까. G20 정상회의 당시 강남일대를 통제하고 지키던 군대 때문에 쏟아지던 비난이 떠오르기도 했다.

▲ 베이루트 최고급호텔인 페니시아 인터콘티넨탈 호텔 바로 옆에는 폭격당한 모습 그대로 방치되어있는 홀리데이인 호텔이 있다. 시내 곳곳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무기제로

집속탄금지협약 당사국회의(Second Meeting of the States Parties to the Convention on Cluster Munitions)는 협약에 서명하거나 비준한 정부 외에도 유엔(UN),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집속탄금지연합(CMC) 등 시민사회영역도 옵서버 자격으로 회의에 참여했다. 한국에서는 '무기제로' 활동가 3명이 CMC의 회원 자격으로 회의에 참가하고 있다.

이번 2차 당사국회의에는 총 66개국에서 261명의 CMC 활동가들이 참석했다. 시민사회영역에서는 공식회의 전 사전미팅과 당일 세션시작 전 브리핑을 통해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고, 어떻게 각국 정부를 설득할 것인지 의견을 나누는 자리를 가졌다. 집속탄금지협약이 시민사회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만큼 당사국회의 내에서도 시민사회의 역할은 매우 크다.

회의의 공식일정은 집속탄 피해지역 현장방문으로 시작되었다. 레바논 남부지역은 2006년 이스라엘이 전쟁 마지막에 약 400만 발의 집속탄을 퍼부은 이후 지금까지도 남아있는 불발탄으로 인해 고통이 계속되고 있는 곳이다. 집속탄의 가장 큰 문제점은 넓은 지역으로 흩뿌려진 소폭탄들이 불발탄으로 남아 전쟁 이후에도 많은 피해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집속탄금지협약은 집속탄의 사용금지 뿐만 아니라 불발 집속탄이 남아있는 오염지역을 정화하는 기한을 10년 이내로 정하고 있다. 레바논에서는 지금도 계속 집속탄 제거작업이 이루어지고 있고, 이 분야에서는 나름대로 진전을 보인 국가에 포함되지만 아직도 33% 정도의 땅이 오염되어 있다.

▲ 레바논에 사용된 집속탄은 98%가 미국산이다. 비슷한 형태의 집속탄을 한국기업이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기제로

집속탄에 대해 '순식간에 넓은 지역을 무차별적으로 초토화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성능'만으로 기억한다면 '오염'이 무얼 뜻하는지 잘 모를 수 있다. 집속탄이 사용된 이후 남아있는 불발탄으로 인해 언제 어디서라도 폭발이 일어날 수 있어 죽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위험 때문에 생계를 위해 농사를 지을 수도 없고 폭격당한 집이나 학교를 다시 지을 수도 없는 곳이 집속탄 오염지역이다.

축구선수가 꿈이던 아이가 길가에서 발견한 작은공(집속탄의 소폭탄은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게끔 생긴 경우가 많다)을 발로 찼다가 다리를 잃고 꿈마저 잃게 되고, 자신의 밭에 작물을 심기 위해 땅을 일구다가 앙팔을 잃어 먹고 살 방법이 없어지는 것이다. 전쟁이 끝난지 5년이 지나도 여전히 전쟁을 현재진행형으로 만드는 무기, 그것이 바로 집속탄이다.

▲ 집속탄 제거작업의 모습. 제거작업을 하는 도중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무기제로

현장방문을 갔던 레바논 남부 나바티예(Nabatiyeh) 지역 역시 2006년 이스라엘에 의해 집속탄이 투하된 곳이다. 나바티예 지역에만 1700여 개의 집속탄이 투하되었다고 추정되지만 집속탄의 특성상 정확한 수치는 파악하기 힘들다. 2006년 9월부터 현재까지 제거작업이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고, 현장방문을 했던 당일(12일)에도 오전에 발견한 3개의 불발 소폭탄을 처리하는 작업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번 2차당사국회의 중에 스와질란드가 비준서를 전달했고, 회의 직전에는 아프가니스탄이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비준을 해 현재(2011년 9월 14일) 집속탄금지협약 서명국은 110개, 비준국은 63개국이 되었다. 그 외에도 서명과 비준을 준비하고 있는 국가들의 소식은 회의 내내 계속 전해지고 있다.

작년 라오스에 이어 올해 레바논과 같이 집속탄의 피해가 심각한 나라에서 열리는 당사국회의는 집속탄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왜 시민사회가 나서서 이 무기를 없애려고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 집속탄이 만들어졌지만, 집속탄피해 생존자들과 시민사회 활동가들은 이 무기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스스로의 힘으로 이 무기를 금지하기 위한 협약을 만들어냈고, 매년 회의를 통해 구체적인 목표를 이루어나가는 중이다.

안보상의 이유로 집속탄금지협약에 가입하지 않을뿐더러 생산과 수출을 하고있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딴세상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120여 개가 넘는 국가의 정부관료와 66개국 시민사회 활동가들이 모여 비인도적이고 민간인의 피해가 많은 집속탄을 없애기 위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은 집속탄없는 세상이 그리 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이 끔찍한 폭탄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하는 것은 우리의 노력으로 해낼 수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전세계적인 흐름과는 상관없이 여전히 집속탄을 만들고 실전배치하는 한국의 상황 역시 우리의 노력으로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 집속탄금지협약 2차당사국회의 진행 모습. ⓒ무기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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