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른다>라는 영화가 있다. 그 영화가 충격적인 이유는 그것이 실화였기 때문이다. 아무도 모르게 버려진 아이들이 쓰레기 더미로 변해가는 방 안에서 날짜가 지난 음식들을 먹으며 살아가는 장면은 극이 아닌 실제다. 그러나 두꺼운 아파트의 철문이 닫히면 그 뿐, 그 아이들의 삶은 '아무도 모른다.' 아이들은 그렇게 세상으로부터 멀어지고, 결국 잊힌다. 정말로 아이들은 그렇게 '죽어간다.'
▲ 서울 강남구의 대표적인 판자촌 포이동. 뒤로 타워팰리스가 보인다. ⓒ이혜정 |
"이 지구만큼" 슬프다
7년 전, <PD수첩>은 당시 23년이라는 강제된 설움에 항거하여 싸우고 있던 포이동 마을 주민들의 삶을 다루었다. '타워팰리스 옆 판자촌, 23년의 보고서'는 이제 '30년'이라는 세월로 넘어섰지만 그들의 삶은 더 비참해졌다. 그들은 스스로의 삶을 "비참하다"고 말한다. 단지 언어가 아니라 삶 전체로 덮쳐오는 비참함의 무게는 얼마 만큼일까. 7년 전,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상우는 "이 지구만큼"이라고 대답한다. 10살, 낮고 동그스름한 어깨의 아이는 화면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앉아 그렇게 말했다.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벅차고 거대한 것. 우연히 제 작은 발을 디디게 된 세상은 상우에게 그 자체로 벅찬 슬픔이었다. 지금 열일곱이 된 상우는 여전히 부모가 살아온 가난의 굴레를 고스란히 진 채 살아가고 있다.
"왜 태어난 것도 부잣집에 못 태어나고 가난한 데 태어나서…. 부모 잘못 만난 죄로 아이들이 갖은 수모를 당해야 하는지…."
조철순 대책위원장은 아이들 이야기가 나오자 말을 다 맺지 못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말을 꺼내는 것도 맺는 것도 어려워했다. 한 마디, 한 마디의 문장은 그들의 삶을 지탱하기에 너무도 힘겨워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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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이 없는 오세훈 전 시장의 복지
내년 총선을 앞두고 표심잡기 복지 논쟁에 여야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오세훈 전 시장은 이러한 복지 논쟁 대결구도의 마지막 카드로 눈물, 콧물에 무릎까지 꿇었지만, 결과는 오 전 시장의 완패로 돌아왔다. 이번 주민투표 무산은 오세훈 전 시장, 그리고 한나라당이 내세운 복지 담론에 시민들이 동의하지 않은 것 이상으로 그들의 진의에 대해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의 방증이기도 했다. 사실 오 전 시장은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더 많은 복지예산을 써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모습과는 달리, 부모들의 빚을 고스란히 떠안으며 '가난병'이라는 폐결핵에 걸려 죽어가는 포이동 266번지 아이들에게는 가차 없이 등을 돌리는 냉정함을 보인 바 있다.
오세훈 전 시장은 2007년, 포이동 판자촌 사람들에게 그들의 서러운 과거를 청산해주겠노라고 약속했었다. 그러나 그는 몇 달을 채 못 버티고 약속을 번복했다. 전후 설명도 논의도 없이 포이동 주민들의 주거지에 호화판 장기 전세주택 시프트(Shift)를 건축할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이 아파트는 보증금은 물론 임대료도 포이동 주민들이나 영세민이 감당하기엔 턱 없이 비싼 것이었다. '지구만큼' 커다란 가난의 무게에 짓눌려 살아가고 있는 포이동 아이들은 오세훈 전 시장의 '저소득층'에는 포함되어있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강남이 텃밭인 오 전 시장을 비롯한 한나라당은 그들에게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빚마저 지워주었다. 이 나라 행정은 90년도부터 이들을 불법점유자로 몰아 토지변상금이라는 벌금을 지우기 시작했다. 2011년 현재까지도 부과되고 있는 이 빚은 현재 한 가구당 많게는 벌써 1억을 훌쩍 넘어섰다. 오세훈 전 시장은 상식적으로 "미래세대의 빚" 운운하기 이전에 현 세대의 빚부터 탕감해주었어야 했다.
두려운 사람들, 공무원
포이동 주민들은 2003년이 될 때까지 억울했지만 구청에 항변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열아홉, 스무 살 때 아무렇게나 주민등록증을 만들어 준 사람들, 필요에 따라 수도 없이 끌고 가서 고문하고, 두들겨 패고, 착취하던 그 사람들. 그리고 지금은 다 타버린 집터에 신발 채로 들어와 그나마 남은 집터마저 철거해버리는, 마지막 남은 희망까지도 깡그리 밟아버리는, 그 사람들이 바로 공무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30년 전, '자활근로대'라는 이름으로 전쟁 후 집 없이 떠도는 가난한 사람들을 포이동으로 강제 이주시킨 후 1988년도까지 관리 감독해왔다. 주민들은 자신들이 국민으로서 어떤 권리를 갖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그저 그들이 시키는 대로 살아야 했다.
"저 느티나무 아래가 아주 자리가 좋습니다. 경찰관들이나 공무원들 서너 명이 거기다 침상 펴놓고 딱 드러누워서 우리 일 나가는 거 이렇게 봐요. 그러면은 난 가까운 길로 못 나갔어요. 꼭 멀리 돌아서 나갔어요. 저는 지금도 그 사람들만 보면 아무 죄가 없는데도 피해갑니다. 초창기 때부터 경찰관들이나 공무원들의 지배하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 곧 법이었어요."
박동식 씨는 '지배'라는 말을 썼다. 아무 죄가 없는데도 죄인이어야 했던 가난의 시절. 행정폭력은 그들의 삶을 속속들이 짓밟아놓았다. 일명 후리가리(경찰의 조직폭력배 일제 단속) 때가 되면 각 경찰관들이 자신들에게 배정받은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제일 먼저 찾아오는 곳이 바로 포이동이었다.
"자는데 워커 발로 들어와서 무조건 끌고 가고 보는 거야. 고문을 하면 뭐라도 나와. 얼굴에다가 그냥 물을 부으면, '푸아푸아' 뱉아낼 수 있잖아요. 그런데 광목천을 적셔가지고 얼굴에 탁 붙여놓으면 붙어. 거기다 물을 부으면 '푸아푸아'해도 안 나가. 그냥 물이 다 들어와. 거기다가 겨자나 고춧가루라도 타 봐요. 죽어요. 그러다보면 자동으로 없는 것도 나오게 되는 거야."
김만우 씨는 물고문은 고문 축에도 들지 못한다면서 웃었다. 그들에게 공무원은 두려움의 대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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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만들어 준 이름, 박동식
포이동 주민들은 30년 전, 영문 모르고 이곳에 버려졌고, 이제는 또 영문 모르게 불법점유자가 되어 한 가구당 억대의 빚을 떠안고 내쫓기게 되었다. 그들이 부둥켜안고 살아온 고통스러운 과거는 힘겹다 못해 비현실적이기까지 했다. 30년 전, 새벽. 다리 밑에서 자는 이들을 걷어차 깨워서 트럭으로 실어다 내려놓고 간 곳이 바로 이곳, 포이동 266번지였다. 장화 없이는 걸을 수 없었던 진흙탕에 연탄재와 흙을 채워 터를 닦고 집을 지었다. 반평생 이상을 살아온 이곳은 고향을 모르는 그들에겐 고향이나 다름없었다.
"여기가 감히 제 고향입니다."
박동식씨는 온통 흉터로 얽은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79년도에 주민등록증을 만들었다는 그는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던 그의 존재에 대해 더듬더듬 이야기했다.
"솔직히 저는 정확한 제 나이를 몰라요. 어려서부터 고아원을 전전하고 살아오다보니까 주민등록증이란 개념이 없었습니다. 저는 제 주민등록증을 당시 저를 관리 감독하던 경찰관이 만들어줬어요. 그때 당시만 해도 없는 호적을 만들어준다니 고맙지 뭡니까."
79년, 그는 얼마나 살았는지도 모를 세월을 처음 기록했다. 죽지 않고 살아있다고. 코흘리개 때 고아원을 뛰쳐나왔지만, 호적등본 부모란에 비록 '없음'이라고 씌어있지만, 부모가 누군지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그는 살아남았다고.
"제 친구들이 다 53년생, 55년생 그래요. 그런데 주민등록증을 만들 때 담당 경찰관이 "병역법에 걸리니까 1960년생으로 해" 그래서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이름은 그냥 어렸을 때부터 "동식아, 동식아" 부르다보니까 그 경찰관이 "그냥 너 동식이 해. 성은 뭘로 할까?" 그래서, "글쎄요. 뭐가 좋을까요?", "박 씨 해. 너 술 잘 먹게 생겼다" 그래서 박동식이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아무렇게나 기록된 것이었지만 그는 고마워했다. 그래도 없던 것을 만들어주니 고마운 일 아니냐며 허허, 웃는다. 그래도 세상에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해주는 것 아니냐며.
한나라당 복지정책은 갈 데 없는 주민들 내쫓기?
오세훈 전 시장과 한나라당의 '서민 복지'에 대상이 없다는 것은 포이동 266번지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실제로 한나라당 소속 신연희 강남구청장 역시 오세훈 시장과 함께 서로 책임을 떠넘겨 왔고, 주민들과의 면담도 거부해왔다. 현재까지도 강남구청은 주민들에게 임대주택으로 이주할 것만을 계속해서 요구하고 있다. 주민들이 구청에서 제안한 임대주택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90년도부터 부과되기 시작했던 토지변상금 때문이다. 실제로 임대주택을 들어가고 싶어도 임대보증금이 압류되기 때문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임에도 강남구청은 한동안 대책 없이 임대주택으로 들어가기만을 종용해왔다. 주민들의 항의가 거세지자 지난 7월 25일에야 '토지변상금을 이유로 보증금이 압류되는 것은 배제하겠다'라고 발표했다. 그렇다 해도 보증금 이외의 재산에 대한 압류는 피해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토지변상금 전면 철회를 하지 않는 이상 주민들은 1억여 원에 달하는 빚을 자식들에게 물려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내용과 관련하여 강남구청 이인원 도시계획과 담당자는 "그런 적 없다"고 못을 박았다.
"형편이 정말 안 좋으신 분들에 대해서는 임대주택 보증금뿐만 아니고 그 외에 월급이나 예금이나 이런 것에 대해서는 전혀 압류를 하지 않아요.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인원 담당의 이야기는 실제 포이동 주민들의 사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2004년, 포이동 266번지에서 한 부부가 자살했다. 아픈 남편의 병원비 부담을 감당할 수 없어 기초수급자가 되려고 했지만 가압류 된 중고트럭이 있다는 이유로 수급자 대상에서 탈락되었다. 토지변상금 때문에 가압류 된 트럭이었다. 가압류 된 트럭이라 폐차시킬 수도 없었다. 아픈 남편이 먼저 자살했다. 한 달 뒤, 청소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부인도 뒤따라 자살했다. 이 사건은 이미 기사화 된 바 있음에도 불구하고 토지변상금 때문에 재산을 압류한 적이 없다는 구청의 입장은 이 모든 사건을 전면적으로 부인하겠다는 의지처럼 느껴졌다. 아니, 포이동 266번지에 살고 있는 이 모든 사람들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싶은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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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전 시장의 "어려운 분"에 포이동 주민들은 없다
오세훈 전 시장이 사퇴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어려운 분부터 보듬어가는 복지정책"은 적어도 포이동 266번지에 있어서는 이루어진 적이 없다. 그는 포이동 주민들의 어려운 사정을 잘 알고 있었지만 외면했고, 강남구청 역시 같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강남구청 강태근 도시계획팀장은 8월 19일, 아무 전제조건 없이 정식 공문을 주민들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주민들은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로 공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문의 내용이 모두 '서울시와 협의해서 조만간 협의, 검토하겠다'로 끝나 있었기 때문이다.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문서화 한 것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주민들의 입장에 대해 강태근 팀장은 '검토하겠다'와 '하겠다'의 차이를 모르겠다고 항변했다.
"그건 말장난하는 것밖에 안 되는 겁니다. 그 차이가 있다고 그러면, 먼저 전 동 다 철거하라 그러세요. 그렇게 써 줄 테니까."
그는 "아무런 전제조건 없이 공문을 전달했다"는 말을 "전 동 다 철거하면" 확실한 공문을 써주겠다는 말로 번복했다. 게다가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는 구청의 의지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기도 했다.
"서울시가 언제 어떻게 해 줄지 모르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9월말까지 결정해서 해주겠다고 했다 칩시다. 그런데 서울시가 안 해줬을 경우……. 그러면 구청에서 거짓말 한다고 또 난리가 날 겁니다."
'조만간'이 언제를 뜻하는 것이냐는 물음에 대한 강태근 팀장의 답이었다. 구청에서 제안한 내용이 언제쯤 실행될 것인지 기역이 없다는 것을 본인이 인정한 꼴이었다. 강 팀장이 확인시켜준 것처럼 구청은 제안한 사항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언제든 서울시에 책임을 미룰 수 있도록 공문을 작성한 것이다. 이처럼 오세훈 시장과 강남구청장이 서로 책임을 미루는 사이 주민들은 점점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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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남은 것은 죽음뿐
30여년을 일구어 온 생이 새카맣게 타 버린 지금, 그들은 정말 맨 몸 하나로 서 있다. 살아보겠다는 의지도 불법이라는 딱지가 붙는 세상에서 그들은 더 이상 희망을 찾을 수가 없다고 했다.
"행정대집행 또 들어온다는데……. 저 놈이 내 30년 불알친구인데, 내가 어제 우리 그냥 석유 끌어안고 죽자. 그런 말까지 했어요."
박동식 씨는 "이런 꼴을 자식들한테 대물림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며 되물었다. 어떻게든 내 한 몸으로 끝이 나야 한다고.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의 대물림, 그 속에서 아이들이, 사람들이 잊혀지고, 또 '아무도 모르게' 죽어가기 전에 그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복지가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한 지금, 우리는 부의 세습뿐만 아니라 가난의 세습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복지논쟁으로 사퇴한 오세훈 전 시장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차기 서울시장이 누가 되었든 현재 산재해있는 복지의 사각지대부터 우선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박동식 씨는 말한다.
"이렇게 비참하게 살아봤자 뭐 합니까."
30년 전 포이동에 들어와 올 해 여든 두 살 되셨다는 할머니는 말한다.
"어휴, 분해서도 못 살겄어. 집 뜯기는 것을 어떻게 보겄소. 죽어불고 말지."
오세훈 전 시장이 말한 것처럼 서울이 "품격있는 도시, 시민이 행복한 도시"는 못 되어도 사는 것이 비참한 도시는 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남은 것이 죽음뿐이라는 포이동 266번지 주민들에게 서울시와 강남구청은 실현 가능한 복지 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아주 기본적인 인권부터가 지켜지지 않는 도시에서의 복지 논쟁은 공허할 뿐만 아니라, 아직 이르다.
▲ 지난 6월 화재가 발생해 타버린 포이동 판자촌. ⓒ이상엽 <프레시안> 기획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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