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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암, 조용수, 그리고 리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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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암, 조용수, 그리고 리영희

[다산 포럼] 이견에 대한 포용성 결핍은 여전해

조선공산당 창당요원인 조봉암은 광복 이후 박헌영이 이끄는 조선공산당에서 뛰쳐나왔다. 일본 제국주의를 몰아내려면 강건한 조직체를 결성해야 한다고 생각해 공산당 창당에 가담했지만, 미군이 남한에 진주하자 그는 공산주의 노선 자체가 실현 불가능한 이데올로기가 되고 말았다고 판단했다. 그는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한 자유국가를 건설하는 데 매진하기로 방향을 틀었다.

그는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는 물론 중도 민족주의자들마저 외면한 남한만의 단독선거에 출마하여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는 이승만 정부가 출범하자 초대 농림장관으로 참여해. 현안이던 토지개혁문제에 매달렸다. 그는 유상매수 유상분배를 골자로 한 농지개혁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보수세력의 반발에 부딪쳐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점진적 개혁론, 중립화 통일론, 체제수렴 통일론

그 뒤 조봉암은 더욱 온건하고 신중해졌다. 그는 진보당을 창당하면서 유럽식 사회민주주의 강령조차 수용하기를 주저했다. 체제가 허용하는 한계 안에서 점진적으로 개혁을 추구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의 신중한 개혁노선은 국민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그는 56년 3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여 이승만 대통령에 패했지만 표차는 크지 않았다.

조봉암이 무시할 수 없는 경쟁자로 부상하자 이승만 정부는 그를 간첩으로 몰았다. 1심 법원은 국가변란죄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으나 2,3심에서는 모두 유죄를 인정했다. 대법원은 조봉암의 재심청구마저 기각했다.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59년 7월 31일 그를 처형했다.

조봉암이 죽은 지 1년이 되지 않아 4·19혁명이 났다. 이미 뿌리 뽑힌 줄 알았던 진보주의가 다시 요원의 불길처럼 지식인사회에 퍼져갔다. 그런 상황에서 조용수가 61년 2월 13일 <민족일보>를 창간했다. 이 신문이 역설한 것이 중립화통일론이다. 중립화통일론은 김일성의 고려연방제 통일론과는 확연히 달랐다. 연방제가 남북이 공존하는 일국양제(一國兩制)를 주장한 것이라면 중립론은 좌와 우를 초절(超絶)하는 제3의 통합을 상정한 것이었다.

<민족일보>는 중립화통일론을 펴면서도 반소(反蘇) 반(反)김일성 노선을 분명히 했다. 미국이 '이승만과 같은 반민주적이고 반민족적인 독재자'로 하여금 단독정부를 세우게 하였다면, 소련 역시 '김일성과 같은 괴뢰적 인물'을 내세워 영토와 인민의 분열을 조장했으며, 재통일을 방해했고, 더구나 전쟁까지 도발했다고 몰아세웠다. <민족일보>가 미국이나 이승만 세력에 비판적이었다면 소련과 김일성 정권에는 적대적이었다.

그런데도 박정희 군부는 <민족일보>를 폐간조치하고 조용수를 재판에 회부했다. 사법당국은 중립화통일론이 북한의 주장과 그 기본노선이 같다고 규정하고, 조용수에게 극형을 선고했다. 정부는 국제사회의 반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61년 12월 21일 그를 처형했다.

이견(異見)에 대한 포용성 결핍은 여전해

조봉암이나 조용수와 비슷한 사상적 족적을 보인 이가 지난 5일 타계한 리영희 교수다. 그의 통일론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그는 남북이 자체 수정을 거쳐 서로 닮아가는 과정을 밟아야 통일이 가능하다는, 이른바 체제수렴 통일론을 주장했다. 그는 남북이 상대방의 장점을 수렴할 때 국가통합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남북 국민의 사회통합의 길도 열린다고 강조했다. 그가 상정한 이상사회는 친북 공산주의 사회가 아니라, 개인주의적 시장주의 요소와 공동체적 사회주의 요소가 융합한 사회민주주의 사회였다.

이런 타협주의자들에게 우리 사회는 빨갱이 중에서도 상 빨갱이라는 딱지를 붙이기를 서슴지 않았다. 이승만 정권은 조봉암을, 박정희 군부는 조용수를 처형했다. 문필활동에 치중한 리영희는 극형은 면했지만 쫓겨나고 갇히기를 거듭했다. 이제 그런 강퍅한 시대는 갔다고들 하지만 지식인사회에서조차 이견에 대한 포용성 결핍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 이 글은 다산연구소가 발행하는 다산포럼(www.edasan.org)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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