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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기적인 마음과 공적인 마음"

[이정전 칼럼] "재벌이 떡볶이 시장까지 싹쓸이, 애덤 스미스가 봤다면?"

대기업의 위세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어서 기업친화적인 여권의 핵심조차 크게 우려하고 있다. 국내총생산에서 10대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2005년의 35%에서 최근에는 41%로 치솟았다. 대기업의 무분별한 팽창이 영세상인들의 도산과 실업을 양산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촉진하고 있다고 야단이다. 대기업이 무역흑자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번 돈이 저 위에 고여 있을 뿐 아래로 내려오지 않고 있다. 다시 말해서 여권의 경제전문가들이 늘 큰소리치던 낙수효과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낙수효과가 있었다면 왜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겠는가?

최근 동반성장이니, 따뜻한 자본주의니, 자본주의 4.0이니 하는 말들이 무성한 가운데 중소기업의 보호를 위해서 중소기업업종을 지정함으로써 대기업의 문어발식 팽창을 막아보려는 방안이 정치권에서 강구되고 있다. 그 동안 국민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오던 대기업들도 이런 움직임에 겉으로는 동조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원론에는 동의하면서도 각론에는 사사건건 반대하는 애매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을 보면, 내심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중소기업업종을 법적으로 규정하기보다는 기업의 자율에 맡겨줄 것을 촉구하기도 한다.

사실 전통적으로 중소기업 업종으로 알려진 콩나물, 떡볶이, 김밥, 피자, 통닭구이, 김치, 동네 구멍가게서비스 등에 대기업이 손을 대는 것이 과연 옳은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대부분의 시장주의자들은 이 물음에 긍정적으로 대답한다. 높은 경쟁력을 바탕으로 대기업은 중소기업보다 더 값싸고 안전하고 위생적으로 상품과 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기업이 통닭구이, 피자, 두부 등을 값싸게 공급하자 이것을 구입하려는 소비자들이 장사진을 이루었다. 시장주의자들은 이런 폭발적 인기가 곧 대기업의 사업 확장을 지지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본주의 시장은 소비자를 왕으로 모시는 체제라고 토를 단다. 소비자의 구미를 최대한 잘 충족시키지 못하는 기업은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도태되는 것이 시장의 원리다. 이 시장의 원리는 최대한 존중되어야 한다고 시장주의자들은 못 박는다.

시장주의자들의 이런 주장에서 우선 대기업 상품의 안전성에 대한 주장부터 짚어보자. 대기업이 상품을 더 저렴하게 공급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경제학적으로 검증되어 있지만, 과연 더 안전한 상품을 공급하는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대기업이 치명적 결함을 가진 상품을 대량 생산한 사례가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치명적 결함을 근본적으로 고치기보다는 그 결함으로 인해서 인명피해가 발생하였을 경우에만 법적 절차를 거쳐 피해자에게 금전적 보상을 해주는 것이 더 이익일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는 대기업은 과감하게 그 치명적 결함을 무시한다. 더구나 대기업은 항상 최고수준의 법률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 금전적 보상을 최소로 줄일 수도 있다. 이 문제는 그렇다고 치고, 시장에서 소비자의 반응이 대기업의 진출을 지지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라는 주장은 어떤가? 이런 주장은 인간심리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무시한 주장일 뿐만 아니라 경제학자들이 할아버지로 모시는 애덤 스미스의 가르침도 깡그리 무시한 주장이다.

과학자들에 의하면, 사람은 두 가지 마음을 가지고 있다. 욕망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스스로 평가하는 능력도 가지고 있다. 굳이 과학자의 말을 들을 필요도 없이 우리 주위를 살펴보자. 많은 도박꾼들이 자신의 손을 잘라버리고 싶을 정도로 도박의 무모함을 뼈저리게 느낀다. 그러면서도 손을 떼지 못하고 질질 끌려가다가 패가망신 당한다. 그렇다면, 열심히 도박하는 겉모습만 보고 도박이 이들의 참된 선호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건강을 위해서 금연하려고 애를 쓰다가 다시 담배피우고 나서 후회하기를 밥 먹듯이 반복하는 사람들은 어떤가. 이런 사람들을 보고 흡연이 이들의 참된 선호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살을 빼기 위해서 다이어트를 하다가 케이크나 아이스크림을 먹고 후회하기를 반복하는 아가씨의 참된 선호는 어떤 것인가? 경제학자들은 대체로 이런 사람들을 의지박약자라고 하여 예외적인 것으로 취급한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사람들의 이런 2중적 성격이 모든 정상적인 사람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임을 증명해보이고 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인간의 욕망(선호)을 제1차적 선호와 제2차적 선호로 나누기도 한다. 제1차적 선호는 사람들이 즉흥적으로 느끼는 욕망을 반영하며 제2차적 선호는 그 즉흥적 욕망에 대한 자신의 평가를 반영한 것이다. 누구나 치과에 가기를 싫어한다. 치과에 대한 제1차적 선호는 '싫다'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치과에 간다. 좋아서 간다기보다는 가야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치과에 가야만 한다는 생각은 제2차적 선호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치과에 가는 행동은 제2차적 선호에 따른 행동이다. 어떤 학자는 제2차적 선호를 "선호에 대한 선호"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람들의 즉흥적 욕망은 대체로 이기적인 것이다. 이를 테면, 식욕본능이나 성욕본능은 이기적 욕망이다. 남을 위해서 밥을 먹어주고 남을 위해서 섹스를 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제1차적 선호는 대체로 이기적인 선호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기적으로만 행동하지 않는다. '공적인 마음'으로 행동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서, 국회의원 선거 날 투표하러 갈 것인가 아니면 친구들과 골프 치러 갈 것인가를 결정할 때, 즉흥적 선호는 '골프 치러간다'일 것이다. 경제학 논리에 따르면 투표를 하는 것이 합리적이지도 않다.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투표하는 것이 득 될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투표를 한들 내가 원하는 후보의 당선에 결정적으로 기여할 확률은 투표장에 가다가 벼락 맞아 죽을 확률보다도 낮다. 공연히 교통비와 시간만 낭비할 뿐이다. 그렇지만 실제로 국민의 70%는 이런 이기적 계산을 떠나서 '공적인 마음'에 따라 투표를 하러 간다. 시민으로서의 의무감이나 민주주의의 발전을 생각하는 공적인 마음이 이들을 투표장으로 인도한다. 제2차적 선호가 바로 이런 공적인 마음을 포함하는 선호라고 해석할 수 있다.

▲ 1790년 애덤 스미스의 초상화.
애덤 스미스 역시 인간심리의 이런 2중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주저라고 할 수 있는 <도덕감정론>에서 애덤 스미스는 인간의 행태가 "열정(passions)"과 "공정한 방관자(impartial spectator)" 사이의 갈등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주장하였다. 그가 말하는 열정은 식욕, 성욕, 분노, 두려움, 고통 등과 같은 감정을 의미하며, 공정한 방관자는 위에서 말한 제2차적 선호와 비슷한 것이다. 그는 열정이 인간의 행동을 직접 지배하며, 공정한 방관자는 열정에 따른 행동을 조정하거나 교정하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보았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국회의원 선거 때에 국민의 30%는 열정의 요구를 극복하지 못하고 놀러갈 것이며, 70%는 마음속의 방관자가 요구하는 대로 투표하러 갈 것이다. 마음속의 공정한 방관자는 비록 싫거나 손해를 보더라도 양심이나 원칙에 따라 행동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시장에서는 사람들이 이기적인 마음에 따라 행동한다.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시장에 나간다. 나라를 위해서 일부러 장보러 나가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옛날에는 우리나라 산업의 발전을 바라는 애국심에서 일부러 저질 국산품을 사주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오늘날에는 그런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날로 나빠지는 경기 때문에 수많은 영세 상인들이 파리를 날리며 한숨쉬지만 이들의 시름을 덜어주기 위해서 일부러 재래시장을 찾는 부잣집 마나님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시장에서는 사람들이 제각기 이기적인 마음만을 가지고 행동하기 때문에 시장에서 결정된 모든 것은 이들의 이기적 마음을 반영한 것이지 공적인 마음을 반영한 것이 아니다. 달리 말하면, 시장은 주로 사람들의 제1차적 선호를 충족시키기 위한 장소라는 것이다. 성매매와 불륜의 온상인 러브호텔의 요금은 고객과 호텔주인의 이기적 마음이 합의한 결과일 뿐, 그런 러브호텔이 규제되어야 한다는 공적인 마음은 반영하고 있지 않다. 여름철 휴양지의 바가지요금이나 태풍 피난민에게 강요되는 바가지요금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는 이유는 사람들이 바로 이 공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중소기업 업종 진출을 규제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서도 같은 얘기를 할 수 있다. 대기업의 통닭이나 피자에 대한 소비자들의 선풍적 인기는 이들의 이기적 마음만을 반영한 것이지, 대기업의 비대화에 대한 경각심이나 중소기업의 도태에 대한 걱정, 그리고 나아가서 빈부격차의 확대에 대한 우려는 반영하고 있지 않다. 만일 사람들이 그런 공적인 마음에 따라 행동하였다면 대기업의 피자나 통닭을 사기 위해서 그렇게 많이 달려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대기업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기만을 놓고 이것이 대기업의 중소기업 업종 진출을 지지하는 증거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우기는 것은, 마약을 끊지 못해서 애를 태우는 마약중독자들이 마약 구입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겉모습만 보고 이들이 원하는 마약을 대량 공급해야 한다고 우기는 것에 진배없다.

물론, 각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면 대기업 상품의 저렴한 가격이 분명히 매우 바람직하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 까지나 각 소비자의 이기적 마음에서 볼 때만 그렇지 이들의 공적인 마음에서 보았을 때도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자유경쟁시장에서 자연스럽게 결정된 가격을 놓고 그 공정성에 대하여 끊임없이 시비가 벌어지는 이유도 그 가격이 각 개인의 공적인 마음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부동산가격에 대하여 대다수의 사람들이 '미친 가격'이라고 비난한다. 시장주의자들은 그 미친 가격이 사실은 시장의 수요공급 원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므로 존중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경우 수요공급 원리에서 말하는 수요곡선과 공급곡선은 부동산투기로 한 밑천 크게 잡아 보려는 이기적 탐욕을 실은 곡선이지 투기를 우려하는 공적인 마음을 실은 것이 아니다.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가격을 놓고 끊임없이 시비가 일어나는 현상은 마치 각 개인이 즉흥적 욕망에 따라 행동하고 나서 크게 후회하고는 자기 자신을 질책하는 현상과 내용상 다를 바가 없다.

정의의 원칙을 도출하기 위해서 롤즈가 설정한 원초적 상황은 국민 각자로 하여금 이기적 마음을 비우고 오직 공적 마음만을 가지고 정의에 관해서 토론하는 상황이라고 해석할 수 있으며 따라서 장바닥과는 거리가 먼 상황이다. 정의의 원칙이란 국민의 제2차적 선호가 모여서 정의에 관하여 합의한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시장이 주로 국민의 이기적 마음 혹은 제1차적 선호를 주로 반영하는 것이라면 국민의 공적인 마음 혹은 제2차적 선호는 누가 대변해줄 것인가? 사회적 관습이나 정부가 그 역할을 수행한다고 말할 수 있다. 정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국민의 공적 마음을 읽고 이를 대변하는 것이다. 환경규제 뿐만 아니라 공공장소에서의 흡연규제, 음주운전에 대한 규제, 불량식품 규제 등 수없이 많은 정부의 규제가 바로 국민의 공적 마음을 대변한 것들이다. 대기업의 중소기업 업종 잠식에 대한 우려 역시 마찬가지다. 각 개인의 경우 '공정한 방관자'가 시장에서 표출될 '열정'을 통제하듯이 사회적으로는 정부가 국민의 제2차적 선호 혹은 공적인 마음을 읽고 이를 바탕으로 대기업의 무분별한 문어발식 팽창을 통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시장에서 나타난 소비자들의 반응만을 놓고 대기업의 중소기업업종 진출문제를 얘기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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