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재앙이 세계화의 오류에서 비롯된 결과라면, 미국과 유럽이 실물 경제를 바탕으로 번영을 누리던 예전의 경제 구조를 어떻게 재구성할 지를 고민할 만하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 경기 침체와 고실업 상황에서 재정 위기만을 강조하며 긴축 정책을 채택해 공공 지출을 삭감한다. 경제 위기 초기 제기됐던 부자들에 대한 증세 논란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성장을 유지하기 위한 조치는 찾아보기 힘들다.
미 컬럼비아대 교수 제프리 삭스(Jeffrey Sachs)는 17일 <파이낸셜타임스> 칼럼에서 미국과 유럽이 번영의 단초였던 세계화에 의해 위기를 겪고 있다고 진단한다. 여기에는 각국의 거시정책 실패와 함께 위기에 대담하게 맞서지 못하는 미숙한 지도력도 한몫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삭스 교수는 각국 정부가 경기를 부양할 수 있는 공공투자를 외면하고 긴축으로만 가는 현실을 비판하면서 경기 회복을 위한 방법을 제시한다. 자기 금융방식으로 조달되는 사회기반시설 투자, 개발도상국에 대한 신흥투자를 통한 수출주도형 경제 성장, 해외파병 중단, 부자들에 대한 증세 등은 재정 정책을 통해 달성할 수 있는 목표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유로존 내 각 회원국의 정치적 상황에 따른 이견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등 미국 정치인들의 나약한 지도력 등으로 인해 그가 제시한 해법과는 반대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 삭스 교수는 미국과 유럽이 또 다른 거품을 바라면서 결연한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면 세계 경제는 계속 고통 속에서 맴돌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다음은 이 칼럼의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원문 보기)
세계화의 거대한 실패
유로화 사용 국가들과 미국 경제에서 시장의 신뢰가 거의 동시에 붕괴하게 된 배경에는 경제 전략과 리더십의 실패가 있다. 신용평가기관을 탓할 필요가 없다. 유럽과 미국 정부는 글로벌 자본시장의 현실과 아시아 국가들과의 경쟁에 대응하지 못했다. 그게 가장 비난받아야 할 부분이다.
필자는 수십 차례의 금융위기를 면밀히 지켜봤고, 성공이란 대중들에게 대담하고 기술적으로 훌륭하며 사회적 가치에 기반을 둔 [위기로부터의] 탈출구를 보여주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안다. 미국과 유럽의 정치 지도자들은 이 모든 점에서 부족했다. 핵심적인 문제를 제대로 진단하지조차 못했다. 다시 말하면, 두 지역은 세계화에 의해 크게 흔들리고 있다.
국제 경쟁이 심화되면서 제조업 부문의 저(低)숙련 일자리와 산업 전반에 걸친 신규 투자가 없어졌다. 2000년대 미국과 유럽의 고용이 유지됐던 것은 낮은 이자율과 무분별한 규제 완화에 의해 부추겨진 주택 건설 때문이었다. 주택 거품이 붕괴하기 전까지 그랬다. 지금 시점에서 경제를 회복시키려면 새로운 주택 거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기술 향상, 수출 증대, 인프라와 저탄소 에너지 산업에 대한 공적 투자를 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은 [경기 회복을 위해] 발전 가능성 없는 소비 기반의 부양책, 그리고 투자가 들어올 전망이 없는 긴축 정책 사이를 오갔다.
[미국과 유럽의] 거시경제 정책은 일자리를 만드는데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사회적 가치에도 부응하지 않았다. 확실히 해두자. 좋은 사회 정책이라고 해서 많은 [재정] 적자를 운용하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미국과 유럽은 이미 공공 부채가 지나치게 많다. 그러나 사회 서비스를 축소하는 것과 부자에게 세금을 더 물리는 것은 완전히 다른 균형을 의미한다.
▲ 지난 5일 스페인 시민들의 긴축재정 반대 시위 장면. ⓒAP=연합뉴스 |
단순한 사실은, 세계화로 인해 미숙련 육체노동자들이 타격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글로벌 슈퍼부자들은 노다지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슈퍼부자들은 신흥 경제국의 새로운 고수익 사업에 투자할 수 있었다. 워렌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14일 주장한 것처럼, 한편으로 슈퍼부자들은 이윤과 고소득에 대한 세율을 낮추라고 자기네 정부를 설득할 수 있었다. 글로벌 조세 경쟁력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조세 피난처는 종종 정치인들의 공격을 받았지만 점차 확산되었다. 결국 가난한 이들은 이중으로 타격을 받았다. 우선 글로벌 시장의 힘에 타격을 받았고, 그 다음으로는 전세계의 세금 은신처에 낮은 세율로 돈을 맡겨 놓을 수 있는 부자들에 의해 타격을 받았다.
그러므로 미국과 유럽에서 좋은 재정 정책을 펴려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현실에 기초해야 할 것이다. 첫째, 사람과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것이다. 둘째,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예멘 등에서의 잘못된 군사 개입처럼 쓸데없는 지출을 줄이는 것이다. 셋째, 중기적으로 균형 예산을 짜야 하는데, 그것은 법망의 허점과 해외 조세 피난처에 의해 보호된 고소득자와 다국적 기업의 이윤에 대해 세금을 늘림으로써 상당 부분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사회기반시설 투자에서는 적자가 안 나는 사업을 한다면 부채를 늘릴 필요가 없다. 선행 투자가 필요할 때조차도 미래의 수익으로 상환되는 투자라면 순수 금융 부채에 가산되지 않는다. 현재 미국과 유럽의 예산회계는 교량 건설처럼 나중에 통행료를 받아 수익을 얻는 자기금융 자본 사업과 일반적인 세입에 의해 자금이 조달되는 사업을 구분하지 못한다.
수출주도 성장은 또 다른 경기 회복의 방법이다. 수출주도 성장은 한편으로 더 나은 숙련도와 기술이 있어야 가능하다. 교육 지출을 줄이지 않아야 할 또 다른 이유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좋은 재정 정책을 통해서도 달성할 수 있다. 이 정책을 실현한 중국의 경우 장기대출 형식으로 아프리카에 매년 수십 억 달러의 사회기반시설 사업을 수출했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은 아프리카나 다른 신흥 경제국에 대한 융자가 부족해서 사실상 이 시장을 중국에 넘겨줬다.
끝으로 경기 회복을 위해서는 정치적 차원에서의 목표가 뚜렷해야 한다. 유럽에서는 유럽연합(EU)에 의해 주도되는 일관성 있는 대응이 각 나라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 밀려왔다. 프랑스와 독일의 16일 정상회담에서 나온 합의가 최근의 대표적인 사례다. 수개월 동안 유럽의 운명은 독일의 주별 선거와 핀란드 작은 정당들에 의해 결정됐다. 유럽중앙은행(ECB) 또한 너무 분열되어 있어 패닉 상태의 시장을 안정화하는 핵심 기능을 하지 못했다. 유럽 전체를 아우르는 기관들이 계속해서 나약하고, 굼뜨며 분열된 모습을 보여준다면 유로화는 살아남을 방법이 없다.
마찬가지로 미국도 부문과 계급, 각 지역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국가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매우 움츠러든 지도자이며, 의회의 귀족들이 전화를 걸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정치인들이 정치 자금을 대는 기득권층의 이익에 머리를 조아린다면 미국은 번영할 수 없다.
금융시장의 최근 충격과 미국 및 유럽의 더딘 회복은 이러한 근본적 결점을 반영한다. 성장 전략은 없고 오직 겁먹고 부채에 짓눌린 소비자들이 필요도 없고 살 능력도 안 되는 주택을 구입하려 돌아오리라는 희망만 있다. 슬프게도, 글로벌 경제의 흐름은 대담하고 결연한 리더십이 부활하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일자리를 요구하고 자본을 소모시킬 것이다. 그 동안 시장은 불확실성의 고통 속을 계속 맴돌 것이다.
* ( )는 원저자의 표기이며, [ ]는 옮긴이가 추가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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