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orld Consequences of U.S. Decline)
10년 전 필자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이 세계체제 내에서 미국의 위상이 쇠퇴할 거라고 얘기했을 때는 기껏해야 '순진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세계 모든 곳에 관여하고 있고,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는 미국이 유일 초강대국이 아니라고? 모든 정치적 스펙트럼에 걸쳐 그런 의문이 나왔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이 쇠퇴했다는, 심각하게 쇠퇴했다는 시각은 진부할 지경이다. 이젠 모두가 미국의 쇠퇴를 말하고 있다. 이 문제를 논의한다면 책임을 추궁당할까 두려워하는 소수의 정치인만 제외하고. 사실은 거의 모두가 [미국의] 쇠퇴라는 현실을 믿는다.
하지만 미국이 쇠퇴함으로써 세계에 어떤 파장을 미쳐왔으며 앞으로는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에 대한 논의는 매우 적다. 미국의 쇠퇴는 물론 경제적인 요인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지정학적으로 반(半)독점적이었던 미국의 힘을 상실함으로써 세계 모든 곳에 커다란 정치적 결과를 가져온다.
▲ 미국의 쇠퇴는 한 국가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AP=연합뉴스 |
<뉴욕타임스> 7일자 비즈니스면에 실린 일화에서부터 얘기를 시작해 보자. 애틀랜타의 한 자금 관리인은 부자 고객 두 사람으로부터 모든 주식을 팔아치우고 뮤추얼펀드 같은 상품에 투자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너무나 황당했다." 그는 22년간 자금 관리인 일을 해오는 동안 그런 요청을 받아본 적은 없었다고 했다. "전례가 없었다." 신문은 이 일화를 월가의 용어를 빌려 "핵무기 공격 옵션"(Nuclear Option)이라고 불렀다. [주식]시장에서는 '점진적 접근'을 해야 한다는 진리에 반하는 것이었다.
스탠더드 앤 푸어스(S&P)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낮춘 것도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건 꽤 온건한 조치였다. 중국의 신용평가기관 다공(大公)은 이미 지난해 11월 미국의 신용도를 A+로 강등했고, 현재는 A-까지 낮췄다.
페루의 이코노미스트 오스카르 우가르테체(Oscar Ugarteche)는 미국이 '바나나 공화국'[독재자와 외국 자본에 장악된 나라]이 됐다고 선언했다. 그는 "미국이 타조정책[위험이 닥치면 머리만 모래 속에 파묻는 타조처럼 위기의 본질을 보지 못하는 정책]을 선택했고,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5일 [페루의 수도] 리마에 모인 남아메리카 재정장관들은 자기네 나라가 미국 경제 쇠퇴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 긴급히 논의했다.
그러나 미국의 경기 하락이 미칠 영향으로부터 자유롭기는 매우 힘들다. 심각한 정치적·경제적 쇠퇴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여전히 세계의 거인이고,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은 여전히 다른 모든 곳에 큰 파장을 미친다.
미국 쇠퇴의 가장 큰 충격은 미국 자신이 받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은 분명하다. 정치인들과 언론인들은 미국 정치 상황의 '기능 장애'를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 외에 다른 어떤 충격이 있을까?
미국인들은 미국이 쇠퇴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에 크게 놀라고 있다. 그것은 미국이 쇠퇴하면서 미국인들이 물질적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더 그럴 것이라고 우려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미국은 신(神) 혹은 역사에 의해 만들어진 '선택받은 나라'로써 세계의 모델 국가가 되어 왔다는 믿음을 미국인들이 깊이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여전히 미국은 'AAA' 국가라고 장담하고 있다.
오바마와 모든 정치인들에게 있어 문제가 되는 것은 극소수의 미국인들만이 이러한 주장을 믿는다는 점이다. 국민적 자존심과 자신의 이미지에 미친 충격은 감당하기 힘들 뿐 아니라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미국은 이 충격에 잘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들은 희생양을 찾고 있고, 죄가 있다고 생각하는 정당에 매우 격렬하게, 그러나 이성적이지는 않게 욕을 퍼붓고 있다. 누군가에게 책임이 있고, 따라서 권한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교체하는 것이 해결책이라는 게 최후의 희망인 것처럼 보인다.
일반적으로 대통령과 의회, 민주당과 공화당 등 연방 기관들이 비난의 대상이 됐다. 워싱턴에 있는 이들에게 모든 책임을 묻는 건 정치적 격변 가능성을 높이고, 지역 수준에서는 훨씬 더 폭력적인 투쟁으로 이어진다. 필자가 보기에 오늘날 미국은 세계체제에서 가장 불안정한 정치공동체 중 하나다.
그리하여 미국은 정치적 투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세계무대에서 진정한 힘을 행사할 수 없는 나라가 됐다. 미국의 전통적인 동맹국들, 그리고 미국 내 대통령 지지 기반이 가지고 있던 미국이란 나라와 미국 대통령에 대한 믿음은 크게 떨어졌다.
신문지면은 버락 오바마의 정치적 실수에 대한 분석으로 가득하다. 그걸 누가 반박할 수 있겠는가? 필자는 오바마의 결정 중에서 잘못됐고, 비겁하며, 때로는 철저하게 부도덕한 것들을 수십 가지는 늘어놓을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오바마가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결정을 내렸다고 해도 그 결과가 얼마나 달랐을지는 의문이다.
미국의 쇠퇴는 대통령의 그릇된 결정에서 나온 결과가 아니라 세계체제의 구조적 현실에서 비롯됐다. 오바마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큰 권력을 쥔 인물이겠지만, 과거의 미국 대통령만큼 강력한 대통령은 오늘날 존재하지 않고 있을 수도 없다.
우리는 환율과 고용률, 지정학적 동맹, 현 상황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규정 등에서 극심하고, 끊임없고, 빠르게 변동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변동의 규모와 속도는 단기적 전망을 불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단기(3년 정도)적으로 안정될 것이라는 납득할만한 전망이 없으면 세계 경제는 마비된다.
모두가 좀 더 보호주의적 성향이 강해지고 내부 사정에만 신경 써야 할 것이다. 삶의 질은 떨어질 것이다. 바람직한 미래상은 아니다. 그리고 비록 미국의 쇠퇴 때문에 많은 나라들에 매우 많은 긍정적인 측면이 생길 것임에도 불구하고, 세계가 거칠게 흔들리는 와중에 다른 나라들이 희망하는 이익을 뽑아낼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다.
현재의 세계체제보다 더 나은 체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앞으로 20~30년에 걸쳐 좀 더 냉철한 장기 분석, 분석 결과에 대한 명확한 도덕적 판단, 훨씬 더 효과적인 정치적 행동 등이 필요한 시점이다.
* <월러스틴의 '논평'>은 세계체제론의 석학 이매뉴얼 월러스틴 예일대 석좌교수가 매달 1일과 15일 발표하는 국제문제 칼럼을 전문번역한 것입니다. <프레시안>은 세계적인 학자들의 글을 배급하는 <에이전스글로벌>과 협약을 맺고 월러스틴 교수의 칼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8월 15일 논평 원문보기) * 저작권 관련 알림: 이 글의 저작권은 이매뉴얼 월러스틴에게 있으며, 배포권은 <에이전스 글로벌>에 있습니다. 번역과 비영리사이트 게재 등에 필요한 권리와 승인을 받으려면 rights@agenceglobal.com으로 연락하십시오. 승인을 받으면 다운로드하거나 전자 문서로 전달하거나 이메일로 보낼 수 있습니다. 단 글을 수정해서는 안 되며 저작권 표시를 해야 합니다. 저자의 연락처는 immanuel.wallerstein@yale.edu입니다. 월러스틴은 매월 2회 발행되는 논평을 통해 당대의 국제 문제를 단기적인 시각이 아닌 장기적인 관점에서 조망하고자 합니다. * ( )는 원저자의 표기이며, [ ]는 옮긴이가 추가한 내용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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