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다른 소금꽃, 비정규직 ① "목숨 붙이고 있는 게 최대 목표지요" ② "할 수 없이 술 한번 먹어주고, 그러면 월급 올라가고…" |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기록되지 않았던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 '오월애'. 그것은 단지 그들의 '오월'에 대한 기억일 뿐 아니라 '저항'의 기억을 가진 사람들의 통증어린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화의 초반부에는 노점에서 참외를 파는 아주머니가 등장한다. 아주머니는 카메라를 향해, 혹은 세상을 향해 말한다.
"아무 씨알 데 없어. 얼렁 요놈 팔아서 돈 한 푼 쥐는 게 그게 쓰알 데 있지. 아무 씨알 데 없어."
냉소와 생존의 사이에서 탄생되는 이기심
이것이 바로 서민들의 이기성의 정체다. 상처를 싸안고 30여 년을 살아 온 사람들의…, 냉소다. 아주머니는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시민군들에게 밥을 해 먹인 사람이었다. 집집마다 다니며 쌀을 모아 밥을 하고, 소금, 김을 막 넣고 버무려 꼭꼭 눌러 주먹밥을 만들었다.
그 기억을 두고, 아주머니는 지금 노점에 앉아 "아무 씨알 데 없는"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렇게 자식처럼 밥 해 먹인 사람들이 죽어나갔어도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그간 세상에게 받은 수많은 상처들은 아주머니의 손 마디마디로 내려앉아 옹이가 졌고, 그것은 해가 거듭될수록 두터워졌다. 그래도 살기 위해서 여름이면 참외를 팔고, 겨울이면 밀감을 팔았다. 그렇게 살기 위해 세상을 냉소하며, 혹은 견디며 30년을 보냈다. 죄 없는 목숨들을 수도 없이 죽이고도 그렇게,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꿈쩍도 않는 세상을 냉소하면서. 아주머니는 촬영하는 내내 카메라에 눈을 바로 맞추지 못했다. 그녀를 보면서 억척스럽게 살아 온 우리네 엄마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네 엄마들의 냉소는, 그리고 노동자들의 냉소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썩어빠진 세상을 개탄하면서도 맞서 투쟁하기 보다는 냉소하는 쪽을 택한다. 이들의 냉소는 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이 냉소들을 넘어 노동자의 연대를 이끌어내려면, 정규직노동자에서 비정규직노동자에 이르기까지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구호를 더 이상 공허하게 만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원칙을 지키는 싸움, 타협은 없다
조직화가 불가능하다고 평가되었던 서비스유통부분에서 대규모 투쟁을 조직했던 이랜드 노조. 그 가운데 있었던 김경욱 전(前) 이랜드일반노조 위원장은 "비정규직을 조직하지 않으면 정규직도 죽는구나"라는 것을 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한 당사자이다. 그는 정규직 조합원들이 파업할 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빈 자리를 메우고 매장을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것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투쟁 당시, 지도부에 대한 조합원들의 신뢰는 유별났다. 김 위원장에게 다짜고짜 그 비결을 물었다. 그는 "다른 것은 없다. 원칙을 지켰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노조위원장 하면서 '해고는 없다'라고 약속했고, 그 원칙을 지켰어요. 그게 핵심이죠. 약속한 이상 그 원칙은 절대로 포기하거나 타협해선 안 되는 거예요. 원칙을 포기하게 되는 순간 조합원들은 냉소하게 되고 투쟁에 동참하지 않게 마련이에요. 해봤자 안 된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 거죠. 그런데 '이 노조는 끝까지 싸운다'라는 생각을 갖게 되면 믿음이 생기는 거거든요."
김 위원장은 까르푸 노조에서 활동할 당시 조합원들에게 '고용보장'을 약속했고, 그는 그 약속을 100% 지켰다. 해고된 조합원들을 모두 복직시켰던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느냐고 묻자, 그는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듯 웃었다.
"왜냐하면 복직될 때까지 끝까지 싸웠거든요. 그렇게 투쟁을 하게 되면 조합원들을 해고할 때, 회사도 그만큼의 출혈을 감당해야 하니까 쉽게 해고나 징계를 하지 못하게 되죠. 비정규직들도 여러 가지 이유로 징계를 받고 해고되기도 하고 했었는데요. 결국 다 복직시켰어요."
가진 것 없고 힘 없는 사람들의 이기심
"비조합원들 중에 회사에서 해고당하거나 징계 받은 다음에 노조에 가입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 사람들도 모두 조합원으로 받아들였고, 그 사람들의 복직과 징계 철회를 위해 싸웠어요. 사실 그 동안 조합원으로 가입하지 않았다가 징계나 해고와 같은 불이익을 당하게 된 후에야 노조를 찾은 거니까 조합원들은 그들을 얄밉게 볼 수밖에 없었죠. 그래도 그런 것은 따지지 않았어요."
김 위원장은 말했다. 사람들은 대개 그럴 수밖에 없다고. 그들의 이기적인 모습에 화가 날 법도 하건만 그는 "그것은 그 사람들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간명하게 말했다. 수많은 파업을 거쳐 오면서 투쟁에 참여하지 않고 현장 복귀한 조합원들에 대해서도 단 한 번도 원망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사람들은 대개 그럴 수밖에 없어요. 가진 것 없고 힘없는 사람들인데 눈치보고 살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런 사람들에게 영웅적인 모습을 기대하긴 어려워요. 기본적으로 이기적으로 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김 위원장의 말은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네 엄마들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약하고 차별받는 노동자, 가진 것 없이 평생을 일 해온 이들. 그들은 내 자식, 내 가족만을 생각하며 나이가 들수록 억척스럽고 이기적으로 변해가지 않았던가. 부모를 이해하는 심정으로 우리는 노동자들을 이해해야 한다고, 그리고 그들을 위해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 김 위원장은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이 노동자들의 신뢰를, 그리고 단결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조합원들에게 신뢰받는 노조가 되어야
2010년 12월 15일, 한진중공업에서 경영악화를 이유로 생산직 노동자 400명을 희망퇴직 시키기로 결정했을 때, 많은 노동자들이 희망퇴직서를 쓰고 회사를 나갔다. 노조가 있었음에도 이들은 왜 순순히 회사의 요구대로 희망퇴직서를 쓰고 나갔을까. 그 이유에 대해 해고자 서성광 씨는 '집행부에 대한 불신'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라 했다. 그동안 설계분사문제, 울산공장 폐쇄문제 등에 대해 안일하게 대처해 온 집행부를 조합원들이 믿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집행부가 조합원들보다 먼저 포기하는 것을 수도 없이 봐 온 조합원들은 냉소적이 될 수밖에 없다.
"회사가 희망퇴직서를 쓰라고 했을 때, '집행부가 자신들을 위해 싸워주지 않을 거다'라는 불신들이 있었기 때문에 대다수가 희망퇴직을 쓰고 나갔어요."
조합원들의 판단은 정확했다. 채길용 지회장은 그동안 "정리해고 철회 없이는 어떠한 합의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6월 27일 행정대집행이 이루어지면서 조합원들이 "개 끌려나오듯 끌려" 나오고 있을 때, 노조 집행간부들은 합의안에 서명을 하고 있었다. 그 합의안에 해고자들은 없었다.
찬물에 김밥 한 줄, 먹어봤어요?
▲ 한진중공업 크레인. ⓒ이혜정 |
"그 먼지구덩이에서 밤 9시까지 일을 시키면서도 빵 하나, 우유 하나 주고 일 시켜요. 우리 아줌마들은 탱크 안에서 밤 11시 넘게 일하면서도 빵 하나만 먹고 일 하고 그랬어요. 밥 먹고 오면 시간 많이 잡아먹는다고 그냥 일 하래요. 어휴, 그 사정을 누가 알겠어요. 그거 다 말로 못해요."
한진중공업에서 도장일로 오래 일해 왔다는 권명자(가명) 씨. 그녀 역시 신분을 철저하게 보장해줄 것을 확인 받고서야 인터뷰에 응했다. 그녀가 쏟아놓는 이야기들은 2011년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지만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일들이었다.
어떤 때는 김밥 한 줄만 달랑 올려준다면서, "찬물에 김밥 한 줄 먹어봤느냐"고 묻는다. 집에 도착하면 밤 11시, 12시인데, 그때까지 밥 한술에 따뜻한 국물 한 그릇 먹지 못하고 종일을 보낸다는 것이다.
"30도 넘는 배 위에서 땡볕에 뜨거워 죽을 거 같아도 물 한 병 달랑 주고 일 하래요. 한번은 아침에 60살 먹은 언니가 물 한 병 더 가져간다고 새파란 관리자가 욕하고 난리난 적도 있어요. 그거 얼음물 한 병 더 주면 어떻노…."
그녀는 한숨을 오래 쉬었다. 그렇게나 더운데, 작은 물병 하나로는 턱도 없다 했다. 그래서 다들 집에서 여러 병을 얼려오거나 직영 아저씨들에게 얻어먹으며 일한단다. 또 하청노동자들에 대한 관리자의 모욕과 폭언은 이제 예삿일이라 했다. 그래도 관리자들에게 소위 '찍히면' 바로 해고되기 때문에 주면 주는 대로 먹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고 했다.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고. 우리 일 하는 아줌마들 중에서도 다음 달에 아들 학비 맞춰줘야 된다고 진짜 쫓겨날까봐, 관리자 눈치 봐 가면서, 욕 얻어 먹어가면서도 그냥 일해요."
찢어진 옷이며 신발에 테이프 붙여가며
"나도 여기서 일 하지만, 여기 하청에서 일하는 아줌마, 아저씨들 진짜 불쌍해요."
그녀는 자신들의 신세에 대해 "불쌍하다"고 했다. 먹고 살려고, 자식들 공부시켜야 하는데 쫓겨나갈까봐 관리자 눈치 보며 일한다 했다. 관리자의 눈 밖에 나면 무조건 내보내기 때문이란다. 그녀의 말은 중간중간 오랜 한숨으로 자꾸만 끊어졌다 이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녀는 또 하청노동자들은 작업복이며 안전화도 충분히 제공받지 못한다며 개탄하며 말을 이었다.
"족장일(선박의 블록 내외부에 발판, 난간을 만드는 일) 같이 높은 데서 일하는 아저씨들은 작업복이 없어가지고, 땀에 젖어서 옷이 삭아서 엉덩이가 다 보여도 그냥 일해요. 일 년에 한 벌, 아니면 두 벌 이렇게밖에 안 주니까. 그래서 우리가 직영(정규직) 아저씨들이 안 입고 버린 옷들 주워서 갖다 주고 그래요. 하청사람들한테는 아침 8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신는 신발(안전화)을 일 년에 한 켤레 줘요. 도장일이고, 족장일이고 간에 높은 데서 일을 하는 건데 신발이 낡아서 미끄러우니까 미끄러져 떨어질 위험이 많죠."
하청 사람들은 옷이며 신발이며를 주우러 다니는 것이 일이라 했다.
"땀에 옷이 삭아가지고 찢어지고 그러다보니까 옷을 테이프로 붙여서 입고 다녀요. 신발도 테이프 붙여서 신고 다니고 그래요."
일 년마다 오르는 시급 100원에 온갖 모욕 다 견뎌야
찍히면 일 년에 100원 오르는 시급도 안 오르기 때문에, 관리자 눈 밖에 나지 않으려 온갖 애를 다 써야 하는 것이 한진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의 현실이다. 30대에 들어와서 60세가 넘기까지 한진에서 일해 온 아줌마들에게도 보너스 한 푼 없단다.
그뿐 아니다. 하청노동자들에게는 잠시 앉아 커피 한 잔 마실 시간도 허락되지 않는다. 출근 시간은 8시로 정해져있지만, 7시 40분에 현장에 나가 일 하고 있지 않으면 관리자들이 온갖 폭언으로 괴롭히기 때문에 하청노동자들은 아침마다 전쟁을 치른다.
"통근버스도 없잖아요. 그러다보니까 회사 출근하자마자 커피 한 잔 마실 시간이 없이 바로 뛰어나가야 해요. 막 일 나가면서 커피믹스 하나 물통에 붓고 흔들어 먹어요."
시원하게 앉아 커피 마실 시간도 없이 땡볕의 현장으로 내몰리는 하청노동자들. 그곳에서 그들은 온 몸으로 비참한 생을 버티며 종일을 일 하고 있었다.
여기서 죽으면 다 개죽음
"배는 다 위험해요. 다 우마(이동식발판) 타고 다니고, 독한 뺑끼(도장화학약품)를 많이 하니까. 또 하청사람들한테 지저분한 거, 어려운 거는 다 시키잖아요. 두꺼운 전기선 기어다니면서 깔고."
그러다보니 죽거나 다치는 하청노동자들의 수는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라고 했다. 족장일 하던 나이든 노동자 한 사람이 미끄러져 추락사 한 일이 있었다. 명자 씨는 추석을 쇠고 온 어느 날이라고 기억했다. 같은 배에서 일하면서 매일 보고 웃고, 인사하던 아저씨였단다. 그런데 말 그대로 사람이 죽으면 "치우고" 그 자리에 바로 사람을 배치해 일을 시키는 걸 보면서 그녀는 깨달았단다.
"하청사람이 죽으면 이건 개죽음이에요. 누가 신경 쓰겠어요."
손가락만 보지 말고 달을 봐야
민주당 여성위원회에서 버스를 대절하여 영도를 찾던 날, 그들은 연신 "김진숙, 사랑해요!"를 외치고 있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부르짖고 있는데 그들은 그것을 부르짖고 있는 '김진숙'만을 보고 있었다. 김 지도위원은 달을 보라고 하는데 그들은 손가락만 보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현재 가장 '핫'한 이슈는 '85호 크레인에서 반년 넘게 투쟁중인 여성, 김진숙'이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대중의 관심이 집중된 '김진숙'을 지키기 위해 영도로 내려오고 있다. 해고자들이나 한진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들의 실상에 대한 관심은 이미 뒷전이다. 이는 비단 한진중공업 크레인 투쟁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작년 말, 기륭전자 구사옥 앞에서 포크레인 고공농성으로 기륭투쟁현장이 언론의 집중을 받던 그 때였다. 5년을 넘겨 투쟁하도록 한 번도 얼굴을 내비치지 않았던 민주당 위원들이 하나 둘, 방문하기 시작하자 누군가가 탄식하듯 한 마디를 뱉었다.
"저 얼굴 보자고 5년을 싸웠구나."
▲ 6년 만에 극적인 노사합의를 도출하고 눈물을 흘리는 기륭전자 조합원들. ⓒ프레시안(김윤나영) |
실제로 기륭전자 비정규직노동자들은 투쟁을 시작한 지 6년째 되던 해, 극적 합의를 할 수 있었다. 90일이 넘도록 단식을 하고도 해결되지 않았던 문제가 단시간에 해결 국면을 맞는 것을 보면서 그들은 어떤 심정이 들었을까. 5년간 꿈쩍도 않던 정부, 또 5년 동안 나 몰라라 했던 제 1야당 사람들이 찾아와 해결 운운 하는 것을 들으며 어떤 복잡한 생각들을 했을까. 그 가운데 과연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심각한 고민들이 존재했을까.
내년 양대 선거를 앞두고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까지 '비정규직 문제'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법제도 개정에 대한 심각한 고민 없이, 소위 '얼굴 비추기' 일정들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조남호 회장이 귀국하면서 본격화 된 한진중공업 청문회를 앞두고 언론에서는 그에 발맞추어 또 한 명의 '청문회 스타'를 예감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진중공업 투쟁 현장은 내년 양대 선거를 위한 유권자 표심잡기 현장으로 비화되어서는 안 된다. 김 지도위원이 온 몸으로 말하고 있는 단 하나의 원칙을 그들이, 혹은 우리가 훼손시켜서는 안 된다.
내 자식들은 이렇게 서럽게 일 하면 안 되잖아요
김진숙 지도위원은 말한다. 저들의 비참한 삶을 보라고. 정규직, 비정규직 할 것 없이 살아남으려는 발버둥, 저것이 그들의 이기심의 실체라고. 너와 나는 함께 저 삶을 바꾸어 나가야 한다고.
명자 씨는 말한다. "텔레비전에서 말만 '비정규직', '비정규직' 하는데, 그 사람들이 이런 걸 어찌 다 알겠노."
텔레비전에서 앵무새처럼 '비정규직 문제'를 반복해서 떠들어대는 사람들에게 그녀는 또 엄마의 이름으로 이야기한다. 말로만 떠들지 말고, 내 자식들은 나처럼 살지 않게 해 달라고. "내 자식들은 이렇게 서럽게 일 하면 안 되잖아요."
이 세상 모든 엄마들을 위해, 또 아빠들을 위해, 형제, 자매들을 위해, 그 모든 노동자들을 위해 우리는 김 지도위원의 '원칙'에 가슴으로 함께해야 한다. "타협하지 않겠다", "포기하지 않겠다"라는 원칙을 지키고자 목숨까지 내놓은 그의 목소리와 함께해야 한다. 그 모든 자본의 '합리적 경영'이라는 변명에 맞서서, 살아남기 위해 이기적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맞서서, 내 자식만은 내 형제만은 정리해고자로, 비정규직으로 내몰지 말자고.
▲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한진중공업 근처에 모인 희망버스 참가자들. ⓒ프레시안(최형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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