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KC에서 2년간 일했다는 조명철(가명) 씨는 "회사가 2008년부터 샤워실 앞 탈의실 등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노동자를 감시해왔다"며 "아무도 모르게 나체까지 찍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모욕감과 배신감이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했다.
ⓒDKC지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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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고 회사의 징계를 받는 과정에서 '나체 동영상'을 발견했다. 민주노총 화학섬유연맹 DKC지회는 "6월 말 노조 회계감사부장이 회사가 붙인 공고문을 떼어내 징계를 받았는데 회사가 증거로 내세운 사진이 찍힌 각도가 이상했다"며 "뒤져보니 탈의실에까지 카메라가 설치됐고, 화면은 관리자 기숙사방 침대 밑에서 발견됐다"고 밝혔다.
DKC지회는 "회사가 사원들이 노동조합을 만드는지 감시하기 위해 4년 전부터 몰래카메라를 설치했다"고 주장했다. 정선영 조직국장은 "실제로 2008년에 노조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사장이 해당 노동자들을 불러 추궁해서 무마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에 사측은 "화재와 도난 예방을 위해 2009년부터 CCTV를 설치했으며, 이는 노조 감시와는 무관하다"고 맞섰다.
"관리직과 외국인노동자가 모여 만든 노조?"
익산 DKC에는 생산직 노동자 40여 명이 고용돼 LS그룹의 계열사인 가온전선에 납품할 전선과 케이블을 만들었다. 그러다 지난 5월 21일 이들 중 32명이 민주노총 화학섬유연맹에 가입했다. 노동자들은 "5년차 사원이나 신입사원이나 똑같이 최저임금을 받으니 일할 맛이 안 나서", "관리직원이 '야 임마'라고 반말하지 않았으면 해서", "12시간 주야간 맞교대가 힘들어서" 노조에 가입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총 5차례 교섭이 이뤄졌었다. 한때 노사는 극적으로 합의를 보는 듯했다. DKC지회는 "6월 중순에 몰래카메라가 설치된 것이 확인되면서 사측이 기존의 강경하던 입장을 바꿔 단체교섭을 마무리하기로 했다"며 "사측안까지 제시하면서 노사가 빨리 실무교섭을 하자고 합의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교섭은 7월 사내에 또 다른 DKC 노조가 들어서면서 어긋났다. 처음 32명으로 시작했던 DCK지회에는 조합원이 19명만 남은 반면, 현장 생산부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새로운 DKC노조는 조합원 34명을 확보했다. 조 씨는 "회사는 '몰카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교섭이 잘 될 것처럼 우리를 안심시키는 시늉을 했다"고 주장했다.
정 조직국장은 "회사가 기존 조합원도 빼가고 촉탁직, 계약직, 관리직, 심지어 외국인 노동자까지 모아서 7월 초에 어용 노조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회사가 우리의 교섭 요구는 무시하면서 어용노조와의 교섭을 유도했다"며 "복수노조를 활용해서 기존 노조를 깨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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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노조 인원 적어도 교섭할 수 있었는데…
사측은 "7월부터 복수노조 제도가 시행됐으니 교섭창구를 단일화해 오라"며 DKC지회와의 교섭을 거절했다. DKC지회는 "복수노조 제도가 도입되기 전인 7월 1일 이전에 이미 교섭을 해왔던 노조에 다시 창구 단일화 절차를 밟으라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사측이 직접 교섭안까지 내놓은 상황이므로 지금까지 진행했던 교섭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 관련 기사 : "단일 노조인데도 교섭창구 단일화해서 와라?")
DKC지회는 특히 "창구 단일화를 하면 우리는 과반수 노조가 아니기 때문에 교섭권이 없다"며 "사실상 교섭을 안 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반발했다. 정 조직국장은 "예전엔 인원이 적은 노조도 교섭할 수 있고 안 되면 파업권이 주어졌는데, 이젠 과반수 노조가 아니면 교섭도 못하고 파업도 무조건 불법이다. 과반수 노조가 아니면 보장 받는 게 아무 것도 없다"고 토로했다.
DKC지회는 그동안 회사가 수집한 동영상과 성실 교섭을 요구하며 한 달간 회사 앞에서 천막 농성을 벌였었다. 극적인 합의는 지난 8일 "복수노조 제도가 시행되는 7월 1일 전에 회사 측과 단체교섭을 하던 노조가 교섭대표 노동조합이 된다"는 법원의 결정이 나오면서 이뤄졌다. DKC지회는 노조 사무실을 얻고 오는 17일부터 교섭을 재개하기로 사측과 합의한 상태다.
▲ 기숙사, 샤워실 앞 탈의실, 사원 게시판 앞 등에서 발견된 CCTV. 노동자들은 "그동안 샤워실 앞까지 CCTV가 설치된줄 전혀 몰랐다"며 "이걸 '카메라'라고 제대로 알아볼 사람은 드물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측은 "CCTV를 설치했다고 사내에 공지하지는 않았지만, CCTV 크기가 큰 만큼 누구나 알아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DKC지회 |
"아무리 노조 감시 목적이라도 나체 찍는 건 아니다"
조명철 씨는 "1년 전 술자리에서 노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어떻게 윗사람 귀에 들어갔는지 곧바로 사직서를 쓸 것을 강요받은 적이 있다"며 노조를 만들려는 움직임에 대해 예전부터 감시가 있었음을 시사했다. 'CCTV 사건' 또한 그 일환이라는 것이다.
DKC지회의 조합원인 박준구(가명) 씨는 "아무리 노조를 감시하는 목적이라도 나체를 찍는 건 하지 말아야 할 행위"라며 "그런데 회사는 '그래서 뭐가 잘못됐느냐며 고소하려면 해보라는 식'으로 나온다"고 답답해했다. 그는 "몰카 사건 때문에라도 노조일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여기에 대해 사측 관계자는 "몇 년 전 주차장에서 도난사건이 발생하면서 주차장에 CCTV를 설치해달라는 민원이 들어왔다"고 해명했다. 주차장에 CCTV를 설치하는 김에 사내 게시판 앞, 기숙사, 샤워실 앞 탈의실 등에도 설치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샤워실 앞에 CCTV를 설치한 사실을 사원에게 공지한 적 있느냐는 질문에는 "없다"고 말했다.
정 조직국장은 "식당 아주머니와 청소 아주머니도 남자 직원들이 일할 때 문을 잠그고 씻었는데 그 모습도 다 찍혔다"며 "아주머니들은 계약이 해지될까 두려워 아마 말도 못 꺼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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