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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아 '섹시댄스' 안 된다는 '꼰대'들의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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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아 '섹시댄스' 안 된다는 '꼰대'들의 코미디

[기고] 대중음악 심의, 비틀거리는 '망나니 칼'

대중음악 심의가 다시 논란의 가운데 오르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최근 포미닛 현아의 솔로 곡 <버블팝>의 춤 동작이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안무를 바꾸라고 지적했다. 현아 측은 이에 반발해 솔로 곡을 방송에서 선보이지 않겠다고 했다. 여성가족부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는 비스트와 애프터스쿨, 백지영, 박재범, 허영생 등의 노래를 무더기로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고지했다. 이에 따라 해당 곡들은 오후 10시 이전에 방송이 불가능해졌고, 음반에는 청소년 유해매채물을 알리는 표지를 부착해야 한다.

사전심의제도가 철폐됐으나, 여전히 대중예술에 대한 행정기관의 심의는 살아있다. 특히 전문기관이 없는 대중음악계의 반발이 크다. 이에 <프레시안>은 대중음악평론가 박은석 씨의 글을 싣는다. 박 씨는 엄연히 마약에 관한 노래가 방송을 타는데도 한켠에선 '야하다'는 주관적 판단기준으로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는 현실이 심의위원들의 원칙 없는 대응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편집자>


몇 년 전 어느 날 아침인가, 출근길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라디오 방송에서 "활기차게 하루를 시작하시라"며 아프로맨(Afroman)의 <Because I Got High>를 틀어주는 걸 듣고 혼자 웃은 적이 있다. 이 노래는, 간단히 말해, 대마초로 인생을 망친 남자가 대마초에 취해 자신의 일대기를 노래로 부른(걸 가정한) 곡이기 때문이다. 개념 없는 마구잡이 선곡? 아니면 아직도 얼굴에 잠(혹은 술)의 기운이 남아있는 샐러리맨들에게 '취하면 망한다'는 노래를 들려주고 있으니 교훈적인 선곡이라 해야 하나? 아무튼 그런 정황적 측면을 떠올리자니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담당 PD의 (별 생각 없이 골랐을 게 분명한) 선곡을 논쟁하자는 말이 아니다. 중요한 건 아무도 가사의 내용 따위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외국 노래여서 그런 것도 아니다. 몇 년 전 미국의 젊은 음악 팬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의 가사가 구체적으로 무슨 내용인지 관심 갖는 사람은 20%가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물론 자국어 노래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앞서 언급한 담당 PD의 선곡은 방송 청취자의 양상을 반영한 결과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 세상에 대중음악 가사로 핏대를 세우는 인간은 두 종류밖에 없다. 비평가거나 심의위원이거나. 그리고 그들 가운데 항상 문제가 되는 측은, 내가 비평가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심의위원이라는 부류의 사람들이다. 예컨대, 이런 사례도 있었다. 요즘 어떤 광고의 배경음악으로 쓰이면서 반가운 마음을 동하게 한 노래 <What's Up>은 포 넌 블론즈(4 Non Blondes)라는 밴드의 히트곡이다. 국내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그런데 국내에 발매된 그들의 앨범에는 노래 하나가 빠져 있었다(아직 음반 사전심의 제도가 엄존하던 당시였다). <Morphine and Chocolate>이라는 곡이다.

이쯤 되면 저 노래가 왜 앨범에 실리지 못했는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텐데, 문제는 그 내용이 '모르핀'으로 상징된 마약류의 폐해를 다룬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노래의 의도는 그러니까 마약에 의존하는 일은 위험하다는 경고였는데, 이에 우리의 심의위원들께서는 그래도 '모르핀'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으니 위험하다고 경고를 날리셨다. 마약의 위험은 경고하되 마약이란 단어는 쓰지 마라?

여기서 다시 한번 웃기는 정황이 떠오른다. 예컨대, 여성가족부에서 성매매 근절 캠페인을 벌인다고 해보자. 그건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일이다. 그런데 성매매라는 단어가 풍기는 음습하고 역겨운 느낌의 부정적인 파장을 고려하여 캠페인에서 성매매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고 생각해보라. 그럼 아마 이런 장면이 펼쳐질 것이다. "그 왜 거 있잖습니까. 남자가 돈 주고 여자를 사서(아니면 그 반대거나, 아무튼) 응응하는 그거. 바로 그걸 이 사회에서 뿌리뽑자는 말씀입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짓거린가. 바보들도 아니고 말이지. 성매매가 유해한 것이지 성매매란 단어가 유해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 식으로 따지면 세상에는 폐기해야 할 단어들 천지다. 술, 담배, 핵전쟁, 암, 지역감정, 강아지(다시 말해, 개XX), 인종차별, 한나라당 등등.

경제의 수준과 도시화의 정도를 감안할 때, 대한민국은 (이 시대의 가장 유해한 두 가지라고 할) 마약과 총기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나라다. 그리고 그건 도덕과 윤리에 대한 오랜 전통 덕분이다. 절대로 심의위원들 덕분이 아니다. 제발 부탁 드리건대, 이상한 방식으로 존재가치를 드러내려고 하지 마시라. 버젓이 방송에 나와 "단어 한두 개만 빼면 훌륭한 노랜데, 왜 굳이 술, 담배 같은 걸 넣어서 그렇게 만드는가?"라고 반문하지 마시라. 누군가 당신께 "단어 한두 개만 똑바로 사용했으면 훌륭한 표준어 구사인데…"라고 시시콜콜 말꼬리를 잡으면 어디 인터뷰할 엄두가 나시겠는가?

우리는 중국산 제품을 좋아해서 사용하는 게 아니다. 그게 없으면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에 사용한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다. 마찬가지다. 술이건 담배건, 아니면 섹시한 의상이건 춤이건 간에, 그것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양상이다. 그건 모두 우리가 만들어낸 것들이다. 그리고 대중음악은 그 현상적 측면을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설마 유행가요의 노랫말에서 탈식민주의와 신자유주의가 국제정세에 미치는 영향 따위에 대한 논문을 기대하고 계신가?

▲현아의 춤은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방송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선정성의 기준은 무엇일까. 카라의 엉덩이춤, 소녀시대의 핫팬츠 안무는 문제 없이 방송을 탔다. ⓒ뉴시스
사실, 나도 나이가 들어서인지, 열예닐곱 먹은 어린 소녀들이 입다 만(혹은 벗다 만) 것 같은 옷을 입고 이상한(나는 그게 선정적이라기보다는 이상하다고 느낀다) 춤을 추는 모양이 딱히 마음에 드는 건 아니다. 그러나 내가 무언가를 거부하는 것과 당신도 그걸 거부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후자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에게 부여된 가장 근원적인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다. 창작의 자유 운운할 것까지도 없다.

그런데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여성가족부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심의의 잣대를 망나니의 칼날마냥 휘둘러대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이 청소년들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들은 청소년들을 걱정한다기보다 청소년들을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어린 노무 자식들이 데스메탈 같은 걸 줄창 들어대다가는 누군가를 찢어 죽일지도 몰라. 녀석들은 어리석거든." 뭐 이런 심리상태 아닐까? 진심으로 청소년들을 걱정한다면 교육의 현실부터 어떻게 좀 개선해주길 바란다. 그게 교육이, 학교가, 어른이 할 일이다. 언제부터 청소년교육의 책임을 가요기획사에 분담시킨 건가?

솔직히,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 싶다. 21세기에 들어선지도 10년을 훌쩍 넘긴 마당에, 원고료를 받고 이런 글을 써야 한다는 게 우습고 서글프다. 최근 문제가 된 불합리한 심의의 실례들을 여기 늘어놓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그건 받아 쓰기에도 너무 치졸하다. 그 밖에도 할 말은 많지만 이만 하려고 한다. 말귀가 통할 것 같지도 않고, 짜증이 터질 것 같기도 하다. 유신시대를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고충을 살짝 실감한다고 얘기하면 오버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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