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목숨 붙이고 있는 게 최대 목표지요"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목숨 붙이고 있는 게 최대 목표지요"

[또다른 소금꽃, 비정규직·①] 이명박, 김진숙 그리고 하청노동자들의 정의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한진중공업 투쟁에 대한 기획 르포를 보내왔다. 앞으로 3회에 걸쳐 김진숙 지도위원에 대한 글, 한진중공업 투쟁의 이면에서 아직도 고립되어 있는 한진중공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 그리고 그를 둘러싼 정치적 이슈들을 차례로 싣는다. <편집자>

때 아닌 정의 담론이 대세다. 그 바람을 불러 온 것은 다름 아닌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한권의 책이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는 정의란 '옳은 것'이며 모두에게 공정하고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며, 절대적인 가치를 가진 것이다. 상황이나 대상에 따라 변하지 않는 절대적이고 완결된 기표. 그러나 요즘 유행하는 텍스트 속 '정의'에 대해 대중들이 열광하는 지점은 애초 그 기표가 가진 절대적인 가치와는 꽤 큰 간극이 있다. 정의라는 담론이 여간해서는 감동받지 못하는 이 시대 냉소적 대중들에게 바람을 불러 일으킨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바로 대중들이 집중하는 것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아니라, 세계 최고 일류라는 '하버드' 대학의 '최고' 명강사 '마이클 샌델'이기 때문이다. 마이클 샌델이 강연하는 텍스트 속 '정의'는 그래서 절대적 의미의 '정의' 그대로 대중들에게 다가설 수 없다.

이명박의 정의, 김진숙의 정의

이 기표의 절대성과는 별개로 현실 속의 '정의'란 때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그 용도가 바뀌고 때로 일회성 변명거리로 편리하게 사용(?)된 후 폐기되기도 한다. 그것은 아무 것도 담지 못한 텅 빈 기표로 이리저리 떠돌면서 '사용'되고 있다. 그 적절한 예 중 하나가 이명박 대통령의 '공정사회'론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 책을 지난해 여름휴가지까지 가져가 읽고서 감화를 받은 나머지 집권 후반기 핵심 가치를 '공정사회'로 잡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 정권 들어서고 나서 지금까지도 이 나라에 '공정성'이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회의적인 것을 보면 껍데기 뿐인 '정의'가 이 나라를 배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와 같지만 또 다르게 '정의' 바람을 불러 온 사람이 있다. 바로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위의 김진숙 지도위원이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정의라는 것을 도구로 '사용'할 줄 모른다. 그에 따른 현란한 텍스트를 만들어 낼 재간도 없다. 게다가 그는 소위 '못 배운 여자'라는 꼬리표까지 붙어 있다. 그런 그가 말이 아닌 자신의 존재 자체로 정의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29일 현재로 205일째다.

"8년 동안 때지 못한 보일러를 틀던 날 밤, 그 새벽. 길을 나섰을 때 나는 이미 마음을 굳혔습니다."

그는 '정의'라는 것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어떤 텍스트보다도 더 '정의'라는 절대적 기표에 가까이 다가서 있다.

▲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 ⓒ노동과 세계(이명익)

냉담한 현실과 고립감, 그리고

"희망버스 올 때가 157일차 되는 날이었더랬는데, 그날까지 고립되어서 싸우고 있었으니까."

그녀가 말하는 것은 거창하지 않다. 단 한 가지, 정리해고 철회다. 그 선언은 삶으로 내려와 보면, 또 다른 의미가 된다. 그녀를 이모라고 부르는 조합원들의 어린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들, 그리고 김주익이 곽재규가 살려 놓은 사람들에게 소소한 일상들을 돌려주는 것. 그것 하나다. 그런 그녀의 정의가 세상에 가 닿기까지 157일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 순간을 위해 그녀는 자신의 전 생애를 다 걸었다. 85호 크레인은 그녀에게 그런 의미였다. 그녀는 그 시간들을 '고립'이라고 표현했다.

"여기 올라와서 한 달 쯤 되었을 때였을까. 사람이 바보가 되어가는 것 같더라구요. 이야기들을 듣고 보긴 하는데 이게 내 걸로 안 와 닿는 거지. 저는 징역 살 때도 독방생활을 오래 했었더랬거든요. 사람들이 계속 면회를 오는데 말을 못 알아 듣겠더라구요. 뭐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늘 하던 말인데도 불구하고 내용을 파악 할 수가 없었어요. 그게 굉장히 절망감을 줬어요. 그게 징역 살면서 가장 힘들었더랬는데. 그 때 누가 독일이 통일되었다 그러는데 의미가 파악이 안 되는 거예요. 어떻게 통일이 되었다는 건지, 적화통일이 되었다는 건지, 뭔지 도무지 감이 전혀 안 와 닿았었어요. 아직도 그 기억이 선명해요. 신문에 헤드라인으로 '독일 통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다'라면서 시커멓게 뽑아져 나오는데도 먼 세상 이야기 같고, 우리나라에서도 대단한 이슈로 이야기가 되었는데도 거기에 도저히 다가갈 수 없는. 그런 답답함들이 참 컸었더랬어요."

세상에 미처 닿기 힘들었던 그녀와 그녀를 둘러싼 가혹한 현실은 오래도록 소통불능이었다. 세상은 냉담했고, 그녀는 그런 세상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희망의 매체, 트위터

"스마트폰이 올라왔는데, 이걸 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는 거예요."

인터넷도 메일 주고받는 것 외에는 할 줄 몰랐다는 그녀는 처음엔 띄어쓰기 하는 법도 몰라 스마트폰과 오래 씨름했단다.

"그때 띄어쓰기를 안 하고 올리니까 누가 이재오가 그렇게 쓴다고 하더라고. 사실 당시에는 띄어쓰기 할 줄도 몰랐더랬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연구를 해가지고 띄어쓰기도 해 보고."

김 지도에게는 트친(트위터 친구)들이 많다. 그 트친들은 전국 방방곡곡에 흩어져 있으면서도 그녀와 24시간을 함께 한다. 그 수많은 트친들은 6월 11일 온라인 내의 피상적 관계를 넘어 오프라인으로, 85호 크레인 앞으로 달려왔다. 활자로만 대하던 사람들이 서로의 체온을 느끼면서 진짜 서로 눈을 맞추고 어깨를 걸면서 진짜 희망을, 기적을 만들어냈다. 크레인에 오른 지 157일차 되던 날, 희망버스를 타고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을 보면서 김 지도는 굉장히 놀라웠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는군요."

'정의'를 활자로만 대하던 대중들이, 타인의 고통에 냉소적이던 대중들이 이제 진짜 희망을, 정의를 만들어내고 있다. 비어있던 기표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눈물로, 마음으로 그 내용을 채워가고 있다. 그리고 이제 고립에서 간신히 벗어난 그녀와 여기, 여전히 고립되어 있는 한진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있다.

▲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 ⓒ이혜정

또 하나의 목소리, 비정규직 노동자(한진에도 하청 노동자가 있다)

"이거 신분보장 되나요?"

한진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로 10년을 살았다는 그가 던진 첫 마디였다. 그에 대한 확답을 받고서야 이야기를 시작한 그의 이름은 김철수(가명)씨. 2003년, 김주익 지회장이 목숨을 던진 그 해 봄에 입사했다고 했다.

"지금은 하청 사람들이 7, 80%가 다 바뀌었어요. 일이 없으니까 폐업하고 나가는 업체들도 부지기수고. 2008년도부터 하청 사람들이 해고되기 시작했어요. 업체들이 줄줄이 폐업하면서 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해고되기도 했고요."

정규직 노조가 하청의 대량해고 방패막이가 되어 주지 못한 것에 대해 그는 서운한 감정을 표현했다.

"수빅 문제 때문에 분명히 정규직도 구조조정 온다. 1사 1조직 해야지 만이 막을 수 있다. 하청사람들이 그렇게 노조에 요구를 해도 나서주지 않더라고요. 결국 1사 1조직에 대한 요구가 두 차례 부결되었었어요."

2005년, 한진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사내하청지회 조직 움직임이 있었다. 당시 김용규 준비위원장은 '통근버스 타기 운동' 등을 주도하면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동참을 호소한 바 있다. 그러나 김 준비위원장이 일하던 펄판블록조립업체 한신공사가 폐업해 버리면서 사내하청지회 결성은 실패로 돌아갔다. 사내하청지회 결성을 무마시키기 위해 사측에서 업체 폐업이라는 방식으로 김 준비위원장을 해고시킨 것이라고 철수 씨는 단호하게 말했다.

"비정규직 사업이 하청사람들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말은 맞는데, 상황상 너무 힘들거든요. 말하자면 김용규 씨처럼 해고 당하는 거 밖에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청 사람들이 어느 정도 조직을 만들 때까지는 정규직 조합원들이 같이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더라고요."

하청 상황은 지금 말도 못하게 어렵다고 토로한 그는, "저도 회사에서 나가라는 탄압이 많았는데, 질기다 보니까 살아남은 거지요"라며 웃는다. 그 웃음은 인터뷰가 끝나고서도 내내 마음에 걸렸다.

무법천지, 서러운 노동현실

철수 씨는 요 사이 1, 2년이 10여년 회사생활 중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하청 세력이 계속 약해지니까 더 열악해졌어요. 지금은 일당직, 말하자면 물량팀이 엄청 많아졌어요. 저희 회사 같은 경우에도 한진 내에서는 튼튼한 회사다 했었고, 일당은 거의 안 썼거든요. 그런데 사람들 다 내보내더니, 일이 없을 경우에 그 동안 휴업수당을 주기 싫으니까 희망퇴직을 쓰라고 하는 거예요. 지금 모든 하청업체가 다 그래요. 나가고 좀 있다가 한달 후에 전화 와서 나오라 그래요. 그러다보니 퇴직금은 아예 없어진 지 오래고요. 여기는 법도 없고, 그런 실정이에요."

목숨을 붙이고 있는 것, 그것이 현재 철수 씨의 최대 목표라고 했다. 예전에는 '하청통신'이라는 사이트로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부당한 노동현실을 고발하고 항의하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고용자체가 너무 불안해서 아예 말조차 꺼낼 수 없다는 것이다.

"하청사람들은 이제 목소리도 못 내요. 말 그대로 일당직이니까 나가라면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거든요."

그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말만 많은 운동 현실에 대해서도 비판하면서, 직접 행동해야 하지 않느냐며 반문했다. 정규직 노조 집행부가 하청노동자들의 현실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응한 것에 대해서는 서운한 감정을 감추지 못했지만, 지금 김 지도위원의 투쟁에 대해서는 응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쨌든 노동조합이 살아야지만 하청도 살 수 있으니까요. 여자의 몸으로 저렇게 오래 올라가 있는 김진숙 지도위원에 대해서도 응원하고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지만, 마음으로는 지원하고 있어요."

동지를 적으로 돌리는 자본의 잔혹성

김 지도위원은 지금 노동운동의 구조나 고용의 구조가 노동자들을 이기적으로 만들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지금 현실은 노동자들끼리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구조가 되어버렸어요. 정규직 내부에서, 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서요. 저는 이게 노동운동 전반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입버릇처럼 1사 1조직을 주장하고, 원하청 연대를 주장하지만, 그 문제에 대해서 정말 진정성 있게 가슴을 열고 다가간 경우가 있었는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김 지도위원은 무겁게 말을 이었다.

"하청노동자들이 해고될 때도, 다음은 내 차례라는 생각은 다들 본능적으로 합니다, 사람들이. 고용이 불안한 사업장일수록 오히려 더 하청노동자들을 끌어안고 같이 가야 전체 고용이 지켜진다. 이것이 되어야 하는데, 계속 해고되는 노동자들을 봐 오니까 그렇게 생각하기가 쉽지가 않은 게 현실이지요."

이번 정리해고가 끝나고 나면, 다음 차례가 자기가 된다는 걸 알면서도 작업에 복귀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들에게 비정규직 문제는 너무 먼 미래의 이야기처럼 들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서는 그 책임이 일차적으로 정규직 노조에 있음을 언급했다. 정규직 대기업 노조 중심의 배타적, 이기적 풍토를 바꾸어내기 위해서는 비정규직들이 중심이 되어 운동의 풍토를 바꾸어내야 한다고 했다. 그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서 운동의 가능성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동안 8, 90년대 치열하게 싸워서 지금의 자리까지 왔는데 그때 치열하게 싸웠던 성과들을 IMF이후 10년, 15년 동안 계속 까먹어왔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것이 임금의 문제에서 고용의 문제까지 닥쳐있는 거죠. 앞으로는 비정규직 조직사업에 운동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고 봐요. 비정규직들이 운동의 중심으로 나서야 한다고요."

비정규직의 현실들이 워낙 답답하고 불안하다 보니 그도 쉽지 않은 노릇 아니겠냐며 김 지도위원은 쓰게 말을 맺었다.

김주익이 살린 사람들, 김진숙의 아저씨들

열사 셋을 묻고도 현장에 복귀한 조합원들에 대한 심정을 물었다. 그들의 행동에 대해 단지 도덕적 책임만을 거론하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백여 명의 동료가 해고되는 모습을 애써 보지 않으려 하면서 현장에 복귀해 일을 하고 있는 그들. 김주익 열사가 자신들을 위해 죽었을 때, 김 지도위원의 추도사를 들으며 산만한 덩치를 구부려 함께 통곡했던 김진숙의 그 순박한 아저씨들 말이다.

"그분들에 대한 인간적인 이해가 없이는 우리가 말하는 단결이라는 것이 참 공허하죠. 운동이라는 것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과정이고 끊임없이 함께하려는 몸부림인데……."

그녀가 그들을 "이해한다" 했을 때, 그에 대한 구구절절한 이유들을 듣지 않고서도 그 말이 진심이었음을 알았다. 온 몸 구석구석 눈물로 절벅거리던 날들을 보낸 그녀가 이제 함께 싸워 온 동지들을 향해, 그리고 지금 현장으로 복귀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사정들을 가진 그녀의 아저씨들에게 "다시는 울지 말자" 한다. 희망이란 인간에 대한 진정한 믿음과 이해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정의는 그렇게 증명될 수 있다는 것을 그녀는 그녀의 전 생을 통해 말하고 있다.

비정규직의 희망과 정규직의 희망

요즘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새로운 형태의 희망, 희망버스에 대한 생각을 김 지도위원에게 물었더니 무겁던 목소리에 금세 활기가 돈다.

"동원되지 않은 자발적 운동, 누군가가 주도하지 않는 운동, 그게 희망버스의 진짜 희망이라고 봐요."

김 지도위원은 80년대 초창기, 민주노조 조직의 중심이 대중들이었던 것을 상기시키며, 희망버스가 소위 '조직의 장(지도부)' 중심의 운동으로 변질된 운동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것 같다 했다.

사실 대중들이 노동 사안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은 유례없는 사건임에 분명하다. 소위 희망버스의 '희망 바이러스'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운동의 풍토가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이 '희망 바이러스'가 일용직으로 하루하루를 겨우 버티고 살아가는 한진중공업 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희망은 될 수 없는 것일까. 멀지만 가까운 사람들, 서운한 감정들을 모두 묻고서도 멀리서 응원하는 마음들. 그것이 한 데 모아진다면 누군가가 소외되거나 배제되지 않은, 너와 나 모두의 희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서로가 상처를 주고받지 않고도 희망을 말할 수 있는, 그때 우리는 액면 그대로의 '정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살아서 내려와야 희망이 된다

"제 삶에서 제가 선택한 일은 거의 없었어요. 징역을 간 것도, 수배를 당한 것도, 대공분실을 간다든지 해고를 당한다든지 한 것도…. 이 싸움도 제가 선택한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 한진중공업 크레인. ⓒ이혜정
김주익 열사를 죽이고 8년 후, 다시 정리해고라는 똑 같은 사안으로 한진중공업은 김 지도위원을 크레인 위로 떠밀어 올렸다. 유례없이 추웠다는 지난 겨울, 그 새벽에 8년 동안 얼음덩어리처럼 식어버린 85호 크레인에 한 걸음, 한 걸음 체온을 실어 올랐다. 지금도 한참을 목을 꺾어 올려다 보아야지만이 볼 수 있는 그녀. 그런 그녀가 이젠 새가 되고 싶단다. 주익씨도 새가 되었을 거라면서….

전국 각지에서 그녀를 통해 아직도 이 세상에 '희망'이라는 것이, '정의'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신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그녀를 이대로 날려 보내서는 안 된다. 스스로 선택한 삶이 없었노라고 고백하듯 읊어내는 그녀의 야윈 등을, 지친 어깨를 감싸 안아야 한다. 반드시 살아서 '정의'가, 그리고 '희망'이 건재함을 내내 알려달라고.

"이 싸움 하다가 구속되었던 김수영이라고, 한 젊은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너무너무 가슴이 아팠었어요. 내려가면 그 친구 면회를 제일 먼저 가려고 했는데 며칠 전에 집행유예로 나왔거든요. 며칠 전에 목표 하나가 그렇게 없어져버려서…. 목욕가야죠."

내려와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그녀의 답이었다. 땀내 풀풀 나는 그녀에게 웃으며 목욕 바구니 건네주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도해본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