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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백인을 공격했냐고? 백인들이 진짜 적이니까"

[해외시각] 유럽 극우파들에게 무슬림은 장기판의 말일 뿐

노르웨이 테러는 한 극단주의자의 돌발적인 행동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사회경제적 여유를 잃은 유럽의 백인들이 이민자들을 배척하고, 나아가 극우 민족주의의로 나아가는 큰 흐름 속에서 언젠가 터질 일이 터졌다는 설명이 일반적이다.

미국의 외교 문제 전문가 존 페퍼(Jogn Feffer)는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유럽의 극우파들이 경멸하고 공격하는 이슬람 교도 등 이민자들은 장기판의 말일 뿐, 사실 이번 사건은 유럽 내 이데올로기 전쟁이 극적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설명한다. 사회민주주의적 가치, 관용의 문화를 못마땅해 하는 우파들의 전쟁이라는 것이다.

존 페퍼는 외교정책 비평 사이트 '포린 폴리시 인 포커스(Foreign Policy In Focus)'에 26일 올린 글에서 이번 테러로 유럽 안에 있는 적(敵)의 정체가 밝혀졌다고 지적했다. 다문화주의가 유럽 고유의 가치를 파괴한다고 주장하는 우파적 사고방식이다.

우파들은 이슬람 급진주의에 대한 증오를 유럽의 다문화주의에 대한 공격 수단으로 활용한다. 우파들은 이민자에 대한 유럽의 관대함이 유럽의 전통을 무너트린다고 지적하지만, 사실 그들이 바라는 건 유럽이 발전시켜온 민주주의와 관용 등의 가치를 이전으로 되돌리는데 있다고 페퍼는 지적한다. 노르웨이 테러 용의자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가 평소 증오하던 이슬람 세력이 아닌, 자국의 집권당을 공격한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페퍼는 이제 유럽이 내부의 적을 직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 적은 이슬람 세력이 아니라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백인'이다. 좌우 집단의 대결 속에서 이민자는 공격의 명분이 될 뿐이다. 다음은 이 칼럼의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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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르웨이 연쇄 테러 용의자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빅(왼쪽) . ⓒAP=연합뉴스

스칸디나비아 반도 사람들은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예의바른 백인들이라는 동질성과 관용(tolerance)으로 명성이 높다. 그러나 그건 할아버지 시대에서나 볼 수 있던 스칸디나비아다. 지난 수십 년간 동쪽과 남쪽으로부터 이민자들이 꾸준하게 유입된 이후 이 지역은 상당히 다양성을 띠게 됐다. 그리고 외국인을 혐오하는 몇몇 우익 정당이 최근 부상하면서 관용 역시 상당히 줄어들었다.

5년 전 작가 브루스 바워(Bruce Bawer)는 이슬람과 이민자, 다문화주의에 반대하는 장문의 책 <유럽이 잠든 사이: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은 어떻게 서방을 내부에서부터 파괴하나>를 펴냈다. 오슬로에 사는 미국인인 바워는 그가 꿈에 그려온 스칸디나비아가 매우 다른 현실이 되어가는 모습을 불쾌해했다.

그는 책에서 무슬림에 대해 추한 말들을 썼지만 일반 유럽인들에 대한 경멸도 함께 드러냈다. "결국 유럽의 적은 이슬람교도나 이슬람 급진주의자가 아니다. 유럽의 적은 유럽 자신이다. 유럽의 자기파괴적인 소극성, 압제에 대한 관대함, 유화적인 태도가 적이다."

네오 나치에 대한 소극성을 말하는 건가? 우익 극단주의에 대한 관대함? 선동가에 대한 유화적 태도? 그걸 뜻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바워는 그를 지지하는 많은 우파 성향 인물들처럼 유럽의 이 '유화적인 태도'가 다문화주의의 병폐를 불렀다고 본다. 이 병폐가 관용하면 안 되는 것에 대한 관용을 조장하고, 인종차별주의를 너그럽게 봐주는 반(反)인종차별주의를 만들어낸다고 주장한다.

유럽 사람들이 대부분 백인이고 기독교인일 때 관용이란 건 좋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후 유럽은 이주노동자와 옛 식민지국가 사람들을 받아줬고 난민에게 피난처를 제공했다. 우파들은 달라진 유럽이 세상을 보는 방식, 새로 유입된 이들이 점차 주제넘게 행동하는 것에 대해 못마땅하게 됐다.

우파들은 이민자들은 물론 그들을 들여보내는 유럽사람들까지 탓했다. 그들은 1980년대 네오콘식 비평 방식을 빌려와 좌파 진영을 공격할 무기로 다문화주의를 집어들었다. 다문화주의에 대한 이들의 관점은 니콜라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같은 주요 유럽 지도자들이 유럽의 다문화주의 실현 실패를 탄식하는 데에서 드러났다.

다문화주의에 대한 경멸은 테러 용의자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의 횡설수설에서도 보인다. 그는 바워의 책을 광범위하게 인용해 쓴 일기에서 "다문화주의는 유럽적 문화와 전통, 유럽적 정체성, 유럽적 기독교, 심지어 유럽의 국민국가까지 해체하도록 설계된 반(反)유럽적 증오 이데올로기다. 그리고 유럽의 모든 것을 말살한다는 단 하나의 목적을 가가진 사악한 이데올로기다"라고 말했다.

브레이비크는 이슬람교도나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에게 총을 쏘지 않았다. 그가 소중히 여기는 유럽의 이상을 위협하는 이들을 가장 주된 적으로 인식하고 타깃으로 삼았다. 그는 집권 노동당과 옌스 스톨텐베르그 총리를 제거하기 위해 정부 청사에 폭탄을 터트렸다. 그 다음 그는 노동당 청소년 캠프로 가서 최대한 많은 이들을 쐈다.

그것은 사회민주주의와 관용, 전후 유럽에서 가장 훌륭했던 국가에 대한 공격이었다. 브레이비크는 브루스 바워가 책에서 규탄했던 내용과 유럽의 보수 정치가들이 연설을 통해 한탄한 부분을 그의 피비린내 나는 '십자군 전쟁'의 중심으로 삼았다.

'십자군 전쟁'이 적절한 표현인 게, 그는 1999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세르비아 폭격을 기점으로 폭력으로의 길을 걷게 됐다. 브레이비크는 코소보 알바니아계가 유럽 가장자리에 있는 무슬림이었기 때문에 세르비아의 탄압을 진심으로 찬성했다. 브레이비크의 사고는 가장 부정적인 의미의 '중세'에 머물러 있다.

진짜 십자군들도 1099년 예루살렘 인종 청소처럼 잔혹 행위에 의존했다. 십자군 전사들은 인종 청소를 서방의 영혼을 지키는 더 중요한 전투를 위한 '필요악'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멀리 떨어진 적과 싸우는데 힘을 쏟는 것만큼 기독교도와 투사, 절대 권력과 같은 유럽적인 것들을 그곳에 세우는데에도 힘을 쏟았다.

비주류인 브레이비크부터 주류의 바워까지 오늘날의 십자군 전사들은 이슬람 세력의 위협에 대해 얘기한다. 그러나 그들이 진짜로 두려워하는 것은 다양성이 보장되고 민주주의적이며 평등주의에 입각한 유럽이다. 그들의 혐오감은 탈레반의 혐오감과 똑같이 [외부세력에 대한] 불관용을 만들어낸다. 브레이비크의 테러 같은 행동은 알카에다의 공격과 꼭 닮아 있다.

언론들이 현실을 깨닫고 설명을 바꾸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CNN>부터 <폭스뉴스>까지 TV에 등장한 전문가들은 사건이 나자마자 배후에 무슬림들이 있을 것이라고 넘겨짚었다. 존 볼튼 전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나중에 용의자의 신원이 드러난 이후에도 [이슬람 배후설을]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영국 텔레비전에 출연한 전문가들은 왜 무슬림이 노르웨이를 싫어하는지에 대해 얘기했다. <워싱턴포스트>의 제니퍼 루빈은 <위클리 스탠더드>의 토머스 조셀린과 함께 팀을 이뤄 '지하드(성전) 괴물'을 탓했다. 이후 그들의 오류가 명확해지자 사과하는 대신 루빈은 자신의 생각을 간단히 바꿨다.

"매우 나쁜 사람들이 참혹한 일을 저지를 것이기 때문에 세계는 매우 위험한 상태로 남아 있다. 미국인을 죽이려는 사람들은 금발의 노르웨이인 보다 지하드 전사들이 더 많으며 우리는 서방과의 이데올로기 전쟁으로부터 오는 구조적이고 더 강력한 위협을 주시해야 한다."

우스꽝스럽게 핵심을 벗어난 말이었다. 누구도 [오클라호마 연방 청사 폭파범] 티모시 맥베이가 금발의 노르웨이인을 죽이려하는 것 이상으로 금발의 노르웨이인이 미국인을 죽이려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온 세상 사람들이 미국 사람들만 신경 쓰나?

'서방과의 이데올로기 전쟁'에 대한 얘기는 엄연한 현실을 은폐한다. 서방 내에서 벌어지는 이데올로기 전쟁을 은폐하는 것이다.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적 토대, 미국의 포괄적 다문화주의, 십자군의 유산인 노예제와 식민주의와 절대주의를 극복하려는 것 등을 공격하는 이데올로기 전쟁이다. 무슬림이건 멕시코인이건 이민자들은 이 큰 싸움의 말로 쓰일 뿐이다.

바워의 말은 맞다. 적은 이슬람도 이슬람 급진주의자도 아니다. 이 적은 백인이며 아마도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한다. 그렇지만 확실하다. 이 적은 예의바르지도 소극적이지도 않다. 그 적은 무기를 들고 있고, 위험하다.

*( )는 원저자의 표기이며, [ ]는 옮긴이가 추가한 내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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