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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러시아, MD 협상 결렬…유럽에도 '신냉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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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토-러시아, MD 협상 결렬…유럽에도 '신냉전'이?

[정욱식의 '오, 평화'] MD는 21세기 '철의 장막'인가

2010년 11월 이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러시아가 벌여온 미사일방어체제(MD) 협상이 결렬됨으로써, 유럽 및 미국-러시아 관계가 더욱 짙은 안개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외신들에 따르면, 7월 15일 러시아 정부가 미국 및 나토의 태도를 문제삼으면서 MD에 관한 합의를 더 이상 모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미-러 간에 새로운 군비경쟁이 촉발되고 이로 인해 냉전 해체 20년만에 유럽에서도 냉전이 부활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MD와 관련해 러시아의 요구 사항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미국과 나토의 MD가 러시아의 안보를 위협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법적 구속력을 갖춘 합의 형태로 약속하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러시아의 외교 차관인 세르게이 랴브코프는 2011년 5월 16일 러시아 의회 청문회에서 "우리는 우리의 안보를 (미국의 구두상의) 보장과 약속에 의존할 수 없다. 우리는 법적 구속력을 갖춘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이 자국 주도의 MD가 러시아의 안보를 위협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해왔는데, 이를 말이 아닌 법적 구속력이 있는 조약 형태로 보장하라는 의미이다.

랴브코프 차관은 미국이 러시아의 요구를 거부할 경우 러시아도 강력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랴브코프 차관이 밝힌 대응책으로는 러시아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이의 MD 협력 재고, 미-러 간에 체결된 새로운 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 철회 검토, 유럽을 겨냥한 중단거리 미사일 재배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미국과 나토는 MD가 러시아의 안보를 위협하지 않는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면서도 법적 구속력을 갖춘 합의는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실망한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부 장관은 7월 12일 미국 워싱턴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MD는 미-러 관계에 가장 큰 걸림돌로 남을 것"이라며 강력한 대응 방침을 천명했다.

러시아의 또 하나의 요구 사항은 나토-러시아가 '공동 MD'를 구축하자는 것이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4월 8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마치고, "우리는 전지구적 MD 체제를 구축하는데 미국과 협력하기를 희망한다"며 '공동 MD' 구축을 제안했다. 이는 미국 주도의 일방적인 MD 구축에 제한을 두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 나토는 러시아의 제안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미국과 나토는 러시아와의 협력의 필요성에는 동의하면서도 협력 분야로 정보 교환과 탄도미사일 위협 평가 정도로 한정하려고 한다. 이를 넘어선 '공동 MD'는 자칫 러시아의 영향력 증대와 미국 주도의 MD 구축에 제한을 야기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 포그 라스무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이 지난 4일 러시아 소치에서 열린 러-나토 회담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AP=연합뉴스

러시아, 가랑비에 옷 젖을라

위와 같은 러시아의 반발은 최근 미국과 나토의 일방주의적 MD 추진이 도를 넘어섰다는 판단에 기인한다. 러시아와 나토는 2010년 11월 MD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나토가 'MD 시스템을 공동으로 운용하자'는 러시아의 제안을 거부하면서 협력 분위기는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다. 또한 미국과 루마니아는 최근 미국 MD 시스템을 루마니아의 영토에 배치하기로 합의했는데, 공교롭게도 두 나라가 MD를 배치하기로 한 기지는 과거 소련이 공군기지로 사용했던 곳이다. 러시아가 미국이 MD라는 '트로이의 목마'를 앞세워 러시아의 세력권을 잠식해 들어오고 있다는 불만을 갖고 있는 까닭이다.

아울러 미국은 5월 초에 미래 MD 시스템의 핵심적인 센서로 이용될 ''우주배치 적외선 시스템(Space-Based Infrared Systems, SBIRS)'을 발사했다. 미국이 이처럼 MD 협력 국가를 확대하고 최첨단 MD 시스템을 하나둘씩 구비해가면서 러시아도 '팔짱만 끼고 있을 수 없다'는 인식을 더욱 강하게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랴브코프 차관의 발언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는 "현재의 MD는 우리의 전략적 안전을 훼손하지 않지만, 우리는 미래에도 미국 주도의 MD가 현재 수준으로 유지될 것인가에 대해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외교적 대응과 함께 MD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핵전력 현대화 등 군사적 대응에도 나서고 있다. 러시아는 미국과의 핵군축 협상을 통해 전략 핵무기의 수는 줄이면서도 새로운 탄도 미사일과 핵탄두 개발을 통해 핵무기의 역할은 유지하거나 강화하고 있다. 특히 2016년까지 신형 ICBM인 Topol-M 탄도 미사일, 전략 폭격기 현대화, 새로운 핵잠수함 배치를 통해 "새로운 삼중점(new triad)"를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최근에는 이동식 다탄두 미사일 개발에도 착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핵전력 현대화의 이면에는 냉전 종식 이후 '2류 국가'로 강등된 자국의 지위를 격상하기 위해서는 핵전력의 유지·강화를 통해 미국과의 전략적 균형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동시에 미국과의 핵군축을 통해 자국의 핵미사일 수는 갈수록 줄어드는 반면에 미국과 그 동맹국의 MD 능력이 지속적으로 강화되면, 언젠가는 미국과의 전략적 균형이 와해될 것으로 우려도 반영되어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러시아의 핵전력의 강화는 미국의 MD 정책 변화를 유도할 '외교적 카드'이자 MD라는 방패를 뚫을 수 있는 '강력한 창'이라는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다.

MD '강행'과 MD '반대'는 국내 정치의 연장?

상황을 더욱 꼬이게 만드는 요인은 미국과 러시아의 국내 정치에도 있다. 우선 오바마 행정부와 공화당 사이의 거래가 MD에 관한 미국의 유연성을 저해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러시아와의 새로운 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에 공들였던 오바마 행정부는 공화당의 반발로 이 협정의 비준이 불투명해지자, 2010년 12월 공화당의 요구를 수용해 상원의 비준을 받아냈다.

당시 공화당의 요구 조건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MD를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는 약속이었고, 또 하나는 러시아와의 핵감축 협정으로 인해 미국 핵전력의 약화가 초래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보장하라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은 공화당 지도부에 서한을 보내, 차질없는 MD 추진과 함께 10년에 걸쳐 모두 840억 달러를 투입해 미국 핵무기의 현대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공화당의 일부 상원 의원들은 오바마로부터 이러한 약속을 받아낸 직후, New START 비준에 동의했다.

그러나 공화당의 정치 쟁점화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일부 공화당 의원들이 오바마의 약속에 법적 구속력을 부여하기 위해 이를 입법화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내년 대선 및 중간선거를 앞두고 오바마의 MD 및 핵정책을 정치 쟁점화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오바마 행정부는 미-러 관계의 재설정(reset)을 위해서는 MD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러시아와 MD에 어떤 제한을 가하는 러시아와의 합의를 정치 공세의 빌미로 삼고 있는 미국 공화당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되고 있다.

러시아의 강경 대응 배경에도 내년 대선을 둘러싼 셈법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 러시아의 실세인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는 내년 대선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는데, 그는 미국의 쇠퇴를 러시아의 부흥의 기회로 인식하면서 대미 강경외교를 주문해온 인물이다. 특히 MD는 냉전 시대부터 러시아의 자존심이 걸린 사안이다.

이에 따라 MD에 대한 원칙적인 입장 고수는 강력한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필수적인 요소로 간주되고 있다. 푸틴 본인이 출마하든, 메드베데프 현 대통령의 재출마를 지지하든, 제3의 인물을 내세우든, 푸틴으로서는 본인의 영향력을 유지하는데 'MD 반대'는 그만큼 유용한 카드인 셈이다.

이처럼 MD를 둘러싼 전략적 갈등과 정치적 계산이 혼재되면서 지구촌의 질서는 더욱 불투명해질 전망이다. 미국은 유럽-중동-동아시아를 MD 구축의 핵심 지역으로 삼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대선에서 공화당의 정치 공세를 방어하기 위해 이들 지역의 MD 구축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MD를 미국 주도의 군사패권주의 강화 시도로 간주해온 러시아와 중국의 반발 및 대응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MD가 21세기의 세계를 또 다시 양분하는 '철의 장막'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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