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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지지하는 비정치적 노조?

[오민규의 인사이드 경제]인도판 복수노조 사례에서 배운다

"마침내 현대차 인도법인이 지난 몇 년간 거부해오던 노동조합을 인정하기로 합의했다."

두 달 전쯤 인도의 주요 언론에 보도된 기사이다. 현대차 인도공장 노사관계는 안 좋기로 꽤 소문이 난 곳이다. 2009년 한해에만 3차례의 파업이 벌어졌다. 그해 파업으로 67명의 해고자가 발생했고 이 문제는 지금까지도 노사간의 쟁점이 되고 있다. 수백 명의 노동자가 집단단식을 벌이다 경찰에 연행되는 일도 있었다.

무엇보다 '노조 인정'이 가장 첨예한 쟁점이었다. 현대차 측은 노동조합의 교섭 요구를 한사코 거절하면서, 대신 '종업원 위원회'를 통해 임금 및 기타 노동조건을 협의해왔다. 현대차 인도공장 노조는 종업원 위원회가 어용 세력에 불과하다며 작년에도 정당한 교섭요구에 응하라고 요구하는 사흘간의 파업을 벌인 바 있다.

그러던 현대차 인도법인이 올해 5월 12일 노동조합을 인정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인도 현지 언론에 따르면, 타밀나두 산업지대에 입주해 있는 다국적 기업 중 노동조합을 인정한 것은 현대차 인도법인이 최초 사례라고 한다. 그렇다면 지난 몇 년간 노동자들의 지난한 투쟁 끝에 마침내 노조 인정을 쟁취한 것일까?

현대차가 인정한 것은 다른 노조

이곳에 노조가 조직된 것은 2007년. '현대차인도공장노조'(Hyundai Motor India Employees Union, HMIEU)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고, 좌파 계열의 인도노동조합연맹(CITU)에 가맹되어 있다. 앞서 사례로 들었던 주요한 노동자들의 저항 역시 모두 이 노조가 주도한 것이었다.

하지만 현대차가 인정한 것은 현대차인도공장노조가 아니었다. 올해 3월, '현대차통합노조'(United Union of Hyundai Employees, UUHE)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노조가 결성되었고, 결성된 지 2개월 만에 현대차 인도법인으로부터 공식 승인을 받아 법적인 교섭 주체가 된 것이다.

현대차인도공장노조는 현대차통합노조가 사실상 사측이 주도하는 어용노조라며 크게 분개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노조 인정과 거의 동시에 기존 종업원 위원회가 전격적으로 해산한 것이다. 그동안 종업원 위원회를 통해 노사관계를 통제해오던 전략을 바꾸어 어용노조를 활용하기로 마음먹었다는 주장이다.

종업원 위원회는 노동조합과 달리 법적인 근거를 전혀 갖고 있지 않다는 약점이 있다. 지난해 6월 노조인정과 67명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는 사흘간의 파업 직후, 정부 중재 아래 해고자 복직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노·사·정 각 2인으로 구성된 '6인 위원회'가 구성되어 협의가 진행된 바 있다. 비록 67명 중 32명은 법적 소송결과에 따르기로 하고 나머지 35명에 대해서만 개별 심의를 하는 형식이었지만, 현대차 입장에서는 그동안 인정하기를 한사코 거부해왔던 현대차인도공장노조와 같은 테이블에서 협의에 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6인 위원회는 나중에 14명 복직을 만장일치로 의결하게 된다.)

현대차 사측 관계자는 현대차통합노조의 임원진들 모두 과거 현대차인도공장노조 조합원들 출신이며, 따라서 사측 주도 어용노조라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현대차통합노조 스스로 "우리는 비정치적 노조(non-political union)이다. 우리는 어떤 상급단체나 정치단체와 연관을 맺지 않고 있다. 사측도 비정치적 노조를 원하고 있었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는 상황이라 사측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또한 현대차통합노조 규모가 전체 노동자 과반수를 점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현대차인도공장노조는 의문을 제기한다. "그렇다면 전체 노동자를 상대로 투표를 해보자. 어떤 노조가 진정으로 자신을 대표하고 있다고 느끼는지 민주적으로 확인해보자." 그러나 현대차 사측과 현대차통합노조는 현대차인도공장노조의 총투표 실시 제안에 응하지 않고 있다.

정반대의 사례 : 인도 마루티 스즈키

현대차 인도공장 사례가 기존에 설립된 노조를 부정하고 사측 입맛에 맞는 신규노조를 인정한 사례라면, 반대로 기존 노조만을 인정하고 신규노조를 부정한 경우도 있다. 인도 최대의 완성차업체인 마루티 스즈키(Maruti Suzuki)에서 최근 한 달 사이에 발생한 사례이다.

마루티 스즈키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 스즈키와의 합작회사인데, 인도에 구르가온과 마네사르 2곳에 생산공장을 갖고 있다. 연간 생산능력은 120만대 규모로서 세단·해치백 등 승용차를 주로 생산하고 있다. 이 회사에는 마루티 캄가르 노조(Maruti Udyog Kamgar Union, MUKU)라는 이름의 노조가 오래전부터 결성되어 있었는데, 주로 구르가온 공장에 기반을 두고 있다.

지난 6월 3일, 이 회사의 마네사르 공장 노동자들이 마루티 스즈키 노동조합(Maruti Suzuki Employees' Union, MSEU)이라는 새로운 노조 설립신고서를 관청에 제출한다. 이러한 계획을 미리 알아챈 사측은, 노동자들을 협박하여 새로운 노조에 가입하지 않겠다고 서약하는 서명을 받으려 했다. 그러자 바로 다음날인 6월 4일부터 3000명의 노동자들이 새 노조(MSEU) 인정을 요구하며 마네사르 공장 점거파업에 돌입한다.

이틀 뒤인 6월 6일, 사측은 MSEU 임원진을 포함해 파업을 선동했다는 이유로 11명의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만다. 그러나 파업노동자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기존 요구에 11명 해고자 복직을 더해 점거파업을 지속한다. 최종적으로 합의에 이르는 6월 17일까지 이 파업은 무려 13일 동안 계속되었다.

마네사르 공장 노동자들이 보기에 기존 노조는 사측이 지배하는 어용노조였다. 임금이나 노동강도 강화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않았고, 수습사원과 계약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를 전혀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루티 사측은 "마네사르 공장에서 독립적 노조 또는 정치정당에 연루된 노조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버텼다. 오직 가능한 것은 그들이 기존 노조에 흡수되는 길뿐이라는 것이다.

▲ 6월 10일. 마네사르 지역 다른 사업장에서 연대하기 위해 달려온 2000여 명의 노동자들(오른쪽). 점거파업이 벌어지고 있는 마루티 스즈키 마네사르 공장 출입문(왼쪽). ⓒ국제금속노조연맹

정당한 요구를 내건 마루티 노동자들의 파업 소식에, 마네사르 지역 65개 노조가 2시간 연대파업을 결의하기도 한다. 6월 10일에는 이 파업에 연대하기 위해 2000여 명의 노동자들이 공장 앞으로 달려왔다. 이들 중에는 노조가 없는 사업장의 노동자들 일부도 있었다. 민주노조를 새롭게 결성하고 이를 인정받기 위한 투쟁이라는 점에서, 미조직 노동자들도 동병상련처럼 연대의식을 느꼈던 것이다.

전인도노동조합총동맹(AITUC), 인도노동조합연맹(CITU) 등 노선이 각기 다른 상급단체들도 '공동위원회'를 구성하여 파업을 지원하기 위해 나섰다. 6월 17일 오전, 해고 노동자 11명에 대해 인사위원회 결과가 나올 때까지 복직 조치, 새 노조 인정 문제에 대해서는 지방정부 노동부가 적절한 절차에 따라 처리할 것 등에 합의한 뒤 파업은 종료되었다.

인도 복수노조 사례의 교훈

한쪽은 신규노조만을 인정하고 다른 한쪽은 기존 노조만을 인정하려 한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자본가들 입장에서 자기 입맛에 맞는 노조만 인정하려 한다는 점에서 완전히 같다. 인도의 노동법 체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전혀 모르지만,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가 허용된 이달부터 한국 자본가들이 보여줄 태도 역시 똑같을 것이다. 게다가 위 사례들 모두 한국과 일본에서 인도에 진출한 자본의 행태 아닌가. 따라서 인도의 복수노조 사례는 한국의 복수노조 시대를 대처해갈 참조가 되어줄 것이다.

현대차인도공장노조는 사측이 신규노조만을 인정하자 이 문제를 노동위원회에 제소한 상태이다. 마루티 스즈키 노조 승인 문제가 노동부로 넘어간 것처럼 사실상 정부의 판단에 맡긴 것이다. 한국에서도 '창구단일화'라는 고약한 악법이 도입되어, 교섭의 절차마다 노동위원회가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대해 '긴박한 경영상 필요'를 인정해 자본에 완승을 선언해준 바로 그 노동위원회 말이다.

하지만 양 사례에는 공통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차이점도 있다. 민주노조 인정 문제를 정부의 판단에 맡긴 것과 관련해, 현대차인도공장노조는 자신의 결정으로 한 것이지만 마루티 스즈키 노조는 투쟁의 과정에서 벽을 넘지 못해 나온 불가피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마루티 스즈키 투쟁이 현대차 인도공장 투쟁보다 훨씬 넓은 연대가 조직되었고 더 완강하게 전개되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양 사례에서 투쟁의 조직화 방식이 달랐기 때문이다. 현대차 인도공장에는 8000명가량의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이들 중 정규직은 1650명뿐이고 임시직 노동자가 2000명에 달하며, 나머지 4000명 가까운 숫자가 실습생·기술훈련생 등 다양한 이름의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 그런데 인도공장에서 경쟁하는 2개의 노조 모두 정규직을 주력으로 조직하고 있으며 각각 800명 안팎의 규모를 갖고 있다.

마루티 스즈키 마네사르 공장의 사례는 분명히 대비된다. 이 공장에는 대략 3500명의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데 이들 중 900명은 정규직, 1500명은 수습사원, 그리고 1100명은 계약직과 실습생들이다. 그런데 초반부터 점거파업에 3000명이 참가했다는 것은, 정규직만이 아니라 압도적 다수의 비정규직을 함께 조직해서 저항에 나섰음을 말해준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저항의 역동성 크기와 연대의 폭이 달라졌던 것 아닐까? 현대차인도공장노조는 67명 해고자 복직 문제를 핵심으로 제기했지만, 마네사르공장 노동자들은 수습사원·계약직의 정규직화 요구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존 노조를 어용으로 규정했다. 해고자 복직 요구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투쟁의 조직과정 자체가 달랐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핵심이라 생각하는 대목이 달라진 것이다.

마네사르 지역 노동자들 또한 압도적 다수의 비정규직을 함께 조직하며 저항에 나선 마루티 노동자들을 적극 응원했다. 연대 행동에 미조직 노동자들까지 함께 나섰다는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복수노조 시대를 공세적으로 열어가기 위해 비정규직과 함께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수적으로 다수를 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마네사르 공장 사례처럼 저항의 역동성과 연대의 폭을 넓히는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간과할 수 없는 지점 : 비정치적 노조

두 개의 사례에서 도드라져 보이지는 않지만 놓치지 말아야 할 지점이 있다. 현대차통합노조가 스스로를 비정치적 노조(non-political union)라고 부르며,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사측이 자신을 파트너로 삼았다고 말한 점을 떠올려보자. 마루티 스즈키 사측 또한 "마네사르 공장에서 독립적 노조 또는 정치정당에 연루된 노조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으로 읽을 수 있다.

한국에서도 일부 대기업노조들이 민주노총을 탈퇴하면서 "더 이상 민주노총의 정치파업·정치투쟁에 동원되지 않겠다"는 핑계를 댄 바 있으며 자본가들도 이런 결정을 환영해왔다. 자신들은 지난 몇 년간 민주노총의 총파업에 한 번도 참여한 적이 없으면서 말이다. 그렇다고 민주노총에서 멀어져간 노조들이 '비정치적'인 것도 아니다. 지난 울산 동구청장 보궐선거에서 현대중공업노조가 한나라당 후보를 공식 지지하지 않았던가.

그러면 어째서 인도와 한국에서 자본가들은 민주노조와 대비시켜 '비정치적 노조'라는 명분을 내세우는 것일까? 기존 민주노조들이 너무 정치투쟁 일변도여서 그러한가? 그렇게 보기에는 요즘 민주노조운동의 정치투쟁은 참으로 보잘것없다. 자본가단체인 경총과 전경련의 성명서에서조차 "민주노총은 정치투쟁을 중단하라"는 문구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들은 요즘 보수정치권을 상대로 '포퓰리즘을 중단하라'고 외치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비정치적 노조'란 정확히 말하면 "노동자 정치세력화, 노동자 정당과 단절한 노조"를 뜻한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을 지지하는 노조를 두고 '정치적 노조'라고 부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인도에서 현대차나 마루티 스즈키 자본이 말하는 '비정치적 노조' 즉 어느 노총에도 가맹하지 않은 노조란, 노동자 정치세력과 일체의 연결고리를 갖지 않은 노조라는 뜻이 된다.

이 대목이 참으로 무서운 지점이다. 겉으로는 '비정치적 노조'라는 이데올로기를 구사하지만, 실제로는 이를 통해 자본가들이 정치투쟁을 감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가들이 복수노조를 활용해 자신의 입맛에 맞는 노조를 육성하는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파괴하는 것이다. 진짜 정치투쟁은 의회가 아니라 노동의 현장에서 벌어진다는 진리를 자본가들이 몸소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11일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이 뜬금없이 이렇게 얘기했다. "복수노조 제도가 순조롭게 운영되고 있고, 새 노총 설립에 우호적인 여건으로 작용할 것." 바로 그 새 노총이 '정치·이념투쟁 배격'을 외치는 비정치적 노조들의 총본산 아니던가. 현존하는 어느 노총에도 소속되지 않은 노조들 말이다.

지난 6월 22일, 건설노조가 하루 총파업을 선언하고 시청광장 앞에 1만5000명이 운집하는 상경투쟁을 전개했다. 그 자리에서 연사로 나선 민주노동당 한 국회의원의 연설 중에 이런 대목이 있었다. "동지들, 한 1년만 참아주십쇼. 내년에 선거농사를 풍년농사로 지으면 우리가 세상의 주인이 됩니다. 지난 선거농사에서 종자 잘못 선택해서 이 고생 하고 있지 않습니까."

과연 그러할까. 자본은 타임오프와 복수노조를 고리로 삼아 노동현장에서 하나둘씩 진지를 빼앗으며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파괴하고 있는데 말이다. 손가락으로 선택을 잘해서 의회에 몇 사람 더 보내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그런 의회의 부름에 사장님·회장님들은 '해외출장 중'이라며 조롱하고 있는데…….

상층에서는 '진보대통합'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지만 노동현장에서는 자본가들이 벌이는 정치투쟁에 진지를 계속 빼앗기고 있다. 오히려 지금은 복수노조를 공세적으로 활용하여 마루티 스즈키 노동자들이 벌인 저항들을 곳곳에서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진지를 하나둘씩 확장해가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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