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업은행을 둘러싼 정부의 모순된 행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산업은행을 민영화한다면서도 여전히 관치에 대한 미련을 못 버렸다는 게다. 또 유사 공적자금 사용도 논란거리다. 따지고 보면 국민의 세금에서 나온 돈인데, 아무런 통제 없이 쓰인다는 이야기다.
이는 모두 산업은행이 최근 대우건설 인수에 돈을 무리하게 쏟아붓기로 하면서 불거진 논란이다. 산업은행은 지난달 29일 대우건설 지분 39.5%를 주당 1만8000원(총 2조3000억 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그러나 대우건설의 주가는 5일 종가기준으로 1만1000원에 불과하다. 산업은행이 대우건설 주식을 시가보다 63.3% 더 비싸게 사주는 셈이다. 설령 대우건설 주가가 저평가돼 있다고 해도, 납득하기 어려운 결정이다. 경제개혁연대가 4일 논평에서 "산업은행의 대우건설 인수는 순수한 상업적 판단이기보다는 정책적 판단"이라고 지적한 것은 그래서다.
만약 산업은행이 '정책적 판단'에 따라 대우건설을 인수한다면, 이는 또 다른 모순에 부딪힌다. 이른바 정책금융을 위한 기관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산업은행으로부터 분리, 설립된 정책금융공사가 그것이다. 산업은행이 정책금융공사가 할 일까지 떠안은 셈이다. 이에 대해 경제개혁연대는 "'법 따로, 현실 따로'라는 우리나라 금융의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내는 예"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산업은행은 대우건설을 인수하기 위해 1조 원어치 주식을 추가로 취득할 수 있도록 금융위원회에 예외 승인을 받았다. 현행법상 산업은행은 자기자본의 20% 이상을 자회사에 출자할 수 없는데, 대우건설을 인수하려면 출자 한도를 더 늘려야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산업은행은 지분 인수 비용 2조3000억 원, 유상증자 1조 원을 합쳐 모두 3조3000억 원을 투입하는 셈이다. 문제는 이 돈이 사실상 유사공적자금에 가깝다는 점이다. 산업은행의 지분 전체를 정부가 소유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렇다.
현행법상 예금보험공사나 자산관리공사가 정부보증채권을 발행해서 조성하는 공적자금(협의의 공적자금)은 공적자금관리특별법의 통제를 받는다. 그러나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을 통해 투입하는 유사 공적자금을 통제할 수 있는 길은 없다.
경제개혁연대는 "협의의 공적자금이나 유사 공적자금이나 국민의 세금 부담으로 전가될 위험을 안고 있다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못 박았다. 이 단체는 "공적자금관리특별법이 공적자금의 범위를 지나치게 협소하게 정의했기 때문에, 최소한의 통제도 받지 않는 유사 공적자금이 범람하고 이른 통한 관치금융이 시장경제질서를 위협하는 관행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며 "'도대체 왜 우리 사회는 과거 실패의 경험으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는가?'라는 자괴감마저 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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