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렌스 맬릭이 그랬듯 이광모 감독 역시 영화를 찍지 않는 동안 학교 교수로, 그리고 이런저런 영화계의 일로 많은 노력과 시간을 보냈다. 맬릭이 그랬듯 이광모 역시, 자본의 힘이 지나치게 횡행하는 사회 구조에서는 더 이상 영화를 한다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듯이 보였다. 영화에 대한 꿈을 잃은 것이 아니라 영화에 대한 꿈을 버린 듯 행동했다. "지금과 같은 시대에 영화란 과연 무엇이냐는 말이냐"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 이광모 감독. ⓒ오동진 |
대신 그가 애썼던 것은 아트 하우스, 곧 예술영화전용관을 운영하는 것이었다. 영화사 백두대간을 기반으로 그는 지난 10여 년간 이곳저곳에서 비상업극장을 운영하며 척박한 한국 극장문화에 예술의 숨결을 불어넣으려 애썼다. 하지만 그 역시 그리 쉽지 않아 보였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최근 그는 이화여대 안에 설립된 '아트하우스 모모'의 운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리고 마치 10여 년 전 비교적 청춘이었을 시절의 영화적 초심을 되찾으려는 듯, 세계 영화계의 위대한 천재인 잉마르 베리만의 회고전, 특별전을 마련했다. 잉마르 베리만이라 하면 스웨덴이 낳은 거장이다. <제7의 봉인>부터 <파니와 알렉산더>까지 걸작 중의 걸작으로 세계 영화인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한때 영화광 사이에서는 <제7의 봉인>을 보지 않으면 쉽게 이런저런 자리에 끼지 못할 정도였다. 이번 기획전은 영화와 함께 강좌와 교육이 이어지는 고담준론의 행사다. 그만큼 어렵지만, 또 그만큼 신선하다.
<잉마르 베리만을 찾아서: 스칸디나비아 시네마 배낭여행>이란 제목으로 지난 10일 시작된 이 행사는 무려 내년 7월10일까지 1년간 계속되는데, 베리만의 대표작뿐만 아니라 그에게서 영향을 받았다는 감독의 영화들까지 총 망라될 예정이다. 멀티미디어 전시회도 함께 열리고 관련 DVD도 출시되며, 무엇보다 베리만에 대한 영화학교를 따로 개설해서 본격적인 학습을 병행하게까지 한다. '헬로 베리만: 현대예술의 북극성'이란 주제의 이 교양강좌는 23일에 시작돼 8월4일까지 계속된다. 특정 영화감독을 조명하는 특별전이 1년이 넘게 집중적으로 열리는 것은 한국으로선 이번이 최초다. 이건 기획전이 아니라 새로운 영화학교를 여는 셈이다.
잉마르 베리만 기획전을 통해 이광모 감독이 얻으려는 것, 이루고자 하는 것, 궁극적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다시 한번 영화에 대한 꿈을 꾸려는 것이 아닐까. 이광모 감독은 이번 영화전을 계기로 두 번째 영화연출을 준비 중이다.
이광모를 보고 있으면 영화는 결코 오락이 아니라 예술이라는 점을 새삼 깨닫는다. 그래서 이광모의 영화적 순혈주의는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준다. 이광모 감독을 다시 만났다. 그의 꿈을 다시 들어 봤다.
-요즘 젊은 관객들이 잉마르 베리만을 알까? 이 기획전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오동진 |
-잉마르 베리만은 누구인가. 왜 지금 와서 다시 잉마르 베리만인가.
베리만 감독과 그의 작품세계를 짧은 시간에 설명해 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문학으로 비교해서 쉽게 얘기를 드리겠다. 잉마르 베리만은 셰익스피어나 제임스 조이스 같은 존재다. 혹은 톨스토이 같은 존재다. 잉마르 베리만은 1946년에 데뷔해서 2003년까지 무려 6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영화를 만들었다. 현대영화의 아버지랄까, 영화의 모더니즘 시대를 열었다고 일컬어지는 감독이다. 그의 영화는 사실 형이상학적인 작품, 종교적인 주제가 강한 작품 일색이다. 인간의 구원과 신의 존재 문제에 대해 천착하고 있는 주제들이라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작품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런데 그 어려움이라는 게 즐기려 하면 또 그 자체가 즐거워지는 것이기 하다.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베리만같은 예술영화는 현재, 한국 영화계에서 어떤 위치에 와 있는가?
"나 역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의 입장에서, 현재의 영화언어가 어디에 와 있는가 계속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영화언어의 진화가 멈춰 있다는 생각을 한다. 상업영화 외에 이른바 예술영화라고 하는 작품들이 외면받는 가장 큰 이유는 관객의 문제라기보다는 예술영화 스스로의 문제다. 새로운 창조성과 감수성을 느끼게 하는 영화언어가 드물다. 나 같은 작가들의 책임이다. 그렇게 봤을 때 잉마르 베리만 같은 감독에게 다시 돌아가 보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본다. 지난 60년 영화의 역사를 이끌어 온 주인공이기 때문에 그를 통해서 과거와 현재의 영화언어를 되돌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앞으로 60년 후의 영화매체는 어떤 모습일지, 영화언어의 가능성은 어디까지일지를 유추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보면 잉마르 베리만은 그 자체가 우리에게 중요한 자산이자 새로운 동력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중요한 의미가 있음에도 잘 안 본다는 것이다.(웃음)
"맞다. 나부터도 잘 안 본다. 요즘 나오는 영화들을 따라가는 것만도 벅차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걸 의도적으로 좀 멈춰야겠다고 생각했다. 셰익스피어와 조이스, 톨스토이 같은 고전으로 돌아가듯, 영화도 종종 고전에 대한 탐구가 이뤄져야 한다. 요즘 영화 보는 방식이 본질보다는 현상만 계속 따라가는 형국이다. 현실에서 한 걸음 물러나 조금 영적인 여행을 하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은가. 영화보기는 그렇게 돼야 한다. 휴식을 취하면서 평소 경험하지 않았던 다른 차원의 여행을 한 1년 정도 하는 것. 지금 우리 영화계에 필요한 것은 바로 그것이다."
ⓒ오동진 |
-단순히 영화상영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정도 열었다. 요즘 이런 강좌에도 사람들이 관심을 보일까?
"사실 깜짝 놀랐다. 강좌 자체가 전문 강좌라서, 그리고 어떻게 보면 굉장히 난이도가 높아서 이게 될까 싶었다. 물론 어떻게 보면 그래서 굉장히 재미있는 강의들이다. 어쨌든 예상 이상의 반응이 모이고 있다. 이런 전문강좌를 연 것은 영화가 가지고 있는 숙제가 영화만으로는 풀 수 없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문학과 철학, 신학, 연극 등 다양한 장르와의 접촉이 필수불가결해졌다. 이 강의들 역시 새롭고 신선한 경험이 될 것이다."
-이런 취지의 기획전이라면 서울만이 아니라 전국을 순회하면서 열려야 하지 않을까?
"궁극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좋은 예술영화 기획이 있으면 전국적으로 공유돼야 하는 게 맞다. 그런데 그게 이상이다. 전국의 예술영화관은 지난 10년 동안 그런 식으로 외형적인 면에서만 개발됐다. 자체 콘텐츠나 기획개발 없이 네트워크와 공동배급을 우선시하는 식으로. 그래서 양적으로는 팽창한 것처럼 느껴졌지만 질적으로는 퇴행해 왔다. 예술영화관이 예술영화관 수준을 지켜내지 못하고 있다. 전국에 과연 예술영화관다운 예술영화관이 몇 개나 될까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거의 모든 예술영화전용관이 슬럼화됐다. 이제 양적인 데 초점을 맞춘, 전국 공동상영이라는 데 주안점을 둔 기획에는 관심이 없다. 작은 기획이고, 어떤 예술영화전용관이 홀로 하는 기획이더라도 조금씩 조금씩 예술영화의 의미를 심화시키는 일들이 진행돼야 할 때다."
-예술영화전용관에 대한 정책이 혼선을 거듭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 문제도 지금 얘기한 예술영화관의 슬럼화에 영향을 미쳤나?
"무조건 예술영화전용관의 수를 늘리는 정책은 이제 불필요하다고 본다. 각 영화관은 텅텅 비어 있고, 비슷비슷한 기획들 때문에 영화관마다 고유의 색깔도 다 없어졌다. 관객들은 당연히 떠나간다. 이제는 각자의 색깔과 차별성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각자의 충성도 높은 관객들을 어떻게 만나고 보호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다."
-왜,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예술영화 운동에 매진하는가. 당신은 왜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가.
"난 난파하는 배의 선장이다. 선원들이 다 뛰어내려도 선장은 뛰어내릴 수는 없다. 예술영화 운동을 한 지 17년이 됐다. 단 하루도 더 나아진 적이 없다. 항상 악화하고 악화해 왔다. 잉마르 베리만 기획전 같은 경우 역시 솔직히 대단한 희망에 찼거나 그런 정신을 가져서가 아니라 이제 정말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게 뭘까, 그런 걸 고민하다가 나온 결과다."
(*이 글은 포털사이트 daum이 운영하는 '엔터미디어'에 실린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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