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평화포럼과 시민평화포럼은 20일 서울 마포 세교연구소에서 제1차 한반도전략세미나 'G2 시대, 동북아 질서의 재편'을 공동 주최해 첨예해지는 미중 갈등과 그 안에서 한반도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모색했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만을 놓고 본다면 두 초대강국의 영향력이 지배적 변수라는 건 이제 현실"이라며 "지금은 북한 문제가 당면한 현실이지만 우리의 미래를 규정할 변수는 중국과 미국, 그리고 중미관계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준형 교수는 냉전 이후 미국이 중국에 대한 '그랜드 전략'을 확립하지 못한 탓에 최근 미중관계가 대립하는 결과를 낳았다며 이러한 갈등이 한반도와 동북아 지역에서 표출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은 1990년대 클린턴 정부 초반 국제관계에서 다자주의에 입각한 포용정책을 표방했지만 이후 국익 확보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바꾸면서 중국에 대한 경계심을 키웠다. 2001년 9.11 테러를 계기로 일방주의를 밀어붙이던 부시 정부도 중국에 대해서는 확고한 정책을 확립하지 못했다.
김 교수는 "결과적으로 탈냉전 20년 동안 미국의 어떤 대통령도 동북아에서 균형자(balancer) 역할 이상을 넘어서지 않았다"며 "이런 수동적 대(對)중국 정책 덕에 중국이 미국의 심한 견제 없이 꾸준히 힘을 키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의 정권 교체에 성공한 오바마 정부는 '스마트 외교'에 의한 '연성 봉쇄(soft containment)' 전략을 추구했다. 다자외교 속에 중국의 인권, 민주화, 인터넷 검열 등의 문제를 거론함으로써 미국의 세계 질서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이에 중국이 크게 반발하면서 전 정부인 부시 행정부에서 정치·안보나 경제 교류 중 하나라도 원활히 흘러가던 상황보다 더 악화됐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이러한 갈등이 표면화된 대표적인 사례는 북한 문제. 6자회담의 의장국으로 선도적인 역할을 했던 중국은 2009년 북한이 2차 핵실험을 감행하자 잠시 흔들렸지만, 결국 확고한 입장을 잡았다. 미국과 함께 북한 제재에 나서 붕괴시키려 하는 것은 자국의 전략적 이해에 타격이 된다고 인식하면서, 북중 협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핵 포기를 위한 장기적 설득에 나서는 게 더 이득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같은 중국의 태도는 이듬해 천안함 사태가 터졌을 때 북한-중국-러시아와 한국-미국-일본이 대립하는 구도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미국과 중국은 지역적 안정이라는 목표를 위해 남북을 자제시켰지만 결국 연평도 포격 사건이 일어났다"며 "북한이 한반도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기저에는 동북아에서의 중미 질서재편 구도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미중 갈등은 최근 남중국해 등에 대한 영유권 갈등에서 중국이 공격적인 태도로 나오고, 베트남과 필리핀 등 주변국들은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면서 더 심화될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김 교수는 "중국은 미국이 동남아시아의 이해관계자가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하기 위해 강경 행보를 택했지만 미국에게 더 적극적인 관여의 빌미를 제공한 셈"이라며 "양국이 서로에 대한 위협을 과장하고 군비를 강화해 주변국과 군사협력에 이용하는 패턴은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동북아에서 첨예해지는 양국의 갈등은 한반도의 미래에도 악영향을 미칠 소지가 많다. ⓒ로이터=뉴시스 |
"한국, '헤징 전략' 필요"
'G2' 시대가 동북아에서 이미 현실로 나타난 상황에서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는 한국이 안보 측면에서는 한미동맹에 의존하면서도 경제적으로는 중국과의 무역 규모가 미국을 추월한 딜레마적 상황이기 때문에 G2 시대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남주 교수는 "중국과 미국 사이에 잠재적 갈등 요인이 표면화할 경우 남한과 한반도는 (미국이냐 중국이냐) 양자택일을 강요받게 될 것"이라며 "소위 '헤징(hedging) 전략', 즉 한미관계를 안정적으로 발전시키되 이 관계가 중국에게 위협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게 관리하는 게 가장 현실적인 전략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미동맹이라는 전통적 노선을 견지하면서 중국을 견제하는 이른바 '원교근공(遠交近攻)' 전략은 강한 인접국을 적으로 돌리는 결과가 될 것이고, 반대로 중국의 질서를 받아들인다 해도 중국의 이익에 부합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중국 체제의 불확실성이 잔존하는 상황에서 안정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헤징 전략'이 가능한 이유는 중국과 한국 사이 갈등의 최대 요인은 한미동맹이 아닌 남북관계 때문이라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이 교수는 "남북 관계를 악화시키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중국에 다시 위협을 가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남북관계를 새로운 국면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면 한중관계도 빠르게 복원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또 장기적으로는 '헤징 전략'을 넘어 동북아에서 다자안보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게 남한과 한반도의 평화와 발전을 보장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시간이 갈수록 미국은 동북아에서 중국과의 경쟁에서 불리한 처지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며 "중국의 부상을 다자질서 내에서 관리하는 방식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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