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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집권이 걱정스런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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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집권이 걱정스런 이유

[이태경의 고공비행]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통해 본 박근혜

내일 대선이 치러진다고 가정할 때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제일 높은 사람은 단연 박근혜다. 물론 대선은 아직까지 1년 6개월 이상이 남아있고 대선 결과에 영향을 미칠 변수들도 허다하다. 박근혜가 18대 대선에서 필승을 장담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가 현재 시점에 차기 대통령에 가장 근접했고, 이변이 없는 한 한나라당 대선후보로 선출될 확률이 압도적이며, 충성도 높고 열성적인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은 움직이지 않는다.

박근혜가 대한민국을 어떤 가치와 질서로 재편시키려고 하는가에 관심이 집중되는 건 그래서다. 답답한 건 박근혜가 꿈꾸고 이루고자 하는 비전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 참여해서 박근혜가 내건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을 세우자)는 MB가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추진하고 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그 결과는 재앙에 다름 아니다. 최근 복지국가 담론이 융성해지자 박근혜는 "아버지(박정희)의 꿈이 복지국가"였다면서 복지국가주의자를 자처하고 있지만, 복지를 전제군주가 베푸는 시혜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는 의심에서 자유롭지 못한 처지다.

비단 박근혜가 지향하는 '국가발전모델'만 흐릿한 것이 아니다. 98년 보선을 통해 정계에 등장한 이래 박근혜는 국가와 시장· 사회 등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중대한 현안들에 대해 또렷하고, 길고, 상세하게, 자신의 목소리로 발언한 적이 거의 없다. 그녀가 강단 있는 모습을 보인 것은 세종시 건설 정도인데 그조차 국가균형발전에 대한 신념이라기보다는 표 계산의 산물처럼 느껴진다.

대체로 박근혜는 민감하고 첨예한 그러나 중대하기 그지없는 사안들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알쏭달쏭한 말 몇 마디를 던지는 것으로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곤 했다. 그것도 원칙이라면 원칙일 수 있겠다. 이런 야릇한 원칙에다 신비주의 전략이 시너지 효과를 내 박근혜의 정치적 입지는 공고해졌다. 그러나 정작 국민들은 박근혜가 어떤 대한민국을 지향하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뜻하는 것

매우 드물긴 하지만 박근혜가 단호하고 명확하고 일관되게 자신의 입장을 밝힌 사안도 있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대한 태도가 대표적이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대해 국가정보원 과거사 진실규명위원회가 조작·과장됐다고 밝혔을 때 "발표 내용은 한마디로 가치가 없고 모함"이라며 정면으로 반박했던 그녀는 법원이 내린 재심 무죄 판결에 대해서도 '법에 따라 한 것'이라는 태도를 굽히지 않았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수사, 기소, 재판, 집행의 모든 형사절차가 위헌과 불법으로 점철된 사건이었다. 고문을 통해 얻어진 자백이 범죄를 입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증거였음에도 사건 관련자들은 유죄 판결을 받았고, 그 중 8명은 대법원 선고 다음 날 형장의 이슬이 되었다. 유신체제의 절대자이던 박정희의 지시에 의해 말 그대로 법살(法殺)된 것이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유신 체제의 위헌성과 불법성, 폭압성과 극악함, 박정희라는 자연인의 악마성을 극명하게 드러내 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통해 드러나는 박근혜의 치명적 약점들

사정이 이런데도 박근혜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피해자 및 유족에게 사죄는커녕 야멸찬 자세를 고수하고 있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관한 박근혜의 인식과 태도는 대통령을 희망하는 그녀에게 대통령직을 수행하기에는 치명적인 흠결들이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대한 박근혜의 인식과 태도는 무엇보다 그녀의 인식능력과 윤리의식에 대해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박근혜가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대해 피해자와 유족에게 사죄하지 않는 이유는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유신시절에 종결된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대한 사법적 처리가 형식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적법하고 정당했다는 인식이 하나고 나머지 하나는 설사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위헌과 불법으로 얼룩졌다고 해도 그 책임은 아버지의 몫이지 자기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전자라면 박근혜의 인식능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의미이고, 후자라면 박근혜의 윤리의식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는 뜻이다. 정확한 인식능력과 고도의 윤리의식은 대통령의 필수덕목이다.

국민의 기본권을 가볍게 여기고 법치주의에 대해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대목도 박근혜 대통령에 고개를 끄덕일 수 없는 이유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대하는 박근혜의 인식과 태도에는 국민의 기본권을 소홀하게 취급하는 경향이 짙게 배어있다. 생명의 보호 및 신체의 자유는 기본권의 기본이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기본권의 기본이 철저히 무시된 사건이다. 이런 사건에 오불관언하는 박근혜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제일의 사명으로 하는 대통령에 적합한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법치(法治)에 대한 박근혜의 인식도 문제가 많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보면 박근혜가 법치를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로 간주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법에 의한 지배는 통치자의 의사를 실현하는 수단으로서의 법을 의미한다. 즉 법에 의한 지배는 실질적인 의미의 '법치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법대로 했는데 무슨 문제냐'는 태도가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도 계속되면 정말 곤란하다.

진정 걱정스러운 것은 대통령직을 수행하기에는 이처럼 결정적인 약점을 지닌 박근혜가 18대 대통령에 가장 근접했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에는 타인의 고통에 철저히 둔감하고 도덕감정이 낮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 인혁당 사건 피해자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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