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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일 수업 전면 시행, 철학이 없다"

주5일 수업에 어울리는 교육과정, 토론과 합의 필수

내년부터 주5일 수업제가 전면 시행된다. 언론의 관심은 학부모들이 이른바 '놀토'(등교하지 않는 토요일)를 아이들과 어떻게 보내야 할지에 쏠려 있다. 그러나 교육 전문가들은 다른 중요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바로 '교육과정 개편'이다.

한국의 교육 정책은 일본의 선례를 많이 따른다. 다른 여러 제도와 마찬가지다. 주5일 수업제 역시 일본이 먼저 실시했다. 일본은 1992년부터 월 1회 주5일 수업제를 시행하기 시작해서 8년 후인 2002년에 전면시행 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 정부가 내세웠던 논리를 한국 정부가 주로 참조했다. 그래서 지난 2006년, 노무현 정부는 주5일 수업제를 부분 시행했고, 점차적으로 확대할 계획을 세웠다. 이번에 발표된 '주5일 수업제 전면 시행'은 그 연장선 위에 있다.

2006년 주5일 수업제가 화두로 떠올랐을 당시, 교육계에선 '교육과정 개편'이 쟁점이 됐다. 토요일에 수업을 안 한다는 것은, 결국 전체 수업 시수가 줄어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지금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과목 가운데 어느 것을 줄여야 하는가. 초·중등 교과과정의 여러 과목들 사이에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히는 문제다. 이는 교사 수급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그러나 이번 주5일 수업제 시행으로 당장 수업시수가 줄어들지는 않는다. 줄어든 수업 일수는 방학 일수를 줄이는 것으로 보완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주5일 수업제가 정착되면, 장기적으로는 수업시수를 줄이는 쪽으로 방향을 잡게 된다. 그러나 이에 걸맞은 교육과정 개편 논의는 제대로 이뤄져 있지 않다.

"아이들을 어떤 어른으로 키울 건가"…사회적 합의 필요한 교육과정 논의

'교육과정 개편'을 특정 직업군의 이해관계 문제로만 볼 수는 없다. 교육과정이란, 결국 '아이들에게 학교가 무엇을 가르칠 것이냐'라는 문제다. 우리 사회는 아이들이 어떤 어른으로 자라기를 바라는가. 즉, 우리 사회는 어떤 어른을 좋은 시민으로 보고 있는가. 그리고 이런 어른이 되기 위해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에서 어떤 지식과 기술을 배워야 하고, 어떤 체험을 해야 한다고 보는가. 결국 이런 문제다. 그리고 이는 '정답'이 없는 문제다. 다만 '합의'가 가능할 뿐이다. 이를 위해서는 폭넓은 토론이 필수적이다.

답답한 대목은, 주5일 수업제를 전면 실시한다는 정부의 발표에서 이런 문제에 대한 답변이 빠져 있다는 점이다. 언론 역시 이 문제를 캐묻지 않는다.

'유도리 교육'과 <시마 과장>, 교육과정 둘러싼 일본 사회의 논쟁

한만중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부위원장 역시 비슷한 지적을 했다. 한 부위원장은 "일본에선 주5일 수업제 실시과정에서 교육과정 문제를 놓고 첨예한 논쟁이 벌어졌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른바 '유도리 교육(여유 교육)'을 둘러싼 논쟁이다. 교과과정에서 국·영·수 지식의 비중을 줄이고, 아이들에게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게 '유도리 교육'의 취지다. 지식 습득만 강조하는 교육, 지나친 입시 경쟁 등이 일본 학생들에게 다양한 부작용을 낳았다는 생각에 따른 교육 방식이다.

살벌한 입시 경쟁과 주입식 교육은, 지루한 단순 작업을 잘 견뎌내는 '회사 인간'을 길러냈고, 이는 일본의 고도성장을 가능하게 만든 한 조건이었다. 그러나 정보화 시대는 창의적인 인재를 요구하는데, 일본의 전통적인 교육방식은 이런 인재를 키워내기에 적절하지 않다는 게 '유도리 교육'을 택한 일본 정부의 판단이었다. '주5일 수업제' 역시 이런 '유도리 교육'의 맥락에서 나온 제도다.

물론, 당시 일본 사회에서 '주5일 수업제'와 '유도리 교육'에 대한 비판도 거셌다. 아이들을 나약하게 만들고 학력을 떨어뜨린다는 주장인데, 주로 재계와 우파 진영에서 나온 주장이다. 일본 극우세력의 시각을 반영한 만화 <시마과장> 시리즈에도 이런 주장이 소개돼 있다. 실제로 고이즈미 정부는 이런 주장을 받아들여 '주5일 수업제' 실시 여부를 개별 학교가 정하도록 하는 등 한발 물러났다.

첨예한 쟁점에서 한발 뺀 교육부의 책임 회피

교육전문가들이 주목하는 대목은, "'주5일 수업제' 또는 '유도리 교육'이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에선 이런 정책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아이들에게 무엇을 더 가르치고, 무엇을 덜 가르쳐야 하는지'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는 점이다. 그런데 한국에선 이런 논쟁이 없다.

한만중 부위원장은 "교육과학기술부는 첨예한 이해관계가 엇갈린 교육 쟁점에서 책임을 회피하려 들고, 이를 지적해야 할 언론은 무관심하다"고 말했다.

▲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내년부터 주5일 수업제를 전면 실시한다고 지난 14일 발표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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