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둘째 주 토요일인 지난 11일, 대부분의 초중고등학교에서 수업을 하지 않았다. 올해부터 매월 둘째 주와 넷째 주에는 주 5일제 수업이 실시되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지난해 월 1회 실시하던 주 5일제 수업을 올해 1학기부터 월 2회로 확대 실시하기로 한 것이다. 이는 주 5일제 수업의 취지가 잘 실현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조처다. 교육부는 올해의 성과를 지켜본 뒤 내년부터는 주 5일제 수업을 전면적으로 매주 실시할 계획이다.
주 5일제 수업의 취지는 학생들이 학교 밖에서 다양한 체험을 하게 하고, 가정의 교육적 기능을 강화하며, 학생들에게 스스로 공부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 등이다.
그러나 이런 주 5일제 수업의 취지가 교육부의 평가대로 잘 실현되고 있는 게 사실일까? 이곳저곳에서 회의적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입시경쟁이 있는 한, 토요일 등교는 불가피하다"**
우선 주 5일제 수업 자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인천 P고의 L교사는 "고3 학생들의 경우 학교에서 강제로 등교하도록 종용하고 있다. 가정통신문을 보내 동의를 구하고 있지만, 이는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 게다가 학부모들도 자녀가 학교에 가서 자습을 하길 바라기 때문에 인문계 고교에서 주 5일제 수업은 먼 나라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광주지역 43개 인문계 고교 관계자들은 주 5일제 수업의 확대 실시에도 불구하고 3학년 학생들은 예외로 한다는 방침을 공동으로 채택했다. 실제로 이런 방침에 따라 지난 11일 이 지역의 인문계 고등학교 대부분에서는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자율학습이 실시됐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교육부는 토요일 강제등교를 단속하도록 권하는 공문을 시도교육청에 보내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역시 10일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경기, 충청, 전남 등 많은 지역의 인문계 고교에서 토요일 등교를 강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교조는 이런 상황에서는 교육부가 이야기하는 주 5일제 수업의 취지란 공염불에 불과하다며,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졸속적인 시행이 더 큰 문제" 비판에 교육부 "일단 시행하고 보자"**
이와 다른 측면에서 문제제기를 하는 이들도 있다. 주 5일제 수업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것 자체도 문제이지만, 충분한 준비 없이 졸속으로 시행되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것이다.
교육부의 의뢰를 받아 주 5일제 수업에 관한 정책연구를 진행한 이윤미 홍익대 교수(교육학)는 교육적 고려보다 행정적 편의에 따라 진행되는 주 5일제 수업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주 5일제 수업의 확대는 원칙적으로 바람직한 것이다. 그러나 공무원이 주 5일 근무를 하니까 학교도 주 5일제 수업을 해야 한다는 식으로 정책이 시행되는 것은 잘못이다. 주 5일제 수업이 교육적인 성과를 거두려면 다양한 준비가 필요하다."
이 교수는 주 5일제 수업을 확대 실시하기에 앞서 해결해야 할 과제로 크게 두 가지를 꼽았다.
그 중 하나는 교육과정의 개편이다. "주 5일제 수업을 계속 확대할 경우 학교의 총 수업 시수를 줄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학교는 지금까지 가르쳐 온 내용 중 무엇을 덜어내야 하는가? 또 가정과 사회는 아이들에게 어떤 체험을 제공해야 하는가? 이것은 학교와 사회의 역할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하는 문제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또 하나의 문제는 지역 간, 계층 간 교육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도시빈민 거주지역이나 농어촌에서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으면 달리 갈 곳이 없다. 문화시설이라고 할 만한 게 아예 없는 곳도 있다. 게다가 이들 지역의 학부모들은 대부분 맞벌이를 하고 노동시간도 길다. 이런 지역에서 실시하는 주 5일제 수업은 학교가 위탁받은 아이들을 다른 곳으로 떠미는 것에 다름 아니다. 게다가 사교육비 부담이 더 커질 수도 있다. 자칫하면 주 5일제 수업의 확대가 계층 간 및 지역 간 교육 불균형을 확대시킬 수도 있다."
주 5일제 수업에 관한 정책실무를 맡고 있는 교육부 신원재 연구관은 이런 지적에 대해 "모든 조건을 다 갖춘 뒤에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교육부도 이 교수가 우려하는 점들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교육 및 문화 여건이 열악한 지역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새로운 교육과정에 대한 논의를 공론화하는 것을 통해 문제를 풀어가겠다"고 말했다.
***일본, '여유교육'과 학력저하 논란**
그러나 외국의 사례를 살펴보면, 교육부의 이런 자신만만한 태도는 위험하게 여겨진다. 한국과 여러 모로 닮은 교육여건을 가진 일본의 경우를 보면 더욱 그렇다.
일본은 2002년에 주 5일 수업을 실시했다. 주 5일 수업을 도입한 취지도 같다. 학습량을 줄이고, 자율적인 체험활동을 확대하겠다는 것이었다.
1977년 일본에서는 과도한 입시경쟁과 맞물린 지식축적 중심의 교육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여유교육'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교육에서 지식전달의 비중을 줄이고 감수성과 창의성 계발을 강화한다는 게 그 요체다. 주 5일 수업제는 '여유교육' 정책의 완결판이었다.
그러나 한국과 달리 일본은 주 5일제 수업을 실시하기까지 10년 간의 치밀한 준비를 거쳤다. 교육부가 지방자치단체와 협조해 지역마다 주 5일 수업을 준비하는 위원회를 꾸려 운영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이는 주 5일제 수업이 지역 간 교육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이었다.
이렇게 치밀한 준비를 거쳤음에도 실시 5년째를 맞고 있는 일본의 주 5일제 수업은 논란에 쌓여 있다. 대표적인 게 학력저하 논란이다. 주 5일제 수업에 따라 수업시수를 줄이고 교과과정을 개편하는 과정에서 수학, 과학 관련 수업이 대폭 축소됐다. 이에 대해 일본의 경제계가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일본 청소년들의 수리능력 저하가 일본 경제의 경쟁력을 훼손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게다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학업능력 국제비교 조사에서 일본 학생들이 저조한 성적을 거두고 대학생들의 자연과학적 소양이 계속 하락하고 있다는 보고가 나오면서 이같은 비판의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여기에 일본 사회에서 두드러지는 정치적 우경화 경향이 전통적인 지식교육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 것도 한몫 했다.
고이즈미 정부 역시 '여유교육'에 비판적이다. 지난해 초 나카야마 나리아키 문부과학상은 "일본 학생들의 학력 저하를 이대로 방치하면 일본은 '동양의 노소국(老小國)'으로 전락할 것"이라며 "학습의 절대량이 부족하지 않도록 주 5일제 수업 실시 여부를 개별 학교의 재량에 맡기겠다"고 말했다.
정부의 이같은 방침에 따라 사립학교는 물론이고 공립학교도 주 5일제 수업을 철회하는 쪽으로 돌아서고 있다. 일본 국민들의 여론도 이에 호의적인 편이다.
여기에는 급격한 고령화에 따라 노동인구가 감소하는 데 대한 불안도 한몫 하고 있다. 노동인구의 감소를 젊은 노동인력의 생산성 강화를 통해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전통적인 교육방식으로의 회귀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새로운 학력 개념을 정립하는 계기 돼야**
일본 사회에서 벌어지는 이같은 논란은 비슷한 여건에 처해 있는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비슷한 논란이 재연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한국교육개발원 정광희 박사도 이런 지적에 공감한다. '주 5일제 수업 도입과 교육의 실천과제'라는 글에서 그는 일본의 사례를 예로 들면서 주 5일제 수업이 정착되기 위해서는 앞으로의 시대가 요구하는 학력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합의가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지식 위주의 전통적인 학력 개념에서 벗어난 새로운 학력 개념이 정립되지 않는 한 일본 사회에서 벌어진 논란이 한국 사회에서 그대로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일본에서는 논쟁의 초점이 '학력 저하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서 '일본 학생들이 습득해야 할 학력을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가'로 옮겨가고 있다. 일본 학생들의 학력이 평가의 방식에 따라 다르게 측정되면서 나타난 일이다.
정 박사는 주 5일제 수업의 확대에 따라 한국 사회에서도 학력 개념에 대한 논쟁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이같은 논쟁을 통해 지식암기 위주의 학력 개념에서 창의력과 문제해결 능력 중심의 학력 개념으로 전환하는 게 절실하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주 5일제 수업은 학생들을 학교에서 학원으로 내모는 결과를 낳을 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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