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 이야기다. 2일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한강성심병원을 찾은 이 여사 앞에는 "몸에 붕대를 감고 추한 모습을 안 보이려 애쓰는" 김준일 금속노조 구미지부장이 있었다. 김 지부장은 지난 30일 밤 경북 구미에 있는 반도체 업체 KEC 공장에서 노사 협상을 하다가 경찰의 기습 체포 작전에 맞서 분신했다.
그 자리에서 이 여사가 아들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40년 전의 기억이다.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피복공장 재단사로 일하던 아들 전태일 열사는 1970년 11월 13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스스로 몸을 불살랐다.
▲ 이소선 씨가 응급실에서 김준일 지부장을 만나 손을 잡고 있다. ⓒ매일노동뉴스(정기훈) |
이 여사는 "당시 아들은 작업복 안에 불을 붙였던지라 콧구멍과 입만 빼고 전체가 붕대로 칭칭 감겼었다"며 "그 모습이 보기 안쓰러워 고통을 줄여주려고 주사를 찾았다"고 말했다.
"주사를 찾아 간호사를 부르려니까 아들이 이러데요. '엄마 주사도 필요 없고 얘기만 하자.' 우리 아들이 나를 부르는 거라. 가까이 갔더니 자기 뜻을 이어 달라고 하데. 그때 부탁한 말을 지금도 못 잊어. 걸을 수 있는 한 걸어서라도 와야지."
올해 여든한 살인 이 여사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주위의 부축을 받으면서 병원까지 걸어온 이유는 "아들의 유언을 못 잊어서"라고 했다. 이 여사가 바지를 걷자 상처투성이 발목이 드러났다. 아들을 떠나보낸 뒤 40년 동안 투쟁 현장에서 얻은 상처라고 했다. "경찰의 구둣발에 차여서 살점이 떨어지고 피가 나서 다리가 이렇다"라고 했다. 전태일 열사의 동생 전태삼 씨도 "정부가 노동자들을 점점 더 심하게 대한다"고 말했다. 지난 40년의 삶에서 우러난 말이다.
함께 일하는 어린 여공들의 고통을 해결할 길을 찾다 절망한 끝에 분신한 아들을 둔 어머니와 역시 동료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다 몸을 불사른 중년 노동자의 짧은 만남은 굳은 당부로 끝났다.
"노동자들이 이렇게 사는 게 마음 아프다. 같이 힘내서 좋은 세상을 만들자."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