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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세상'과 노동자 결사의 자유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ILO 핵심협약 비준을 2012년 선거연합의 '핵심' 가치로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공통점이 있다. 김영삼-김대중 정부에서 이뤄졌던 국제노동기구(ILO)의 핵심협약에 대한 비준이 두 정부에서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ILO 핵심협약은 모두 여덟 개로 제87호 결사의 자유와 노동조합 결성권 협약, 제98호 단체교섭권 협약, 제29호 강제노동 협약, 제105호 강제노동 폐지 협약, 제138호 최저(노동)연령 협약, 제182호 가장 나쁜 형태의 아동노동 협약, 제100호 동일노동 동일임금 협약, 제111호 고용과 직업에서의 차별금지 협약이 그것이다.

"예외와 타협의 여지가 없는" ILO 핵심협약

1차 대전 직후 전쟁의 참화가 노동운동의 배제와 노사관계의 불안정으로부터 기인했다는 반성 속에서 제국주의 열강들이 1919년 창설한 ILO는 지금까지 모두 188개의 협약을 제정했다. ILO 협약은 '국제 노동법'으로 회원국 정부가 특정 협약을 비준하면 관련 국내법과 규정을 협약의 취지에 맞게 고치거나 새로 만들어야 한다.

1999년 열린 세계총회에서 ILO는 188개 협약 가운데 위에서 말한 8개를 핵심노동기준, 즉 기본협약으로 채택하고, 지구상의 모든 나라와 일터에 예외 없이 적용한다는 방침을 천명했다. 이후 국제연합(UN), 유럽연합(EU),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표준기구(ISO) 등 각종 국제기구에서 ILO 기본협약을 "예외와 타협의 여지가 없는" 핵심적인 노동기준으로 자신들의 활동과 사업에 반영해 왔다. 지금은 국제 사회에서 정부와 사용자도 인정하는 기업 활동과 노사관계의 중대 가치로 자리 잡았다.

ILO의 8개 기본협약에 대한 인정과 실행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노사협력과 산업평화는 불가능하다는 게 국제기구들의 공통된 입장이다. 이점에서는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신자유주의의 집행기관'들도 동의하고 있다.

세계 꼴찌 수준인 한국의 핵심협약 비준 개수

1991년 한국이 ILO에 가입한 이래 8개 핵심협약 가운데 지금까지 4개가 비준됐다. 김영삼 정부 말기인 제100호 동일노동 동일임금 협약의 비준(1997년 12월)을 시작으로, 김대중 정부 시절 제111호 고용과 직업에서의 차별 금지 협약(1998년 12월), 제138호 최저 노동연령 협약(1999년 1월), 제182호 최악의 형태의 아동노동 폐지 협약(2001년 3월)을 차례로 비준했다. 이로써 한국은 아동노동 및 차별금지와 관련된 ILO 핵심협약을 비준한 나라가 되었다.

2003년 노무현 정부가 들어설 때 남은 것은 결사의 자유(제87호)와 단체교섭권(제98호), 강제노동 폐지에 관한 협약 두 개(제29호와 제105호) 등 모두 네 개였다. 하지만 2008년 2월 노무현 정부가 막을 내릴 때까지 핵심협약에 대한 추가 비준은 이뤄지지 못했고,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서는 오히려 뒷걸음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ILO 회원국 183개 가운데 ILO 핵심협약을 네 개 이하로 비준한 나라는 14개에 불과하다. 투발루 0개, 몰디브 0개, 마샬군도 0개, 브루나이 1개, 솔로몬군도 1개, 미얀마 2개, 미국 2개, 소말리아 3개, 바레인 4개, 인도 4개, 중국 4개, 동티모르 4개, 오만 4개, 한국 4개 순이다.

시늉만 하다 끝난 노무현 정부 5년

노무현 정부 시절 강제노동 관련 협약 비준을 위한 부처간 실무협의가 열리기도 했으나 명쾌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유야무야되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강제노동으로는 각종 시위진압에 동원되는 전의경과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공익근무요원을 꼽을 수 있다.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은 노무현 정부 시절 건들지도 못했다. 노조 가입 범위와 노조원의 자격을 제약하는 법제도들이 개선되지 않았다. 실업자는 노조원이 될 수 없다거나 해고자는 노조 임원이 될 수 없다는 따위의 노조 자율성을 부인하는 정책이 일관되게 집행되었다. 소방관, 경찰관 등에게 노조 결성권을 주는 문제는 검토조차 되지 않았다. 공무원노조와 교원노조의 단체교섭권은 이런 저런 이유로 억제당했다. 이런 흐름은 노무현 정부 내내 유지되었고, 이명박 정부에 이르러 악화되었다.

국제노동기준의 측면에서 보자면 김영삼-김대중 정권은 상승기였고, 노무현-이명박 정권은 하강기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배경에는 노동운동의 고양과 위축이라는 시대적 분위기도 자리 잡고 있다.

'사람 사는 세상'의 출발점

노무현 대통령이 훌쩍 세상을 등진지 2년이 지났다. 이명박 정부의 실정이 거듭될수록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그리움이 국민들 사이에 널리 퍼지고 있다. 그러나 냉정히 평가하자면, 이명박 정부 실정의 씨앗은 상당부분 김대중-노무현 '민주정부 10년' 동안에 뿌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에 그 그리움은 삼척동자도 '부자되세요'를 외치던 노무현 정부 집권기 5년의 '현실'에 대한 그리움이라기보다는 인간 노무현이 가슴에 품었지만 '현실'이라는 장벽에 막혀 대통령 자리에 올라서도 결코 이루지 못한 꿈과 희망에 대한 노스탤지어적인 그리움일 것이다.

봉하 마을에서 써내려간 그의 글을 읽어보면, 그가 생애 마지막 날 신새벽 부엉이 바위에서 떠올려보았을, 못다 이룬 꿈과 희망의 목록에 '노동자를 위한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 확대'가 들어있었으리라 싶다.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자기 조직을 만들고 집단으로 사용자와 대등하게 교섭할 수 있는 세상이야말로 '사람 사는 세상'의 출발점이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물론 노무현 집권기 동안 벌어진 노동 정책의 실패를 그의 정부와 '현실'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전략과 전술의 부재 속에 '참여'의 기회를 활용하지 못한 노동운동, 특히 민주노총의 능력과 책임감 부족도 비판을 빗겨갈 수 없기 때문이다.

ILO 핵심협약 비준을 2012년 선거연합의 '핵심' 가치로

꽃피는 봄이 왔다. 한국의 봄은 핏빛으로 완연하다. 1894년 4월이 그랬고, 1919년 3월이 그랬고, 1960년 4월이 그랬고, 1980년 5월이 그랬고, 2009년 5월 23일이 그랬다. 그리고 그 핏빛은 죽음과 허무의 어두운 핏빛이 아니라 삶과 희망의 밝은 핏빛이었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 서거 2주기를 맞는 오늘, 양심과 정의감을 갖고 시대를 살고자 하는 이들은 슬픔과 추모보다는 부활과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그 밝음의 밑바탕에는 다가오는 2012년 정치일정에서 거대한 변화를 염원하는 갈망이 자리 잡고 있다.

다섯 개 야당이 손에 손을 맞잡고 내년 선거를 함께 대비하려 노력중이다. 이 연합-연대의 깃발 아래 민주노총과 한국노총도 집결하고 있다. 물론 연합-연대의 토대는 노무현 자신도 안타까워한 노무현 정부 5년의 실정(失政)이 아니라, 인간 노무현이 꿈꿨던 그러나 미완으로 남겨진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한 장정(長征)이 될 것이다. 그리고 국민의 대다수가 노동자인 한국에서 그 장정의 출발점은 "노동기본권의 확대·강화"여야 한다.

2012년 6월 출범한 새 국회가 ILO 핵심협약 비준안을 통과시키고, 2013년 2월 출범한 새 정부가 (이명박 대통령권의 거부권 행사를 전격 취소한 다음) 대한민국 정부의 핵심협약 비준을 국제노동기구(ILO)에 당당하게 통보하는 날을 상상해보자.

ILO의 공식초청을 받은 새 대통령이 2013년 6월 열리는 ILO 세계총회에서 민주주의 국가로 복귀한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보고하면서 노무현의 정신인 '사람 사는 세상'을 언급하는 날을 상상해보자.

1987년의 6월 항쟁과 7,8,9월 노동자 대투쟁이 제도적으로 완성되는 그 날이야 말로 봉하 마을로 내려온 인간 노무현이 우리 모두와 맞이하고 싶었던 그날이 아닐까.

▲ 1987년 7,8,9월 노동자 대투쟁ⓒ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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