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역사에서 5월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 달이다. 5월이 특별한 것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결정지은 사건들 가운데 상당수가 5월에 몰려있는 때문이기도 하고, 대한민국 국민들의 정신을 지배하는 가치를 대표하는 두 인물과 밀접하게 연관된 탓이기도 하다. 그 두 인물은 박정희와 노무현이다. 박정희는 5ㆍ16 군사반란을 통해 장기집권의 문을 열었고, 노무현은 5월 23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근 실시된 여론조사결과를 보면 다시 뽑고 싶은 대통령 1위가 박정희였고, 2위가 노무현이었는데, 두 사람 간의 차이는 미미했다. 세대 별 쏠림 현상이 두드러지긴 했지만, 여론조사결과를 보더라도 현재의 대한민국은 박정희와 노무현의 나라라고 해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박정희가 꿈꾸던 대한민국과 노무현이 이루려던 대한민국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박정희가 지향하던 가치와 노무현이 추구하던 가치가 삼엄하게 대치하고 있는 것이다. 내년에 치러질 총선과 대선은 두 사람이 추구하고 꿈꾸던 가치 가운데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를 결정한다는 의미도 내포한다. 박정희와 노무현은 어떤 가치를 추구했던 것일까?
박정희 신화의 이면(裏面)
박정희 신화의 밑천은 박정희 재임 시에 달성한 경제성장이다. 50대 이상에서 박정희에 대한 지지가 압도덕인 것은 박정희 덕분에 대한민국이 가난에서 벗어났다는 믿음 때문이다. 유사파시즘-특히 유신시대-이라고 명명해도 이상하지 않을 박정희의 폭압적 독재조차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불가피했다는 대중들의 확신 앞에서는 결정적인 흠이 되지 않는다. 독재와 경제발전 사이에는 선택적 친화성이 있으며 경제성장을 위해 민주주의를 유보한 것이 한국만의 경험만은 아니라는 일부 학자들의 친절한 설명도 뒤따른다.
하지만 경제성장과 민주주의의 병행발전이 불가능한 것인지도 의문일뿐더러, 백보를 양보해 박정희 재임 시에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이 있었다고 해서 그것이 박정희라는 자연인의 혜안과 지도력 때문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매우 부당한 일이 될 것이다. 박정희는 경제성장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대내외적 조건 속에서 재임 기간을 보냈다. 대외적으로 보면 서구 자본주의가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었고, 미국의 군사적 보호 및 경제적 지원 속에서 국제 분업체제의 하위파트너 지위를 안정적으로 인정받았으며, 후후발국가로서의 다양한 이점이 있었다. 대내적 조건도 경제성장에 최적이었다. 한국전쟁 발발직전에 단행한 농지개혁으로 인해 산업화의 최대 걸림돌인 지주 계급이 사실상 소멸했고, 교육 수준이 높고 근면한 대규모 노동력이 존재했으며, 수백 년에 걸쳐 구축된 수준 높은 문화적, 조직적 자원들이 남아 있었고, 정부의 정책 결정과 집행을 조직적으로 방해할 만한 세력이 부재했다.
이와 같은 대내외적 조건들을 감안할 때 박정희 시대의 경제성장은 기적이 아니었고 박정희 개인의 역량 때문은 더더욱 아니었다. 박정희가 쿠데타를 통해 대한민국을 접수할 당시 대한민국은 경제성장에 필요한 준비를 마치고 출발선을 힘차게 박차고 나갈 참이었다. 경제성장률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박정희가 아닌 누가 집권을 했더라도 박정희 재임 시에 이룬 성취와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 경제성장을 이뤘을 가능성이 높았다.
더구나 박정희 통치 기간 중의 경제적 성과들은 치명적인 약점들을 내장한 채 달성된 것이었다. 고지가(高地價)와 고물가라는 정책수단을 이용한 외상경제의 채택, 노동 및 농업에 대한 극단적인 억압과 배제, 재벌 및 수도권ㆍ경상도 중심으로 경제체제를 재편해 기업간, 지역간, 산업간 극단적인 불균형 초래 같은 것들이 박정희 경제체제의 그림자였다. 문제는 박정희식 경제 체제가 지닌 모순들이 너무나 크다는 점이다. 현재 대한민국이 직면하고 있는 근본적 경제ㆍ사회적 모순들은 기실 박정희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대한민국 국민들 대부분이 고통에 신음하고 있다. 요컨대 박정희는 경제발전에 최적의 대내외적 조건들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지속가능하고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편익을 누릴 수 있는 경제모델을 만드는 데 완전히 실패한 것이다.
한편 박정희의 가장 큰 잘못은 쿠데타를 통한 헌정유린도, 지속가능하지 않은 경제체제 구축도, 민주주의의 압살도 아니다. 박정희의 최대 과오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의식을 병들게 하고 노예화한 데 있다. 박정희는 18년에 이르는 장기 집권기간 동안 대한민국을 병영으로, 국민들을 병사로 간주하고 인간개조 프로젝트를 설계하고 추진했다. 박정희의 인간개조 프로젝트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정신 보다는 물질에, 과정 보다는 결과에 집착하게 되었고, 대한민국 국민들이 물신숭배자ㆍ경제동물ㆍ우승열패의 신도들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박정희의 삶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생존욕구와 약육강식이었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 대다수는 물질적 풍요와 힘이 곧 정의라는 생각에 심취해 있다. 박정희는 대한민국 국민들을 정신의 아들들로 만든 것이다.
노무현이 꿈꾼 사람 사는 세상
박정희에 비해 노무현은 모든 면에서 불리했다. 개혁을 추동할 세력도 미약했고, 지지기반도 취약했으며, 반대자들은 너무나 많고 강했다. 게다가 대내외적 경제조건도 우호적이지 않았다. 세계화로 인한 규정력은 결정적이었으며, 일국적 차원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정책수단은 제한적이고 그 효과도 예전 같지 않았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은 박정희 시대의 후후발국가가 아니었다.
이 모든 악조건 속에서도 노무현은 분투했다. 반칙과 특권의 폐절, 정치 개혁, 사법개혁, 국가 균형발전, 남북관계 개선, 동북아 균형자 역할, 성장과 분배의 균형, 복지 인프라 구축 등이 그가 추진했던 과제들이다. 성과가 있었던 것도, 실망을 안긴 것도 있었지만, 대체로 추구했던 정책 목표와 방향들은 옳았다고 판단된다.
그러나 재임 시 노무현은 사면초가 상태였다. 이미 커질 대로 커진 시장과 시민사회의 존재는 정부의 역할을 상당부분 규정했을 뿐 아니라, 보수를 대표하는 극우와 진보를 대표하는 관념좌파는 사안마다 노무현을 협공했다. 여기에 노무현 자신의 실책과 준비 결여-그는 정말 갑작스럽게 대통령이 되었다-가 겹쳐 사정을 더욱 악화시켰다. 집권 기간 내내 여당은 지리멸렬을 반복했고, 대통령의 지지율은 낮았다.
퇴임 후 노무현은 정말 행복해 보였다. 불행히도 그 행복은 너무나 짧았다. 노무현은 집권세력과 검찰이 친 덫에 걸렸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이 되었다. 누구나 그를 비난했고 손가락질 했다. 노무현은 자진(自盡)으로 사태를 종식시켰다.
죽음 이후에 노무현은 복권됐고 그의 정신도 오롯이 살아났다. 노무현의 삶과 죽음을 관통하는 열쇳말은 정의에의 추구, 공존, 존중과 배려, 헌신과 희생 같은 비(非)물질적 가치들이었다. 살아온 삶이나 추구한 가치 차원에서 볼 때 노무현은 박정희의 반대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노무현은 자신이 믿고 추구했던 가치들을 통해서 대한민국이 정상국가가 되고 국민들이 행복하길 원했다. 그러나 그는 국민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삶과 죽음을 통해 자신이 지향했던 가치들을 국민들에게 보여줬을 따름이다. 노무현은 비할 데 없이 치열했던 삶과 비장한 죽음을 통해 인간적 존엄이 무언지를 증명했다. 육체는 스러졌지만 노무현의 사상과 가치는 고스란히 남았고 점점 더 힘이 세지고 있다.
두 정신의 각축은 계속되겠지만
앞으로도 박정희와 노무현이 남긴 사상과 가치는 국민들의 정신을 지배할 것이고 우위를 점하고자 경쟁할 것이다. 당장 내년에 치러질 총선과 대선이 그 시험대가 될 것이다. 박정희는 주류세력의 전폭적인 지원과 유력한 대선후보인 박근혜의 존재, 박정희의 은혜(?)를 잊지 못하는 일부 대중들의 성원에 힘입어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국민들의 정신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박정희가 남긴 정신의 유산들은-제도적, 물질적 유산들은 물론이거니와-사라질 것이고 또 그래야 한다. 박정희가 추구했던 가치와 지향은 퇴영적이고 폐해가 너무나 크다. 무엇보다 박정희 정신 안에는 인간이 마땅히 누려야 하는 존엄성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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