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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도 등 돌린 '메가뱅크', 왜 꼬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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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도 등 돌린 '메가뱅크', 왜 꼬였나?

[해설] 목적 잃어버린 강만수식 '산은 민영화'

산은금융지주 민영화 논의가 우리금융지주와의 합병 논의로 인해 이상한 길로 접어들고 있다. 본래 목적은 사라지고, 세계 대형 은행들과 경쟁하자는 이른바 '메가뱅크' 논의만 무성하다.

이명박 정부 출범과 동시에 금융권 의제로 떠올랐던 메가뱅크 논의가 다시금 부활한 셈이다. 이는 그러나 산은의 경쟁력과는 별다른 관계가 없다는 공격을 받고 있다. 진보·보수진영을 가리지 않고 학계, 금융권, 정치권 등에서 모두 반대의사가 줄줄이 터져 나오는 모양새다.

지금으로서는 정부가 메가뱅크 논의를 밀어붙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무리한 산은 민영화 추진이 모든 문제를 일으킨 것 아니냐는 지적마저 나온다. 현 정부를 떠받치던 부동산 정책, 기업정책 등이 실패로 돌아간 가운데, 금융정책마저 무너져 내리고 있다.

메가뱅크 구상, 금융권·보수진영마저 일제히 반대

정부가 처한 가장 큰 난제는 메가뱅크 구상에 찬성하는 이가 없다는 데 있다. 강만수 산은금융 회장이 지난 15일 우리금융 인수를 통한 산은 민영화 구상을 내놓자, 당장 산은금융 노조와 우리금융 노조, 나아가 금융산업노조가 들고 일어났다.

금융산업노조는 16일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어 "우리금융과 산은금융의 합병 시나리오는 정부가 거대 국유 금융지주회사를 지배하면서 경제전반을 좌지우지하겠다는 관치금융 야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 사태"라며 "우리금융과 산은금융의 합병은 민영화와 거리가 멀다"고 비판했다.

조윤승 산은금융노조 부위원장은 "산업은행은 그간 국책은행으로서 구조조정과 벤처금융, 프로젝트파이낸싱(PF), 파생상품 시장 조성 등의 특수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며 "그간 IB(투자은행) 역량을 쌓아온 금융기관을 상업은행(우리은행)과 합치자는 발상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산은금융 노동자들이 메가뱅크에 반대하는 까닭은 또 있다. 우리은행과 비교가 되지 않는 덩치의 산은이 합병을 통해 흡수되는 것 아니냐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산업은행 노동자는 약 2000명인데 반해 우리은행은 직원수만 1만4000명대에 달하고 900개의 점포를 거느리고 있다.

비슷한 사례로 1999년 장기신용은행과 국민은행의 합병을 들 수 있다. 합병 전 1012명이던 장기신용은행 노동자들의 90%가 합병 후 회사를 떠났다.

한 산업은행 관계자는 "장기신용은행이 국민은행과 합쳐지면서 고유 업무 능력을 잃어버림에 따라 합병 시너지 효과도 사라졌다"며 "지금처럼 양 은행의 덩치가 차이나면, 결국 IB 업무에 집중해온 산은 직원들은 합병 후 설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비단 노조뿐만이 아니다. 우리금융 주가가 지난 17일 우리금융 매각안이 발표된 것을 계기로 하락세를 보인데 이어, 금융권은 일제히 합병 무용론을 강조한 보고서를 쏟아내고 있다.

유진투자증권은 18일 "국책은행의 인수가 민영화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문제제기 등 난관이 이어질 것"이라며 "우리금융이 매각될 가능성은 낮다"고 단언했다. 근본적으로 정부 돈을 들여 공적자금을 회수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동양종합금융증권도 "우리금융은 (합병을 통해) 얻게 되는 이득이 없다"며 "산은지주는 IB만 강한 형태여서 인수 시너지가 없다"고 비판했다.

야당도 이를 정치쟁점화하려는 마당인데, 정부는 든든한 우군마저 잃어버렸다. 보수언론들도 일제히 메가뱅크 무용론을 지면에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특기할만한 점은 보수지들이 그간 '범 진보진영'으로 분류되던 학자들의 말마저 적극 인용해 정부 때리기에 나섰다는 점이다.

19일 <동아일보>는 김상조, 전성인, 권영준 교수 등 학계 인사 10명을 대상으로 산은금융과 우리금융 합병이 바람직한 우리금융 민영화 방향인가를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해 "대부분의 전문가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사설을 내 "이러한 관측(산은금융이 우리금융을 인수할 것이라는 예상)이 사실이라면 상당히 우려할 만하다"며 "메가뱅크는 정부가 억지로 키운다고 될 일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조선일보> 역시 지난 13일 "강만수의 '메가뱅크 뚝심'"이라는 기사에서 '강만수식 메가뱅크론'에 대한 비판 논리를 자세히 소개했다. "산은과 우리금융 회장은 둘 다 MB의 측근", "정권이 바뀌면 물러날 사람들이 어떻게 거대 인수합병에 필요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느냐" 등 김상조 한성대 교수의 발언이 소개된 기사다.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은 이른바 'MB노믹스'의 중심 인물이다. 메가뱅크 구상의 핵심에도 그가 있었다. 강 회장이 15일 국회 정무위 전체회의에서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출범과 동시에 '메가뱅크' 외쳤던 정부

메가뱅크론은 이명박 정부 출범과 동시에 정부 차원에서 강력하게 제기된 금융정책이다. 4대강 사업·부자감세·기업규제완화 등과 궤를 같이 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대선 공약이었다.

2008년 3월부터 언론을 통해 알려진 메가뱅크론의 본래 구상이 바로 '산업은행+우리금융지주+기업은행'을 몽땅 묶어서 하나의 대형은행으로 키우자는 것이었다. 지금 논의되는 내용과 큰 차이가 없다. 그리고 바로 이 논의를 주도한 이가 강 산은금융 회장(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2008년 3월 31일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강 장관은 "한국의 경제 규모가 동북아시아에서 3위인데 최대은행이 세계 70위 정도의 규모밖에 안 된다. 현재는 국책은행도 함께 매각해 아시아 10대 은행을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며 "산업은행 민영화를 계기로 삼지 않으면 어렵다"고 강조했다.

메가뱅크의 '산파'나 다름없었던 강 회장이 다른 곳도 아닌 산은금융 회장으로 취임할 때 다시금 메가뱅크 논의가 거세지리라는 관측이 나온 까닭이기도 하다.

과거와 다른 점은, 이제 정부의 구호에 우군이 아예 사라진 것이라는 데 있다. 과거에도 메가뱅크, 산은 민영화는 끊임없이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그러나 지금처럼 정부 발표 직후 곧바로 보수지까지 등을 돌릴 정도로 정부와 여론의 마찰이 거셌던 건 아니다.

이는 지난 재보궐선거 패배 등으로 레임덕이 본격화된 현 정부가 더 이상 새로운 국정과제를 추진할 동력을 상실했음을 입증하는 지표로 해석 가능하다.

산은 민영화, 왜 추진했을까

심각한 문제는, 이런 '정치적 구호'로 인해 산은 민영화의 본래 목적이 실종됐다는 점이다. 정책 실패로 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산은 민영화를 떠받치는 중요한 논리는 정책금융공사와 분리 당시 거론됐던 '국제경쟁력을 갖춘 투자은행(IB) 육성'이었다. 금융위기 전까지 정부의 가장 큰 고민은 자본시장통합법 발효로 인해 파생금융시장이 커지고 IB 업무가 강화되는데 반해 이를 떠받쳐줄 금융기관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전문적으로 정책금융과 IB 업무를 맡던 산은을 민영화해 고민을 해결하자는 것이었다.

이는 산은 내에서도 지지하는 움직임이 컸다. 당장 산은 노조마저 민영화 추진 당시에는 큰 반대를 하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산업은행의 한 관계자는 "금융위기 전만 해도 연간 이익이 2조 원 이상씩 날 정도로 성과가 좋았는데, 조직 내부적으로는 '우리가 나쁜 소리만 듣는다'는 불만이 있었다"며 "산은 고위 임원층에도 민영화가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거셌다. 당시는 '민영화=경쟁력'이라는 등식이 지배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리먼 브러더스가 무너지는 등, 금융위기를 통해 IB에 대한 회의론이 세계적으로 일자, 산은 민영화도 추진력을 잃었다. 이 빈 틈을 비집고 들어온 게 메가뱅크 구상이다. 세계 대형 은행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은행도 덩치를 키워야 한다는 얘기였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투자은행 패러다임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벽에 부딪치면서, 민영화 논의가 메가뱅크로 변질됐다"며 "현재까지의 모습만 본다면, (산은 민영화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지금이라도 정책금융 부문을 떼어내고 IB 업무만 남게 된 현재의 산은에 맞는 바람직한 민영화 방안이 무엇인지 고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 교수는 "산은의 경험이 있다손 치더라도, 지금으로서는 산은이 독자적으로 경쟁력 있는 IB로 성장하기는 힘들다"며 "단순히 소유구조를 바꾼다, 덩치를 키운다는 차원에서 접근하지 말고 산은의 전문성을 키우는 방향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주문했다.

옛 산업은행 시절처럼 정책금융과 IB를 다시 합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마저 나온다. 이는 지금까지의 산은 민영화가 완전히 잘못된 방향으로 접어들었다는 지적에 다름 아니다.

산은 관계자는 "보통의 은행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하면서 수익까지 내던 멀쩡한 기관을 쪼개놓고 '독자 생존이 어려우니 합쳐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걸 이해하기 어렵다"며 "과거처럼 다른 상업은행들이 하지 않는, 벤처금융·장기 개발금융·기업구조조정·정책금융 등의 산업은행 고유 업무를 다시 하는 게 맞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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