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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 가입할 땐 천사, 보험금 탈 땐 악마 "억울하면 재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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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보험 가입할 땐 천사, 보험금 탈 땐 악마 "억울하면 재판하라?"

['민영의료보험' 뜯어보기·②] 보험사가 당신에게 보험금을 주지 않는 방법

- '민영의료보험' 뜯어보기
☞① "5년 전 병원 기록, 보험금 타려니 발목 '덥썩'"

민영의료보험 시장이 커지면서 보험 관련 분쟁도 늘고 있다. 지난해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보험 모집 관련 민원은 2000년 이후 10년 새 13.3배 늘었다. 보험 상담 건수는 하루 평균 254건, 보험 관련 분쟁 건수는 4만300여 건이었다. 보험 분쟁 유형으로는 보험 계약을 모집하면서 보험에 대해 허위·과장 설명하거나 필요한 설명을 빠뜨린 사례가 1만468건으로 가장 많았고 보험금 등 산정(6328건), 고지 및 통지의무위반(1802건) 등이 뒤를 이었다.

전문가들은 보험 분쟁이 남의 일만은 아니라고 경고한다. 민영의료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기 위해 쳐놓은 함정은 곳곳에 있다는 것이다. 그 근거는 가입자와 체결한 약관에 있다. 문제는 보험 가입자가 약관을 일일이 찾아 읽기 어렵고, 봐도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기 일쑤라는 점이다.

"뇌졸중이 아니라 뇌출혈, 그것도 수술할 때만"

▲ 민영의료보험 광고들.
대표적인 경우가 보장되는 질병의 범위를 제한하는 방식이다. 사망 원인 1,2,3위를 보장해준다고 광고하는 모 보험회사의 CI(Critical Illness)보험을 보자. CI보험은 3대 중대 질병인 암, 심근경색, 뇌출혈을 보장한다. 하지만 일반 가입자는 뇌졸중(중풍)과 뇌출혈, 심장병과 심근경색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뇌출혈의 발생 빈도는 뇌졸중 중에서 약 30%, 심근경색은 전체 심장질환에서 발생 빈도가 10%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뇌졸중은 크게 뇌출혈과 뇌경색으로 나뉜다.)

2,3대 사망원인인 다른 심장병이나 뇌혈관질환에 걸렸을 때는 보상받을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이러한 이유로 '중풍'을 보장한다고 믿고 가입한 가입자가 막상 중풍 중에서도 '뇌출혈'이 아닌 '뇌경색'에 걸리면 발길을 돌려야 하는 경우도 흔하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설사 뇌출혈에 걸린 환자일지라도 만약 뇌출혈로 수술할 때만 보장한다고 약관에 적혀 있으면, 보험금을 받을 수 있는 확률은 또다시 절반으로 떨어진다"고 말했다. 뇌출혈 환자가 꼭 수술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뇌출혈 환자 가운데 수술을 하는 경우는 절반쯤 된다.

우 실장은 "어떤 보험은 수술하는 심장질환만 보장되도록 했는데 사실 심장질환도 수술하는 경우가 드물다"며 "진짜 심근경색이 왔는데 세 시간 안에 병원으로 이송돼서 수술 없이 치료하면 보험사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수술하지 않아도 중환자실에 들어가야 하므로 병원비는 똑같이 많이 든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김종명 진보신당 건강위원회위원장은 "어떤 암 보험 상품은 암을 키워야만 보장해주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일례로 모 보험사는 악성흑생종과 전립샘암에 대해 암 진단을 받더라도 초기에 해당하는 경우(전자는 종양 깊이가 1.5㎜ 이하)에는 보장하지 않는다.

의사에게 진단받더라도 안심은 금물

보장 범위에 들어가는 질병에 해당하더라도 '진단 방식'에 따라 보험금을 못 받을 수도 있다. 암 보험을 예로 들어보자. 김종명 위원장은 "말기 암을 진단받더라도 혜택을 못 받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며 "대부분의 보험이 조직학적으로 진단한 암만 인정하는데 조직학적으로 진단할 수 없는 암도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뇌암이 생겼다고 하자. 손도 못 댈 정도로 종양이 커져서 수술도 못하고 환자가 사망했다. 민영보험회사는 조직학적 확진을 못 받으면 암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뇌암은 수술과 동시에 진단하지 수술하기 전에는 조직학적 검사를 사전에 못한다.

고령인 환자에게 말기 암이 전신에 퍼지면 병원에서는 암 진단만 하고 치료는 하지 않고 돌려보낸다. 이 경우도 조직학적으로 진단이 안 됐기 때문에, 의사가 아무리 암이라고 해도 보험회사는 자기 기준대로 암 진단이 안 됐다고 횡포를 부린다. 암뿐만 아니라 다른 병도 그렇다."


▲ 김종명 진보신당 건강위원회위원장. ⓒ프레시안(김윤나영)

"암 판정 보험 가입자, 몇 년 전 먹은 당뇨 예방약 때문에…"

보험사가 보장하는 질병 범위에 해당하고 확진까지 받았다고 해도 남은 관문이 있다. 바로 가입자가 보험사에 질병 이력, 가족 병력, 타사 보험 가입 여부 등을 알려야 할 의무인 '고지 의무'다. 최근 5년 이내에 걸렸던 질병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면 가입자는 보험금을 제대로 받지 못할 확률이 높다.

한국소비자원에 접수한 사례를 보면, 보험 가입자들은 "확진을 받지 않아서, 의사가 감기라고만 해서 별 문제 없으리라고 생각해서, 오래 전에 완치해서, 의사가 병명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탓에 몰라서" 등의 이유로 '고지 의무'를 지키지 않았거나 못했다고 주장한다.

지방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내과 의사 홍성익(가명) 씨는 "의사도 고혈압이나 당뇨병과 같은 만성질환은 (진단을 내리기) 애매할 때도 있다"고 말한다. 확진은 아니지만 증상이 심해지기 전에 미리 예방약을 주는 경우가 그렇다.

"10년 전에는 140mmHg 이상이면 고혈압이라고 봤는데 요즘은 130mmHg 이상이어도 '고혈압 주의'로 나간다. 나이가 들수록 혈압이 높아질 걸 고려해 그렇게 본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10년 지날 때마다 대개 혈압이 10mmHg씩 올라간다.

당뇨도 기준인 126mg/dl일 때부터 치료를 시작하면 이미 옛날부터 진행한 것이므로 의료계에서는 늦다고 본다. 아직 당뇨(확진)는 아니지만 수치가 100mg/dl 이상이면 치료를 시작해야 하지 않느냐고 본다.

그런데 (본격적인 당뇨라고 보기는 애매한) 110mg/dl 수치가 나와서 당뇨 예방약을 처방했다고 하자. 하지만 보험회사는 약 처방한 것을 근거로 당시 이 사람을 당뇨병 환자로 취급할 수 있다. 의사는 예방약이라고 말해도 환자는 '그때 왜 약을 먹였느냐, 의사가 안 먹였으면 보험사로부터 당뇨라는 소리를 안 들었을 것'이라고 항의한다."

상법에 따르면 "보험계약자가 고지 의무를 위반해도 그 사실이 보험 사고 발생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증명될 때" 보험사는 보험금을 지급할 책임이 있다. 다시 말해 예전에 걸렸던 병력이 최근 걸린 병과 인과관계가 없을 때는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보험 가입자가 '직접' 입증해서 보험금을 받는 과정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홍 씨는 이렇게 반문했다.

"가입자에게 돈을 받았는데도 (보험금을 지급할 일이 생기면 고지 의무 위반을 핑계로) 보험사가 계약을 해지하는 경우가 많다. 보험금 지급은 회사 마음대로다. 지급할 때 되면 해지하면 된다. 돈 안 준다. 보험사는 억울하면 민사 재판하라고 하지만, 재판까지 갈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보험료는 비싸고, 미래는 불안하고…"

이 모든 난관을 겪어본 가입자는 소수일 수밖에 없다. 보험사가 보장하는 질병에 걸릴 확률 자체가 희박하기 때문이다. 나머지 가입자는 어떻게 될까. 정작 의료비가 많이 필요한 노인이 될 때까지 보험 계약을 유지하지 못할 수도 있다.

지난달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내놓은 조사 결과를 보면 보험 가입자들이 민영의료보험을 해약한 이유로는 '보험료가 가계에 부담이 돼서'가 37.12%로 가장 높았고, '민영의료보험 보상범위가 너무 협소해서'가 29.31%, 수령한 보험금이 의료비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아서'도 19.39%로 뒤를 이었다.

민영의료보험을 해약한 응답자 중 40% 가까이가 비싼 보험료를 이유로 들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불안정한 고용 전망, 자영업의 어려운 여건 등을 고려하면, 고액의 보험료를 장기간 정기적으로 낼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 보험료를 부담할 형편이 못 되지만, 미래 병원비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민영의료보험에 가입한 이들을 위한 대책이 절실하다. 그리고 이런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정부와 정치권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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